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99화 (199/612)

< 반격의 서막(1) >

-우수수.

꽃을 내려놓자 케드리나를 포함한 선배 격 인원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단순히 해독제를 구해왔기 때문이 아니었다.

새내기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보금자리는 유세현이 바깥으로 빠져 나간 이후 수십 km를 이동한 상태였다.

행여나 적에게 포획 당했을 유세현이 실토하는 것을 감안해서 취한 조치.

또한 이것이 지금까지 적들에게 이 장소가 들키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니 물론 이 남자도 못 찾아야 정상이건만.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어코 찾아왔다.

“너...어떻게 이곳에...탐지스킬로도 감지가 안 될 텐데...”

“버려진 마당에 제가 밝혀야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

케드리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꼬리를 끊으려 한 것은 그녀쪽이었으니까.

아마 유세현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자연스럽게 생존자 집단을 흡수했으리라.

“후...이것만 있으면...”

생존자들은 꽃을 나눠 가졌다.

상상도 못할 정도의 ,대량의 인원을 충원해야 될 오크들이 미리 모아놔 준 덕분에 한 명당 최소 수십 개 이상씩 돌아간다.

허나, 곧바로 사용하면 조금밖에 기간연장이 안 되기에 3시간 정도 남았을 때 사용할 예정.

바깥 상황을 대충 설명하자, 수염을 차분히 쓸어내린 아린이 입을 열었다.

“흠...그런 대규모 이동이라면...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유적 정도구먼...이제 어떻게 할 텐가?”

그 말에 같이 2존을 넘어온 생존자 일동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2존보다도 훨씬 암울한 형세.

지금 그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인간세력도, 물속에 숨어 떨고 있는 선배 격 생존자들도, 그 무엇도 아닌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이곳까지 이끌어준 유세현뿐이었다.

“우선은...”

스텟의 20%가량을 떨어트린 포이즌 클라우드의 효과를 제거해야한다.

이것이 첫 걸음.

유세현이 케드리나를 쳐다봤다.

“이 근처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포이즌 클라우드의 해독약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겠죠?”

“...알기야 알지. 하지만 그건 포기하는 게 좋아.”

포이즌 클라우드는 유세현이 떨어졌던 장소 말고도 섬 곳곳에 분포해 있는 반면, 해독약이 자라는 장소는 단 두 곳뿐이었다.

늪지대와 절벽의 위.

이 두 곳은 각 오크들과 가루다들이 지키고 있다.

“우리도 한때는 그곳을 탈환해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침투조를 보내보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군요.”

“그래, 가면 죽어. 네가 약을 구한 건 정말 운이 좋아서다. 이제 이해했나 보네.”

“그렇습니까.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케드리나씨.”

“뭔데?”

“케드리나씨는 이 섬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십니까?”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설마 놈들이 유적을 클리어 하여 다음 장소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건 아니시리라 믿습니다.”

이 세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 덩어리지만, 그럼에도 딱 하나 확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건 힘이 전부라는 것.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는 것.

더군다나 이곳은 절대자가 등장하면서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게 변형되었다.

과연, 그들이 지나가고도 유적이 제 기능을 할 것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닐 확률이 더 높다.

이건 불리함과 유리함을 뛰어넘어 무조건 승리해야하는 전쟁.

‘그리고 이런 난이도가 높아진 장소는...’

항상 좋은 보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 구름섬 7단계의 유적처럼.

튜토리얼때의 마왕성처럼.

어쩌면 지금까지 얻을 수 없었던 높은 등급의 방어구나 악세서리를 획득할 수 도 있는 일.

이강호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나 그냥 뒤따라가진 않는다.

모든 아이템들을 휩 쓸어가면서, 방해되는 종족을 죽이며 갈 것이다.

케드리나가 어깨가 한순간 부르르 떨렸다.

-저벅 저벅.

순식간에 다가온 케드리나가 유세현의 갑주 속을 손가락을 걸치더니 확 잡아당겼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좋게 좋게 말해 주니까 만만해보이지? 뭐? 믿습니다? 넌 너 스스로가 존나 강한 줄 알고 있는 모양인데...넌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2존에서 아무리 강해봤자 쓰레기라고. 직접 느끼게 해줘?”

반대편 손이 유세현의 목을 향한다.

가까운데다가 상당한 속도라, 반응하는 게 불가능해야 정상일 터지만.

-턱.

팔목을 덥석 낚아채자, 케드리나를 포함한 선배 격 인원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케드리나는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서도 최고 높은 힘을 지니고 있다.

괜히 이들을 이끄는 게 아닌 것.

그런데 그런 그녀가 옴짝달싹 못하다니.

잔뜩 구겨져있던 케드리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간다.

‘뭐, 뭐야? 왜...’

케드리나는 더욱 힘을 주었다.

결과는 요지부동.

‘무, 무슨 새내기가 이런 무지막지한 힘을...’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유세현은 힘이 풀리는 것을 느낀 뒤에야 팔을 놔주었다.

카텐이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대, 대체...”

“케드리나씨를 조롱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중히 말한 유세현이 몸을 돌리자 생존자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실로 대단한 믿음이었다.

아니, 직접 증명했다.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잠깐!”

“......”

유세현이 멈춰 서자 멈춰 섰다. 케드리나가 다가와 그의 갑주를 툭 쳤다.

죽일 것 같던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진중한 표정이었다.

“후...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

“지금부터 회의를 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그리고 어차피 너희 내가 없으면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잖아?”

“알겠습니다.”

확실히 자극하기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감정을 추스르고 그걸 캐치 해내다니.

‘지금까지 겉멋으로 리더를 한건 아니군.’

유세현은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 * *

늪지대의 외각.

3인 1개조로 경계를 서고 있던 오크들의 시선이 살짝 흔들리는 풀숲으로 향했다.

“취익. 가서 확인해보고와라.”

“알았다.”

대답한 오크 한 마리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행동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에야 인간들이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감행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씨가 마른데다가 이 앞쪽에도 경계조가 있기 때문.

그러니 대개 이런 경우는.

오크의 우악스러운 손이 풀숲을 헤치자.

-츄숙!

작은 동물 한마리가 튀어나온다.

쫑긋한 귀와 빨간빛의 눈.

구워먹으면 그렇게 맛이 일품이라는...

“토끼!”

매서운 속도로 낚아챈 오크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취취취! 이따 돌아가면 구워먹자.”

“취취, 좋지! 그런데 왜 이런 곳에 토끼가?”

“몰라. 아무렴 어때?”

“하긴...”

시선이 자연스레 분산 된다.

사냥에 성공한 동물들이 최고로 방심하는 시간.

풀숲이 또다시 살짝 흔들렸다.

“취?”

번뜩 거리는 섬광.

자신도 모르게 뒤 돌아본 오크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수컷 인간이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이곳까지?’

허나, 생각을 마쳤을 때의 놈들은 동족에게 이를 알릴 수도, 싸울 수도 없는 몸이 되어있었다.

“대, 대단해...”

지켜보고 있던 케드리나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언제 봐도 놀랄 만큼의 빠른 속도.

저게 스텟이 하락한자의 능력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그녀가 사실 진짜로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이 남자...역시 적이 어디 있는 지를 전부 파악하고 있어...’

은신처에서 나온 이후, 일행들은 북상을 하며 마수를 퇴치해 나갔다.

스킬의 사용이 잦았기에 적에게 걸리면 어쩌나 항상 신경 쓰였지만, 유세현은 괜찮다는 말만 한번 툭 내뱉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정말 들키지 않고, 스텟을 올리며 이곳까지 도달했다.

이는 절대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러니 생존자들이 이 남자를 믿을 수밖에.

“이거로군요.”

유세현의 말에 인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해독초.

“오...힘이...”

떨어진 스텟이 돌아온다.

배낭에 해독초를 우겨 담는 인원들을 살핀 유세현이 넌지시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오크를 전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카취의 수하, 타뤼퀼은 오늘도 평온한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늪지대 관리라는 임무를 명받아 전투조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투사인 내가 이런 거나 관리하고 있어야 되다니!”

그는 몸이 근질거렸다.

인간이던 가루다던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때.

그가 있는 천막 속으로 오크 한 마리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온몸을 가득 적신 식은땀.

“타, 타뤼퀼님!”

“뭐야? 뭔데 이렇게 허겁지겁...”

“이, 인간이! 인간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타뤼퀼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쳐들어온 게 짜증나는 게 아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란 말인가.

“경계지대 쪽이냐? 병력을 보내 막으면...”

“그게 아닙니다!”

말이 또 잘렸다.

확 열이 오른 타뤼퀼의 도끼를 집어 들려는 순간, 연이어 들려온 말이 그의 심경을 자극한다.

“노, 놈들은 버, 벌써 이 근처까지 도달했습니다.”

“뭣이? 베크르와 나머지 투사들은 뭘 하고...”

“베, 베르크 투사께서는 전사하셨습니다!”

“뭐라고?”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가장 강한 수하가 죽어?

“이, 일단 이곳에서 피하셔야 됩니다. 지금도 적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슈슈슉!

-콰과광!

폭음이 울리며 불의 비가 천막을 뚫고 쇄도한다.

생각보다도 어마어마한 열기.

타뤼퀼이 잽싸게 도끼를 들어 옆면으로 몸을 방어한 반면 부하는 전부 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푹.

-화르륵.

“크아아악!”

전령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한번 붙은 불길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몰랐다.

새까맣게 타 틀어가는 피부.

“인간주제에 감히!”

타뤼퀼이 거칠게 천막의 입구를 젖혔다.

바깥은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기.

‘젠장. 진짜 많긴 많군.’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정말 수많은 오크의 군세가 포진해 있다. 때문에 침입자는 대개 그 군세를 넘지 못하고 죽는다.

덕분에 침입이 줄어든 지금, 이곳에 배치된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몸을 빼야겠는데?’

타뤼퀼의 노련한 눈동자가 제일 인원이 없는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저기군.’

마력을 모은 그가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자 마력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날아간다.

닿은 상대를 그대로 잘라 죽이는 [거신의 일격].

“헉!”

생존자들은 황급히 몸을 던졌지만, 딛고있는 곳 대부분 늪지대였기에 동작이 상당히 굼떴다.

-쾅!

“크악!”

타뤼퀼은 비명이 울린 장소를 향해 질주했다.

이길 수는 없어도 도망치는 것은 역시나 별로 어렵지 않다.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허나, 그 순간.

-쉬이익.

바로 눈앞에서 무엇인가가 번뜩였다.

“어?”

자연스레 멈춰서는 몸.

“네...네놈은 무슨...”

고개를 돌려 유세현을 쳐다본 그의 세상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 * *

“총 76명이 당했습니다.”

피해보고를 마친 카텐이 쓴 입맛을 다셨다.

적은 피해였지만, 보충이 없기에 조금이라도 많은 인원이 살아남아야 한다.

물론, 유세현이나 아린, 그리고 선배격 인원들이 없었다면 더 죽었을 테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본다는 건 씁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곳을 굳이 칠 필요가 있었을까요? 당신의 능력으로 적당한 마수를 찾아 잡는 게 좀 더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어느 샌가 부터 존댓말을 사용하게 된 케드리나의 말에 유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허나, 그는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인간 중에서도 아직 건재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검을 지니고 있을 오크 장군 놈에게.

< 반격의 서막(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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