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84화 (184/612)

< 제물(2) >

그가 사용한 마법은 마법 중에서도 최고 등급을 자랑하는 10서클 정신계 마법이었다.

마법명, 스피릿 브레이크(spirit break).

시전자보다 정신력이 낮은 적을 제압하는 이 마법은 대상자의 육신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마법보다 마력을 덜 소비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효율이 높다.

그리고 인간 중에서 아직까지 이 마법을 버티는 이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용해본 것은 아니나 못 버티는 게 정상이었다.

자신은 수백 년을 넘게 산 드래곤.

한 때는 알테리아 대륙의 조율자로서 모든 이의 경외심과 공포를 동시에 받은 생명체.

그런 생명체의 정신력을 한낱 수십 년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결코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

-스스스.

화기가 수그러든다.

그 자리에 이강호는 더 이상 없었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장사월이 툭 말했다.

“전부 제압할 수 있던 거 아니었나?”

“...착오가 있었다. 아무튼 나는 여기까지. 너의 실력이라면 도망친 놈을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테니. 상관없겠지?”

“큭. 그새 말재간이 늘었군. 그래 뭐...한 마리 정도는 알아서 하도록 하지.”

셀론이 뒤로 빠지자 백청이 다가와 물었다.

“추격대를 꾸려 추격을 합니까?”

“아니 되었다. 놈이 동료를 아낀다면 불나방이 되어 뛰어들겠지. 우린 그때 맞이하도록 한다. 그보다 준비는 완전히 끝났겠지?”

“충! 상급 마수 50마리와 노예 300명을 대기시켜놨습니다.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습니다.”

“큭큭큭. 좋아! 바로 제단으로 간다.”

“충!”

장사월이 몸을 획 돌리자 수하되는 자들은 인원들과 무기를 챙겼다.

“무기는 내 방에 갔다 놓도록 해라! 나중에 내 직접 확인 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의류는 제단으로 이동 후 탈의 시키도록 한다.”

“충!”

-스스슥.

장사월을 포함한 수하들이 열기로 일그러진 통로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젠장...드래곤이라니...’

이강호는 고개를 살짝 빼 뒤를 살폈다. 예상과 달리 추격대가 따라오지 않는다.

이는 직접 찾아오라는 뜻.

“후...”

웬만하면 한탄하지 않는 그의 입에서 한숨이 지긋이 터져 나온다.

그만큼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큰 변수였다.

‘놈들이 무공에 눈독을 들인 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무공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멍청한 마교 놈들.’

인간이 그 정도의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만약 그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거래를 하지, 아르카드제국의 황제가 직접 행차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후우...마교가 망한 이유가 이거였다니.’

정파와 사파는 정사대전으로 인해 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허나, 마교는 아니었다.

힘만 추구하는 멍청한, 그래서 살생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악인이지만 그래도 적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세력이었다.

자신에게는 독.

적에게는 더 치명적인 맹독이 되는 존재들.

과거 남궁시영에게서 마교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뭔가 했었는데.

이제는 비로소 이해가 간다.

‘무공을 만들면 놈은 장사월을 처리하겠지.’

마법과 최강의 무공.

만약 드래곤이 이 두 가지를 손에 넣는다면?

‘이건 어떻게든 막아야 된다.’

적은 그나마 다행히도 헤츨링 급.

올 스텟 A랭크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무공과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해주는 고유특성, 그리고 유세현이 있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무조건 해내야 한다.

살아남고 승리하기 위해서.

‘세현이도 지금쯤 움직이고 있겠지.’

이러한 난항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든든하기 짝이 없다.

이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흔적을 추격해 나갔다.

지하로 이어져 있는 계단이 대놓고 열려있었다.

* * *

‘왔군!’

흙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터.

백청은 이강호가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저자입니다.”

그 말에 딴청을 피우고 있던 10명의 시선이 일제히 이강호를 향했다.

행동은 무척 경박하나, 일반적인 교인들과는 사뭇 다른 눈빛을 하고 있는 자들.

이강호가 마주하고 있는 자들은 마교 내에서도 최상위의 인물로서 3위부터 12위의 순위를 지닌 이들이었다.

웬만하면 직접 나서는 일이 없는 자들이지만, 일반 교인이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부름에 응답하여 직접 나서서 처리한다.

사무월이 죽어 7위로 순위가 오른 한독객사(罕毒喀死) 천위완이 입을 열었다.

“네놈이 사무월을 죽인 침입자인가?”

“......”

“놈...지금 내말을 무시하는 거냐?”

“......”

이강호는 심호흡을 했다.

한 눈에 봐도 강자.

쉽게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태양신공과 마법,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는 영웅.

너무도 많은 난항을 겪어 드래곤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자다.

-스스스.

창대를 쥔 이강호의 자세가 점점 낮아져 갔다.

이에 천위완을 포함한 고수들도 표정을 굳히고 자세를 잡았다.

1대 10.

무려 10배나 차이나는 전력이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결코 예삿 놈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누군가는 이곳에서 죽을 수도 있겠군.’

-쉬이익!

-쾅!

창과 검이 격돌했다.

이강호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했다.

인탱글로 시선을 끌고, 파이어 볼로 견제한다.

거기에 기다란 리치를 가지고 있는 창!

10초 동안 총 수십 번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고수들은 그의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공격을 전부 받아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사무월이 당한 이유를 알겠군!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교까지 침투한 이상 네놈도 끝이다!”

-우우웅.

천위완의 검이 부르르 떨렸다.

딱 봐도 무엇인가를 사용하려는 낌새.

허나, 천위완이 절기를 채 응용하기 전 문 쪽에서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라. 천위완.”

“......”

말과 함께 날렵한 발놀림을 놀리던 인원들의 움직임이 멎는다.

-저벅 저벅.

자욱하게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새까만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인형(人形).

횃불에 드러난 유세현의 얼굴을 본 일부 고수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유세현...”

“미안, 무기회수 좀 하느라 좀 늦었다.”

“아...”

곧바로 달려 왔는지 옆구리에는 김주희의 트라이던트, 빙제의 빙한백검 등이 껴 있었다.

“후...강호야 이거 포켓에 좀 넣어줘. 이제부터는 내가 어떻게 한번 해볼 테니까.”

“응? 뭘 어떻게 하려고?”

“그건...”

유세현의 눈이 고수를 주시한다.

백청은 그 모습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가 넌지시 말했다.

“천마대는...”

“......”

“지금 즉시 내 앞으로 집결하라.”

그 말에 몇몇 고수들의 눈이 다시 한 번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충!”

부대주, 서열 5위의 태백무가 제일 먼저 이동하여 유세현의 앞에 서는 것으로 나머지 3명도 순식간에 다가섰다.

그중에서는 천위완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청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당황스럽기는 남은 6명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네놈들 지금 적에게 뭣 하는 짓거리...”

누군가가 물을 새도 없이 태백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마대의 부대주, 태백무. 주군을 뵙습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태백무의 말에 나머지가 따라 복창한다.

백청을 포함한 고수들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발생한 상황이 무엇인지.

그래, 과거 천마가 교주에 자리에 즉위해 있을 때는 분명 존재했다.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던 천마의 호위대대.

[천마대]

백청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눈앞에 있는 놈은 교의 침입자입니다! 아무리 천마의 제자라지만 한패인 놈을 주군으로 섬기다니!”

그 말에 유세현은 즉답했다.

“실력이 안돼 모략을 펼쳐 스승님을 죽인 주제에 말은 정말 잘하는 구나.”

“......”

한순간에 막히는 말문.

태백무의 얼굴을 슬쩍 흘긴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천마대를 믿고 있지 않았다.

양무원의 반응으로 천마대가 장사월의 끄나풀이 아니란 것은 대충 알아챘지만, 그럼에도 확신이 안 들었기 때문.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대놓고 정체를 드러내게 했다.

힘의 순리를 따르는 마교에서 모시는 주군을 제외한 자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적으로 간주했겠지만, 이렇게 되면 제법 신뢰할 만하다.

천마대를 물린 유세현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교의 인원들은 들으라! 다들 알다시피 나는 천마의 제자! 천마신공의 일인전승자다! 그런 그대들은 내가 왜 이곳에 돌아온 줄 아는가?”

“......”

“그건 스승님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다! 저기 통로 너머에 있는 장사월은 교주가 되기 위해 모략을 꾸몄다. 암습을 가한 것이지! 알겠나? 이게 바로 너희가 그토록 이상하게 생각하던 스승님의 실종사건에 대한 진위다!”

유세현의 말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말투가 좀 그러한 만큼, 상당히 오그라드는 연설이었지만, 그는 김주희의 행동을 떠올리며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다.

지금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행위였으니까.

이에 답하듯 고수들 중 한 명이 반응했다.

“지금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지?”

“있다.”

“그렇다면 이유를 말해봐라.”

고수 한명이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그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온 것일 뿐 장사월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말했다 시피 놈은 이미 스승님의 암살을 주도했다. 즉, 내가 돌아와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동료들을 내부로 침투시켰다. 이해가 되나?”

“뒷 공작을 펼치지 못하게 하려는 셈이었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에게는 애매하군.”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 난 지금부터 장사월을 처리하러 갈 것이니까. 물론, 1:1의 대결로 말이다.”

“......”

“그러니 판단하기 어려우면 길을 비켜라. 그리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라! 누가 마존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힘으로 쟁취한다! 그게 교의 순리 아니었던가?”

교인과 전부 전투를 벌여서는 마력이 부족할 수 있다.

피할 수 있는 상대는 피하는 게 상책.

“흠...만약 비키지 않는다면?”

“너무도 당연한 말을 묻는군.”

검을 뻗자 앞에 나서 있던 천마대도 고수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러자 고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6대 6이라...만약 전투를 하게 된다면 두 세력중 하나는 무조건 전멸이군. 혹시 이곳에 백청 말고도 마존의 수하가 있나?”

“......”

“흠...없다는 것이로군. 그렇다면 난 전대 마존의 제자의 말을 따르겠다. 따라가서 지켜보도록 하지.”

고수 한 명이 옆으로 쓰윽 빠졌다.

“음...객혈사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나도...”

연이어서 2명의 고수들이 자리를 이탈한다.

백청을 포함한 3명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서열 3위와 서열 4위 그리고 서열 6위의 인원들은 장사월을 따르는 수하였다.

이들은 실제로 천마를 사냥할 때 가세하기도 했다.

객혈사귀가 피식 웃었다.

“이것 참...수하는 없다더니...”

“크큭. 그러게 말이야. 이것 참 오늘 본의 아니게 재미난 구경하게 되겠군.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을 거다.”

원하던 바.

그때 백청과 고수 3명은 한참 전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게냐. 백청!]

[죄송합니다. 설마 천마대가 4명이나 있을 줄은...일단 뒤로 물러나시죠. 뒤에 대주들과 병력이 배치되어있습니다. 그곳에서 시간을 조금 끌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마존님께 일러 부마존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옘병할! 빨리빨리 움직여라.]

[예!]

4명은 유세현에게서 몸을 획 돌렸다. 서열 3위가 말했다.

“우리들은 너희 둘과 천마대를 여전히 침입자로 대할 것이다! 각오 단단히 하고 들어오도록 해라.”

이는 중립을 자처하는 고수들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

유세현과 이강호, 천마대가 곧장 그들을 뒤를 쫓아 통로로 들어가자 3명의 고수들은 신이 나 뒤따랐다.

< 제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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