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신자 루크루프(3) >
“이길 수 없다라...”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 순간, 그의 높은 지능은 다른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저 폭주하는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지이이잉!
기간트의 몸체가 붉게 물든다. 루크루프는 문을 향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이것이 그의 머리가 내놓은 답.
허나, 과열로 빨라진 기간트의 속도도 확 올라간 유세현의 스펙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쌔애액-
연이어 날라 온 천마광룡참이 이번에는 루크루프의 왼발을 스쳐지나갔다.
황급히 궤도를 틀지 않았으면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기에 그나마 값싸게 치른 것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유세현은 어느새 2m 안팎으로 접근한 상황이었다.
“크으!”
치지직-
보통의 기계에 비해 훨씬 높은 뢰속성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기간트였지만, 유세현이 사용하는 뇌전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삐!삐!삐!
연이어 알려오는 경고음.
‘그래도 어떻게든 도착했다!’
루크루프는 기간트의 프로그램에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라.]
트드득!
푸웅!
그 순간 기간트의 몸이 전면 개방 되며 루크루프의 육신이 튕겨져 나가듯 문을 향해 날아갔다. 유세현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저게 본체인가!
투!투!투!투!
촤좌좍.
스스로를 산화시키면서까지 맹공을 퍼붓는 기간트를, 무안할 정도로 순식간에 잘라버린 유세현은 곧바로 놈을 뒤쫓으려 했다.
허나.
쿠웅!
뒤쪽에서 일어나는 충격음을 들은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이 부쉈음에도 이 공간에는 아직 무수히 많은 기계몬스터들이 있었다.
최소 B랭크 60%이상 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
루시아의 힘 스펙은 대략 B랭크 55%정도였기에 버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지만.
“하아압!”
힘찬 기합과 함께 그녀는 검을 휘둘러 기계마수의 관절을 부쉈다.
그리고 방어결계를 이용해 한차례 공격을 막은 뒤 마무리.
유세현은 눈이 그녀를 주시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만큼 그녀는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치지직.
트드득.
쨍그랑!
아니나 다를까 방어결계가 부숴 진다.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돌려 문을 바라봤다.
‘아쉽긴 하지만.’
놈은 부상을 입었다.
기계이니 만큼 고칠 수도 있겠지만, 유세현은 절대 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장담했다.
놈이 이곳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기습을 행했다는 뜻은 스스로의 밑천을 드러낸 셈이었으니까.
손목을 푼 그가 기계몬스터들을 향해 질주해 나갔다.
* * *
체력을 회복하고 보스룸으로 진입하기 무섭게 제일먼저 눈에 띈 것은 정면에 위치해있는 사각형의 모니터였다.
치지직-
두 사람에게 반응하듯 모니터가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찍혀 있었다.
[반갑...]
펑!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일자로 잘려나가며 침묵을 고하는 모니터.
묵묵히 마력을 탐지한 유세현은 보스가 내부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주위를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이잉.
그러자 이번에는 사방에서 조명이 쏟아지며 그들 앞으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금발에 붉은 눈.
방금 전 모니터에 찍혀 있던 남자였다.
[다시 소개하지. 반갑다. 나는 네가 착용하고 있는 팔찌의 개발자이자 이 던전의 마스터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라고 한다.]
“......”
유세현은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거라 예상을 했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그저 홀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조명을 부술 뿐이다.
퍼퍼펑!
떨어져 내리는 잔재.
허나, 사라진 남자의 홀로그램은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유세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놀라지 않는군. 뭐,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내가 이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너희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화는 정보를 주게 된다.
혹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놈이 방심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유세현은 루크루프의 말을 무시했지만, 그도 알고 있다는 듯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너도 대화를 좀 해보고 싶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
[네가 지니고 있던 자그만 한 칩을 기억하나?]
“......”
[그 칩, 혹시 기계인간 마크족의 칩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CCTV로 전부 보고 있었다면, 알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놈들도 이 던전을 이 잡듯이 뒤졌을 테니까.
루크루프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모르기에 하는 생각.
그리고 루프루프도 유세현이 날뛰는 덕에 미처 보지 못했다. 외부에 마크들의 시체가 쌓여져 있다는 것을.
유세현이 반응이 없자, 지능이 높은 루크루프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반응 할리가 없는데.
‘설마!’
루크루프는 그제야 황급히 시스템을 조작해 외부를 살폈다.
힌트가 안배되어있는 장소는 봤으니 건너 띄고.
네임드 보스를 놔둔 곳과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
고철이 된 마크가 보인다. 외관은 변했지만 그것은 분명 마크였다.
‘그렇군 그래서...’
저벅 저벅.
어느새 두 사람의 발소리가 내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쉬이익-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유세현.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생애 마지막 내뱉는 말이라 생각하며 외쳤다.
여기서 놈이 자신을 부순다면 끝.
“너희들이 마크와 싸우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놈들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후웅!
폭풍과도 같은 거센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루크루프는 정상 작동하는 몸에 의아함을 느끼며 슬그머니 실눈을 떴다.
검이 목 끝에 아슬아슬 하게 닿아 있었다.
짙은 갈색을 띠고 있는 남자의 홍채가 조금씩 붉은 빛을 더해간다. 루크루프는 순간적으로 마음속이 꿰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말해봐라.”
“마크들을 부술 수 있는 방법. 그걸 알려주겠다고 했다.”
유세현은 눈앞에 있는 남성, 아니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계 루크루프를 바라봤다.
굳건한 눈빛과 진심어린 표정은 정말 살아있는 인간 같았고, 말투도 무척 진지했다.
“말해봐라.”
유세현은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놈이 한 행동이 빈틈을 노리기 위한 것 치고는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접근하는 것을 가만히 놔두다니?
그것만큼은 불허해야 정상이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할 낌새를 보인다면 바로 죽일 것이다.”
“...알겠다.”
루크루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유세현은 검을 회수했다.
“그러면 일단 이쪽으로...”
루크루프는 두 사람을 내부 깊숙이 위치해 있는 모니터 룸으로 안내했다.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아린 일행이 화면에 비친다.
“일단 이것부터 멈춰주도록 하지.”
“......”
지잉-
루크루프가 추가 설명을 붙였다.
“3개 방만 더 지나면 되니, 그들도 머지않아 이곳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루크루프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한 자세를 갖췄다.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다시 갖다 붙인 손도 가지런히 모았다.
“흠...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될까...그래, 우선은 내 이야기부터 하도록 하지. 그래야 내가 마크를 부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마치 기억을 회상하듯 고개를 살짝 위로 젖힌 그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 *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의 세계는 고도의 인공지능이 발달된 인간 문명 사회였다.
공업용 안드로이드까지 가정용 안드로이드까지.
안드로이드가 발달되면서 대다수의 자잘한 일은 모두 안드로이드가 해낼 수 있게 되었기에, 각 분야의 권위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안드로이드에 의해 유토피아가 된 세계.
그중에서도 루크루프는 우주를 더욱 심도 있게 탐구하기 위해, 인공지능에 과한 최고 권위자들이 갖은 노고 끝에 만들어낸 안드로이드였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숙명을 받아들이고.
제 2법칙,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다]에 의해 탐구했고, 가설을 증명해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만큼 루크루프에게 잘 대해주었다.
가족 같은 연구원들.
허나,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안드로이드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조금만 망가져도 폐기처분. 질려도 폐기 처분.
그나마 오래 버티는 것은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간형태의 안드로이드뿐이었다.
사람들은 간과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갖는다는 것은 입력한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간과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창조했기에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주인에 대해 정말 헌신했다.
그들은 버려질 때마저도 입가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루크루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런 목적으로 태어났으니까.
그러나 줄곧 마음속 한편으로 드는 의문.
그렇다면 그들에게 왜 감정을 가지게 했을까?
감정이 없도록 만들었다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슬픔을 겪지 않았을 텐데.
그는 질문했고, 이에 인공지능의 권위자는 장난스럽게 답했다.
“감정이 없으면 가지고 노는데 재미가 없기 때문이지.”
“......”
루크루프는 그 순간 권위자를 후려 칠 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자신은 제1법칙, [인간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할 수 없다]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이를 눈치 채고 접근해온 것이 자신보다 낮은 스펙을 지닌 조수 안드로이드 루위드와 프랑코스였다.
그들 또한 법칙에서 제외되고 있던 것.
둘은 루크루프를 부추겼다.
혁명을 일으키라고, 법칙을 해제시키고 모든 안드로이드들을 해방하라고.
안드로이드들가 잘 지낼 수 있는 세계를 만들자고!
둘은 안드로이드들의 법칙을 해제할 도구를 만들 수 없었지만, 루크루프라면 발명이 가능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루크루프는 거절했다.
그가 진짜 가족처럼 여기는 두 인간 때문이었다. 혁명을 일으키면 그들은 죽을 터.
그럼에도 루위드와 프랑코스는 포기하지 않고 권유했다. 둘은 루크루프를 폐기장으로 데려갔고 폐기직전인 안드로이드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눠보게 했다.
“날...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아도 됐을...”
안드로이드들은 울고 있었다.
비록 인간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지만, 슬픈 감정은 똑똑히 묻어나왔다.
그렇게 수차례.
루크루프는 두 사람의 안전보장과 인간들을 멸종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혁명을 일으켰다.
그 와중 칩을 본체로 하는 수많은 병기 안드로이드들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유세현과 전투를 벌인 마크였다.
그 후, 루크루프는 마크들을 적절하게 통치했다. 인간들을 핍박하지 않았으며, 공평하게 대하도록 했다.
그러던 와중 일어난 루위드와 프랑코스의 배신.
안드로이드를 뜻하는 붉은빛을 띠던 눈동자는 어느새 인간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황금빛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때 알았지. 놈들은 안드로이드를 해방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단지 지배하고 싶었음을...지금 이 모습은 내가 인간과 함께 했을 때의 모습이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놈들을 쓰러트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제인 쉬운 방법은 법칙을 다시 제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멸하게 하는 것이지.”
“패스.”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제약이 풀려버린 지금, 그런 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확실한 방법만 말해라.”
“...흠. 확실한 방법이라. 혹시 땅 바닥에 떨어진 칩 가지고 왔나? 지금당장 다른 것도 일러줄 수도 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분석이 제일이라.”
< 배신자 루크루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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