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01화 (201/612)

< 단서(1) >

“큭, 적의 기습이다! 모두 공격에 대비...어?”

사람인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

“새, 생존자에요 유세현씨! 역시 우리 말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어요!”

케드리나가 기쁨의 함성을 터트리는 반면, 아린과 의심이 많은 일부 생존자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유세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아린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짜 생존자 같은가?”

“아뇨.”

유세현은 단번에 답했다.

지니고 있는 마력의 총량이 사투를 벌인 자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했기 때문이다.

배신자일 확률은 99%.

물론, 1%의 확률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표정은 정말 그럴싸하군.’

조우한 인원들의 표정에는 케드리나처럼 같은 생존자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환희가 담겨져 있었다.

아래쪽에서 외침이 들려온다.

“그, 그런데 있지 말고 언덕으로 내려오세요! 재수 없으면 놈들에게 발각 될 수도 있습니다!”

‘뭐, 어차피 상관없나.’

일단 조우한 이상 이대로 지나칠 수도 없는 일.

유세현은 일행을 향해 손짓을 했다.

* * *

“후우...저희 말고 생존자가 남아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반갑습니다. 저는 캐런 존이라고 합니다.”

“유세현입니다.”

캐런이 이끄는 생존자들은 500명 정도 되는 대대급의 인원들로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2존에서 이곳으로 이동된 뒤, 북쪽에 위치한 안개지대에 몸을 숨겨 지내 왔었다는데, 오크들이 갑자기 근처로 몰려들어 부리나케 이동을 개시한 것이라고 한다.

곧 들통 날 거짓말 따위는 배제한,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

유세현과 이곳으로 같이 넘어온 인원들도 그들이 배신자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간단히 현 상황에 대해 일러준 뒤 일단은 그들의 합류를 허락했다.

“후...산 넘어 산이군요. 오크들을 피해 이곳까지 내려 온 건데...케돈! 놈들과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 약 10km 정도. 지금도 계속 이쪽으로 남하 하고 있어.”

“큭...젠장. 썩을 오크 놈들.”

케돈은 이글아이라는, 정말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스킬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피해왔긴 했지만...”

이제는 한계.

“젠장...어떻게 해야...”

캐런을 비롯한 다수가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세현씨께서는 혹시 무슨 좋은 방도라도 있으십니까?”

물론, 그들이 진짜로 침통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되려 그들은 마음속으로 웃고 있었다.

완벽한 설정과 연기.

그 때문인지 처음에는 경계심을 내비치던 유세현이 어느새 곰곰이 고민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진형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스킬이 있을 거라 그랬지...’

과연 어떤 스킬일까.

캐런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한 채 차분히 기다렸다.

그러나.

“예, 있습니다.”

“아...어떤?”

캐런은 조금 놀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진형을 파악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나?

‘뭐, 상관없지.’

만약 파악했다면,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자 어서 남하해라!’

카취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빈틈을 찔러 돌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직접 유세현의 목을 베고 오크들의 장군이 되리라.

스텟의 차이가 난다지만, 방심을 노리면 못할 것도 없었다.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동쪽으로 향하겠습니다.”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쌩뚱 맞은 대답이었다.

동쪽으로 가겠다고?

‘크크크. 제 무덤을 파는구나.’

그곳에는 분단 해놓은 패거리들과 더 많은 오크들이 포진해 있었다.

게다가 절벽이 많아 길 또한 몇 개 없다.

케드리나가 재빨리 만류했다.

“세현씨, 출발하기 전에도 들으셨겠지만 그쪽에는 절벽이 많습니다.”

캐런은 혀를 찼다. 이제 막 북상한 주제에 그쪽 지형을 알고 있는 생존자가 있다니.

‘쳇, 더 쉽게 가나 했더니.’

“그리고 길도 몇 개 없죠. 만약 가다가 재수 없게 조우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알고 있습니다.”

딱 한마디. 정말 딱 한마디 한 것에 불과했지만, 케드리나는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캐런은 어이가 없었다.

지형을 알고 있는 주제에 저렇게 쉽게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다니.

허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 누구도 유세현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신뢰도가 높으면...’

뭐, 되었다.

어차피 그래봤자 그가 정말로 오크나, 가루다들을 전부 물리칠 수는 없을 테니까.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안전한 미래.

‘난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그것이 비록 인간을 배신하는 행위일지라도.

* * *

유세현이 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곳을 목표로 잡고 이동해 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력이 기이하게 얽히고설켜 소용돌이치는 장소.

유세현은 이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는 현상은 없으니까.

‘어쩌면 갑자기 나타난 지배자랑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래서 웬만하면 루베르크를 회수하고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놈은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휘이잉.

거친 바람이 머리칼을 스쳐 지나간다.

무려 4000m를 웃도는 높이.

현실에서나 그렇지, 판도라에서 4000m는 결코 높은 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울긋불긋 솟아올라있는 수많은 절벽.

그 너머로는 길목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지키고 있는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보인다.

생존자들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딱딱하게 굳는 반면, 캐런의 입가에는 아주 약간의 미소가 걸렸다.

‘끝났구나.’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늦었다.

머지않아 뒤따라온 오크의 군세가 퇴로를 차단할 터이니.

“세현씨 아무리 봐도 이곳을 통과하기는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이라도 되돌아가는 게...”

“아, 좀 가만히 기다리시죠. 세현씨,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케드리나의 말을 카텐이 단번에 잘랐다.

찌릿 치켜 올라가는 케드리나의 눈 꼬리.

“나는 상황에 맞는 말을 했을 뿐이야. 지금 안 물고 배기겠어? 저 개떼거지 안보여?”

“어허, 같은 생존자끼리 반말은 삼가 하시죠.”

“뭐? 이...야! 카텐! 내가 너보다 훨씬 선배야. 너 세현씨 믿고 계속 이러는 건가 본데 그러다가 정말로 훅 가는 수가 있어 알겠냐?”

포이즌 클라우드의 효과가 제거된 지금.

케드리나의 스텟은 B랭크 5%로 유세현을 제외한 생존자 중에서는 가장 높았다.

하지만 생사고락을 넘어온 것은 카텐도 마찬가지.

“지금 저 협박하는 겁니까? 이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오크들에게 쫓겨만 다녔지.”

“으...뭐?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이 왜 나와? 그리고 너희도 세현씨 오기 전까지는 골골댔다며!”

두 사람 다 상당히 성깔이 있었기에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생존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그들이 말다툼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

사소한 견해차이로 틈 만나면 으르렁대니 생존자들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몇몇은 아예, 두 사람을 커플로 이어주기까지 했다.

“그만하시죠. 지금 사랑싸움 할 때입니까?”

“저딴 거지같은 놈이랑 안 사겨!”

“허이고, 기분 나쁜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생색내지 마시죠?”

이렇게 끝.

유세현은 그 사이 주위를 전부 둘러본 상태였다.

‘분명히 지금 서있는 이곳인데...’

제일 고요한 폭풍의 눈.

주위를 하나하나 세밀히 살핀 유세현의 시선이 벼랑 끝으로 향했다.

‘설마?’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졌다.

“헉!”

곳곳에서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무리 초인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런 곳에서 낙하하게 된다면 최소 사망.

캐런도 잔뜩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케드리나와 아린, 카텐 그 외의 사람들은 무척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미세한 진동과 함께 바닥이 아니, 그들이 서 있던 암석 자체가 양쪽으로 쫙 갈라지기 시작했다.

“으어어. 이, 이게 뭐야?”

“무, 물러서! 갈라진다!”

그 아래로 드러나는 계단.

계단의 폭은 100명가량의 사람들이 횡으로 정렬하여 들어가도 문제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넓었다.

“이, 이건. 던전?”

-파바밧!

허공을 박차고 나타난 유세현이 암석에 손을 올린 채 툭 말했다.

“일단은 전부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큭!’

캐런은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던전이 숨겨져 있다니.

더군다나.

“제가 마지막으로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저 한마디 때문에 몰래 뒤로 물릴 수도 없다.

일원들이 어두컴컴한 내부로 자취를 감추자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 * *

-쿵.

바위가 완전히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새까만 어둠이 그들을 맞이했다.

“화염계열 스킬이 있으신 분들은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화르륵.

다시 밝아지는 주위.

원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언제까지 내려가야되는 것인지 생각될 무렵, 나타난 것은 돔형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공터.

[리-로버리의 실험실에 입장하셨습니다.]

[일정장소에 도달하기까지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알림창을 본 유세현의 입꼬리가 다분히 올라갔다.

이강호에게 들은 바가 있던 종족이었다.

강탈종족. 리-로버리.

타인의 스킬을 훔칠 수 있는 특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종족.

제 2법칙에 당했을 때는 법칙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직접 언급된 지금은 확실하게 떠오른 상태였다.

‘강탈 종족의 실험실이라...’

촉이 온다.

이 안에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음을.

유세현이 내부로 돌입하려는 순간.

“자, 잠깐만요 유세현씨!”

안전부절 못하던 캐런이 외쳤다.

“무슨 일이시죠?”

“아...그 그게...이, 이곳에는 강한 괴물들이 있겠지 않습니까?”

“예. 그렇겠죠.”

“하, 하지만 이전에 말씀드렸다 시피 저희들은...”

강하지 않다고 어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요?”

유세현은 별 대수롭지 않은 마냥 답했다.

일부러 유도한 행동이었다.

캐런의 다음 행동으로 그들이 배신자인지, 아니면 정말로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므로.

“그, 그게...저희들은 전투는 좀...”

그럼 그렇지.

강해져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존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기회가 온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잡는 것이 상책.

그러나 배신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같은 인간까지 팔아먹은 자들이, 행여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

‘적어도 몬스터들 앞에서 어물쩍 거릴 줄 알았는데.’

완벽한 연기 덕분에 과대평가를 해버렸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정말 죄송합니...”

“다만, 앞으로는 절대 전투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이는 추후 몬스터들의 수준이 만만하다고 판단되어도 중간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뜻.

“...예, 알겠습니다.”

캐런은 살짝 이를 갈았다.

주도면밀한 놈.

유세현이 내부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

실험실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종류는 단 하나였다.

인간 형태를 띠고 있는 5m 크기의 거대한 육신.

그들의 온몸은 푸른색 비늘이 뒤덮고 있었으며, 달걀귀신 같이 동글동글한 얼굴에 붙어있는 것이라고는 16개의 눈뿐이었다.

입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목.

-크아아아!

그들은 힘 스텟과 내구력 스텟이 상당히 높아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흉기와도 같았다.

“크윽, 이 빌어먹을 괴물이!”

그러나 괴물들의 진정한 힘은 다른데 있었다.

[불타오르는 검.]

그들이 들고 있던 몽둥이가 화염에 뒤덮인다.

생존자 한 명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옘병할! 내 스킬이!”

이들이 바로 강탈의 종족인 리-로버리.

놈들에게는 1인당 1명의 스킬을 빼앗을 수 있는 특수 능력이 있었다.

중복이 안 된다지만, 레어 등급의 주력기 스킬을 하나를 빼앗기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은 역경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래도 이 섬의 수준을 고려했는지 놈들의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캐런은 엄청난 대군을 이루고 있는 리-로버리를 보며 안도했다.

그래, 싸우지 않겠다고 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치직.

-콰과과광!

눈을 시리게  검은 낙뢰의 폭풍이 넓디넓은 일대를 강타했다.

정말 눈 깜작할 새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재가 되어 쓰러지는 리-로버리.

“어...어?”

캐런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지금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좋았어! 다 조져 버려!”

카텐의 외침과 함께 다수의 인원이 목을 향해 스킬을 날렸다.

< 단서(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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