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파괴(1) >
“......”
루크루프를 흘깃 쳐다본 유세현은 칩을 넘겼다. 칩을 연결한 루크루프가 화면에 나열되는 기호를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모든 언어는 자동 번역 되었기에 혹시나 했지만 유세현에게는 읽히지 않았다.
“이놈은 7세대로군. 살짝 덧붙여 설명하자면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양산된 것들은 5세대다. 그것들은 순수한 전투용으로 제조되었기에 감정회로가 없었는데...이놈들은 회로가 존재하는군.”
마치 잠겨져있는 보안을 하나씩 해제하듯 루크루프는 점점 상세한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 세력, 지금 보니 상당히 열악한 상황인데? 다른 종족이 놈들의 이목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이미 밀렸을 거야.”
“...그래서?”
“하지만 걱정마라. 판도라로 진입한 덕에 방법은 적어졌지만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
몸의 방향을 살짝 튼 루크루프가 유세현을 바라봤다.
“내가 이놈을 7세대라고 했지만 생산만 늦게 되었을 뿐 이놈들의 기본베이스는 내가 존재할 때와 똑같다. 그리고 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행정, 포격 요새도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
즉.
“해킹이 가능하다. 너가 가지고 있는 내 팔찌로.”
루크루프의 손가락을 본 유세현은 팔찌를 살폈다.
“MP주파수...이것으로 말인가?”
“그래 맞아. 그건 애초부터 안드로이드의 두뇌파동에 개입해 법칙을 해제시키고, 인간들의 힘의 근원, 기계를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물품이었다.”
“......”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
이강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레전더리 아이템에는 루베르크와 같이 전체적으로 고르게 밸런스가 잡혀있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느 특정분야에서 사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다고.
“지금 존재하는 포격 요새의 개수는 다 합쳐봐야 2개. 해킹한 뒤 자폭시켜라. 그렇다면 놈들의 수준은 어마어마하게 떨어질거다.”
“...우리 쪽에서 사용할 수는 없는 건가?”
“물론 사용할 수 있지. 잠시뿐이겠지만.”
유세현의 표정을 본, 루크루프가 말을 이었다.
“놈들에게는 루위드와 프랑코스가 있다. 놈들은 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지능이 높지. 게다가 시간이 흘렀다. 내 MP주파수에 완벽하게 대응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요새를 동결시키는 정도는 가능할거다.”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얼마 사용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폭파시켜 내부에 있는 놈들을 몰살시키는 게 났다.
허나, 이건 전제조건이 루크루프가 한 말이 딱딱 맞아 떨어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신뢰할 수 있는 꺼리가 필요하다.
“해킹이 100% 가능하다고 보나?”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네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해킹한 무인식 전쟁골렘. 데이터를 보니 놈들은 시도만 했을 뿐 그걸 해킹하진 못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보안이 예전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아, 참고로 덧붙이자면 놈들이 사용한 해
킹툴은 루위드가 개발한 것 같더군.”
유세현은 납득을 했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스스로 확신할만하지.
루크루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본래라면 그놈들이 직접 왔으면 했는데...아무튼 포격 요새를 부순 뒤 루위드와 프랑코스를 죽여라. 개인적인 감정도 있지만, 그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그놈들은 마크들에게 있어서 신과도 같다. 그러니 놈들이 죽으면
다른 마크들은 자연스럽게 와해될 거고 너희들에게 다신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끼이익-
딱 루크루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문이 열렸다.
아린 일행이었다.
스킬을 난사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들은 루시아와 유세현을 보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보, 보스라고요? 이 자가?”
일행은 인간인 루크루프의 모습에 경악했고, 유세현은 루크루프에게 캐물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캐물었다.
누가 성물조각을 가지고 있을지, 적의 병력배치는 어떻게 되는지.
병력 배치는 말단인 푸뤼푸의 칩에서도 파악하는 게 가능했지만, 성물조각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루위드나 프랑코스 둘 중 하나가 지니고 있을 것이라 말한 루크루프가 그들에게 여러 아이템을 건넸다.
탐색을 막아주는 디코이와 일순간 전파의 확산을 막아주는 재밍기.
그리고 비행정 내부의 지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내 작품들은 이 던전을 빠져나가지 못하니...아니, 사실 내가 준 그것들도 바깥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미지수지만...일단 가져가봐라.”
루크루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유세현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니, 어쩌면 이 질문을 가장먼저 했어야 했을 수도 있다.
유일한 모순이었으니까.
“루위드나 프랑코스라는 두 놈은 그렇다 쳐도, 마크들을 위해 애쓴 네가 다른 마크인들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우스운 소리군. 내가 그 2명에게만 배신당해 죽었을 거라 생각하나?”
“......”
“인간들이 만들어낸 언어 중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이 있지. 나는 착각했던 거다. 우리는 다를 거라고.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난, 놈들이 어떻게 되던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 있는 담겨있는 말이었다.
유세현은 검을 들었다.
“지금까지 네가 한말, 그 전부를 믿어주지.”
“하...고맙군.”
서걱-
목을 베는 것만으로 루크루프의 몸속에서 코인이 터져 나오며 그의 완전한 죽음을 알렸다.
안드로이드의 극의을 찍었던 3세대.
그는 칩으로만 존재가 가능한 5~7세대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쿠구구구!
저택 바닥이 미친듯이 진동했다. 천장에 균열이가고 파편이 머리위로 우수수 떨어졌지만, 일행은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이 난관을 이겨낸 보상을 얻는 것이었으니까.
이것은 이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
카텐이 눈을 감고 기도하듯 외쳤다.
“아...제발! 제발! 5개 이상 나와라!”
스스스.
떨림이 멈추자 카텐은 슬쩍 눈을 떴다.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 정말로 5개의 물품이 눈앞에 있었다.
일행은 곁눈질로 순식간에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인원수 제약. 그리고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던 만큼, 보상은 억 소리가 나올 만큼 무척 좋았다.
레어 등급의 아이템이 2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2개. 그리고 레전더리 아이템이 1개.
아이템 명: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의 전쟁갑주.
등급: 레전더리 [C Rank]
상세정보: 천재박사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가 인간과의 전쟁을 위해 행성, 프론데의 최강의 물질 가르타늄을 끌어 모아 만든 갑주입니다.
가르타늄의 특성으로 인해 형태변환이 가능하며, 나노머신과 융합되어 있어 신호를 주어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오오오! 유니크! 레전더리까지!”
얼마나 기쁜지 카텐은 몸을 가만히 놔두질 못했다.
유세현은 다른 아이템의 정보도 살폈다.
유니크 E랭크로서 팔에 장착하여 마력을 이용해 포탄을 쏘아낼 수 있는 미니 바주카와 하늘을 일시적으로 날 수 있게 해주는 소형 추진 장치.
레어 물품은 S랭크의 기계식 검으로 동일 물품이었다.
드디어 온 아이템 분배의 시간.
아린을 포함한 일행들은 일단 유세현에게 레전더리 아이템을 건네고 시작했다.
“나머지 4개는 저희끼리 분배해도 괜찮을까요? 아니면 또 가지고 싶으신 게...”
“아뇨, 네 분이서 알아서 나누시기 바랍니다.”
잽싸게 고개를 끄덕인 카텐이 일행과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필히 유세현이 거절할 것을 아니, 예의상 한 번 건네 본 말이리라.
아이템은 이렇게 돌아갔다.
함정에 걸려 폐가 된 루시아는 기계식 검.
아린도 검.
케드리나는 미니 바주카.
카텐은 소형 추진 장치.
본래는 아린이 미니 바주카나 소형 추진 장치에 대한 우선권이 있었지만 마법이 있는 그는 효율을 고려하여 검을 선택했다.
일행은 곧바로 시연하는 시간을 가졌다.
펑!
콰앙!
탄이 향하는 위치와 위력을 확인한 케드리나는 만족스러운 모습.
반면, 카텐은.
“으아아아!”
허공에서 뜬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 컨트롤이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었다.
루시아와 아린도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기계식 검은 약간의 형태변환이 가능해 원할 때 채찍처럼 길게 늘이는 것이 가능했다.
유세현도 흑색을 띠고 있는 갑주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지이잉.
배꼽부터 어깨까지 얇게 감싼다.
마치 몸에 딱 맞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듯 무척 편했지만, 웬만한 충격은 그냥 무시해 버릴 정도로 흡수성이 좋았으며 또한 무척 단단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마력을 세밀히 컨트롤하자 상반신에 있던 갑주가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하반신 쪽으로 이동해간다.
‘다룰 수 있다는 게 이런 뜻인가.’
밀도가 낮아지긴 하지만 가시처럼 날카롭게 만드는 것도 가능.
비슷한 힘을 지닌 적의 의표를 찌를 때 사용한다면 무척 좋으리라.
“이제 나가도록 하죠.”
“예!”
유세현의 말에 카텐이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곳에 와서 더욱 강해졌다.
거기다가 공략법까지.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이 순탄히 풀릴 거라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 * *
휘이잉-
미적지근한 기분 나쁜 바람이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폐허로 변한 방공호 내부를 확인한 카텐이 이마를 짚었다.
“크으...진짜로...”
귀환하는 도중 유세현에게서 생존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진즉 들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흔들리는 루시아의 눈.
유세현이 풀숲을 향해 말했다.
“나오시죠.”
스륵.
말과 동시에 툭 튀어나오는 두 개의 머리.
한 명은 초면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구면이었다.
수색대의 팀장 룽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그는 이동을 하며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했다.
“유세현씨의 팀이 복귀한 이후 얼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습격이 이어졌습니다. 상당한 정예가 왔기에...”
그 결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다수의 생존자들이 끌려갔다고 한다.
탈출한 생존자들은 놈들을 피해 숲 더 깊은 곳에 만들어 놓은 임시 거처로 피난한 상황.
유세현이 겸허히 받아들이자, 룽겐은 정말 뭐하는 인간인가 싶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해도 유세현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릭의 말이 순 억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유적의 출구 근처에도 놈들이 쫙 깔려 있었으니까.
뚫고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허나 그럼에도 명령을 따랐다. 게릭은 여태까지 그들을 잘 이끌어주었으니까.
그렇게 15일.
오늘 딱 철수할 예정이었는데 나타나다니.
거기다가 모습을 먼저 드러내지 않았는데 알아챘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해버린 존댓말.
지잉- 지잉-
놈들의 발소리가 별안간 울려 퍼진다. 최대한 자세를 낮춘 룽겐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회하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홱 돌리려는 순간.
어둠이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퍼펑!
폭음과 함께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잔재.
통신용 드론과 영상용 드론이 폭발한 것!
그 덕에 적을 찾기 위한 마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룽겐은 당장 욕을 지르고 싶었다. 이게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행동이란 말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유세현이 말했다.
“11시 5마리. 1시 6마리. 5시 6마리. 제가 1시를 맡겠습니다.”
타앗.
유세현이 앞으로 질주하자 아린과 루시아, 케드리나와 카텐도 팀을 이뤄 순식간에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런 그들이 다시 모인 것은 잠시 뒤.
“한 놈도 빠짐없이 처리했네.”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마크들은 몸체에 장착된 통신 부품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송할 수 있었지만 거리가 짧아 통신용 드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즉, 드론을 먼저 부수고 놈들을 치면 시간이 상당히 흐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루크루프가 준 아이템은 염려와 달리 잘 작동했으나, 재밍기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고 싶었다.
“다, 당신들 무슨.”
“최대한 빠른 길로 안내하시죠.”
그들은 그렇게 하루를 뛰어 바위에 가려져 있는 임시 거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공장파괴(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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