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식(2) >
-트드득.
발목이 지면에 푹 박히며 몸이 휘청거린다.
이내, 버텨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마는 카르취프.
더욱 마력을 더욱 집중시킨 카취는 잽싸게 도약하여 배틀엑스로 카르취프의 목을 노렸다.
이대로 끝낼 심산인 것이었지만.
-쿠웅!
투기가 터져 나오자 카취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일반 마력으로 발현한 암흑투기는 중력강화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흩트려 놓기에는 충분했다.
-쉬이익.
카르취프가 잽싸게 폭주를 사용했다.
붉게 물드는 피부와 펌핑되는 근육. 울긋불긋 치솟는 핏줄까지.
불길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자 카취도 잽싸게 폭주를 사용했다.
이성의 끈이 서서히 끊어진다.
허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크로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붙잡아야만 했다.
“하아압!”
온힘을 다한 카취의 배틀엑스가 바람을 갈랐다. 카르취프도 지지 않고 배틀엑스를 휘둘렀다.
-후웅!
기류가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파워.
-펑!
충격음도 거의 크레모아 급에 달했다.
카취는 거칠게 몰아쳤다.
심장이 터져라, 절대 쉬지 않고.
그에게는 중력마법 말고도 남아 있는 비장의 수가 있었다. 효율이 폭주보다 좋지 않아 봉인하고 있었는데, 스킬의 추가 사용이 가능해진 지금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
[비스트(Beast)]
“쿠어어어!”
높이 치켜든 카취의 도끼가 카르취프를 강타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간신히 방어하는데 성공한 카르취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실로 가지고 싶은 몸이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군.”
카취는 그 상태에서 중력마법을 더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카르취프의 몸 밖으로 빠져나온 그림자가 지면을 타고 등 뒤로 돌아갔다.
카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놈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쿠웅!
그저 묵묵히 짓눌러 버릴 뿐.
“크어어억.”
“이게 네놈들이 준비한 전부냐? 그렇다면 죽어라. 벌레 같은 놈들아.”
높은 스텟에 의해 도끼가 점점 밀려난다. 카르취프가 부득 이를 갈았다.
“이 미개한 오크 놈이!!”
“하압!!”
-퍼억!
힘을 더욱 주자 거대한 도끼의 날은 그대로 카르취프의 피부를 뚫고 심장을 박살냈다.
터져 나오는 코인.
카취는 방심하지 않고 카르취프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일격에 격살해서 그런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배후를 노렸던 그림자도 짓뭉개져 코인을 내뱉은 상태.
응원의 열기로 가득하던 주위는 어느새 한없이 고요해져 있었다.
주위를 훑어본 카취가 힘차게 배틀엑스를 치켜들었다.
“우와와아아아!”
새로운 오크로드의 탄생.
오크들이 이구동성이 되어 외쳤다.
“카취! 카취! 카취!”
코인을 흡수한 카취는 몸을 홱 돌렸다. 그는 최후의 최후까지 방심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돌아갔다.
제콸이 나와 그를 반겼다.
“애들에게 카르취프의 시체를 잘 묻어주라 일러라.”
“예!”
이로서 오크들은 지배자의 손에서 해방된다. 카취가 등을 돌렸다. 제콸이 그 뒤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데오폴론의 손에서 벗어나겠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앞으로는 더 바빠 질...”
카취의 말인 별안간 뚝 끊겼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함.
데오폴론?
그들이 어떻게 불리는지 제콸에게 일러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도 모를 뿐더러 유세현이라는 인간조차도 지배자라고 거론 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카취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압박과 함께 그림자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쩌억 벌어지는 입.
“크으...네놈은!”
[잘도 내 부하들을 해치웠군. 네 몸. 내가 잘 쓰도록 하마.]
그림자 왕, 데오펠은 누가 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카취를 집어 삼켰다.
* * *
-화르륵.
유세현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에 앉자 그 주위로 알아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아린, 케드리나, 지드먼. 그 외의 중대장 격인 팀장들.
상황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팀원들은 없습니다.”
“저희도 이상 무입니다.”
“우리도 쪽도 괜찮다네.”
최근 2마리의 데오폴론이 은연중에 접근해 생존자들의 육체를 잠식하려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유세현이 진즉 파악하여 대처하지 못했더라면, 적의 잠입을 허용하는 셈이 되었던 것.
유세현도 잠은 자야했고, 수적 열세에서의 정보는 생명과 직결되었기에 그 이후부터는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항상 이런 식으로 체크했다.
경계 인원도 늘려 3인 1개조에서 4인 1개조로 변경한 상태.
보고가 끝나자 인원들은 각자 배치된 장소로 향했다.
“오, 베드로 아니야?”
“아, 데이먼이냐. 또 만났네.”
총원 1874명.
모두 쉽사리 친해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인원수이건만, 우습게도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서로 간 말을 튼 상태였다.
경계를 같이 선 덕분이었다.
전부 유세현의 노림수.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것은 전투시 좋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특히나 매번 인원이 죽어나가는 암울한 상황에서는 이런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야지만 그나마 피폐해진 정신을 챙길 수 있으니까.
지드먼의 팀이 합류 한 이후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사망한 인원은 정확히 638명이었다.
무려 1/4이나 죽은 것.
과연 마지막에는 몇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법칙을 부순 이후 벌인 가루다들과의 전투로 인해 생존자들의 수준이 더 올랐다는 것.
생존자들 중 힘 스텟이 최고로 낮은 사람은 데밋이라는 남성으로 C랭크 81%, 높은 사람은 케드리나의 B랭크 37%였다.
유세현은 좌측 풀숲에 몸을 숨겼다. 좌측에는 루시아가 우측에는 카텐과 케드리나가 있었다.
리더와 팀장 격의 인원들이 모여 있는 뭔가 묘한 조합.
유세현이 고개를 살짝 좌측으로 돌렸다. 아까부터 계속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 때문이었다.
눈이 살짝 동그랗게 변한 루시아가 황급히 정면을 응시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건지.
유세현은 이참에 먼저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지금이라면 될 것 같았으므로.
“뭐,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캐묻자, 루시아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응? 지금 놀란 건가?
“아...그게...”
말까지 살짝 떨린다.
유세현은 볼을 긁적였다. 최근 뭔가 경계심이 좀 수그러든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특성인지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우습게도, 루시아가 끊긴 것만 같았던 말을 이었다.
“...저 좀비들 지능이 얼마나 되는지...”
그 말에 카텐과 케드리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걸 유세현이 알려줄 리가 없지 않는...
“간단한 말 정도만 알아듣습니다. 예를 들자면 뭘 가지고 와라.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와라. 움직이는 생명체를 잡아라 등.”
카텐과 케드리아늬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자기 정보는 절대 불지 않을 거 같지 않은 저 인간이 왜?
루시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머릿속은 백지장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런 것을 물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번 대화를 해보고 싶었을 뿐.
허나, 막상 사적인 일로 입을 열려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또 심장은 왜 이리 빨리 뛰는 것인지.
유세현이 마음속으로 쾌재를 내뱉었다.
개인정보를 물어보다니.
기브엔 테이크.
이러면 자신 물어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뭐, 더 궁금하신 점은?”
루시아는 고개를 황급히 젓는 것으로 답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도 루시아씨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뭐죠?”
“루시아씨의 그 강한 방벽.”
“......”
“고유특성이 적용된 거 맞죠?”
그는 빙빙 돌려 묻지 않았다.
고유특성은 개화하기 전까지 스텟창에 나타나지 않으니까.
즉,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는데 이것을 거론 했다는 것은, 초심자가 듣기에는 유세현 스스로도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그럼 유세현씨도?”
완벽하게 걸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케드리나와 카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유특성? 그게 뭐죠? 스킬인가요? 스텟창에는 아무리 봐도 없는데...”
“저기 세현씨 실례가 안 된다면 설명을 좀...”
유세현은 그 물음에 짧게 대답해주었다.
“그런 게 존재할 줄이야...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으음, 낮은 확률로 발현 된다라...”
눈을 부릅 뜬 카텐이 팔에 힘을 주더니 몸을 덜덜 떨었다.
유세현은 뭐하는 짓거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수확은 컸음으로.
수백 만 명 중 한 명 꼴로 개화하는 능력.
사실 확률만 그 정도고 죽어나가는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무척 드물었다.
‘방어 계열의 고유특성이라...’
개인적으로 생각 했을 때 무척 좋은 특성이었다.
만약 그녀가 성장한다면 드래곤에 브레스도 막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이 여자도 될 수 있는 한 살려보는 편이 좋겠군.’
유세현은 고개 치켜들었다.
구름 한 점 없어, 밝게 쏟아지는 달빛에 높이 솟아나있는 탑이 아른거렸다.
* * *
폭풍의 탑.
탑은 건물 내부라는 것에 걸맞지 않게, 벼락과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끝없이 뒤바뀌는 길.
트랩은 가는 곳 마다 설치되어있었고,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총알받이가 되어 줄 좀비들이 있다는 것.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대군이 빠르게 뒤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오크들은 되찾은 카취일까 아니면 완전 장악한 데오폴론일까.
유세현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다.
그렇게 상정하고 움직여야만 승리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른 유세현이 천장에 위치한 문을 열어 재꼈다. 가루다와의 거리가 제법 되었기에 최대한 빨리 추격해야 되었기 때문.
올려다보는 그의 눈앞으로 상공을 향해 쭉 뻗어있는 대지가 보였다.
온갖 식물들이나 나무들은 그것에 맞춰 옆으로 기울여져있었다.
중력이 변화한 것.
튜토리얼을 떠오르게 만드는 구조였다.
‘그래...제 3차 튜토리얼도 이랬지. 여기서 따온 건가?’
다만 차이는 있었다.
그 당시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하나밖에 없다는 점.
나눠져 있던 구역이 전부 합쳐지는 것 같았다.
‘되려 이런 필드면 우리가 유리하다.’
무작정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매복 기습이 가능할 테니까.
“어...이건!”
생존자들도 깨달았는지 탄성을 내뱉었다.
유세현이 제일먼저 내부로 들어갔다.
* * *
유세현은 제일먼저 전체적인 흐름을 살폈다.
그러던 와중 알게 된 사실.
가루다들은 10개의 팀으로 나뉘어 열심히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줍는 놈들.
대충 봐도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하는 행동이었다.
유세현은 공격을 감행했다.
결과는 대승.
기분 좋게 전리품을 차지한 유세현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이 전리품은...
아이템 명: 게이트의 파편조각.(8번)
등급: 없음
상세정보: 게이트의 파편조각입니다. 총 8개의 파츠로 나눠져 있는 파편을 각 1000개씩 모으면 판도라 외부로 나아갈 수 있는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어?”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템은 그들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것이었다.
갈리는 희비.
생존자들의 안색은 밝아지는 반면, 유세현은 입술을 곱씹었다.
‘젠장...’
지금까지 생존자들은 길을 몰라 유세현의 뒤를 따라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길을 알게 되었다.
놈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 잠식(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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