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서(2) >
내구력과 물리방어력이 상당히 높기에 속성 공격이 주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쿠구궁!
-쾅!
[크어어어어!]
리-로버리족은 단순히 특수능력 면에서만 보자면 정말로 끔직한 존재였다.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주력기를 내다 바치는 꼴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리-로버리 족도 판도라의 최상위 포식자는 되지 못했다.
각 개체의 재능에 따라 훔쳐올 수 있는 그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
약한 놈은 레어 등급도 훔치기 힘들다.
반면, 강한 놈은 레전더리 스킬까지 훔치는 놈도 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아린의 마법을 훔칠 수 있는 놈은 그 누구도 없었다.
-슈슈슉!
빗발치는 불의 비.
유세현은 주로 마력코인과 속성 저항력 코인만 골라 흡수했다.
힘과 민첩, 그 이외의 주력 스텟은 B랭크 최상에 달해있었기에, 이딴 저급한 코인으로는 0.00001%도 오르지 않는다.
자신이 전부 흡수하여 0.01% 올릴 바에는 일단은 도움이 될 생존자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났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던전의 끝에 도달 했을 때는 힘 스텟 만큼은 평균적으로 C랭크 중상급 정도가 되어있으리라.
‘괜찮군.’
생존자들은 유세현의 지휘 아래 계속 나아갔다.
가면 갈수록 계속해서 등장하는 리-로버리족이나, 간간히 등장하는 합성 몬스터들의 지능과 힘이 점점 올라갔지만 그만큼 대처도 좋아져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사망한 이는 약 30명.
덕분에 캐런을 포함한 500명의 인원들은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인원들은 점점 강해지는데 자신들은 그것을 보고만 있어야한다.
‘젠장...그냥 저놈들 틈에 껴서 사냥을 했어야 했는데.’
유세현이라는 인물이 저렇게 든든할 줄 알았다면 참여했을 것이다.
배신은 배신이고 스텟은 스텟이니까.
그런데 이미 늦었다.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전력을 핑계 되며 두어 번 정도 말을 꺼낸 적이 있었는데, 아주 당차게 거절당했다.
“캐런씨 저 사람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후...어쩔 수 없죠.”
은근슬쩍 눈치를 주면 뭔가 반응을 해야 하는데 그는 캐런이 이끄는 집단을 아예 없는 셈 쳤다.
정말로 완벽한 무시.
‘독한 놈.’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둠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질 때쯤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던전의 끝을 고하는 문이었다.
-끼이익.
내부, 돔 중앙에는 이제까지 상대한 것보다 1.5배는 큰 리-로버리족 15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말이 1.5배이지 사실상 체감 크기는 훨씬 크다.
사람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고작 15마리.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컸다.
한 번에 수십 마리가 등장했던 이전과 난이도가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것.
“세현씨. 이건 분산되어 있는 팀을 하나로 합쳐서 맡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합치는 게 좋겠습...”
카텐이 미처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유세현이 갑작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땅을 잔잔히 울리자 감겨있던 놈들의 괴랄한 눈이 번뜩 떠진다.
그리고 그 순간.
-고오오오!
해일처럼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압감.
카텐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어떻게 상대할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표정이 뻣뻣하게 굳은 생존자들의 목 너머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이왕 저질러진 일 어쩔 수 없다.
알아서 맞춰 상대할 수밖에.
그들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린을 포함한 여러 팀장들이 공격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유세현이 팔을 들어 올려 막아섰다.
“혼자 잡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빠져있으시기 바랍니다.”
마력을 읽고 내린 결론이었다.
놈들의 스텟은 최소 B랭크 중하급.
케드리나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닌 놈들이다.
물량이 있으니, 우르르 몰려들어 속성공격 스킬을 사용한다면 어찌어찌 잡을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피해가 너무 크다.
그러니 지금은 혼자 죽인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확신의 찬 말에 카텐이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유세현의 힘을 믿고 있다는 뜻.
반면, 캐런의 얼굴에는 기분 나쁜 조소가 살짝 맺혔다.
지금까지 보아온 유세현은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 또한 일개 생존자에 불과하다.
또한 던전의 수준이 낮으면 모르겠지만, 이 던전은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보스와 홀로 맞붙겠다니.
보상이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그야말로 오만이다.
곧 후회하고 인원들을 부르겠지.
캐런은 이것을 기회로 삼을 생각을 가졌다.
“만약 도움을 청하면 이번에는 우리도 끼어든다.”
“뭐? 왜? 우리가 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
“진짜로 싸우자는 게 아니야 짜샤. 싸우는 척 하다가 보상만 받자고. 코인, 먹어야 되지 않겠냐?”
“아~”
캐런의 묘수에 동료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들은 유세현이 도움을 청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크아아아. 이놈이!]
-서걱.
-쿵!
쓰러지는 거대한 육신.
유세현이 검이 공간을 가를 때마다 놈들은 몸을 좀처럼 가누지 못했다.
[크아아아! 무슨 이런 놈이!]
-촤자작.
-쨍끄랑.
그렇게 10마리 째.
검신이 깨진 것을 확인한 유세현은 곧바로 예비 검을 꺼내들었다.
-취지직.
이내, 마지막 놈이 지면으로 툭 쓰러질 때 캐런의 입은 그야말로 찢어질듯 벌어져 있었다.
‘어, 어떻게?’
지면을 가득 메우는 코인.
코인을 전부 흡수한 유세현의 표정에 비로소 만족감이 어렸다.
아니, 정확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났다.
지금까지 계속 긁어모은 덕분에 그의 마력은 마침내 B랭크를 넘은 상태였다.
유세현은 행여나 스킬코인 남아있을까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슈슛!
탈출용 문이 나타나자 생존자 일동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크들에게 밀리기 시작한 이후 실로 오랜만에 탐험한 던전이었다.
과연 무슨 보상을 줄 것인가.
“굉장히 좋은 걸 주겠죠?”
지금까지 이 던전에서 코인을 제외하고 나온 아이템은 정말 단 한 개도 없었다.
난이도를 고려하자면 실로 이상한 일.
대개 던전의 중간까지만 다다라도 검이나. 도끼, 기타 장비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그들은 최후에는 어떠한 형태로도 상당한 보상을 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1존에서는 다수의 레어 아이템이 보관되어 있는 보물창고가 열린 적도 있었다.
-트드득.
땅이 솟구치며 계단이 만들어진다.
기뻐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1인 보상.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쉬울 것이기에 아린이 먼저 선수를 쳤다.
“갔다 오게나. 자네가 없었으면 어차피 클리어 할 수 없었던 던전이었네.”
“......”
진실이었기에 사람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 되려 씁쓰름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들 또한 유세현에게 보상을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버텨온 케드리나의 팀은 그렇다 쳐도 그들은 2존부터 유세현에게 도움 받은 것이 너무도 많았기에.
“그럼...”
유세현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과연 무슨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제단 위에는 인주처럼 보이는 아이템 하나가 틀에 딱 맞게 꽂혀 있었다.
아이템명: 지배자의 성물(Ⅱ)
등급: 레전더리 [C Rank]
상세정보: 이전 이 섬의 지배자가 지니고 있던 세 가지의 성물중 하나입니다. 리-로버리 족의 특수특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일정장소에 세 가지를 전부 봉인하는 것으로 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그래, 그는 이런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리-로버리 종족이 이 던전에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역시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이다.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물을 잡아 뽑았다.
[지배자의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법칙이 일부 힘을 잃습니다.]
[제 2법칙. 스킬강탈의 효과가 2명으로 줄어듭니다.]
[스킬 강탈 적용자. [카취], [유세현]]
“어?”
곳곳에서 당혹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세현이 보상을 받는 순간과 너무도 타이밍이 정확히 일치한 덕.
“설마?”
“세현씨 방금 그거 세현씨가...”
터져 나오는 수많은 질문들.
캐런을 슬쩍 살핀 유세현이 성물에 대한 정보를 밝히자 생존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배자.
그런데 갑자기 생겨났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하나였기 때문.
이 섬에는 모종의 배후세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배후세력은...
“적어도 오크나 가루다 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케드리나가 의견을 내놓자 카텐이 반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 2법칙 때문이야.”
“제 2법칙?”
“어, 카텐 너야 이곳에 늦게 와서 잘 모르겠지만, 가르쿠라라는 놈은 가루다족 중에서 제법 유명한 놈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준 정보에 따르자면 카취는 오크종족이지. 물론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 했을 때 100%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스킬을 빼앗긴 시기상으로 봤을 때 99%정도 들어맞아.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아아!”
같은 종족의 스킬을 빼앗을 리가 없다.
케드리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카텐이 박수를 짝 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자면 절대자는 제 1법칙이나 제 3법칙이 적용이 안 되지 않을까 해.”
“확실히...”
전부 일리 있는 말.
유세현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법칙에 속박 되서는 지배자란 말이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치면 도대체 어느 종족이? 오크나 가루다 빼고는 다른 종족을 본적이 없다며?”
“...하긴 것도 그렇긴 한데...”
더 이상은 추측 불가능.
그러나 유세현은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이로서 목표는 확실해졌으므로.
‘2번 신물을 떼어내서인지 2법칙이 약해졌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분명 2가지의 성물이 보완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머지도 전부 떼어내면 된다.
지배자는 아마 그전에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자신을 막기 위해서.
‘앞으로 두 곳.’
두 곳을 클리어 하는 순간.
법칙에서 완전히 풀려나는 순간.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 * *
[어떻게 그곳을!]
알림창을 확인한 데오펠에게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루다족을 제외하고는 찾기 힘든 입구.
행여나 잡졸들이 허튼짓을 할 수도 있기에 오크들로 하여금 감시하게 하고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리고 오크들에게 나눠준 관망경을 통해 살펴본 지금도 그것은 유효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 봉인된 장소를 발견했단 말인가?
생각할 틈은 없었다.
[데오펠님! 가르쿠라가 절벽을 되찾기 위해 움직일 것 같습니다!]
[막아라! 지금 두 종족이 또 충돌해서는 안 된다!]
[노, 놈은 이전에도 보았듯이 정신력이 상당합니다. 놈을 직접적으로 조종한다면 유적으로 들어간 정예들의 정신지배가 일부 풀릴 것입니다.]
[그래도 막아라!]
[예!]
데오펠의 그림자육신이 거칠게 요동쳤다.
차근차근 다 잘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 놈들에 의해 늪지대가 불탄 이후로 점점 꼬여만 간다.
카취란 놈도 아직 세뇌하지 못했는데.
그 순간, 데오펠의 뇌리 속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이번에도 인간이 저지를 짓이란 말인가?
인간에 대한 분노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인간, 인간, 인간!
씨를 말려버려도 성에 차지 않을 놈들!
[유적에 있는 정예 일부를 빼내라! 놈들을 추격하게 해!]
< 단서(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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