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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10화 (210/612)

< 수로(2) >

카취가 아이템을 먹여놓은 덕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루베르크의 광역스킬만 믿고 나아가기에는 병력의 차가 차원이 달랐다.

아니, 뚫고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중 대다수는 죽는다.’

20%정도 남으면 많이 살아남는 것이리라.

과연 어떻게 해야 될지.

두 가지의 마음이 동시에 솟구쳤다.

하나는 타인의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가는 것.

또 하나는 시간을 들여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

시간싸움인 만큼, 만약 이들이 자신이 이끄는 팀이 아니었다면 유세현은 망설임 없이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허나, 현재 그는 이 팀의 지휘자였다.

안정성만을 위해, 자신만큼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다른 길이 있을 확률이 있음에도 팀원들을 사지 속으로 내몬다면, 자신은 과거 가족의 죽음 이후 돈 때문에 접근한 친인척이나, 지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

는 사람이 된다.

그는 그런 자들이 되기 싫었다.

만날 때는 죽고 못 사는 척 하다가도, 정작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면 쉽게 생각하고, 외면해버리고, 이용해 먹을 생각만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싫어 기피하고 일정 거리를 두었다.

“세, 세현씨 이거 뚜...뚫으실 건가요?”

케드리나의 떨리는 목소리.

아린과 카텐도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니, 모두가 유세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유세현이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의 자신들은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현재에 이르러서 유세현은 그들의 희망이자, 맹목적으로 따를 수 있는 지도자였다.

유세현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살폈다.

높이 솟아있는 무수히 많은 절벽. 그 사이로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

김주희가 있었다면 일이 정말 쉬웠을 텐데.

아니, 김주희와 이강호만 있었다면 정면으로 쳐들어가 부숴버렸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든든한 동료.

곁에 있을 때도 의미가 무척 컸지만 없어지고 나니 그 가치를 더욱 되새기게 된다.

유세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카취 정도의 오크가 날 뛴다면 최소 1주에서 3주 까지 공략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마침내 결정한 유세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2주일.”

“예?”

“2주일동안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만약 그때까지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나아간다.

승리를 위해서.

그들은 나눠져 탐색을 시작했다.

* * *

시험을 볼 때 10분이 10초처럼 느껴지는 것 마냥,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가루다들의 눈을 피해 동굴, 틈새길 등을 찾아봤으나 전무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12일 째.

사람들의 눈동자에 초조함이 깃든다.

이제 이틀만 더 있으면 저들과 붙어야 되는 것.

“세현씨, 차라리 다른 장소로 이동해보는 게...”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지드먼의 말을 단번에 끊은 유세현이 순식간에 절벽을 향해 도약해 자리를 이탈했다.

어두워지는 지드먼의 낯빛.

그를 따르던 수많은 생존자들이 다가와 이구동성이 되어 말했다.

“지드먼씨 그냥 이 그룹에서 이탈하시죠?”

“맞습니다.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놈들의 수가 아무리 적다고 해도 무려 1만이에요 1만! 이게 뒤지라는 말하고 뭐가 다릅니까?”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군요.”

“시간은 무슨 시간! 어물쩍 대다가는 괜히 붙잡혀 빠져나가지도 못해요! 오늘 내로 결정을 안 한다면 우리는 따로 빠져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힘없이 대답한 지드먼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터져 나왔다.

지드먼은 자신의 딸에게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모르겠어요.”

루시아의 시선이 유세현이 위치한 상공을 향했다.

짧았다면 짧았다고 할 수 있고, 길면 길었다고 할 수도 있는 이곳까지의 여정.

첫날 경계 이후 유세현은 일부러 루시아와 지드먼을 겹치지 않게 배치시켰다.

불미스러운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만약 일어난다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것이라고 하면서.

5명이 뭉쳐있으면 그 중 1명은 쓰레기라는데, 어떻게 호언장담할 수 있는 것인지 루시아는 의아했다.

실제로 그녀가 있던 팀에서조차도 그녀의 육신을 탐내는 현대인들이 무척 많았다.

물론, 실력을 선보인 이후로는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지만.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유세현의 팀 인원들은 그녀에게 찝쩍대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하더라도 기분 나쁜 모습을 보이면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뭔가 괜찮은 인물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집단.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카취가 점령한 2존 1-1.

그들은 몇 만 명이 넘던 생존자들 중 인간을 배신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하던 사람들이었다.

다혈질, 소극적으로 개개인의 성격은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인간성이 결코 안 좋진 않다.

그리고 케드리나의 팀은 여성인 그녀가 이미 오래전부터 장악한 상태였고.

“일단은 이거에 집중 하죠. 아버지.”

“그래, 그러자꾸나.”

루시아가 바위를 짚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무척 가냘퍼 보이는 몸에 무슨 힘이 있겠나 싶지만, 그녀도 어엿한 한 명의 대리자였다.

그녀는 행여나 장치라도 있을까 길이라도 있을까 바위를 하나하나 되짚었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와 몸을 뒤흔든다.

그녀는 꽉 달라붙어 버텼다.

그런데.

-트드득.

-쿵!

강풍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그녀의 머리위로 돌이 우수수 흘러내렸다.

더 나아가 무너지는 발판.

덕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은 한없이 불안정해만 보였다.

밑에는 엄청나게 빠른 급류가 흐르는 상태.

떨어져도 빠져 나올 수야 있겠지만 상당히 휩쓸려 내려가리라.

루시아는 좌우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다른 암석을 붙잡았다.

허나 그녀는 그것 또한 부서질 것이라고는 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트드득.

“윽!”

추락한다.

루시아가 황급히 검신을 벽에 꽂았으나 지반이 약한지 무용지물.

주위를 조사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풍덩.

결국 급류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루시아.

지드먼이 깜짝 놀라 뛰어드려 한 순간.

-풍덩.

또 하나의 신형이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유세현이었다.

‘귀찮게 하는군.’

유세현은 물에 저항하고 있는 그녀의 뒤로 돌아가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쑥 짚어 넣었다.

물속에서 인명구조를 할 때의 기본자세.

천마군림보로 막 도약하려는데, 이리저리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친다.

마치 놓으라는 듯.

‘이 여자 뭐야?’

유세현은 위로 던져버릴까 하다가, 가루다에게 들킬라 그녀의 양손을 모아 포박했다.

그리고 재차 도약하려는 순간.

문득 좌측에 있는 커다란 구멍이 시야에 비쳤다.

‘어?’

지름 8m정도 되는 듯한 동그란 홀.

새까만 것이 내부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저건...설마?’

유세현은 일단 수면위로 올라갔다.

루시아가 열심히 발버둥 쳐둔 덕분에 불과 몇 초 사이에 꽤나 휩쓸려 내려왔지만, 천마군림보가 있는 이상 되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면위에 루시아를 내려놓은 유세현.

물을 뱉어내던 그녀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정말 죄송...”

하지만 그 당사자는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살을 가른 유세현은 적절하게 천마군림보를 사용해 홀 내부로 들어갔다.

계속 물이 차 있다면 포기해야하지만. 만약 차 있지 않다면...

물 수면이 비친다.

-촤아!

밖으로 빠져나온 유세현은 곧장 흑뢰검을 사용했다.

새까만 흑뢰가 번뜩이며 주위를 흐릿하게나마 비쳤다.

이곳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 보이는 동굴이었다.

알림창이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일단 다행이도 던전은 아니다.

유세현은 제일먼저 방향을 확인했다.

정반대로 길이 나있으면 말짱 도루묵.

허나, 홀이 존재한 방향이 절벽 방향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곳의 길은...

‘역시 내부로 이어져있다.’

함정?

아니면 정말로 숨겨진 길?

가보지 않은 이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했다.

사람보다 2배가량 커다란 신체를 지니고 있는 가루다.

날개까지 피면 부피가 더 커진다.

때문에 이런 동굴에서는 움직임이 상당히 제약되리라.

‘가볼까. 말까.’

만약 나아갔는데 끝이 막혀 있으면 시간이 더 지체 되는 것.

‘하지만...’

발견했는데 가보지 않을 수도 없다.

유세현은 결정을 내렸다.

* * *

“물속에 이런 장소가 있었다니...”

“그러게. 그런데 끝까지 이어져있을까?”

무심코 내뱉은 카텐의 말에 케드리나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렸다. 카텐이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뭐? 세현씨가 그냥 돌아가자고 할까봐? 아서라 아서. 세현씨가 이걸 생각 못 했겠냐.”

“아...하긴 그건 그렇지. 세현씨가 네가 생각하는 걸 못 떠올릴 리가 없으니까.”

“허...이년이 또 시비를...”

“흥! 사실을 말한 것 뿐인...”

유세현이 차분히 손을 들어 올리자 케드리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아가겠다는 뜻이었기 때문.

동굴의 외벽은 수정석이라는 보석이 박혀져있어 반사된 횃불의 빛이 휘양찬란하게 번뜩였다.

현대세상이었다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캤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석에 접근하는 어리석은 이가 있을 리가 만무.

유세현은 계속 길을 따라갔다.

곧게 뻗어있던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구불굴불하고 위아래로 갑자기 급경사가 지는 등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으로 나타난 4개의 갈림길.

‘설마 미로?’

유세현은 일단 검으로 통로 위에 간단히 체크를 한 뒤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이번에는 2개의 갈림길이 그들의 앞에 있었다.

울려 퍼지는 웅성거림.

“미로인가?”

“그런 거 같지?”

무척 작은 목소리였지만 동굴이었기에 소리는 상당히 크게 울렸다. 유세현은 상황을 정리했다.

‘마력의 흐름을 보니 몬스터가 있는 것 같진 않는데...’

그렇다고 치기에는 나 있는 길이 너무도 기묘하고 이상하다.

더군다나 트랩도 하나도 없다니.

‘정말 단순한 길?’

유세현은 몇 개 더 나아간 뒤에야 인원들을 나누기로 했다.

내부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막힌 길이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

퍼져서 찾는 것이 더 빠른 대책이다.

유세현은 몇 가지 룰을 정했다.

첫째, 막힌 길이 있으면 돌아와 대기한다.

둘째, 갈림길이 나오면 한 명은 그 자리에 대기시킨다.

셋째, 약 30분 간격으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넷째, 이상한 움직임을 확인할시 곧바로 보고한다.

“우선은 처음 있던 장소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계속 좌측으로만 왔기에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건 쉬었다.

그렇게 시작된 탐험.

이 수로는 전부가 미묘하게 얽히고설켜 이어져있었다.

3갈래 길이 나왔을 때 왼쪽으로 가더라도 몇 차례에 걸쳐 나중에는 오른쪽으로 간 사람과 조우하는 것이다.

‘이러면 출구를 발견하기는 되려 쉽다.’

막혀있으면 되돌아와 합류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막혀 있지만 않다면 룰을 바꿔 뒤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차례차례 합류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며칠.

그들은 꽤 내부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머리위로 느껴지는 수많은 마력.

필히 가루다들일 터.

쉽게 나아가면 나아 갈수록 묘한 기분이 코끝을 자꾸만 자극했다.

이렇게 긴 통로가 대체 왜 만들어져있는 것일까?

정말로 단순한 미로인 것인가?

그 순간.

-트드드득.

지면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천장에 박혀있던 수정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붕괴? 이제 와서?’

붕괴되면 정말 난리가 난다.

허나, 벽에 귀를 댄 유세현은 곧 깨달았다 이것이 단순한 지진이 아니라는 것을.

-드득. 드득. 드득

무엇인가를 긁는 듯한 소리.

떨림 소리가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이 장소를 향해서!

-쾅!

-캬아아아아!

제일먼저 보이는 것은 5m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아가리였다.

-쿵! 쿵!

연이어서 수많은 아가리가 입을 들이민다.

-으적 으적.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수정이었다.

유세현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이 동굴!’

이곳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동굴이 아니었다.

놈들이 수정을 먹고 지나간 것. 그것이 이 길이 된 것이다.

‘이놈들 마력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력이 없는 놈들은 하나씩 독특함을 지니고 있었다.

< 수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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