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신자 루크루프(2) >
-쿵.
한번 닫힌 문은 두 번 다신 열리지 않았을 뿐더러 부패의 어둠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의 스킬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던전에는 대부분 지형파괴 불가라는 특이한 설정이 붙어있기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인 방의 경우 파괴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함정이 발동 된 곳 같은 경우에는 거의 99%확률로 파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는 그 강한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똑같을 것이다.
즉 떨어진 장소에서 다른 방도를 찾아야 된다는 뜻.
“......”
루시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녀는 유세현에게 안겨져 있는 상태였었는데, 몸은 석고상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180비트로 빠르게 뛰며 난동을 피우는 심장.
지면에 함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바닥에 내려주자 루시아는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으며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자세 그대로 있는 것은 함정에 걸렸을 때보다도 더한 긴장감을 자아냈었다.
“저...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
유세현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실수 때문 만이었다면 한 마디 했겠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었기에.
‘약한 몸체로 안도감을 주고, 막대한 물량으로 시야를 가린 뒤 함정에 떨어트린다라...’
유세현은 마지막에 똑똑히 봤다.
몬스터들이 스스로의 몸을 날려가면서까지 그녀를 함정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지성이 있는 몬스터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남을 죽이고자 자신을 희생하고 싶은 생명체는 없으니까.
‘역시, 누가 직접 조종하고 있다.’
결론은 그렇게 도출된다.
그들의 주위에는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거미형태의 기계괴물 7마리가 분포해있었다.
지금이야 멈춰있지만.
지잉.
과연 움직일까 생각하기 무섭게, 컴퓨터에 전원을 키듯 놈들의 거체에 불빛이 들어왔다.
트드득.
움직이기 시작하는 8개의 다리.
유세현이 들고 있던 루베르크를 휘둘렀다.
* * *
거미전차는 무척 강했다.
공격력과 단단함으로 치자면 지금까지 이 던전에서 상대했던 놈들 중에서 원탑이었을 것이다.
만약 루시아만 이곳에 떨어졌더라면...
“저...그...정말 감사합니다. 세현씨가 따라와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루시아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유세현은 괜찮다는 듯 손을 한번 휘저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이들 만큼은 자신이 데리고 갈 자들이다.
그렇다면 구해줄 수 있다면 구해주는 것이 맞고,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적당히 휴식한 그들은 출구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튀어나오는 나오는 적.
함정 통로에 위치해 있는 적들은 강하고 양도 많아 마치 여러 방을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 놓은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쉬이이익.
유세현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마법탄환을 반으로 잘랐다.
쿵!
크기가 사람 몸만 한, 탄환이라고 할 수 없는 탄환이 반으로 나뉘어 벽에 처박힌다.
잽싸게 도약하여 전차의 주요 기관부를 부셔버린 그가 다른 놈을 노리려는 찰나.
놈들을 상대하고 있는 루시아가 눈에 띄었다.
방어결계를 이용해 최대한 막으면서 어찌어찌 공격을 행하고 있는 모습.
이곳에 등장하는 적들의 스텟이 루시아의 스텟을 웃도는 것을 감안하자면 꽤나 선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지만.
“하아...하아...”
역시 전부 당해낼 수는 없다.
유세현이 왼손을 치켜세웠다.
콰아아앙!
터져 나오는 검붉은 빛.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반대편 손으로 잽싸게 부패의 어둠도 흩뿌렸다.
스스스.
동력부가 파괴되며 하나, 둘 작동을 중지한다.
루시아는 잠시 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스킬에 제약이 걸려있을 때도 무척 강했는데, 풀리고 나니 아예 차원이 달라졌다.
적을 띄우고, 공격을 튕겨 내고.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요상한 검기까지.
그는 이런 힘을 어디서 얻은 것일까. 그리고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곤욕을 치렀을까.
‘나도 더 강해져야 돼.’
그런 면에서 이곳은 목숨이 위태위태하지만, 스텟을 확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의 장소였다.
베고, 베고, 또 베고.
루시아는 움직임에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보다 더 많은 코인을 먹기 위해서.
유세현의 천마군림보에서 영감을 얻은 루시아는 방어결계를 발판으로 사용해 보다 더 다채로운 움직임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제법인데?’
그렇게 수 분.
주위에는 분쇄된 기계장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악. 하악. 하악.”
루시아가 아까보다도 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기에 유세현은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꼬르륵.
한참 호흡을 가다듬는 그녀의 뱃속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시아가 그 소리에 살짝 당황하는 반면, 유세현은 말없이 식량을 꺼냈다.
괴수 간크라의 앞다리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채워주는 만큼, 무척 귀한 것이었지만 게릭이 개인적으로 빼돌려 챙겨준 것이었다.
스튜에 극소량 넣어져 있는 고기의 정체가 바로 이것.
‘물은 부족하니까 스튜는 안 되겠고.’
유세현은 불을 지핀 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철판을 주워 올린 후 고기를 얹었다.
풀도 생으로 뜯어먹는 마당에 위생 상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컨디션을 회복시켜줄 포만감.
치이익.
연기가 피어오르며 좋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는 잘 익혀진 고기를 철판 째 반으로 잘라 루시아를 향해 건넸다.
“아...감사히 잘 먹을게요.”
고개만 묵묵히 끄덕인 유세현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공복은 최고의 향신료라고 소스가 필요 없는 맛이었다.
효과도 무척 탁월!
“와...”
깜짝 놀랐는지 루시아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자연스러운 이어지는 질문.
“이, 이건?”
“간크라의 앞다리살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루시아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옆에서 지켜봐온 만큼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대충 예상이 갔으니까.
게릭이란 사람이 준 것이겠지.
‘잘아는 사람인 것 같았지만 친해보이지는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이 남자는 자신과 비슷했다.
누군가와 친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본적이 없다.
항상 모두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마음의 벽을 가지고 있어 그 안 까지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느낌.
어쩌면 그래서 자꾸 관심이 간 것일 수도 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사람에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의 경우에는 아버지 지드먼.
궁금하다.
과연 있을지 없을지.
허나, 그녀는 묻지 않았다. 물을 자신감도 없었고, 어차피 물어봤자 자신에게는 대답해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3시간 정도만 휴식하고 다시 나아가도록 하죠.”
“예. 알겠어요.”
딱 이 정도의 거리가 좋다.
그렇게 단언한 그녀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 * *
압살.
전투장면을 보고 있던 그는 유세현에게 살짝 경외감이 들기까지 했다.
아슬아슬한 상황 때마다 지치지 않고 하나씩 튀어나오는 스킬.
유세현이라는 남자가 묘한 능력으로 기계를 들어 올렸을 때 그는 경악을 내뱉지 않고서는 도저히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남자의 능력의 끝은 어디까지인 것인가.
“어쩔 수 없군.”
혹시 몰라 나서지 않고 싶었지만, 이제는 나서지 않으면 승산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배치시켜둔 작품을 부수고 더욱 강해져 이곳에 다다를 것이기에.
“놈이 함정으로 스스로 뛰어든 게 그나마 행운인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서서히 전진해오고 있는 3명과 합류하기 전에 놈을 처리한다.
그가 시스템을 조작하자 기계문이 열리며 그 안에 위치해 있던 인간 형태의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크기 3m, 명칭 기간트.
지금까지의 거대 로봇과 크기를 비교하자면 무척 작은 편이었으나, 이것은 그의 모든 기술을 집약해 놓은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팔, 다리, 가슴 등 몸 전체가 개방되며 기간트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합체하듯 탑승한 그가 몸을 체크했다.
마치 사람을 보는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
“가볼까.”
던전의 주인,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가 유세현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 * *
쿠구구궁!
던전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회랑처럼 길게 이어진 길의 끝에는 흑색의 문이 위치해 있었다.
보스룸으로 향하는 장소!
‘들어오라는 건가.’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가려는 순간.
끼이익.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수많은 미사일.
불투명한 마법탄환이 아니라, 형체가 실존 하는 진짜 미사일이었다.
“...?!”
유세현은 살짝 놀랐지만,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부패의 어둠을 쏟아내 미사일을 격추.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천마광룡참을 좌,우, 정면 세 갈래로 쏘아냈다.
쉬이이익!
차원이 다른 빠르기이기에 통상적인 속도를 지니고 있는 생명체의 경우 보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
그러나.
쿠우웅!
쉬익!
등에 붙어있던 있던 추진기에서 불꽃이 튀며 놈의 육신이 갑작스레 하늘로 떠올랐다. 유세현은 혀를 찼다.
이번보스는 비행이 가능한 것인가.
기간트의 팔에 장착되어있는 8개의 총구가 불꽃을 토해냈다.
투두두두!
쿠구궁!
충격파로 보건데 총알 하나한의 위력이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저 빠르기.
‘스텟이 나와 거의 비슷하다.’
거기다가 쉬지 않고 몰아치는 여러 거대 기계몬스터들.
루시아는 공격을 피하는 것만 해도 무척 급급해 보였다.
‘이곳에서 끝을 보겠다는 건가.’
나쁘지 않은 판단.
유세현은 시험 삼아 암흑투기를 발동시켰다.
지적능력이 있는 놈일 테니 반드시 통한다.
터억.
잠시 주춤거리는 기간트. 그러나 그 행동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기간트에 기본적으로 내제되어있는 전투 시스템의 백업을 받은 것!
허나, 유세현이 그것을 알리가 없었다.
‘진짜 보스가 아닌 건가? 분명히 상당한 지성을 가지고 있을 텐데.’
터더덩!
유세현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우측 이동했다. 그러나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미사일이 방향을 꺾었다.
‘유도탄?’
펑!
큰 폭발이 일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유세현의 인상은 살짝 구겨졌다.
포켓에 맞아버리다니.
트드드득.
압축이 풀리며 모아놓은 아이템이 떨어진다.
유세현의 체내에 있던 마력이 요동쳤다.
마족화를 사용할 때의 현상.
‘순식간에 끝낸다.’
그가 달려들려는 찰나.
“자, 잠깐 멈춰라!”
기간트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 * *
적이 멈추란다고 멈추면 그것은 병신이다. 유세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간트를 향해 돌진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힘.
루크루프가 주위기계들에게 막으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촤자작.
순식간에 분쇄 되어버리는 걸작들.
퍼펑!
후우웅!
틱! 틱! 틱!
폭발이 일어나며 잔재가 기간트를 향해 쏟아졌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유세현.
“잠깐만! 멈추라는 내말이 들리지 않는...헉!”
루크루프는 황급히 역추진 장치를 가동시켰다.
후웅!
섬찟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1초. 아니, 0.1초만 늦었더라면 목이 날라 갔을 것이다.
“멈춰라! 할 말이 있다! 할 말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유세현은 이미 2차 공격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콰아앙.
터져 나오는 검붉은 빛.
“크아아악.”
천마혈사장은 기간트의 오른팔을 스쳐 뒤에 있던 기계거인을 휩쓸었다.
루크루프의 얼굴에 낭패가 어렸다.
강하다. 너무도 강하다.
최후의 비기인 과열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 배신자 루크루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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