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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09화 (209/612)

< 수로(1) >

놈들이 탑을 먼저 클리어 하느냐, 혹은 자신이 먼저 법칙을 부수느냐.

‘다 부술 필요도 없다. 제1 법칙만 약화시킨다면...’

승산은 충분.

유세현이 폭포 내부로 들어서자 아린이 그를 맞이했다.

“오! 왔는가!”

“예. 갔다 왔습니다. 영감님.”

인원이 늘은 것을 보니, 일단 어찌 어찌 여타 생존자들을 합류시키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린은 간단명료하게 상황 설명을 해 나갔다.

역시, 이야기자체는 잘 풀리지 않은 모양.

“그간 우리의 행보에 대해 아무리 잘 설명해도 믿질 않는구먼. 미안허이 말재주는 영 좋지 않아서...”

마법사라는 존재는 사실 사람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법의 탐구와 수련에 매진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때문에 2존에서도 아린이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이유는 말이 아닌 행동 때문이었다.

“자네가 한 번 직접 대화를 나눠보게나.”

아린이 몸을 돌려 앞장섰다.

그들의 리더는 흰 피부에 금발로 소싯적 여자를 꽤나 울렸을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미중년.

아린이 소개하자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지드먼 아인셰르라고 하네.”

“유세현입니다.”

유세현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러나 지드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면접을 보듯, 스스로에 대해 어필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지드먼을 향해 물을 뿐이다.

싸울 것이냐 혹은 이대로 있을 것이냐.

“허...둘 중 하나를 정하라는 겐가? 단순히 그런 것이라면 대답은 이미 했을...”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지드먼씨의 팀은 그냥 여기에 계속 있으시죠.”

유세현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홱 돌렸다.

아린을 제외하고도 여태까지 케드리나나 카텐 등 나름 성깔 있는 사람들이 설득을 해봤을 터이니 입 아프게 주저리주저리 떠들 생각 따윈 없었다.

아니, 사실 엄연히 따지자면 데려가 달라고 매달려야 되는 쪽은 저쪽이었다.

이곳에 계속 있는 건 단순히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카텐씨, 케드리나씨 사람들을 불러 모아주세요. 10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유세현이 선언하자 카텐이 살짝 놀라 물었다.

“예? 그럼 저 사람들은?”

“놔두고 갑니다.”

유세현의 단호한 말에 지드먼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정말로 그냥 자신들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꾸욱.

그때 지드먼의 옷깃을 누군가가 꽉 움켜쥐었다.

살짝 웨이브가 곁들은 단발의 머리카락.

여성의 붉은 눈동자는 지드먼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저는 괜찮으니까. 그냥 따라가도록 하죠.”

“...하지만.”

“아버지...여기 있어봐야 끝을 아시잖아요.”

“...알았다. 이 아비가 강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 * *

1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유세현이 제일 먼저 폭포 밖으로 몸을 날렸다.

지드먼은 그 순간 억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가루다가 정찰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허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를 뒤 따르는 생존자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말 엄청난 신뢰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행동.

지드먼이 잽싸게 유세현을 향해 접근하자, 유세현이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툭 말했다.

“그곳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 마음이 바뀌었네. 함께하고 싶네만...”

“좋습니다. 수락해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권유하는 쪽에서 수락해주는 쪽으로 형세가 뒤집혔다.

유세현은 지드먼이 뭐라 할 새 없이 쐐기를 박았다.

“지드먼씨의 팀을 재편성 하진 않겠습니다. 허나, 이것만큼은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합류해 계실동안 제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이게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셔도 상관없습니다.”

서로 의견을 수용해 움직이는 것?

물론, 민주적이고 무척이나 좋다.

허나 지금은 결코 아니다.

욕을 먹고 원한을 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된다.

뭐, 어차피 토를 단다고 해봤자 지금 합류한 그들밖에 없겠지만.

살짝 입술을 곱씹은 지드먼이 대답했다.

“...알겠네.”

* * *

유세현은 쉬지 않고 행군을 이어나갔다.

마수와는 걷기 시작한지 1시간도 안되어 조우했으나 가루다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데오폴론의 왕 데오펠이 법칙의 제단이 있는 근처로 대군을 이동시킨 탓이었다.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덕분에 일행은 해가 저물고도 한동안 계속 이동해 나갈 수 있었다.

마침내 새벽.

유세현은 지드먼의 팀원을 적절하게 분산시켜 경계조를 편성했다.

가루다에게 사냥당한 것이나, 폭포 내부의 흔적만 봐도, 그들이 배신자일 확률은 무척 낮았으나 그래도 경우의 수를 완전히 배제 하진 않은 것.

유세현은 초번초를 설 준비를 했다.

그는 이 집단의 실세라고해서 경계를 빠지거나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카텐이 다가왔다.

“오~세현씨, 오늘은 같은 근무조군요.”

“예, 졸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당연한 말씀을...그나저나 다른 한 명은? 루시아 아인 뭐시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전파했으니 곧 알아서 올 겁니다.”

유세현의 말대로 루시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을 살핀 유세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붉은 눈?’

너무도 눈에 띄는 색깔이었다.

레드 드래곤 셀론이 지니고 있던 색.

그러나 머리카락은 눈처럼 무척 새하얗았으며 피부 또한 창백했다.

‘이건...알비노인가?’

멜라닌 색소가 생성되지 않아 발생하는 병이었다.

이 병을 지닌 자들은 자외선 차단을 하지 못해 햇빛을 쬘 수 없는 불운한 운명을 지녔다.

“루시아씨 맞으십니까?”

“예.”

그녀의 대답은 무척 짧고 간단했다.

“장소로 이동하도록 하죠. 옆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유세현에 말에 루시아가 천천히 다가왔다.

말처럼 옆에 자리는 잡았지만 미묘하게나마 거리가 벌어져 있는 느낌.

그녀의 외모를 살핀 카텐이 중얼거렸다.

“마치 마녀 같군요.”

그 말에 유세현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마녀란 뜻의 의미가 결코 좋을 리가 없기 때문.

괜히 입을 나불거려서 불화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는가.

눈치 챈 카텐이 황급히 루시아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 기분 나쁘셨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아가씨. 제가 살던 세상에서는 대개 그렇게 불러서...”

“......”

루시아라는 여자는 쿨하게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셋은 곧 풀숲에 자리 잡았다.

“......”

주위를 가득 메우는 고요함.

유세현과 루시아는 정말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오직 경계, 또 경계를 할뿐.

카텐은 왠지 모르게 숨이 턱 막혔지만 참았다.

그렇게 10분. 15분. 30분.

인원이 많은지라 싸이클을 한 시간 단위로 돌렸기에 앞으로 10분 뒤면 교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유세현이 툭 말했다.

“마수가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마수 말입니까? 어느 방향이죠? 숫자는?”

“전방, 20마리 정도.”

“이, 인원들 깨웁니까?”

“아뇨, 강하지 않아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처리하도록 하죠.”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루시아는 그때까지도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죠.”

유세현이 앞장서자 카텐이 뒤를 따랐다. 루시아가 가만히 있자 카텐이 손을 까딱였다.

“안 오세요?”

“......”

루시아의 얼굴에는 불신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연대급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있는 대장이 마수가 있다는데.

-치잉!

그녀 또한 이내 검을 꺼낸 뒤 뒤를 따랐다.

거리는 그대로 유지한 채.

거침없이 나아가던 유세현의 발걸음이 뚝 멈추자 루시아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검이 유세현과 카텐쪽으로 향해 있는 게 어디 있을지 모를 마수보다는 둘을 더 경계하는 느낌.

“세현씨...아무리 봐도 저 여자. 우리가 덮칠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요?”

“놔두세요.”

어차피 오해는 풀린다.

곧.

유세현은 그대로 풀숲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카오오오!

터져 나오는 괴성.

마수의 정체는 사이클로 키메토스로 표범과 공룡을 반쯤 섞어놓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몸집은 인간 정도지만 C랭크 70%정도로 강한 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캬오오!

동료를 잃은 마수들이 대놓고 일행을 향해 도약했다.

-촤자작!

순식간에 썰려나가는 5마리의 마수.

카텐도 분발해서 마수를 잡기 시작했다.

“뒤져라. 개자식들아!”

본분을 깨달은 루시아도 황급히 마수를 향해 질주했다.

그녀는 눈앞으로 곧장 검을 휘둘렀다.

-치이잉!생각보다 강한 경토를 지니고 있는 발톱의 때문에 만만치 않다.

그때.

-서걱.

옆에서 날아온 검이 마수의 대퇴부를 그대로 갈랐다.

단 한방의 일격.

“어?”

어느새 그녀의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이젠 사체로 변한 사이클로 키메토스와 코인밖에 없었다.

유세현의 고개가 별안간 등뒤에 위치한 나무를 향해 돌아갔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말.

“이제 그만 나오시죠.”

나무 옆으로 하나의 인형(人形)이 드리웠다.

금발의 미중년, 지드먼 아인셰르.

“...알고 있었는가.”

“예, 하지만 그보다는 왜 저를 감시하고 있었는지 잘 대꾸하셔야 될 겁니다.”

유세현이 천천히 지드먼을 향해 다가가자 카텐은 크게 호흡을 들이쉬었다.

저렇게 확 돌변하는 분위기는 언제 봐도 익숙하지가 않다.

“그건...”

지드먼이 살짝 꾸물거리자 검이 다시 스스륵 빠져나온다.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기세.

루시아가 잽싸게 앞을 가로 막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게...”

루시아의 어깨가 살짝 으쓱거렸다. 마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처럼.

“아버지께서는 제가 당할 줄 알고...”

주요 단어가 몇 개 빠졌지만 유세현은 말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의 성은 아인셰르였었지.

유세현은 루시아를 쳐다봤다.

아퀼라와 김주희의 얼굴에 적응되어있어서 미처 깨닫지 몰랐는데.

확실히 청초해보이면서도 몽환적인 것이 남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게 생겼다.

마녀, 불운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알테리아 대륙인들이야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쳐도 현대인들에게 알비노는 꽤나 상식적인 것이었으니 분명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서 지켜봤다는 겁니까. 제가 건드릴까봐?”

“...할 말이 없군.”

“......”

유세현은 검을 거뒀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해가 되었기에.

* * *

[유적의 공략상황은?]

[가루다들은 거의 다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크족은...]

부하의 보고에 데오펠의 입이 부득부득 갈렸다.

카취의 배신. 아니, 혁명.

그 덕에 오크들의 유적 공략이 눈에 띄게 더뎌졌다.

이제 1/5정도만 더 나아가면 되건만!

부글부글 끊는 데오펠의 머릿속으로 한 명의 인간이 스쳐지나갔다.

이를 이 지경에 달하게 만든 근원.

카취에게 진실을 알려준 인간!

유세현.

데오펠은 그 당시 관망경을 통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로 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뚫리더라도 적어도 탑의 중간쯤은 공략한 후여야만 한다.

만약 그전에 뚫린다면...

그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하는 것!

그 꼴이 나지 않기 위해 데오펠은 가루다들을 다루는데 더더욱 집중했다.

* * *

“이, 이게 전부 가루다라고?”

상공을 까마득히 뒤덮고 있는 가루다들을 확인한 카텐의 턱이 딱 벌어졌다.

다른 여타 생존자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로 압도적인 물량.

유세현은 루베르크에 내재되어있는 부패의 어둠을 사용했다.

이전 때보다도 훨씬 빠르게 날아가 상대를 부식시킨다.

아이템명: 마검 루베르크

등급: 레전더리 [SSS Rank]

현 등급: 유니크 [E Rank]

상세정보: 마왕 루시뷀트가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여 집적 제작한 마신구입니다. 주인이 바뀌면서 그 힘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등급이 올라가며 힘의 일부를 되찾은 상태입니다.

사용능력: 부패의 어둠, 형태변환(1일1회 사용가능)

레어에서 유니크로 등급이 높아지면서 스킬도 같이 향상 된 것!

< 수로(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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