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12화 (212/612)

< 잠식(1) >

-쩌쩌적.

큰 충격음에 이어 천장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깜짝 놀라 올려다본 그곳에는 한 남성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칠흑같이 새까만 검을 든 채, 어둠을 흩날리며.

유세현이 혀를 찼다.

살아남은 생존자는 저 여자 한 명뿐인가.

순식간에 루시아에게 다가간 유세현이 불쑥 손을 뻗었다.

위액에 빠져있는 그녀를 꺼내주기 위함이었지만.

-치지직.

그녀를 감싸고 있던 무형의 막은 유세현의 손 또한 밀쳐냈다.

동시에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위액.

-똑.

-치이익.

피부에 살짝 닿자 유세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마법저항력과 속성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자신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피부가 위액의 산성을 완벽하게 버텨내지 못하고 있었다.

위력이 약해 여자가 살아남아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만큼 좋은 등급의 방어 스킬을 지니고 있는 건가? 아니면...’

-쩌적.

유세현의 손을 방어한 장소에서부터 서서히 균열이 일었다.

마침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배리어.

유세현은 루시아를 잽싸게 어깨에 들쳐 멨다. 약간 움찔거리긴 했지만 이전처럼 거센 저항은 없었다.

그래 이게 올바른 반응이지.

지면에 내려놓자 고개를 푹 숙이는 루시아.

“저기...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유세현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휘이잉.

목 끝으로 스쳐지나가는 서늘한 바람.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불어온다는 뜻은...

잽싸게 거대 지렁이의 사체를 넘어 앞으로 달려 나가자 자그만 한 틈 사이로 쏟아지는 광명이 수정을 밝게 물들이고 있었다.

장장 6일 동안의 수정동굴, 수로탐사의 끝을 고하는 빛이었다.

* * *

-쿠구구구궁!

입구를 찾고 있는 와중 별안간 대지가 요동쳤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먹구름.

하늘은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어둠에 뒤덮여있었다.

생존자들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젠장! 이번엔 또 뭔데?”

-콰광!

지상으로 내려친 한 줄기의 광명과 함께 생존자 일동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폭풍의 탑이 개방되었습니다.]

‘드디어 4개의 유적을 전부 클리어 한 건가.’

아직까지는 괜찮다.

폭풍의 탑은 다른 곳보다도 훨씬 높은 난이도를 자랑할 테니까.

클리어 하는 데 분명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

“어!”

얻어 걸린 한 생존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트드륵.

지배자의 유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 한다.’

유세현이 생존자들과 함께 내부로 향했다.

* * *

-캬오오오!

-쿵!

도합 6m에 달하는 거대 괴수의 몸이 고꾸라졌다.

유세현은 코인을 흡수하기 무섭게 포효하고 있는 다른 괴수를 향해 나아갔다.

이곳에 들어 온지도 수 일.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어둠이 흩날릴 때마다 휩쓸리는 적들의 육신이 와르르 무너진다.

‘대, 대단해.’

‘저게 정말 사람인가...’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 무력.

수정동굴에서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좀처럼 활약하지 못했던 아린도 마음껏 날뛰게 되자 나아가는 시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었다.

루시아의 시선이 일순간 유세현을 향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는 무척 대단했다.

단순히 스킬뿐만이 아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과 급소만 노리는 정확함.

자신과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녀는 검을 들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더.더.더 훨씬 더 강해져야만 한다.

이전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적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그녀의 옆으로 문득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옆에서 사냥하던 조가 시선분산을 잘못시킨 것!

지드먼이 깜짝 놀라 외쳤다.

“위험해!”

루시아는 황급히 방어 스킬, 마력의 장벽을 발동시켰다.

고유능력까지 듬뿍 발휘해서.

-치지익.

-텅!

두 마리의 팔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유세현의 미간이 스르륵 좁혀졌다.

‘저걸 순수하게 방어했다고?’

B랭크 20%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 놈들은 자신 스스로를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손이 붉은 것이 다른 스킬도 더한 것이 분명했다.

일개 C랭크의 생존자가 단순히 스킬에 의지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저 여자 혹시...’

그가 지금까지 간간히 지켜보기로서니 루시아가 사용하는 3개의 스킬은 이러했다.

하나는 뇌전속성부여.

또 하나는 광역기술.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방벽.

아까 전에는 단 한 번에 일격에 금이 갔다.

그래서 유세현은 그 당시 그녀가 높은 등급의 스킬에 상당한 마력을 쏟아 부운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허나, 마력을 쏟아 붇는다면 이 정도로 전투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

실제로 그녀의 체내에는 아직도 마력이 꽤나 남아 있다.

‘게다가 저 방벽...’

미묘하게 다르다. 빛에 반사되어야만 살짝 보이는 문양이 박혀 있는 것!

문득 이강호가 떠올랐다.

그는 고유특성을 사용할 때마다 불꽃색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의심해볼만 한 여지는 충분히 있군.’

만약 그녀가 정말 고유특성을 개화한 것이라면 무척 대단한 일이었다.

자신도 아직 고유특성을 개화하지 못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유세현은 일단 상념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건 그녀가 고유특성을 개화 했냐 안했냐가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클리어 하는 것이었으므로.

-슈우욱

순식간에 도약한 유세현이 루시아의 옆에 있던 놈들의 목을 갈랐다.

정말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쿵!

놈들의 목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 * *

-화르륵.

모닥불 앞에 않은 유세현과 루시아가 전방을 경계했다.

순번이 돌고 돌아 또 만나게 된 것.

일반적인 던전의 좋은 점은 양옆에서 난데없이 적이 튀어나오지 않아 경계에 많은 인원이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판도라가 워낙 지랄 같기에 무슨 변수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나.

그런 것은 어차피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없다.

루시아가 유세현을 힐끗 흘겼다.

특이한 사람.

그는 그녀가 여태까지 보아온 사람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는 강했던 다른 자들과 달리 무척 공평하게 일했고, 사람들의 인망을 얻고자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절대 과시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면서도 편한 느낌.

두 사람은 교대할 때까지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 * *

-크어어어.

유적을 지키고 있던 보스의 육신이 털썩 쓰러졌다.

쉬지 않고 달려온 쾌거.

유세현은 곧바로 제단으로 올라갔다.

보통이라면 보상을 독식하는 것이라 항의를 했겠지만, 나머지가 가만히 있자 지드먼의 팀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번에 얻은 신물은 1번.

제 1법칙은 관할하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지배자의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법칙이 일부 힘을 잃습니다.]

[제 1법칙 법칙의 효과가 줄어듭니다.]

[도합 5가지의 스킬 사용이 가능합니다.]

[제 2법칙. 스킬강탈의 효과가 1명으로 줄어듭니다.]

[스킬 강탈 적용자. [유세현]]

아린의 안색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고작 스킬 2개가 되살아난 것에 불과했지만, 대마법사인 그는 그 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강탈당했던 것까지 합치면 도합 3개이다.

유세현의 입가에서 미소가 살짝 번졌다.

이로서 바로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언데드 레이즈.’

유세현이 손을 치켜세우자 보스가 꿈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미, 미친! 되살아나다니!”

“다들 다시 진형을...”

그때 유세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괜찮습니다. 제가 되살린 겁니다.”

“...예?”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

몬스터를 되살리다니 이 남자는 정말로 대체 뭐란 말인가.

오직 아린 만이 그 정체를 파악했다.

“이건...흑마법이로군.”

“잘 아시는군요.”

“그렇지.”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

마력만 있다면 사지가 잘려나가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살인병기.

지금부터 그 수를 불린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라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 이게 대체 무엇이냐.]

데오펠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제단이 난데없이 돌파당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한참 전에 분통을 터트렸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그는 왜 이렇게 놀란 것일까?

현재 관망경을 통해 보고 있는 데오펠의 눈에는 가루다들이 비치고 있었다.

다시 되살아나서 자신의 동족을 향해 달려드는 미친 가루다들이.

[크...이게 무슨!]

지배자의 힘에 의해 스킬의 정체가 드러난다.

[사용자: 유세현]

[사용능력: 언데드 레이즈]

또 유세현이다.

흑뢰검, 천마군림보, 그리고 암흑투기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눈이 빠질 지경인데.

설마, 설마 상대를 되살려 장기 말로 사용하는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니!

가루다들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다.

[크...어떻게! 어떻게 이런 힘을 고작 한 인간이!!]

저놈이 죽이는 대로 되살려서 탑으로 진군한다면 탑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리라.

공든 탑이 정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것.

이제는 정말 직접 나서야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놈의 육체를 어떻게 해서든 먹는다.]

그리고 놈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되었다.

필요하다.

무척강한 육체와 더 많은 병력이.

[우선은 내가 직접 카취의 육신을 취하겠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이강호가 새겨준 죽음의 공포가 너무도 강해 움직이지 못했다.

[케르미라. 데뤼우프. 두 명만 나를 따라와라. 나머지는 정신지배에 힘써라. 가리움이 지배에서 풀려나면 절대 안 된다.]

[예!]

데오펠의 거대한 그림자가 매섭게 공간을 빠져나갔다.

* * *

전사 카취와 오크로드 카르취프의 대립.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오크들은 점점 카취를 따르게 되었다.

정변한 논리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카취가 무척 강했기 때문이었다.

오크들을 이끌 오크로드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

카취는 동족상잔을 막기 위해 최대한 교전하지 않는 쪽을 택하려 했지만 길을 막아서는 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데오폴론에게서 동족을 해방하기 위해.

그 결과 피해는 컸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오크에게 남은 것은 자멸뿐이었다.

“저들을 버려라 한다는 말인가...”

고민하고 있는 카취의 앞으로 제콸이 달려왔다.

“카취님!”

“뭐지?”

“카르취프쪽에서 전령을 보내왔습니다.”

“전령?”

내용은 간단했다.

불필요한 피는 보지 말고 1:1 승부로 해서 모든 걸 가르자는 것.

뻔히 보이는 의도였지만, 카르취프만 쓰러트린다면 정신지배를 당하지 않는 오크들을 자신의 편에 붙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선 괜찮군. 장소는 우리가 정한다고 알려라.”

“예!”

장소와 시간은 빠르게 결정되었다.

* * *

확 트인 대지.

땅이 척박하고 스산하다는 것만 빼면 이곳은 그야말로 드넓은 초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카르취프가 앞으로 나서자 수많은 오크들이 함성을 내뱉었다.

“취프! 취프!”

카취도 도끼를 거머쥐고 앞으로 나섰다.

“카취! 카취!”

두 사람이 마주서자 양측 세력의 오크들이 주위를 크게 둘러쌌다.

어차피 이 대결에서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질 것이기에 피아의 식별은 없다.

“카르취프...내가 당신을 놈들의 손에서 구원해주도록 하겠다.”

“......”

카르취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취가 배틀엑스를 치켜 올렸다.

숭고한 전사의 의식을 행하겠다는 뜻.

카르취프가 따라함으로서 둘의 대결은 시작을 알렸다.

카취는 처음부터 전신 전력을 다했다. 놈들이 모종의 수를 쓸 생각이라면 그전에 처리해버리면 된다.

카르취프의 전신을 짓누르는 고랭크의 마법.

< 잠식(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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