< 공장파괴(3) >
“...?!”
룸뷔아와 위플의 눈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경직된 어깨와 굳은 인상.
그들의 표정에서는 당황이라는 감정이 새록새록 묻어나오고 있었는데, 지드먼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 유세현씨?”
다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누군가가 구하러 올 확률은 0%라고.
그런데 이 남자는...
유세현이 지드먼을 땅 위로 내려놓자 룸뷔아가 중얼거렸다.
“네놈...어떻게 이곳에...”
그녀는 인간이 이곳에 다다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림 팩토리의 내부다.
그 중에서도 레벨 3의 최고위의 철통보안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
그런데 외부의 레벨 1도 뚫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있단 말인가?
‘무력으로 뚫고 온건 절대 아니야.’
무력으로 뚫고 왔다면 경보가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룸뷔아는 똑똑히 봤다.
잠금 되어 있던 락이 풀리며 문이 열리는 것을.
무심코 질문하긴 했으나 결국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허나, 룸뷔아는 그 하나를 믿을 수 없었다.
‘이 시스템을 해킹했다고? 말도 안돼!’
왜냐하면 그녀조차도 레벨 3의 시스템은 해킹할 수 없다.
가능한 자를 꼽자면 3세대, 그중에서도 일반형이 아닌 지능형으로 개발된 안드로이드 정도.
“네놈...무슨 짓을 한 거냐.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지? 말해라.”
“......”
“말하기 싫다면, 말하게 만들어주마!”
손을 검으로 형태변환 시킨 위플이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세현은 스펙을 알아보기 위해 공격을 받아주었다.
챙!
이루어지는 힘겨루기.
4세대라 그런지 순수 힘은 B랭크 85%정도로 상당히 강했지만 던전 덕분에 더욱 강해진 유세현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그의 힘 스텟은 B랭크 98.76%.
꾸구국.
더욱 힘을 주자 굽혀지기 시작하는 위플의 무릎.
위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무, 무슨 힘이...”
놀란 것은 룸뷔아도 마찬가지.
“야! 위플 뭐하는 거야! 제대로 안 해?”
“제,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뭐, 뭐라고?”
어느새 루베르크의 날카로운 검신은 위플의 바로 머리위에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반으로 잘릴 판.
위플은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하려했지만.
솨아아아.
검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은 그의 육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지는 생체 피부와, 부식되는 회로.
“이, 이게 무슨 힘...”
유세현은 잽싸게 왼손을 뻗어 당황한 위플의 목을 부러트렸다.
피유웅-
머리를 잃은 몸이 이내 작동을 중지하고 힘없이 지면에 쓰러졌다.
유세현의 손이 반파된 위플의 머리로 향했다.
“위플!”
룸뷔아가 달려들었으나,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유세현의 손에는 어느새 7세대 마크보다 3배가량 커다란 메인칩이 들려있었다.
트드득.
부수기 무섭게 튀어나오는 코인.
코인은 주위로 확산될 새도 없이 유세현의 몸속에 흡수되었다.
완전한 죽음을 확인한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4세대 안드로이드의 칩은 머리에 내장되어있다.]
루크루프가 준 정보가 맞았기 때문.
게다가 그는 육체를 바꾸는데 제약이 있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였었다.
4세대 안드로이드는 전부 커스텀형으로 사람의 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통일화가 되어있는 5~7세대와 달리 4세대는 개개인마다 프로그램의 차이가 있어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들어 검으로 변한 룸뷔아의 팔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룸뷔아는 깨달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유세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최소 5명은 있어야 된다.’
그녀는 잽싸게 지원 통신을 날렸다.
하지만.
‘뭐, 뭐야? 왜 통신이?’
무엇인가에 의해 가로막혀있다.
‘이, 이건 방해전파? 큭, 어떻게...’
여태까지 이놈들이 재밍을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종의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인가.
경악한 룸뷔아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놈과 힘 차이는 나지만 그녀 또한 스텟이 높다.
지리를 잘 아는 만큼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동료가 있는 장소까지는 도망칠 수 있을 것!
허나, 그녀가 발을 떼는 순간.
쿵!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그녀의 육신을 옭아맸다.
눈에 띄게 느려지는 움직임.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입을 악문 룸뷔아는 쇄도해 들어오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황급히 주력 스킬을 난사했다.
“뱀의 춤시위!”
팔을 허공에 내지를 때마다 마력의 응집체가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유세현을 향해 날아갔다.
유세현은 차분히 받아쳤다.
‘천마광룡참.’
쌔애액-
쉭!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룸뷔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목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손.
치지직-
“네...네놈...”
그것이 룸뷔아의 마지막 말이었다.
유세현은 떨어져나간 목을 발로 짓밟아 마무리를 지었고, 50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생존자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그것을 지켜봤다.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구해준 것으로도 모자라, 그 강한 두 놈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해치우다니.
“다, 당신은...대체...”
유세현은 사람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묵묵히 할 일을 했다.
문을 열자 내부로 쏜살같이 들어오는 아린과 루시아.
생존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다 들키면, 일만 더 커질 수 있었기에 팀원들은 내부의 다른 장소에서 대기중이였다.
“루, 루시아!”
지드먼이 루시아의 곁으로 뛰어갔다.
루시아는 양팔이 없는 그를 꼭 안아주었고, 붙잡혀있던 팀원들은 경외어린 눈빛이 되어 유세현을 바라봤다.
“세, 세현씨...”
그들은 지금 이 순간 그를 따르기를 백번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감님.”
“알겠네. 자네들 팔이 담긴 게 이 보따리가 맞는가?”
“예, 예!”
아린이 빈약해 보이는 몸답지 않게 단번에 보따리를 들쳐 멨다.
과거 순수한 마법사였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괴력.
생존자들을 구출하면 아린을 포함한 50명의 인원들이 생존자를 안전한 곳까지 인도하고, 나머지 300명과 유세현이 작전을 마저 수행한다.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유세현이 시선이 용광로를 향했다.
그래, 마크와 전쟁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종족이 있다고 루크루프가 잠깐 언급한 바가 있었다.
“수인이구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아린이 설명했다.
“아는 종족입니까?”
“알고 있지. 오크와 더불어 알테리아 대륙에 존재하는 종족이네. 과거에는 교류를 했었네만...”
“교류...말입니까?”
“그러네. 하지만 지금은 모조리 끊겼지. 이유는...”
아린이 꼬리를 흘렸다. 그것만으로도 유세현은 대충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분명 뭔 짓을 한 것이겠지.
“흐윽...흐으윽...”
마지막 남은 수인은 펑펑 울고 있었다. 고양이 같은 귀와 엉덩이에 나있는 꼬리를 빼면 영락없는 성인 여성의 모습.
유세현은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했다.
판도라는 자신의 종족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적.
허나, 세상에는 이런 말이 존재한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이용할 수 있을까 이용할 수 없을까.
이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크 놈들을 부수기 위해서는 걸림돌만은 되지 않아야 했다.
행여나 재수 없게 두 세력에게 다굴을 맞는다면?
오크와 가루다 때를 떠올린 유세현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 여자를 살려 놓는다면, 행여나 조우했을 때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카드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유세현은 수인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아린에게 정보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린도 직접적으로 수인을 만나본 건 아니었기 때문.
그때 지드먼이 조심스레 껴들었다.
“심성 자체는 의외로 착하네. 그리고 정도 많지.”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책에서 읽은 것 같은 게 아니니. 우리 부녀는 이유가 있어서 남부의 깊은 숲에서 지낸 적이 있었네. 그때 우연히 몇 번 만난 적이 있지. 이 여성과 비슷한 호(虎)족이었네.”
“...믿겠습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간략하게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인은 각 부족마다 남다른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사람과 거의 동일했다.
‘하긴 그러니까. 교류가 가능했던 거겠지.’
유세현이 자리로 돌아와 손을 뻗자 수인은 눈을 질끔 감았다. 행여나 죽일 줄 알았던 모양인데.
어깨에 들쳐 메자 수인의 얼굴이 당황감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 자식! 인간! 그냥 죽여라! 노예가 되어 너희들의 노리개가 생각은 추호도...”
거기까지 들은 유세현은 이마를 짚었다.
그놈의 빌어먹을 노예제도.
이 수인이 이곳으로 잡혀왔다는 것은, 적어도 제 1공장보다도 제 2공장인 이 근처에 이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래서는 조우하는 순간 전쟁이다.
유세현은 잽싸게 수인의 입을 틀어막은 뒤 지긋이 읊조렸다.
“너를 노리개로 쓰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해주지. 나는 너희가 이 기계 놈들, 마크와 싸우고 있기에 구해주는 거다. 그러니 믿고 가만히 있어라.”
유세현은 남은 천을 이용해 그녀의 몸을 가려주었다.
잡혀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체인 것을 감안하자면 특별 대우였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윽고 유세현이 손을 천천히 뗐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저, 정말 나를 구해 주는 건가? 그냥?”
“물론.”
“...그 말이 진실이라면 저기 있는 보따리를 풀어서 내 팔과 다리를 붙여줘.”
“지금은 작전 중이라 불가능하다. 대신 전부 가져가주지.”
“아니, 시간 때문인 거면 괜찮아. 30초 정도면 충분하니까. 30초는 상관없잖아?”
“...30초?”
“그래. 30초. 그 안에 못 찾으면 네 말을 얌전히 들을게.”
유세현이 시선을 돌리자 루시아가 보따리를 가져와 풀었다.
씰룩거리는 수인의 코.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 멈춰 섰다.
“저거야. 내 오른팔.”
“이거 말인가?”
“아니, 그 왼쪽에 있는 거.”
“이거군.”
“그래, 맞아.”
유세현은 상처가 아문 수인의 오른쪽 어깨를 회 뜨듯 아주 얇게 쳐낸 뒤 오른팔을 갔다대었다.
거부 반응이 없이 잘 붙는다.
‘후각이 장난이 아니군.’
후각계열의 감지스킬을 익힌 생존자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물체중 하나를 구별할 수 있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 수인은 빠르게 사지를 찾아갔다.
유세현이 그 틈을 타 자연스럽게 물었다.
“후각이 뛰어난 거 같은데, 혹시 마크 놈들이 어디어디 분포해 있는지도 냄새로 알 수 있나?”
“마크? 아, 그 철 쪼가리도 된 놈들 말이야? 아니, 그건 불가능해.”
“냄새가 안 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감지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은 모양이군.’
이건 그나마 다행.
그녀는 결국 정말로 30초 안에 자신의 신체를 전부 찾아냈다.
팔을 쓸 수도, 아직 걸을 수도 없었지만 안심이 되는지 한층 누그러진 표정.
유세현은 남은 수인의 수족을 놈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전부 부패시킨 뒤 방을 나섰다.
* * *
삐잉-삐잉-삐잉-
제 3단계 경보. 코드 레드의 발동에 관리자들이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얼이 빠진 표정.
“야, 이게 무슨 일이야?”
“몰라! 갑자기 코드레드라니? 그건 침입자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나...”
-서걱.
유세현의 검이 4세대 마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동시에 바르라지는 칩.
맞은편에 서 있던 마크가 당혹감을 뒤로하고 공격을 취하려 했었지만, 이미 주위는 300명의 생존자들이 포위한 상태였다.
“어디 감히!”
콰과광!
쏟아지는 광역기.
암살자처럼 놈들을 부숴가던 생존자들은 존재가 파악되기 무섭게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부서 나갔다.
4세대 마크들이 뒤늦게 달려들었으나 수적 열세와 암흑투기에 의해 저하된 그들은 생존자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크으으...저놈들이 어떻게 이곳에...”
이 모든 게 알아채지 못해서 일어난 일.
4세대 안드로이드, 렘베르는 황급히 시스템을 조작했다.
아슬아슬 하지만, 폐쇄상황을 해제하고 바깥에 있는 마크를 불러 물량으로 찍어 누르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무, 무슨? 제어가 안 되다니!”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제어권이 빼앗겨 있었다.
“어떻게...어떻게?”
할 수 있는 생각은 그것이 전부.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이렇게 되면!’
렘베르는 황급히 비상수단을 사용했다.
드론을 징검다리로 이용한 장거리 전송.
그러나.
‘뭐야? 왜 통신이...재, 재밍이라고?’
통신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지금 그 누구도 통신으로 연락하는 인원은 없었다.
“재밍기까지 갖췄다는 건가?”
이렇게 되면 자신들은 이 공장에 완전히 갇힌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해킹당할 것을 염두하지 않았기에 비밀 통로 같은 것은 없었다.
“젠장! 무슨! 대체 누가...”
당혹감을 터트리는 렘베르의 목 뒤로 흑빛의 섬광이 번뜩였다.
< 공장파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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