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1) >
방 안으로 돌아온 유세현은 한 번의 심호흡을 한 뒤 경건한 마음으로 비급서를 펼쳤다.
-사락.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천마가 저술해 놓은 글귀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넝실넝실 춤을 춘다.
마치 자신이 무공을 직접 창시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안개가 끼어있듯 마냥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천마신공은 하나의 검법과 하나의 보법 그리고 다섯 가지의 무공이 삼위일체 되어 최강의 힘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습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천마군림보의 완전습득.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알림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천마검법(天魔劍法)을 습득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대멸겁(天魔大滅劫)을 습득하셨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을 습득하셨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등공(天魔騰空)을 습득하셨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광룡참(天魔狂龍斬)을 습득하셨습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반탄기(天魔反彈氣)를 습득하셨습니다.]
그는 곧바로 밖으로 나와 스킬을 시험했다.
‘천마대멸겁.’
아주 약간의 마력을 불어넣어 스킬을 사용하자 주위로 어둠의 마력이 얇게 퍼져나간다.
채 1초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트드득!
-콰직!
유세현을 중심으로 반경 5m내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일제히 으스러진다.
천마혈사장이 눈앞에 있는 적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무공이었다면 천마대멸겁은 주위에 있는 적들을 압살시켜버리는 무공이었다.
그 의외에도 유세현은 천마등공, 천마광룡참, 천마반탄기의 위력을 모조리 실험했다.
실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왜 최강이라고 불렸는지 알겠군.’
단순하다.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무척 강하다.
심법만 봐도 그랬다.
힘만을 갈구해서인지 마교인들의 마력은 대개 혼탁했다.
순수하게 흉폭한 어둠의 마력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온갖 잡스러운 것이 뒤섞여있는 듯한 감각.
허나, 천마의 심법은 일반적인 마교인과 달리 혼탁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정파의 무공처럼 마냥 깨끗한 것만도 아니었다.
그의 심법에는 오직 하나의 힘만 담겨져 있었다.
모든 것을 압살해버릴 수 있는 패도의 힘!
유세현은 천마심법의 숙련도를 살폈다.
[숙련도: 32.9%]
천마는 모든 것을 물려주었다.
다만 그것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을 뿐.
‘이제부터는 내 하기 나름이다.’
심법의 숙련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무공뿐만 아니라 마왕에게서 얻은 스킬의 위력도 올라간다.
유세현은 눈을 감은 뒤 천마가 일러준 구결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 * *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
눈을 뜬 남궁시영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회복되지 않은 마력과 육체.
더군다나 혈도를 짚어놔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마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또 기절 했던 건가...’
도망치려다가 붙잡혀 구타당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남궁시영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세 명의 남성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체 왜 죽이지 않는 거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이유를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있으라는 말만 되풀이 할뿐.
기척을 느꼈는지 세 명중 거구의 남성이 입 열어 말했다.
“깨어 난거냐?”
“......”
“도망치고 싶으면 또 도망쳐봐라. 하지만 만약 이번에도 내게 붙잡히면...”
가까인 다가온 남궁시영의 턱을 움켜쥐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엄청난 완력이었다.
“그 고운 얼굴이 개 작살나게 될 거야.”
남성이 그대로 남궁시영을 내동댕이치자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낄낄 웃었다.
“에이~! 얼굴은 작살내면 안 되지. 지금 그마나 있는 낙이 저년 얼굴 쳐다 보고 있는 것 정도인데.”
“맞아, 차라리 발모가지를 잘라버리자.”
그 말에 남성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독객(毒客), 주군의 명을 잊은 건 아니겠지?”
“아오~좀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여라. 당연히 알지 짜샤. 아, 그런데 세가의 여식 먹어보는 게 꿈이었거든. 과연 어떤 맛이 나려나? 양미라랑 똑같을까?”
이번에는 독객이 입맛을 다시며 남궁시영을 향해 다가왔다.
남궁시영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동료가 낄낄 웃으며 만류했다.
“크크큭, 거기까지만 해라. 우리의 살귀(殺鬼)님 표정 안 좋아지신 거 안보이냐.”
“하아~알았어. 알았어. 아~진짜 이런 임무는 너무 심심하다고.”
독객은 몸을 휙 돌렸다. 그러다가 무엇인가가 떠올랐는지 박수를 쳤다.
“아! 입은 괜찮지 않을까? 아래만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크크큭. 뜯겨 나가고 싶은 거냐?”
“이빨을 다 뽑아버리면 될...”
“아서라. 그것도 신체 훼손이잖냐.”
“아...생각해보니 그러네. 옘~병.”
독객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남궁시영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인이 된 지금은 이전과 달리 혀를 깨물어도 죽지 않으니, 그들이 겁탈하면 그대로 당해야 되는 것이다.
허나.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뿐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지?’
도저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마교까지 잡혀온 이상 사실상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탈출은 불가능하다.
‘나는 여기까지구나.’
머릿속에 문득 한 남자가 떠올랐다.
얼마 함께하지도 않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었던 붉은 창을 든 사내.
이강호.
‘그분은 무사하시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느낌상 이강호는 살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패배하는 장면이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기에.
‘다신 볼 수 없겠지...’
남궁시영은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르륵.
힘겹게 일어난 그녀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독객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년...죽고 싶어서 환장 한 거냐?”
“...난 어차피 이곳에서 빠져 나가지 못해.”
“......”
“날 온전하게 놔두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렇다면...”
진원진기를 끌어 모은다.
딱 한번. 오직 딱 한번 장력을 날릴 수 있는 힘.
제대로만 적중한다면 놈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독객이 인상을 박박 썼다.
그녀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젠장...지금 진원진기를 사용하게 되면...’
진원진기는 마력이지만 생명력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원진기를 사용하게 될 경우 체력이 적잖이 소비되는데 그녀의 몸 상태로 보자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마력의 총량이 낮아지는 것 따위와는 차마 비교할 수 없는 리스크.
‘어떻게든 막아야 되는데...’
무공의 사용을 제지할 방법은 딱히 없다.
즉, 그녀 스스로 멈추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인데.
독객의 머릿속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
“크큭. 네년 지금 본교에 누가 찾아 왔는지 알고 있나?”
“...그딴 거 전혀 알고 싶지...”
“천마의 제자 놈이 찾아 왔다.”
“...?!”
“스스로 입교했지. 마존이 되겠다고 지껄이고 있으나 우리는 네년을 찾기 위해서 온 것이라 추정 중이다. 네년은 어떻게 생각하지? 네가 좀 더 오랫동안 지켜 봐왔을 테니 그놈의 심정을 우리보다도 더 잘 알 것 아니냐.”
“......”
남궁시영의 커다란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후후. 정곡인가 보군. 만약 기회를 잡고 싶으면 당장 공력을 거두...”
“...아니, 더더욱 거둘 수 없게 됐어.”
자신은 이미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보답은 하지 못할망정 적에게 붙잡혀 발목만 잡는 꼴이라니.
“네년 기어코 해보겠...”
그때였다.
-스스슥.
공간이 붉게 물든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아퀼라의 육신.
“당신들은 나랑 놀자고.”
아퀼라는 서큐버스 퀸 답게 한 순간에 셋의 내면으로 침투했다.
남궁시영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저 여자는?
-끼익.
문이 서서히 열린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붉은 창을 쥐고 있는 이강호였다.
“구하러왔습니다. 남궁시영씨. 나가시죠.”
“......”
감정이 북받쳐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대체 자신이 뭐라고.
얼마나 봤다고 이런 곳까지 구하러 와준단 말인가.
부글부글 끓던 진원진기가 가라앉으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왜...왜...”
“이야기는 다음에.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죠. 몸 상태가 별로이신 것 같으니 업히시기 바랍니다.”
이강호가 무릎을 굽혔다. 남궁시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맡겼다.
빙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나 완벽하게 계획을 진행하는지 위험하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한 것이 지금에 와서는 살짝 무안해질 정도.
그새 처치한 아퀼라가 손을 털었다.
바닥에는 세 명의 남자. 아니 미라가 쓰러져 있었다.
생명을 잃었지만,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일행은 곧바로 탈출을 감행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되는 것이었기에 일행의 대다수는 쉽사리 탈출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짝짝짝.
비좁은 통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자작!
동시에 수많은 인원들이 튀어나와 주위를 둘러쌌다. 일행은 재빨리 등을 맞댔다.
길이 갈라지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크하하하.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구하러 오다니!”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백령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설마 본좌가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게냐? 양무원 때문에 본교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구나.”
이강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확실히 예상을 전혀 못할 일은 아니다. 허나, 그렇다 쳐도 딱 구해낸 시점에서 등장한 것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분명 미행하는 이는 없었을 터인데.
빙제가 중얼거렸다.
“에이이~! 마지막에 이지랄이구나.”
이강호도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단번에 돌파하겠습니다. 빙제님 후방을 부탁드립니다.”
“에이~! 알겠다! 잘 뚫기나 하거라.”
이에 장사월이 낄낄 대며 웃었다.
“크크크 뚫어? 보고 받은 것처럼 정말 오만하구나. 너희들은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 전부 제물이 될 운명이지!”
이강호는 말을 무시하며 묵묵히 창대를 치켜세웠다.
창끝으로 용암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집약 된다.
태양신공, 열화창무(烈火槍武).
이강호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움직인다.
때문에 그가 이 루트를 도주로로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었다.
이 열기를 받아 친다면 주위가 개박살이 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 일행은 다른 길로 도주하면 된다.
반대로 피하면 그대로 뚫고 나가면 되는 것.
그리고 장사월도 이를 모르진 않을 터였다.
허나, 그는 이상하다시피 여유로웠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셀론이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럼 부탁 하마 셀론.”
“대가는 톡톡히 받을 것이다.”
“물론이지! 얼른 하기나 해라!”
셀론이 손을 치켜세웠다.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그의 손앞에 나타난다. 이강호는 그것을 본 순간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저 문양은 설마?
“모두! 눈을 감...”
-파앗!
광명이 터져 나와 주위를 휩쓸었다. 김주희, 백령, 남궁시영, 그리고 빙제까지.
인원들의 몸이 축 늘어졌다.
버틴 이는 오직 이강호 뿐이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이 마법을...설마?’
휘둥그런 이강호의 눈이 셀론을 향했다. 조각을 해놓은 듯한 얼굴 형태와 무뚝뚝한 표정.
‘드, 드래곤!’
판도라세계, 최강의 3종족 중 하나.
내부에 있어야 되는 놈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폴리모프로 모습을 변환시킨 채!
“흐아압!”
힘껏 내지른 창끝에서 열화창무가 뻗어나갔다.
마법을 사용한 셀론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걸 버텼다고?”
< 제물(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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