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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00화 (200/612)

< 반격의 서막(2) >

2존에 있을 때는 장소가 아예 달라서인지 루베르크와의 연결고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미약하게나마 이어져 있다는 것이 똑똑히 느껴진다.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

특수한 공간을 거쳐서 그런지 인식을 잘못하는 것 같은데, 직접 접촉한다면 분명히 원래대로 돌아오리라.

해독초가 기생하고 있는 늪지이끼나무를 훑어본 유세현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화염계 마법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스킬을 사용해 이곳을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예? 그런 짓을 했다가는 여기선 다신 해독약을 못 구하게 될 텐데...”

그렇다. 이곳을 회손 시키면 다시는 해독약을 구할 수 없다.

가루다들이 지키는 절벽으로 가야되는 것.

허나, 잘 생각해보면 어차피 이곳은 다시 오크 놈들에게 먹혀질 장소였다.

자신들의 병력은 고작 해봐야 1천6백여 명. 반면 놈들의 군세는 최소 3만 이상이었으니까.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또한 이곳을 다시 장악한 그들은 보다 경계를 엄히 할 것이다.

이거나 저거나 해독초를 못 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유세현은 이곳까지 다다르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되풀이 했다.

어떻게 하면 이 형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비등비등 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루베르크가 있으면 모를까, 전력의 차를 생각하자면 인간들의 힘만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이를 뒤집는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게릴라전뿐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자칫 잘못해 포위되는 순간 여기 있는 대다수가 허무하게 죽어나갈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불태우는 것이다.

적과 적을 대립시키기 위해서.

이곳을 전부 불태우면 절벽으로 가야되는 건 오크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적에게 상황을 부여해 틈을 만든다.

그 사이에 인원들을 보다 더 강하게 무장시키고, 전투를 대비한다.

-화르륵.

아린의 불의 비와 여러 생존자들의 광역기가 일대에 몰아쳤다.

활활 타오르며 재가 되는 나무.

‘자 어디한번 서로 치고 박고 박 터지게 싸워봐라.’

유세현 연기를 보고 이곳으로 몰려드는 오크의 동향을 파악하며 유유히 늪지대를 빠져나갔다.

* * *

“뭐라고? 늪지대가?”

“예, 전부 불탔습니다. 그 과정에서 투사 타뤼퀼이 전사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카취가 창대와 날, 전체가 온통 새까맣기 그지없는 배틀액스의 창대부분을 땅을 향해 살짝 내리쳤다.

-쿵!

거대한 지진과도 같은 울림이 천막을 뒤흔든다.

“가루다 놈들이냐?”

“아닙니다. 살아남은 병졸들의 말에 따르자면 습격한 종족은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뭐? 인...간?”

카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인간이라고 하면 이제는 얼마 남지도 않은 허약한 약소 종족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당하다니?

“놈들에게 우리의 진형을 뚫고 늪지대를 칠 만큼의 인원이 있었다는 거냐?”

“그게...”

“그래서 놈들의 병력을 얼마나 되었지? 삼천? 오천?”

“화, 확실히는 모르지만 삼천은 안 된 것 같다고...그리고 놈들은 진형을 뚫지 않았습니다.”

“뭣? 그게 무슨 말이냐!”

“그, 그게 미세한 틈을 파고들어서 도달한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마주친 진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

카취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단순히 화만 낼 일이 아니라고 느낀 것이다.

현재 그들의 진형은 상당히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잔당을 뿌리 뽑기 위한 탐색병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그 레이더망을 피해갔다고?

“당한 경위를 상세히 말해봐라.”

“그게, 갑자기 하늘에서 불의 비가...”

설명을 시작되기 무섭게 카취의 옆에 대기하고 있던 제콸이 버럭 외쳤다.

“그놈입니다!”

“확실히...그런 화염 마법은 그 인간 늙은이밖에 사용하지 못하지...”

“2존의 동족을 싹 쓸어버린 놈들입니다. 지금 당장 정예들을 투입해서 놈들을 처단해야 됩니다. 더 강해지면 뭔 짓을 할지 모릅니다!”

“진정해라 제콸! 지금 정예들은 대족장님의 명에 따라 유적공략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은 거냐? 그리고...”

카취도 알림창을 보았다. 스킬강탈의 대상자가 바뀌는 것을.

[유세현.]

놈이 분명히 제콸이 보고한 인간이다.

카취는 생각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우리의 동향을 대충이라도 읽을 수 있다고 봐야 된다.’

상당히 좋은 유니크 스킬이라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탐지스킬은 강탈당하지 않았다는 뜻.

그렇다면 놈이 강탈당한 것은 무엇일까?

카취는 당연히 속박하는 능력이 사라졌을 것이라 예상했다.

절대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놈은 확실하게 좋은 스킬만 강탈해가니까.

현재 놈은 상당히 약해졌을 것이다.

지금 더 급한 것은 해독약이었다.

앞으로는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아니, 가까스로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리 많은 양은 아닐 것이다.

만약 비축된 약이 다 떨어지면...지금은 섬을 양분하고 있는 가루다족을 이길 수 없게 된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끈다.

그리고 인간 쪽은...

“데쿤, 남아있는 들개는 몇 마리지?”

“최근 넘어온 놈들까지 합해서 도합 1천 5백 마리 정도입니다.”

“혹시 몰라 살려두고 있길 잘했군.”

알테리아 대륙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카취는 인간이 무척 신기했다.

한 마리, 한 마리, 개체마다 생각이 너무도 남다른 종족.

그렇기에 그들 중에는 목숨이 아까워 동족을 버리는 인원도 있다.

장군인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개들을 풀어라.”

“예!”

데쿤이 고개를 푹 숙여 복명한 순간, 제콸이 끼어들었다.

“놈들은 이미 한 번 들개를 몰살시킨 전례가 있습니다. 안 속을 것 같습니다만...”

“취취취, 그건 인간 놈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상황만 만들어주면 된다.”

“예? 그게 무슨...”

“개들에게 일러라. 유세현의 목을 떨어트리는 자. 오크 전사들을 이끌 수 있는 장군의 자리를 줄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좋아, 군대를 소집해라. 가루다 놈들이 눈치 채고 방비를 하기 전에 우리는 붉은 절벽으로 향한다.”

* * *

오크들의 대군이 가루다들이 위치해있던 절벽 앞 들판에 몰아쳤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피의 혈전이 이어진다.

엄청나게 많은 병력들이 죽어나갔다.

장장 5시간에 달하는 전쟁.

-슈우웅.

-쿵.

마침내 마지막 남은 붉은 날개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절벽위의 대지를 밟은 카취는 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았다.

‘인간 놈은 이걸 노렸던 거겠지.’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본의 아니게 뜻 때로 움직여주긴 했다.

수모라면 큰 수모.

그러나 이것은 오크 부족에게 있어 큰 기회 일 수도 있었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가루다족까지 싹 정리할 수 있는 기회.

“취취취취!”

카취는 크게 웃었다.

허나, 그는 미처 몰랐다.

그런 자신을 지배자의 관망경을 통해 주시하고 있던 이가 있다는 것을.

형체가 불분명한 그림자.

정신지배와 세뇌, 그리고 육체 잠식이 특기인 그림자 종족, [데오폴론]의 왕.

데오펠.

그런 그가 경악을 내뱉었다.

[저놈은 무엇이냐! 뭔데 가루다족을 마음대로 공격...]

데오펠은 가루다 족의 수장 가리움과, 오크족의 수장의 카르취프를 세뇌시킨 장본인이었다.

이강호가 이끄는 인간세력에게 패배 이후, 전전긍긍하던 그들은 던전을 클리어 한 보상을 사용해 이곳으로 넘어와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복수를, 판도라에서의 입지를 다시 굳건히 다지기 위한 포석으로 사상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유적을 강제 개방시켰다.

수족이 되어줄 두 종족의 윗대가리들을 재빨리 장악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무척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는데.

두 종족이 심각한 마찰을 별로 빚지 않은 것도 사실상 이 때문.

그런데 저놈은 뭐란 말인가?

이 섬에도 그리 오래 있지 않았던 놈이 뭔데, 멋대로 공격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오크들의 습성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크들은 선천적으로 공격적이다.

그리고 집단을 위한다.

때문에 대개는 상관의 명령 하에 움직이지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책임 하에 병력을 운용한다.

한 그림자가 대답했다.

[저놈...데오펠님께서 스킬을 빼앗으신 그놈입니다.]

[뭐?]

[이곳으로 오자마자 다짜고짜 가루다 족과 한 판 벌인 놈이지 않습니까.]

[......]

그 말에 데오펠의 거대한 그림자가 주위를 휘몰아쳤다.

그래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미친듯이 날뛴 놈이 있었다.

2존에서 넘어온 것 치고는 무척 강한 수하를 둔, 그리고 무척 특이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오크.

신참이라 영향력도 대단하지 않는데다가, 단순히 스킬만 좋은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저놈도 세뇌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관망경이 카취를 향했다.

* * *

-캬아아아.

-쿵.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는 괴수의 몸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C랭크 최상급에 달하는 스텟을 지니고 있는 공룡형 괴수였지만 유세현의 공격에는 버틸 수 없었다.

물론.

-트드득.

-쨍그랑.

검이 부러져 나갔다.

벌써 3개째였다.

갑자기 증가한 놈들의 내구력을 2존의 아이템이 버티질 못하는 것이다.

“후우...후우...”

생존자들의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오크들의 추격을 피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일주일 째.

그들은 맞닥뜨리는 괴물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 나갔다.

처음에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2존에서 엄청난 수의 오크들을 처리하고 코인을 흡수했다지만 인원이 하도 많아 C랭크 2%정도에 불과했기 때문.

반면 포진해있는 괴물들은 한눈에 봐도 그 이상이었다. 유세현이라면 몰라도 그들은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울려 퍼지는 그의 한마디.

“어차피 강해지지 못하면 죽습니다. 다들 알고 있으실 텐데요.”

그래, 죽는다.

강해지지 못하면.

그래서 정말 악착같이 몸을 움직였다.

“이곳에서 잠시 쉬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유세현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장구류의 파손 상태를 확인하는 이들, 부싯돌 비슷한 것에 이가나간 검을 갈고 있는 이들.

‘괜찮군.’

2존의 인원들은 이전의 전투로 그렇다 쳐도, 케드리나의 병력들은 여전히 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자신을 따라온 이유도, 자신이 강하기에.

조금이라도 희망이 더 보여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까지는 빈틈을 찾아 잘 이끌어서 그렇지 분명 곤경에 처하면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사냥은 강해지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기 위함도 있었다.

‘그나저나 직접 쫓아오지 않는군.’

루베르크와의 거리가 더 멀어 졌다.

남쪽에서는 오크들로 추정되는 무리가 아주 조금씩 포위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은 병력으로.

‘호오...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반면, 반대 방향에서는 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집단이 하나 존재했다.

유세현은 일단 제일 만만해 보이는 후자 쪽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높은 언덕.

“이 언덕 너머에 놈들이 있습니다. 신호를 드리겠습니다.”

“......”

긴장감에 잔뜩 어린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눈동자 속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유세현이 손을 올리자 빠르게 인원들이 순식간에 언덕을 넘은 인원들이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광역 스킬을 사용하고 돌격하려는 심산이었지만.

“어?”

케드리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과 함께 인원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정지했다.

“사람?”

“......”

그곳에 있는 것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환해지는 케드리나의 표정.

이내, 아래쪽에 위치해 있던 생존자들도 황급히 검을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 반격의 서막(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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