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존(2) >
어느 정도 사전 설명을 마친 조장, 렘 카텐이 주위 경계를 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물었다.
“기척은?”
“아직까지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후...”
안도와 긴장감이 반반 섞인 한숨이 터져 나온다.
유세현이 나섰다고 하나 인간측도 50명 정도로 절반의 인원이 죽은 상태였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더 습격이 이어진다면 마지막까지 서있을 수 있는 인물은 유세현 한 사람 밖에 없으리라.
아니, 이번 추격대는 그나마 약한 편이어서 망정이지 강자들이 오면 그도 당할지도.
“저...이제 와서 정말 송구합니다만 서, 성함이...”
“유세현입니다.”
“...?!”
풀숲에서 조원들과 같이 앞에서 망을 보고 있던 최진철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설마 한국인?”
“예.”
“오오!! 설마 같은 국적이신 겁니까!”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텐이 잔뜩 화색 했다.
“저...유세현님.”
“같은 생존자끼리 님자를 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그럼 유세현씨...유세현씨의 말에 따르자면 이곳에 처음 떨어졌다는 건데...”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우선 저희와 같이 이동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이제 이곳에 남아있는 인간진형은 하나뿐입니다. 제 이전 행동 때문에 행여나 못 미더우실 수도 있고, 사실 이곳에서 궁금하신 것을 전부 설명드릴 수도 있으나 놈들이 다시 오면 저희 목숨이...그래서 나머지는 가
면서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는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겨져 있었다.
유세현은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으므로 수락했다.
“미,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은밀기동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 시간.
안정권에 들어왔는지 렘 카텐의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섬은 이제 막바지입니다. 이제 남은 세 개의 관문을 어떻게든 뚫고 다른 존으로 이동을 해야 되는데...”
관문을 뚫기는커녕, 식량 구하기도 녹록치 않는 것이 현 상황이었다.
“큭! 배신자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작개지역, 주 이동 경로 등이 전부 발각되었다.
주위를 살핀 카텐이 툭 말했다.
“아! 이제 곧 입니다.”
그 순간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유세현은 많은 수의 인원들이 포위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 같이 병장기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광역기술을 퍼부을 느낌.
“정지! 움직이면 죽인다. 하나!”
“열!”
합구호로서 서로 외친 수의 합이 미리 정해둔 숫자와 일치해야 되는 암구호의 일종이었다.
“소속 부대와 조를 밝혀라.”
“1-10A의 팀장 렘 카텐. 너 씨...내 얼굴 몰라?”
“흠...알아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FM대로 해야지. 우리라고 하고 싶어서 하겠냐?”
“후...하긴...”
카텐이 중얼거리자 나무위에서 한 여성이 내려왔다.
“그래서? 수확은? 너희 팀이 때마침 그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
카텐이 침묵으로 답하자, 인상이 와락 구겨진 여성의 손이 이마를 짚었다.
“후...그럼 또 오크놈들에게 넘어간 거야? 아...씨발...진짜 좃됐네. 아...이젠 진짜 어떡하냐. 아...씨발! 씨발! 씨바아알!”
“...그만 좀 발광해라. 내가 제일 좃같으니까.”
“하아...”
둘은 한동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내 호흡을 가다듬은 여성이 그제야 인원을 쓰윽 훑었다.
“...오크랑 직접 맞부딪쳤나 보네...몇 명 당한 거냐?”
“47명.”
“...그래도 이정도면 많이 살려왔네...고생 많았다. 이만 들어가라.”
여자는 길을 터주었다. 카텐은 스쳐지나가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리 짜증나도 희망은 버리지 마라.”
카텐을 따라 내부에 들어서자 길 곳곳에 거지꼴이 되어 쪼그려 앉아있는 무수히 많은 생존자들이 눈에 띄었다.
싸움을 강요받던 구름섬도, 마수들의 위협이 있는 아르카드제국 외곽 마을도 이것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집은커녕 천막 쪼가리조차도 없다니.
‘심각하군.’
유세현은 무작정 카텐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이곳에 있는 유일한 집, 오두막이었다.
설마 이런 곳이...
“저는 이건에 대해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약 10분 정도 걸릴 것입니다. 아! 그리고 신분의 증명 때문에 직접 봬야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근처에서 대기해 주시다가 행여나 제가 부르면 안으로 들어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죠.”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텐이 내부로 들어갔다. 유세현은 주위를 살폈다.
흡사 모든 것을 잃은 패잔병의 모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이 사람들은 대체 어쩌다 이런 곳에 떨어지게 된 거지?’
판도라로 처음 진입한 모든 인간들은 무조건 아르카드 제국 외부에 떨어진다.
허나, 이곳은 아무리 봐도 기존에 알고 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무림인들처럼 강해 자발적으로 타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한 눈에 봐도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지독한 모순.
유세현은 일단 생각을 접고 지친 육신을 달랬다.
판단은 모든 것을 들었을 때 한다.
* * *
“...그러니깐 실패했다는 게로구나.”
“예...죄송합니다.”
“후우...아니다. 넌 최선을 다했다. 이만 돌아가서 쉬거라.”
그리 말하는 인간측의 지도자는 흰 백발이 무척 풍성한 노인이었다.
카텐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습니다.”
“수확?”
“예, 상당히 강한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 블러드 스모크에서 발견했는데 오크전사들은 아무런 스킬도 없이 순식간에 쓸어버렸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저희는 전멸 했을 것입니다.”
“흠...스킬도 없이 말이냐? 그런 강자들은 전부 다음 존으로 넘어갔을 터인데...그래서 그자는 지금 어디로 갔느냐?”
“어디로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밖에 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의 안색이 굳었다.
“...이곳에 데려왔다는 게냐? 성급했구나. 만약 그가 첩자라면...”
“오크들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첩자일리가...”
“일부러 연기한 것일 수도 있다.”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오크들은 싸우면 싸웠지 자기 종족을 희생하는 놈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건 단언할 수 없는 거란다. 지금 놈들이 하고 있는 짓을 잊은 게냐?”
강한 오크전사 일부가 언제 등장 할지 모르는 웜홀을 대비해 아직까지 2존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배반자를 만드는 간악함까지.
“아무튼 이렇게 되면 무조건 직접 만나봐야겠구나. 불러 주거라.”
“...죄송합니다.”
카텐은 들어올 때와 달리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눈앞에 있는 지도자의 말이 무척 타당했기 때문.
살아남은 것이 기뻐서 너무 성급했다.
이런 시기에 2존에 새로운 인원이 투입 될 리가 없는데.
그러고 보면 그 자는 이상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곳은 시작점도 아닌데...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블러드 스모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거지?’
이미 엎질러진 물.
카텐은 일단 유세현을 방에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자 노인의 눈동자가 묘하게 바뀌었다.
대놓고 경계심 보이는 그런 눈빛은 아니었다.
되려...
“자네가 카텐을 도와줬다고 들었네만.”
“그렇습니다.”
“고맙네. 나는 일단 이 집단을 이끌고 있는 아린 하이워커라고 하네.”
“......”
유세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린 하이워커.
묘하게 익숙한 것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았다.
‘아, 맞아...이벨린의 스승도 똑같은 이름이었지.’
직접 본적도 있었다.
물론 진짜세계가 아닌데다가 어릴 때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가 맞나?’
유세현은 적당한때에 떠보기로 마음먹은 뒤 입을 열었다.
“유세현이라고 합니다.”
“유...세현 말인가?”
그런데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노인이 유세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갑작스레 쓴웃음를 내뱉은 아린이 중얼거렸다.
“아니...그럴 리가 없나...”
“......”
“허허,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네. 죽을 나이가 다되어서 그런지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랬네.”
스텟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이 세계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사태가 무척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허허, 이 바깥만 봐도 대충 예상이 가능하지 않나.”
“확실히...저는 아직 관문이나 법칙에 대한 것은 상세하게 모릅니다. 괜찮으시다면 자세하고 정확히 설명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알겠네. 별로 어려운건 아니지. 어디까지 말한지 나는 모르니, 카텐이 마저 이야기 해주게나. 밖은 마땅히 이야기할 장소가 없으니 이곳에서 하게. 이 늙은이는 잠자코 듣고만 있겠네.”
관문은 마수사냥, 특정 증표 모으기 등등 악독함을 자랑했다.
더군다나 이제 섬이 침몰할 때까지 남은 기일은 이주가 채 안 된다.
“관문의 목표는 그 지역에 도착하면 자동적으로 알려준다네.”
지켜보고 있던 아린이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사적인 것을 제외한 모든 이야기가 비로소 끝이 났다.
유세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적인 대화 따위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낑낑 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4관문까지는 통과한 상태였으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
“어딜 가려는 겐가?”
“지금부터 곧바로 관문을 깨려합니다.”
“...혼자서 말인가?”
“예.”
“너무 무모한 짓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4개를 전부 클리어하면 다시 한 번 찾아오도록 하죠.”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두막을 나섰다.
카텐이 조심스레 아린을 향해 물었다.
“어떻습니까? 첩자 같습니까?”
“...나도 잘 모르겠네.”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함치고는 내뱉는 말이 너무 당당하다.
물론, 그가 광대 급의 연기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유세현이라...’
그 이름 때문일까? 자꾸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때, 주먹을 다부지게 쥔 카텐이 말했다.
“제가 유세현씨를 따라가겠습니다.”
“...배반자라면 이번에야말로 죽을 수가 있네.”
“...그랬더라면 어차피 저는 동굴에서 죽은 것과도 다름이 없습니다. 통신 스크롤을 더 주십쇼. 새벽마다 보고하겠습니다. 만약 하루라도 보고가 가지 않는다면...”
“...알겠네. 그리고 미안하네.”
“아린님께서 미안할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모두가 2존을 버리고 떠날 때 저희를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카텐은 황급히 뛰어 나가 이제 막 검문소를 통과 하려는 유세현을 붙잡았다.
“유, 유세현씨! 제,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아뇨,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신 답례는 해야죠. 그리고 길도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카텐은 당당히 앞장섰다.
그가 배반자가 아니길 빌면서. 그리고 제발 배반자나 오크와 조우하지 않기를 빌면서.
그는 이때까지만 전혀 몰랐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가장 생존이 높은 길 임을.
* * *
“유, 유세현씨. 그쪽은 오크들이 많이 분포해 있는 곳이라니까요! 두 시간 정도 더 걸려도 이쪽으로 돌아가시는 게 안전...”
“아뇨. 저는 이쪽으로 갑니다.”
“유, 유세현씨!”
카텐은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이 꼴리는 데로 가는 남자.
유세현은 그에게 있어서 지독한 독불장군이었다. 아니, 독불장군도 목숨이 위험하다며 말을 들을 터인데 이 자는 그런 것이 아예 없다.
더군다나 오크들에게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한 거침없는 행보.
심장이 180비트로 뛴다.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
‘나...여기서 죽는 건가?’
카텐은 책임이고 나발이고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눌렀다.
허나.
사원에 도착한 카텐이 눈을 깜빡였다.
‘어? 무사히 도착했잖아?’
한 마리도 조우하지 않았다는 게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다.
‘신이시여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아니, 아니지. 그놈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건데.’
카텐은 잡념을 떨치고 유세현의 근처로 달려갔다.
6개의 기둥에 불이 그새 전부 켜져 있다.
‘미, 미친. 저걸 전부 누르다니!’
아무리 첫 번째 관문이라지만 저렇게 대책 없이 행동하다니!
혼자 왔으면 한 개 누르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크아아아!
소환된 늑대형 보스몬스터가 울부짖었다.
‘젠장할! 빨리 못 잡으면 놈들이 올 텐데!’
가세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카텐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정말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스스스
고기조각이 되어 와르르 무너지는 보스의 육신.
카텐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2존(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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