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킹(3) >
새내기들을 이용한 수차례의 도전.
던전을 샅샅이 뒤져 힌트를 종합한 결과 놈들은 기계거인이 완전공략을 위한 핵심코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이었는데 그럼에도 완전공략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위해서는 기계거인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했는데, 놈을 협조적이게 만드는 장치를 도무지 구할 수가 없던 것.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해킹이라...”
유세현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놈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정당한 공략이 아닌 편법이었다.
그리고 기계 생명체 그 자체인 마크도 실패하는 해킹을 사람인 자신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옆에서 경청하고 있던 아린이 툭 말했다.
“결국 우리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정보로구먼.”
“......”
딱 정답이다.
이 기계거인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은 놈들의 행동에서 진즉 파악한 상태였으니까.
[나, 나는 너희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했다.]
“알고 있다.”
퍼억.
유세현은 움직이지 못하는 마크의 육신을 구석으로 뻥 차버린 뒤 기계거인에게 다가갔다.
치지직-
박살나기 직전이었다.
최대한 신경 써서 전투를 벌였음에도 마크놈들이 쏴 갈린 총탄 등에 자잘하게 피해가 누적된 것.
카텐이 입맛을 쩝 다셨다.
“세현씨. 이거 완전공략은 물 건너 간 거 같습니다만...”
“...흠.”
아직 단언하긴 일렀다.
형상기억마력코어를 지니고 있어서 인지 마크와의 교전 중 조금씩 회복하는 것이 보였었으니까.
그렇다면 마력만 불어넣어주면 약간은 회복시키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그 다음 던전을 다시 뒤지면?
유세현은 기계거인의 몸체에 손을 얹었다가 황급히 뗐다.
어둠의 마력의 기본 성질이 흉폭한 만큼, 더 부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
“영감님, 영감님께서 이 기계거인에게 마력을...”
딱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지이잉.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잔잔하게 진동했다.
“어? 세현씨 그거...”
지잉-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계거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최후의 발악을 하기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유세현과 아린은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잠깐! 다들 멈추게!!”
터엉. 터엉.
몸을 휙 돌린 기계거인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다리의 떨림이 훤히 보인다.
놈은 딱 보기에도 자신의 중량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놈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마치 얼마 남지 않은 양초가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을 일으키듯.
척-
놈이 멈춘 장소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수십 개의 문양이 있었다.
기계거인의 육신이 분리 되며 문양을 채워나간다. 생존자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크도 지금까지 수없이 실패한 것을 대체 어떻게?
마지막으로 기계거인의 핵처럼 보이는 동그란 구체가 문양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고오오오!
던전 전체가 요동치며 돔 중앙에 위치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세현에게 정보를 제공한 마크, 푸뤼푸의 눈이 점등되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어, 어떻게 저 기계골렘을!’
푸리푸는 유세현에게 정보를 완벽하게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최소한, 말해도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만 토해냈다.
그는 사실 골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판도라로 이동되기 전 박물관에서 본 바가 있었기 때문.
형태변환도 하지 못하는 마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3인의 위인 중 한 명이자, 최악의 배반자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가 만든 무인식 기계골렘.
마크들은 기계골렘을 부순 뒤 문양에 억지로 끼어 넣는 것까지도 해봤다.
그러나 언제나 핵이 박살나는 턱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과거 루크루프의 동료이자, 위인 중 1명인 쿠페르 라 루위드 박사가 해킹툴을 만들어 봤지만 판도라이기 때문인지 그 보안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아무런 정도도 없이 들어온 인간이 어떻게 기계골렘을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푸뤼푸는 줌을 확대해 유세현을 살폈다.
함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운 받은 인간의 기초 장비 자료를 대조한다.
평범한 가죽 부츠와 철제 갑주.
검이 조금 기묘하게 생겼지만 그 외 특이한 것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
‘저건?’
무심코 유세현의 팔을 본 푸뤼푸는 줌이 된 시야를 더더욱 확대시켰다.
꽤나 익숙한 모양의 팔찌.
이번 건 자료에서 본적 있다.
루크루프가 자취를 감추면서 실전 되었다고 알려진 팔찌.
효과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본래의 세계에서는 한때 저것을 찾기 위해 탐사를 벌인 마크인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런 아이템을 어떻게 인간 따위가!’
한편, 유세현은 팔찌의 정보를 한 번 더 자세히 읽고 있었다.
‘특정 주파수 간섭이라...’
사실 그는 팔찌를 암흑투기를 강화시키는 용도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설명이 불친절해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
그런데, 이 기계거인에게는 통하는 것인가?
‘흠...그렇다면 기계거인과 팔찌가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건데...내가 이 출발지점으로 떨어진 것도 단순한 우연은 아닌 건가?’
아무튼 판도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기에 꼬리를 물으면 끝도 없다.
유세현은 상념을 접고 일단 나아가 보기로 했다.
지이잉.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만들어진다.
보통은 마크인들이 클리어를 해놓으면 인간 측이 숨어 지내다가 탈출하는 형태였지만, 이번만큼은 많이 달랐다.
감사를 표하는 폭시터의 팀.
“저,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그러면서 은근슬쩍 뒤따를 준비를 한다.
유세현은 그것을 무시했다.
이강호의 법칙.
도움은 주지 않되 성장을 방해하진 않는다.
유세현도 그것에 동의하는 바였기에 놔두는 것이었지만.
[최대 5명까지만 진입이 가능합니다.]
조건이 붙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폭시터의 표정은 시무룩하게 바뀌었고, 유세현의 팀원들은 자신을 뽑아주기를 바랐다.
“영감님과 카텐씨, 케드리나씨 그리고...”
유세현은 잠시 한 템포를 쉬었다.
전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데 눈이 너무도 반짝거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팀장급 되는 사람들!
그러나 유세현은 모든 것을 제치고 한 여성을 바라봤다.
언제나 살짝 떨어진 장소에서 언제나 자신을 주시하고 있던 여성을.
“루시아씨. 당신이 저와 함께 갑니다.”
그 말에 루시아의 눈이 살짝 동그랗게 변했다. 그녀의 평소 행동을 지켜봐온 지드먼이 환색했다.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아! 이참에 대화를 해보고 싶으면 말도 먼저 걸어 보기도 하고.”
“......”
루시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에이~!”
인원이 다 정해지자 몇몇 생존자들이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몇몇은 카텐을 신명나게 까기까지 했다.
“아오, 저 빌어먹을 놈팽이 같은 놈이 운 좋게 세현씨 눈에 띠어가지고...”
“그러게나 말이다.”
시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의지하여 역경을 헤쳐 온 그들은 이미 가족과도 같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성격 좋은 한 명이 바로 쉴드를 쳤다.
“야야, 아서라. 2존에서 세현씨와 제일 먼저 만난 놈이 저놈인데. 듣기로는 목숨 걸고 1:1로 여행도 했다던데?”
“하긴 것도 그러네. 그런데 루시아씨는 왜 뽑힌 거지?”
“음...글쎄? 그건 나도 잘 이해가...”
루시아는 지드먼의 팀에 있을 때 강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유세현의 팀과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중간급에 머물렀다. 열심히 사냥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기에 차이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성격도 내향적이라 팀장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나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할 수 없기에 나오는 말.
다른 남자였다면 그녀의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데려가는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유세현이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뭔가 기준이 있으시겠지.”
“그렇겠지?”
결국, 그들은 스스로 납득했다.
유세현이 팀원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바깥에 있는 경계조와 합류해서 먼저 돌아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의 팀원들은 말을 착실히 이행하지만, 유세현이 없으면 이도저도 못하는 이등병은 결코 아니었다.
되려 그 이상을 생각해 움직인다.
그렇지 않다면 폭풍의 탑 최후의 전투, 아니 구름섬에서 조차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세현씨가 나와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소형 디코이 5개를 입구에 남겨 두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파앗.
팀원들이 빠져나가고 남은 한적한 공터.
유세현은 푸뤼푸의 장갑을 뜯어냈다.
[사, 살려준다면서!]
“물론.”
[그, 그렇다면 지금당장 이걸 놔...]
말을 끝낼 새도 없이 칩이 뽑혀져 나왔다.
딱 죽지만 않은 상황.
칩을 포켓에 넣은 유세현은 일행의 제일 뒤에 위치했다. 행여나 칩이 한 명 분을 더 먹힐 것을 고려한 것이었지만.
[배신당한자의 저택에 입장하셨습니다.]
몸체가 업어서 일까. 아니면 의지가 잠들어서 일까. 칩은 한 명 분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이 던전의 끝에는 무슨 보상이 있을까.
또 이 던전과 팔찌와의 관계는?
진입하기 무섭게 괴조 형태의 기계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 * *
던전의 보스는 크게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아키몬드나 레이커드만처럼 의사가 있는 놈들.
혹은 제단이나 폭풍의 탑처럼 파수꾼의 형태로서 의사가 없는 놈들.
삐이- 삐이-
침입자 경보가 울리자, 의자에 앉아 있던 기계의 눈에 불빛이 번뜩였다.
일반적인 마크와는 다른 인간형태의 육체와 붉은빛의 눈.
이는 처음으로 받은 육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는 막 잠에서 깬 사람마냥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딱딱한 감촉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맞아...이제 피부 같은 건 없지.”
중얼거리는 그의 말투는 마치 늙은 노인과도 같았다.
기지개를 켜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을 들어 올린 그의 눈이 감시카메라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아키몬드같이 광기에 차 있지도 않았으며, 레이커드만처럼 삶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표정하나 없어 한없이 공허하기만한 모습.
“음...벌써 3개의 방이 부서진 건가.”
까맣게 변한 화면을 본 그는 침입자가 다음 방으로 넘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줌인을 했다.
붉은빛의 눈이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며 동요어린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간...처럼 생겼군.”
인간일리가 없었다. 인간은 완벽하게 멸종했으므로.
“5명이라 정말 꽉꽉 채워서도 왔군.”
그는 레이커드만과 달리 이곳 던전의 보스라는 것도, 이곳이 판도라라는 세계라는 것도, 그리고 자신이 한번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 알려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던전에 들어온 수많은 종족이 내뱉은 말을 종합해 얻은 것.
그는 처음 자살 할까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평생 여기 옭아 메일 신세라면 죽는 게 났지 않을까.
허나, 그러기에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눈물을 뒤로하고 안드로이들을 위해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한 자신을 부순 놈들에 대한 그 큰 한이.
‘루위드. 그리고 프랑코스.’
죽고 싶지만 죽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는 던전을 조작해 외부와 내부를 나눴다.
자동생산 기계를 만들어 부서진 외부 기계몬스터들을 보충했다.
보통이라면 재료가 부족했겠지만 던전 마스터의 권능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취한 절전모드.
본래라면 루위드와 프랑코스가 자신이 낸 문제를 풀고 진입해야만 했다.
< 해킹(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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