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3) >
똑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공터. 그리고 갈림길에서 쏟아져 나오는 병사.
침입자들을 고려한 것인지 지하는 개미굴처럼 되어 있었다.
[그럼,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3분 주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청이 인파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병사들은 일행을 조금씩 에워싸기 시작했다.
집결된 인원은 약 500명.
꽤나 많은 숫자.
그들은 암흑투기를 예방하듯 호신강기를 두르기 시작했는데, B랭크 20%정도로 마력 또한 상당했다.
물론, 그럼에도 유세현의 스텟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그냥 싸우면 시간이 소비되고, 스킬을 난사하면 나중이 불안하다.
‘이러는 동안에도 의식은 진행되고 있다.’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고 나아가야 된다.
그래서 유세현은 여기서 한 가지 계책을 내놨다.
아주 단순하지만 상대의 의지를 상실시킬 수 있는 그런 계획.
“비켜라. 막아서지 않은 교인은 처단하지 않을 것이다.”
유세현은 넌지시 한마디를 내뱉자 서열 3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크큭! 이놈들이 네놈의 말을 들을 것 같으냐!”
“......”
유세현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천마대가 재빨리 옆을 호위하려 했지만 유세현은 그것을 물렸다.
뭔가 하려는 것을 깨달은 이강호는 잠시 그것을 지켜봤다.
홀로 나선 유세현을 둘러싸는 교인들.
허나 그 위압감이 상당한지 계속 나아가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좀처럼 덤벼들지 못했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10m.
“뭣들 하는 게냐! 침입자를 죽여라!”
보다 못한 서열 4위가 외치자 무사들은 기합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쉬이익!
전후좌우, 사방에서 쇄도하는 검.
방어 마법이 없다면 그 누구도 이것을 받아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공격이었다.
사람의 팔은 두 개로 국한되어있는 반면 공격하는 적의 숫자는 8명 이상이었으니까.
허나.
유세현이 한 바퀴 빙글 돌며 루베르크를 휘둘렀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르기였지만 남궁세가의 쾌(快)는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두 번째 검술인 중(重)에 한없이 가까운.
그러나 유세현의 검에는 중(重)이 아닌 모든 것을 부수는 패(覇)가 깃들어 있었다.
-후웅!
-쾅!
일순간 바람이 휘몰아쳤다.
“으으윽...”
바람이 잔잔히 내려앉은 장소에는 교인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가 잔뜩 나간 채 부러져 있는 칼날.
“...무슨...”
교인들의 몸이 한 순간 주춤 멈춰 섰다.
단 한 번의 일격. 오직 한 번의 일격으로 이 강자들을 쓰러트리다니.
“비켜라. 다시 말하지만 내 앞을 막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이어지는 두 번째 말에 마음이 갈대 같이 흔들린다.
주위를 살핀 고수들과 대주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단신, 그것도 아무런 무공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압.
순수한 무력의 차이는, 그들로 하여금 유세현에게 다시 한 번 공포를 품게 만들었다.
생명체인 이상, 미치지 않은 이상 죽고 싶은 이는 없었으니까.
이 모든 게 이루진 시간은 고작 해봐야 10초.
관전하고 있던 고수 한명이 낄낄 웃었다.
“크크큭, 오늘 정말 새로운 마존이 탄생할 수 도 있겠는데?”
“확실히...”
묘한 분위기.
장사월의 직속 부대인 200명을 제외 한 300명의 인원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3위의 제청곽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리라 판단했다.
[대주, 지금 바로 저들을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가라! 침입자를 격살해라! 마존께서 후한보상을 내려주실 것이다!”
“와아아!”
대원들은 일부러 큰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최고로 무서운 것은 군중심리.
다른 교인들도 우르르 휩쓸려 일행을 향해 질주했다.
‘쳇.’
유세현은 검을 재차 들어올렸다.
아쉽긴 하지만, 적은 자신에 대한 공포를 새긴 상황.
분명 아무것도 안한 처음보다는 훨씬 더 잘 먹히리라.
-우우웅!
지금까지의 유세현을 있게 해준 스킬, 암흑투기가 전신에서 터져 나왔다.
* * *
“이게 어떻게 된...”
혈사귀, 양무원을 데리고 돌아온 백청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달려가는데 1분, 보고하는데 30초. 그리고 돌아오는데 또 1분.
딱 2분 3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체의 산.
3위, 4위, 6위, 그리고 대주들은 살아남은 대원들과 함께 힘겹게 합을 이어가고 있었다. 백청을 흘끔 확인한 제청곽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 자식아 늦었다!”
이에 백청이 당황하여 외쳤다.
“부마존님! 어서!”
이번 일만 잘 처리 하면 죄를 면제해주겠노라, 양무원은 장사월에게 약조 받은 상태였다.
그러니 열심히 전투하여 천마의 제자 놈을 물리치면 될 터지만.
“크흐흐...크하하하!”
양무원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백청이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푹.
싸늘한 검신이 백청의 심장을 관통했다.
빛보다 빠르게, 정말 눈 깜짝 할 새에 발생한 상황.
부릅뜬 백청의 눈이 양무원을 노려봤다.
“큭...네...네놈...또 배반하다니...이러고도...”
“크흐흐. 누가 그랬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네놈도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거라. 나도 저놈들과 한 약조가 있어서 말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장사월 보다는 자기 사람을 위해 날뛰는 저놈의 말이 그나
마 더 믿음직스럽지 않겠느냐?”
“크...네...네놈오옴!”
“큭, 시끄럽구나.”
똑같은 복수.
마음속에 묵혀두고 있던 말을 내뱉은 양무원이 그대로 검을 그어 올리자 백청의 목은 뎅겅 잘려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색이 되는 고수들과 대주들.
“젠장! 대체 이게 어떻게 된...”
“크하하하! 약속은 지켜라. 마존!”
광소를 내뱉은 장사월은 흡사 미친놈처럼 4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대의 부대주, 태백무가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먼저 가시기 바랍니다. 부마존이 합세한다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습니다. 처리하고 뒤 따라 가겠습니다.”
“알았다.”
한 시가 급한 만큼 유세현과 이강호는 망설이 없이 몸을 돌렸다.
관전자들이 혀를 찼다.
“허...부마존께서?”
완전한 형세 역전.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이거 이쯤 되면 우리도 도와야 되는 거 아니냐?”
“아니, 우리가 그럴 필요는 없지. 우린 그저 지켜보면 되는 거다.”
“크큭! 피가 끓는다만?”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껴들어보던가.”
“하하! 농담이다 농담! 네말대로 괜히 껴들 필요는 없겠지. 가자!”
고수들이 몸을 날렸다.
* * *
“으으...”
김주희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열기에 눈을 번쩍 떴다.
뇌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두통이 이어진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제일먼저 비친 것은 나체의 상태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이건...’
기억이 조금씩 떠오른다.
그래, 자신은 분명 빛을 보았다.
머릿속을, 뇌 내부를 휘젓는 듯한 강렬한 빛을.
‘그것 때문에 잡혔구나...’
김주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하며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주위를 크게 둘러싸고 있는 원 형태를 한 붉은빛의 마법진.
마법진의 내부는 크게 3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는 괴물들이 위치해 있는 건너편.
또 하나는 일반적인 생존자들이 있는 이곳.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남궁시영이 홀로 쓰러져 있는 정중앙이었다.
마법진 주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러싼 채 무엇인가를 읊조리고 있는 10명의 인원들이 보인다.
‘무공을 만들고 있는 건가?’
그 때문인지 구속구가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육체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마력도 계속 빨렸는지 바닥이 나 있는 상태.
‘이곳에서 벗어나야 돼.’
김주희는 땅을 기었다.
마법진에서 벗어난다면 분명 어떠한 일어 날 것이라 믿고서.
허나.
-치지직.
“꺄악!”
원 밖으로 나가려던 김주희의 몸이 붉은 선에 닿기 무섭게 붕 떠올랐다.
그녀는 사람들의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지켜보고 있던 장사월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벌써 깨어난 건가? 하지만 그래봤자다. 네년은 거기서 죽어도 나올 수 없어. 덜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면 얌전히 있어라!”
“으으...”
그러나 김주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같이 잡혀들어온 사람들을 하나 둘 깨워 나갔다.
“에구구...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게냐?”
빙제, 아퀼라, 백령.
혈사진 내부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령의 안색이 1초도 안되어 새파랗게 질렸다.
“이...이건!”
“이걸 깨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알고 있다면 빨리 말해!”
“이...이건 파해가 불가능해요...”
“뭐?”
“불가능하단 말이에요.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기절해 있는 사이에 너무 많이...너무 많이 진행 되 버렸어요!”
“......”
백령의 말에 김주희는 치를 떨었다.
대체 그 빛은 뭐였기에 이렇게 허무하게 당했던 것인지.
가까스로 일어선 빙제가 원 밖을 향했다.
“에이이! 까짓 거 그냥 나가버리면...”
“할아버지 안 돼요!”
“윤...아니 주희야. 그런 건 해보지 않는 한 모르는 게란다.”
“아니, 제가 해봤...”
-치지직!
빙제는 김주희와 같은 전처를 밝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제가 해보지 않고 물어 봤을 리가 없잖아요...”
“끙...정말 지랄 맞구나.”
빙제는 기부좌를 틀었다.
어떻게든 내력을 긁어모아 절기를 사용하기 위함이었지만.
“으...어떻게 이런 악독한 진을 만들 수가...”
내력을 모을 새도 없이 마법진이 전부 가져가 버린다.
아니, 되려 아무 짓도 못하게 전보다도 더 맹렬하게 낚아채가는 느낌.
이래서는 진원진기를 상용할 수도 없다.
“커...커헉!”
“크허헉!”
그때, 얌전히 기절해있던 몇몇의 생존자들의 몸이 갑작스럽게 들썩였다.
“크아아악!”
그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몸부림을 쳤다.
건실하던 육체가 쪼그라들고 가죽이 말라붙기 시작한다.
의식이 끝에 다다르기 시작하며 스텟이 낮은 자들의 육신이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곧, 미라처럼 비쩍 쪼그라든 생존자들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주위에 흩뿌려지는 코인들.
“크크크크!”
혈사진을 바라보는 장사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추정 공정률 90%.
“크크, 역시나는 틀리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드디어 최강의 마공이 완성된다. 김주희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에 조급함을 느꼈다.
“에이이! 백령이라고 했었지! 정말 다른 방도는 없는 게냐! 곧 우리도 저렇게 된다!”
“알면 제가 했겠죠!”
10초, 20초, 30초.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많아져갔다.
이윽고 백령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커어억...”
김주희도 서서히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을 악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되는 꼴이라니.
정말 이렇게 죽는 것인가? 이렇게 어이없게?
“크흐흐. 셀론, 보아라! 이제 곧 중원! 아니, 판도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신공이 창시된다! 이번엔, 이번엔 실패가 아니야! 성공이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지?”
“크크크! 다 되었다. 저기위에 떠 있는 구슬이 보이느냐! 저놈들이 죽고! 구슬이 처녀계집의 피를 완전히 흡수하는 순간 신공은 완성된다!”
공정률 95%.
김주희가 마침내 가슴을 움켜잡자 빙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걱정이 되어 따라 왔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자만했다. 그런 술수를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빛을 보아서는 결코 안 되었던 것인데.
“미, 미안하구나...내가 좀 더 주의했더라면...”
“으윽...하, 할아버지는 잘못하신 게 없어요. 그보다 정신 똑바로 붙잡으세요. 다행이도 선배께서는 붙잡히지 않으신 것 같으니까 분명 구하러...”
“끙...”
놈들이 제아무리 강해도 뚫고 오는 건 무리다. 아니, 뚫고 온다하더라도 시간이 늦을 것이다.
빙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든 찰나.
힘겹게 목숨 줄을 붙잡고 있던 아퀼라가 눈을 번뜩 떴다.
“오셨다.”
“...?!”
-파앗!
-콰아아앙!
통로에서 터져 나온 검붉은 빛이 장사월이 서 있는 장소를 지나 혈사진 외부를 집어삼켰다.
< 제물(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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