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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93화 (193/612)

< 2존(3) >

“화, 환각능력인가? 아니, 이놈에게 그런 능력은 없을 텐데...”

카텐은 황급히 유세현의 곁으로 뛰어갔다.

역시나 환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보스는 확실하게 죽어 있었다.

무표정하게 코인의 흡수를 시작하는 유세현.

허공에 손짓하던 유세현이 별안간 서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필히 2차 관문의 정보를 받은 것이리라.

카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 전의 것으로 그가 여태껏 관문을 클리어하지 않은 자라는 것은 잘 알았다.

관문은 한번 클리어 한 사람에게는 반응하지 않으니까.

이것을 보고한다면 이젠 아린도 이 남자를 어느 정도 믿어주겠지만...

‘젠장, 나는 진짜 안중에도 없군...’

뭔가 아쉽다.

이런 성격이여서는 전투를 제외한 다른 쪽으로 얼마나 지독한 고문관이 될지 모른다.

또한 그는 조만간 유세현이 크게 다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아무리 오크 100마리를 당해낸 강자라지만, 수백 명이 달라붙어야 하는 것이 관문이라는 빌어먹을 것이었으니까.

무척이나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직 의심이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니다.

‘후...가능성은 낮지만 일부러 코인을 몰아준 것일 수 도 있으니까...’

“가, 같이 가요!”

카텐은 황급히 유세현의 뒤를 따랐다.

* * *

다 부서져가는 건물의 내부.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는 고풍스러운 문양은 이곳에도 한때는 찬란했던 때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다닥.

막 뛰어 들어온 오크 다수가 높디높은 계단의 위, 옥좌의 자리에 앉아 있는 오크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취익! 탐색대 이제 막 복귀했습니다.”

“그래! 발견했나?”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인간이 가져갔다는 것이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이!”

-쿵!

부하의 보고에 오크 장군, 키르갈의 주먹이 옥좌의 손잡이를 강타했다.

단번에 균열이 일어나며 파편조각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곳은 어차피 버려질 장소.

키르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회수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투쟁하고 계실 카취님을 뵐 수가 없다. 제콸! 인간들이 숨은 장소는 알아냈나?”

“섬의 전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만 어찌나 잘 숨었는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흠...”

키르갈이 잠시 턱을 짚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잠시 시켜보고 있던 탐색대장이 잽싸게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처럼 5관문 주위에서 기다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나타날 것입니다.”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에게는 늙은이가 있다. 만약 이번에 웜홀에서 떨어진 것이 그 검과 비슷한 것이라면 양상은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아...그럼...”

“찾아내서 먼저 선수를 친다. 제콸! 인간 협력자는 얼마나 남아 있지?”

“1500명 정도입니다.”

“계속 아우성 치고 있나?”

“예,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다음 존으로 이동시켜 주지 않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래, 너무 오래 부려 먹긴 했지. 놈들 중 실적이 좋은 500명을 뽑아 다음 존으로 이동시켜라. 나머지 1000명에게는 그것을 보게 만들고.”

“예?”

제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키르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리고는 500명을 보낸 뒤 나머지 1000명에게 말해라. 남은 인간세력의 본진을 알아내는 자. 혹은 좋은 정보를 가져온 이들부터 차례대로 보내주겠다고.”

“허...전 키르갈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잘 이해가 안갑니다. 어차피 전부 넘어가게 될 텐데 제대로나 하겠습니까?”

“췻췻췻! 제콸! 이래서 네가 그 실력에 아직도 부관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말대로 해라. 분명 혈안이 돼서 따를 것이다. 불안함을 등에 메고 싶어 하지 않은 존재. 그게 내가 지금까지 본 인간이었으니까.”

“흐음...키르갈께서 그리 말씀하시니...알겠습니다.”

제콸은 명을 따르기 위해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 * *

-파앗!

거칠게 터져 나오는 빛과 함께 500명의 인원들이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타 존으로 이동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제콸의 이야기를 듣는 배반자들의 눈이 번뜩 빛났다.

“제보를 하면 최대 몇 명까지 이동시켜 줄 건가요?”

“본진만 알아낸다면 전부 이동 시켜줄 것이다. 그 이외에 포획을 해오면 개인적으로 공로를 인정해 이동시켜주도록 하지.”

“호오...그럼 몇 명 잡아야...”

“1명에 2명.”

“음...정말 죄송합니다만 잘 이해가 안가서 그런데 1명을 사로잡으면 2명을 이동시켜주겠다는 뜻 맞습니까?”

“맞다. 단, 죽이면 안 된다.”

“후후...알겠습니다. 포획하거나 정보를 알아내면 즉시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인간.”

말을 마친 제콸은 신기하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정말로 키르갈의 말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열띤 모습을 보인다.

제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

마침내 제콸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새롭게 리더의 자리에 오른 3명이 한곳에 모였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동양인 대표 이성철.

“이제 얼마 기한도 안 남았으니 툭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행여나 소수로 이동할 생각은 말죠.”

“흠...본진을 알아내자는 겁니까?”

“그렇죠. 솔직히 이제 이곳에는 저희 아니면 그놈들밖에 없어요. 한 놈...한 놈만 붙잡으면 본진을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하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모두 동의하시는 걸로 알아도 되겠죠?”

“...그러도록 하죠.”

시간이 없는 만큼, 진행은 착착 이루어졌다.

이성철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행여나 홀로 이동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우리가 다음 존으로 이동했을 때 반드시 찾아서 죽일 겁니다.”

“크...그거 좋네요.”

그들은 곧바로 구역을 나눴다.

그리고는 최근에 얻은 정보를 빠르게 종합해 나갔다.

“저...이런 것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뭐죠? 괜찮으니 말해보세요.”

“어제는 저희 팀이 식량 확보 담당이었거든요. 그래서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서 1관문 근처로 갔었는데...”

“예, 그런데요?”

“그게...보스가 죽어 있었어요.”

“예?”

“보스가 죽어있었다고요.”

“......”

보스가 죽어있다. 이것은 누군가가 관문을 클리어 했다는 뜻.

아직까지 1관문을 클리어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창고에 내일 먹을 고기가 비축 되어 있어요. 보시면 아실 거예요.”

“호오...”

이성철의 입꼬리가 사르륵 올라간다.

그 무엇보다도 완벽한 증거였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2존으로 갔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죠?”

“후후. 좋은 제보 감사합니다.”

이성철의 일행을 황급히 인원을 모아 2존으로 갔다.

허나, 2존에는 이미 지나간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 *

유세현과 동행 한지 고작 이틀.

렘 카텐은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말이 안될 정도로 너무 강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강함에 대한 수식어 뿐.

‘수, 수준. 아니 차원이 다르다.’

칼질 한방에 모든 것이 끝.

그를 보고 있자면 이 곤욕스러운 세계가 너무도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게임으로 치자면 만렙이 저렙존에 들어와서 활개를 치는 느낌.

덕분에 유세현은 고작 이틀도 지나지 않아 3관문까지 클리어 한 상태였다.

유세현이 또다시 이동하기 시작하자 카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환희가 차오른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그만 있다면 이 빌어먹을 2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어둠속에서 비치는 한줄기의 희망.

처음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던 저 행보도 이제는 한없이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둘은 4관문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 * *

-스르륵.

풀숲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이성철은 자세를 더욱 낮췄다.

‘온 건가?’

빼꼼 고개를 내민 그의 시선으로 두 명이 눈에 비친다.

비릿하게 맺히는 미소.

수가 적은 것을 보니 탐색을 나온 정찰대처럼 보였다.

‘크크크.’

속으로 웃음을 내뱉은 그가 수색을 개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사삭!

나무 위를 이동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이성철은 최소 수백 명이 올 것을 예상해 오크 1천여 마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본대를 발견하면 오크 놈들이 나설 것이다.

물론, 그럴시 자신들의 공적이 아닌지라 존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생포한 놈들로 본진을 알아낸다면 이야기는 삽시간에 뒤바뀐다.

‘자...나와라 본대...’

허나, 주위를 아무리 샅샅이 수색해도 본대가 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쳇, 설마 꼬리를 끊은 건가? 이렇게 되면...’

“오크님, 저희가 두 놈을 사로잡겠습니다. 오크님께서는 도망친 것 같은 본대를 뒤쫓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취취취! 네놈의 생각이 뻔히 보이는구나. 하지만 뭐 상관없지. 잘해봐라. 전군! 이동!”

-투두두두!

대군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이동을 개시했다.

유세현의 옆에 있던 카텐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잽싸게 튀어나온 이성철의 병력들이 개미새끼하나 통과할 틈 없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그 수가 무려 300명.

긴장으로 인해 카텐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젠장...’

유세현은 아마도 99%의 확률로 이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

허나, 그는 아니었다.

이제 정말 곧이었는데.

눈앞에 있는 4관문까지만 클리어 하면 그를 데리고 금의환향 할 수 있었는데!

과연 이곳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검을 치켜든 이성철이 툭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여기까지다.”

그 말에 카텐의 눈에 독기가 잔뜩 올랐다.

“비열한 놈들...너희들이 그러고도 같은 사람이냐?”

“...큭! 그럼 어쩌라고? 다 같이 뒤지기라 해야 하는 거냐? 전력의 차가 너무 압도적이잖아 압도적!”

“웃기지 마라! 네놈들이 작전과 전략적 요충지만 놈들에게 나불대지 않았어도...”

“큭, 아 됐어 됐어. 너 좋을 대로 생각해라 말다툼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보다는...”

포위망이 좁아지며 압박이 가해진다.

“지금까지 숨어있던 장소나 밝혀라. 지금 즉시. 그러면 너희도 우리 팀에 합류 시켜주겠다.”

“...뭐?”

“왜? 제안이 너무 파격적인가? 너희도 우리 팀에 넣어주겠다고. 살 수 있는 거라고!”

이성철의 낄낄 웃었다. 죽음을 앞둔 상황애서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성인군자가 아니고서는 참을 수 없는 유혹.

허나, 카텐은 성인군자는 아니어도 의리가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그렇게 해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가 다 죽으면 너희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러면 놈들이 너희를 가만 놔둘 거 같아?”

“...물론. 그건 우리도 알아. 우리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앞서 나가 있는 인간은 많아. 우리는 계속 배반자로 쓰이겠지. 하지만 혹시 알아? 저놈들과 중간에 떨어지게 될지? 아니면 인간 세력이 더 강한 지역이 있을지?”

형세가 뒤바뀌면 언제고 인간 쪽에 붙겠다는 뜻이었다.

카텐의 얼굴이 벌겋게 끓어올랐다.

이내 내뱉는 한 마디.

“유세현씨...저는 상관 말고 전부 죽여주세요. 이놈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크...뭐? 허...어이가 없군. 우리를 뭐 어쩌고 어째? 죽인다고? 크하하하! 너희 두 명이야. 두 명!”

이성철이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뿜었다.

“하...좋게 좋게 해결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만. 너 나중에 불지 않은 거 후회하지마라.”

그들은 천천히 다가왔다. 카텐이 다급하게 외쳤다.

“유세현씨 어서!”

“......”

유세현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고민하듯.

남은 거리는 불과 2m

이성철이 검을 치켜든 순간 유세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려주도록 하지.”

팔이 뚝 멈춘다.

카텐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유, 유세현씨?”

반대로 이성철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크크 그래, 잘 생각했어. 일단은 살고 봐야지 않겠어?”

“......”

“그래서, 장소는?”

“감정이 상했을지 모르니 너를 신뢰할 수는 없다. 일원은 더 있겠지? 우리 둘을 받아준다는 전제조건하에 모두가 있는 앞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제법 타당한 이야기였다.

이성철이 킥킥 웃었다.

< 2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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