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98화 (198/612)

< 절대자의 섬(2) >

대략적인 상황은 2존과 거의 동일했다.

압도적인 병력 수와 힘의 차이.

덕분에 사람들은 죽어갔고, 생존자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흠, 그럼 이곳이 파이널 존이라는 뜻은?”

“안 그래도 지금부터 말하려고 했었다.”

이곳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4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이트가 섬 중앙에 위치한 평범한 3존이었다.

그러나 그 지배자라는 것이 섬에 갑자기 군림하고 나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상한 법칙이 생기고 4존으로 이어진 게이트는 사라졌으며, 동시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하게 강한 마수들이 섬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

케드리나는 이 같은 현상을 제약이 해제된 것이라 설명했다.

아린이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흠...그러니까 이곳은...”

앞으로 나아갈 길 모든 것이 합쳐져 있는 장소.

“2존의 제1법칙도 여기서 파생된 겐가?”

“그렇다. 우리 때까지만 해도 2존에 그런 법칙은 없었지.”

이는 2존의 생존자들이 진즉 부터 이곳에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뜻.

사색이 된 생존자 한 명이 외쳤다.

“그, 그럼 설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가 전부라는 건가요? 부, 분명 몇 주 전쯤에 다수의 인원이 이곳으로 이동해 왔을 텐데...”

“우리는 몰라. 하지만 전부 죽진 않았을 거라 본다.”

이 섬은 무척 방대하다.

때문에 다른 장소에도 생존자들은 분명 존재했다.

물론, 연락은 두절되었지만.

유세현은 침착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첫째, 이곳은 본디 3존으로서 인간세력도 그럭저럭 영향력이 있었다.

둘째,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지배자가 생겼고 판도가 확 바뀌었다.

여기서 유세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2존은 코인으로 인한 파워밸런스의 붕괴 때문에 인간이 밀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의 말만 들어보자면, 이곳에서 인간이 밀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전의 일이었다.

‘이곳에서도 뭔가 일이 있었군.’

유세현은 일단 제일 중요한 것부터 질문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조건은 알고 있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짐작하고 있는 바는 있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마냥 밀리진 않았으니까 손 놓고 있진 않았지.”

“뭐죠?”

“동서남북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4개의 유적이 갑자기 솟아났어. 그곳을 전부 클리어하면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

“아직 통과한 사람은 없나보군요.”

“맞아. 이 수 개월 동안 오크, 가루다...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지.”

“흠...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만...왜 이렇게 밀리게 된 거죠?”

“...그건...”

케드리나의 말이 뚝 끊겼다.

지긋이 터져 나오는 한숨.

“...우리도 모른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밖에.”

“...무슨 말씀이시죠?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흠...자세히 말해보라고 해도...”

인간들이 가는 데마다 강한 마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더 나아가 오크와 가루다들의 습격까지.

전략을 잘못 짜거나 한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다. 그랬다면 이곳까지 도달하지도 못했겠지.

그러니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배신자 정도인데.

비등비등한 상황에서 배신을 할 리가 없다.

“아무튼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이정도 뿐이다.”

“확실히...그럼 추후 계획은 있으십니까?”

“...계획이라...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지.”

굉장히 추상적인 답변이었다.

“아무튼, 이 섬도 가라앉고 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벌써 반절이 가라앉았지.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도 원래는 해변가였었다.”

케드리나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박수를 크게 쳤다.

-짝.

“일단은 여기까지 하겠다. 이 섬에 도착한지 3시간이 슬슬 지나가고 있을 테니 너희들에게도 이제 제 3법칙이...”

그녀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알림창이 나타났다.

[제 3법칙, 맹독이 적용되셨습니다.]

[72시간 마다 해독제를 섭취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릅니다.]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호오...그 표정을 보니 때마침 법칙이 적용 되었나 보군. 그래, 보고 있는 그대로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72시간 이내에 해독제를 섭취하지 못하면 죽어.”

“......”

“하지만 너희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야. 해독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지.”

공짜로 제공 해주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몇몇이 소리를 질렀다.

“그, 그래서 어, 어디에 있지?”

“당연히 이 절벽의 위다. 상세히 말해줘 봤자 너희들은 어딘지 모를 것 같다만...”

“......”

“그런 의미에서 유세현...분명 이 집단의 리더라고 했었지. 잠시 따라와라. 제안이 있다.”

유세현은 슬쩍 아린을 쳐다봤다.

같이 동행하자는 의미.

케드리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기야, 수 개월차.

이곳에서 살아남은 케드리나는 상당히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추정 마력 C랭크 90%.

막 2존에서 넘어온 새내기들을 의식할 짬밥은 아닌 것이다.

그녀는 대충 바위에 걸터앉기 무섭게 본론을 꺼냈다.

“약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대신 통솔권을 내게 넘겨라.”

“흠...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

“간단해. 내가 통솔해야 조금이라도 더 생존확률이 더 올라가니까. 아니면 너희들끼리 해독약을 찾아볼 테냐? 단언하건데 발견하기도 전에 몰살당할 거다. 네가 정말 알림창에 뜬 그 ‘유세현’이라고 할지언정 네 스킬이 좋은

거지 네가 강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녀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유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인원들을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독이 될 것인지.

언데드레이즈와 키메라제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흔쾌히 넘겼겠지만 지금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은 보류.

“그 제안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는지 케드리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허...진심인가? 네 같잖은 욕심 때문에 인원들을 기어코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겠다는 건가?”

“불구덩이라...그렇게 따지자면 케드리나씨가 욕심을 버리고 해독약의 위치를 알려주시면 됩니다만?”

“......”

“일단 약은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제가 수락을 안 했다고 해서 이곳에서 나가라고 하시진 않겠죠?”

“......”

데리고 온 것은 그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유세현은 그대로 몸을 획 돌려 기다리고 있는 생존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린이 툭 물었다.

“곧바로 해독약을 구하러 갈 텐가?”

“예.”

“바로 인원들을 모음세.”

“아뇨,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는 영웅 놀이를 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단지 나가는 김에 정찰도 겸할 생각인데 어정쩡한 이들이 끼어있으면 발각되기가 쉽기 때문.

“흠...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만...그래도 자네에게 너무 모든 것을 맡기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먼.”

“아뇨, 그런 생각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영감님께서는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놈들에 대한, 보다 더 상세한 정보를 얻어놔 주셨으면 합니다.”

“흠...알겠네.”

유세현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떻게 나가야되죠?”

케드리나에게 묻자 그녀를 포함한 사람들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지, 지금 단신으로 해독약을 찾으러 가겠다는 건가?”

“예.”

“...괜히 객기부리다가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길. 알려주시죠.”

유세현이 단호하게 대응하자, 케드리나가 품에서 자그만 한 구슬을 꺼냈다.

이 섬에서만 통용되는, 이 장소를 만들어준 아이템.

-슈슈슉.

물살이 일어나 유세현의 몸을 감쌌다.

-파바밧!

단숨에 솟구치는 몸.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적벽위에 착지한 유세현은 곧바로 마력의 흐름을 살폈다.

동서남북.

자신이 있는 장소를 서쪽이라고 기준점을 두었을 때, 일정범위 이상으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는 틀림없이 구간이 나눠져 있다는 뜻.

상당히 강한 마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B랭크 이상.

그는 자세를 낮춘 뒤 풀숲으로 숨어들었다.

* * *

한줄기의 빛조차 존재하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리자 꿈틀거리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내부로 들어오는 거구의 두 생명체.

한 생명체는 핏빛처럼 붉은 4장의 날개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또 다른 생명체는 날개는 없었지만 아랫니가 위엄 있게 솟아있었다.

가루다 족을 이끌고 있는 수장. 가리움.

오크족의 수장, 퀴르취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수장 두 명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정성이 넘치는 말투였다.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퀴르취프. 이번에 마지막으로 넘어 온 인간 놈들은 어찌 됐지?]

“안타깝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무능한 놈!]

“...죄송합니다.”

퀴르취프가 고개를 숙였다.

[저번에 말했던 잔당의 처리는 어찌되었지?]

“찾아내어 전부 몰살 시켰습니다.”

[크크크. 그래, 그건 잘했다. 인간 놈들은 전부 죽여야지. 자 그럼 진행상황을 들어보도록 할까?]

그 말에 가리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부로 침묵의 유적 공략이 끝났습니다.”

“저희도 탐욕의 신전 공략을 끝마쳤습니다.”

[크크, 남은 건 동쪽과 서쪽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두 진형이 충돌하지 않게 조심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돌아가 봐라.]

“예.”

-끼이익.

가리움과 퀴르취프가 나가기 무섭게 닫히는 문.

쇠를 긁는 것과도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가 공간에 메아리친다.

[크크크크. 이제 정말 곧이다 곧! 복수의 날이 머지않았다!]

[그래 맞아...증폭기만 손에 넣는다면...]

말투에서는 증오가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돌아간다면...이강호...그놈, 그놈만큼은 반드시 내가 직접 죽인다.]

[웃기지 마라. 그놈은 내가 죽인다.]

그림자가 얽히고설킨다.

그 모습은 마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기까지 해라.]

그 무엇보다도 거대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는 수많은 그림자.

말이 이어졌다.

[일단은 두 종족의 완전장악이 먼저다. 정신지배에 힘쓰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림자들이 복종하듯 한곳에 몰려들었다.

* * *

‘이거로군.’

유세현은 피로 얼룩진 흰 꽃을 땄다.

해독약이라는 정보가 나타난다.

오크들이 열심히 채취하고 있어 죽이고 갈취 한 것인데 역시는 역시였다.

유세현은 죽어 나뒹굴고 있는 오크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무수히 많은 꽃을 딴 반면, 담을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이 말은 즉.

‘있다.’

판도라에서도 좀처럼 구하기 힘든 레어 아이템.

압축 포켓.

유세현은 백여 마리의 시체를 뒤져 총 3개의 압축포켓을 얻을 수 있었다. 자잘한 코인은 그야말로 덤.

꽃을 씹어 넘기는 것으로 시간이 갱신되었다.

‘완전한 해독약 같은 건 없는 건가.’

뭐 수백 개를 들고 다니면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유세현은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바깥으로 나온지 벌써 하루.

새벽 사이에 상당한 인원이 서쪽으로 이동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열을 맞춰 특정장소로 이동하는 느낌.

마음 같아서는 지금 가보고 싶지만.

‘꽤나 정예군.’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상대는 안 되겠지만, 암흑투기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인해전술을 펼치며 물고 늘어진다면 정말 귀찮아질 것이다.

유세현은 몸을 돌렸다.

< 절대자의 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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