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23화 (223/612)

< 배신자 루크루프(1) >

“이 문제를 풀다니...그 정도의 해석력을 지닌 종족이란 말인가.”

그는 한 명 한 명 세세하게 살폈다.

5명의 침입자들은 보면 볼수록 인간과 비슷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눈동자 색 정도.

그러나 그 눈동자 색이야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4명을 살펴본 그의 눈이 마지막으로 새까만 머리칼을 지닌 남성을 향했다.

남자는 칠흑의 검을 휘두르며 루위드와 프랑코스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자신의 기계 몬스터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내고 있었다.

한 가지로 내려지는 정의.

‘강하다.’

휙휙휙.

푹.

남성이 날린 검이 감시카메라의 렌즈에 정확히 들어와 박혔다.

치지직.

[No Signal]

보고 있던 화면이 까맣게 변했음에도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고민에 잠긴 것처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중얼거린 그가 저장되어 있는 리플레이 영상을 띄었다.

남성이 검을 던지는 장면이 재생된다.

아주 느린 속도로 재생 했음에도 날아오는 검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러나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검이 아니었다.

그가 검을 던진 팔.

정확히는 그 팔에 장착되어 있는 팔찌.

삑! 삑! 삑!

몇 배나 확대시켜 아이템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혀를 찼다.

“허...분명 부쉈을 터인데...”

그 아이템은 그가 무척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래...분명, 이 세계에는 수많은 복제품이 존재했었지...”

일반적인 잡동사니와는 그 가치가 달랐으나, 자신이 이곳에서 되살아난 만큼 그것의 복제품이 하나 쯤 존재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저거 때문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가.”

결론은 그렇게 밖에 날 수 없었다.

지금 살펴보니 안배되어있는 힌트조차도 풀리지 않았기 때문.

협력하며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향수가 피어오른다.

그는 그 감정을 무시하고 시선을 난이도 게이지바를 향해 돌렸다.

미안하게도 자신은 아직 당해 줄 수 없었다.

증오하는 그 두 놈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열 칸 중, 여덟 칸.

지금까지는 단 한 번 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적의 수준이 그만큼 장난 아니라는 뜻이 되지만. 이것에 맞춰 던전에 만들어 놓은 몬스터들의 능력치도 증폭된다.

몇몇 몬스터는 기본 스텟이 너무 높아 지금껏 사용해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일단, 개개인의 수준을 알아봐야겠군.’

그는 원격조작을 하기 시작했다.

* * *

“후...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케드리나의 말에 카텐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 그들은 적이 적당히 강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이 종족보다 훨씬 규칙적이어서 보다 더 안전하게 빠른 성장을 이룩하게 해주니까.

3번째 방까지는 분명 괜찮았다.

본능조차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기계라 유세현의 암흑투기가 통하지 않았지만, 합을 맞춰 싸울 만은 했다.

그러나 4번째 방부터 놈들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싸우는 도중원군이 오질 않나, 갑자기 물량공세를 펼치지 않나.

아린의 마법과 유세현의 스킬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카텐의 시선이 슬그머니 루시아를 향했다.

그러고 보면 저 여자도 좀 대단한 편이었다.

자신보다 스텟이 낮은 주제에 스킬을 잘 활용하여 그것을 커버하고 있었다.

특히나 방어마법은 어찌나 단단한지 마법에 정통한 카텐도 감탄할 지경.

5번째 방을 클리어 한 그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전진하기로 했다.

장비를 재점검하는 일행들.

찌그러져 있던 장비가 마력을 불어넣기 무섭게 본래의 형태를 되찾기 시작하자 카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형상기억 마력코어가 없었으면 어땠을지...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이곳까지 나아오며 그들은 매직 B랭크에서 S랭크에 달하는 장비를 맞출 수 있었다.

매직 B랭크의 아이템이 일반적으로 C랭크 후반까지 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나쁜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이 던전의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B급 랭크의 높은 스텟을 지닌 생존자라면 최소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사용하는 게 정설이다.

케드리나가 말을 이었다.

“카텐, 넌 루시아씨가 있어서 다행인 줄 알아라. 너 아까 제대로 한방 먹을 뻔한 거 알고 있지? 그거 맞았으면 중상이었어.”

“나도 알고 있어. 그러데 미친 기계가 갑자기 거미줄을 쏠지 누가 알았겠냐? 거미형태도 아니었는데.”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런데 루시아씨에게 고맙다는 말은 했어?”

“아, 진짜. 내가 넌 줄 알아?”

“내가 아니니까 그러는 거지.”

“아니, 이 년이...”

두 사람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꼬리를 내린 것은 카텐이었다.

팀의 넘버 2인 그녀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던 탓.

“어우, 너 원래 세계에서 날 안 만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아이고 참 무서워라. 그런데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도 내가 너 이겼을 걸? 나 주짓수 유단자거든.”

“주짓수? 주짓수는 또 뭔데?”

“어유 알테리아 촌놈 같으니라고. 자동차도 모르고 비행기도 모르고. 아는 게 뭐야? 그러고 보니 너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 알비노가 병인 것도 몰랐지?”

“......”

카텐은 손을 나풀나풀 흔들며 항복 선언을 했다. 그 모습이 웃긴지 루시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맴돌았다.

살짝 커지는 카텐과 케드리나의 눈.

지드먼 앞에서 말고도 웃긴 웃는 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친해진 반면, 루시아와 친한 사람은 여전히 지드먼 밖에 없었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한데, 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호의를 가지고 다가와 말하면 사무적으로 답해주는 것이 전부.

덕분에 사람들은 이젠 그러려니 했다.

성격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

친하지는 않더라도 동료로서의 믿음만 확고하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허나, 그들은 몰랐다.

루시아도 사실은 가까워지고 싶었다는 것을.

그러나 사람들이 다가올 때마다 부담감이 항상 육신을 옭아매었다.

그 호의 섞인 권유가 편하지 않고 버겁다.

무거운 추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감각.

그녀는 깨달았다.

이전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 밀어냈지만, 이제는 원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카텐이 난데없이 박수를 짝 쳤다.

“아! 루시아씨, 이전에 보니까 방벽 두 개를 동시에 만드시던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최대 몇 개까지 한 번에 사용하실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어우, 미친놈아 그런 걸 왜 물어봐. 스킬 묻는 거 금칙인거 모르냐?”

“아! 그래서 알려달라고 무작정 한 게 아니라 괜찮냐고 물어봤잖아! 그리고 금칙이 목숨 살려주기라고 하냐? 아까보다 상황이 나빠지면 어떡할 건데? 세현씨랑 동급인 놈이 나오면? 그러니까 그전에 합을 좀 더 잘 맞춰 보

자 이거 아니야. 그리고 루시아씨가 알려주면 내 스킬도 깔거야!”

“하! 너의 그 구닥다리 스킬 알고 싶어 하는 사람 여기서 아무도 없거든?”

“뭐? 구닥다리? 나의 이 화염검이 얼마나 대단한 스킬인지 아냐? 무려 레어 A랭크의 스킬로 부가 능력이...”

결국 카텐은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력 스킬의 정보를 털어놨다.

허나, 단순히 감정에 휩싸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먼저 말하면 그녀도 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최대 3명까지 한 번에 가능해요.”

루시아가 말하자 케드리나가 레게머리를 긁적였다.

“굳이 저놈 말 들어주실 필요 없는데...그럼 저도 하나...”

스킬정보의 교환은 위험하다.

적으로 돌변하면 약점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100%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스킬정보를 알려준다.

마치 자신이 이강호나, 김주희에게만 알려줬던 것처럼.

아린이 연이어 파이어레인의 등급과 장단점을 말하자 케드리나의 입이 찢어지듯 커졌다.

“에, 에픽이요?”

“그래, 스킬코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익힌 것은 에픽으로 취급되는 것 같네.”

드디어 자랑할게 생겼다고 판단한 카텐이 고개를 치켜세웠다.

“아~맞아. 너희 세계에는 마법이 없다고 했지? 지구에서 오신 촌년씨.”

“......”

주고받은 둘은 방금처럼 서로를 잡아 먹을 듯 으르렁 거리지는 않았다.

그저 유세현을 흘끗 흘길 뿐이다.

과연 말해줄까?

그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 일까?

처음부터 출발이 달랐던 만큼, 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없지만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유세현이 입을 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약조해 주시면...”

살며시 올라가는 일행의 입꼬리.

카텐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유세현은 제일 널리 퍼진 암흑투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아...그래서 이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거로군요.”

“그런 것 같군요.”

사람들은 납득했다.

사실, 유세현의 암흑투기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효과는 대부분 알고 있다.

다만 직접 설명해줬다는 것에서 느낌이 다르다.

그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만약을 대비해 작전을 세운 그들은,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방으로 향했다.

* * *

의자에 앉아 있던 그가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응이 좋군.”

특히나 유세현이라는 인간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격파 해내다니.

“이렇게 되면 한 명씩 처리해야겠는데.”

일반적인 방은 난이도가 정해져있어 몬스터의 능력이나 수가 제한된다. 허나, 함정용 방이라면 달랐다.

통상적인 루트가 아니기에 자기 마음대로 몬스터를 배치 시켜놓을 수 있다.

어느새 유세현의 일행은 9번째 방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는 유세현 일행이 몬스터의 패턴을 연구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천재적인 두뇌에 의해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습관과 전투방식이 도출된다.

그의 시선이 흰 머리칼을 지닌 여성을 향했다.

첫 번째 타겟.

본래라면 검은 머리를 지닌 남성을 노리고 싶었지만, 10번째 방의 난이도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놈은 모든 것을 부수고 자신이 있는 방에 도착할지도.

그들이 9방을 클리어하고 10번째 방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작전을 실시했다.

* * *

쉬이익.

기계식 익룡이 일행을 향해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개체 하나하나가 강한 편은 결코 아니었지만, 수가 어찌나 많고 재빠른지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콰아아앙-

주위를 집어 삼키는 철마혈사장(天魔血死掌).

곧이어 부패의 어둠이 일대를 휩쓸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놈들은 다시 밀려들었다.

나머지 넷도 스킬을 연발하며 대응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날라든 익룡을 붙잡은 카텐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염병, 진짜 많기만 존나게 많네.”

트드득!

힘을 힘껏 주자 단번에 꺾여 버린다.

사실상, 익룡은 강한 편이 아니라 약했다.

한 마리씩 부숴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무척이나. 이 정도라면 인해전술도 소용없을 정도.

유세현은 인원들을 모은 뒤 한방에 끝낼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거대 괴조 20마리가 날아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강한 스텟을 지니고 있는 존재.

그러나 충분히 상대할 만은 했기에 사람들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루시아가 자세를 안정화하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괴조한마리가 경로를 틀더니 별안간 벽을 들이받는다.

지이잉.

갑작스레 울려 퍼지는 기계음.

트득, 트드득.

변화는 1초도 안되어 나타났다.

루시아가 딛고 있던 대지가 좌우로 확 열린 것.

“...!!”

그러나 초인의 힘으로 반응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 루시아는 황급히 도약했다.

아린과 카텐, 케드리나를 상대하던 수많은 익룡들이 달라붙는다.

몸을 감싸고 있는 방어결계와는 상관없이 추락하기 시작하는 육신.

‘아직은 괜찮아.’

루시아는 재빨리 결계 방벽을 길게 늘려 틈을 메웠다. 저걸 딛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면 된다.

허나, 그녀가 착지하는 순간.

2차 트랩이 가동하며 그 폭이 더욱 커졌다.

“아...”

투두두둑!

그녀는 몰아치는 익룡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유세현은 스스로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마력 작동식 이외의 트랩은 본적이 없기에 간과해 버린 것.

그녀 혼자 함정에 빠지면 스텟상 거의 90% 이상의 확률로 죽는다. 함정이란 그런 것이니까.

반면, 이 위는 대리자의 스텟에 따라 적이 출몰한다.

그러니 자신이 없어도 잘 할 수 있겠지.

그는 잽싸게 천마혈사장을 사용해 길을 만든 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으로 뛰어들었다.

< 배신자 루크루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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