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신공 >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알겠다. 고대하고 있도록 하지.”
셀론의 발이 실험실의 출구로 향했다.
장사월은 그런 셀론의 등 뒤를 한동안 바라봤다.
천마를 몰아낼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계약.
장사월은 그들에게 무공의 일부를 내어 주고, 마법을 받았다.
스크롤 마법이 아닌 진짜 마법을.
그리고 마법은 상당한 위력을 선보였다.
장사월은 탐이 났다.
저서클의 마법이 아닌 고서클의 마법이 가지고 싶었다.
무공과 마법.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합을 이룬다면 자신을 당해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터임으로.
그래서 장사월은 제안했다.
자신의 비전절기와 고서클 마법을 일부 교환하자고.
허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가 지니고 있던 귀혼마패공이 아니었다.
천마의 무공. 혹은 그 이상의 것.
그래서 장사월은 천마를 뛰어넘기 위해서. 마법을 얻기 위해서 무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과 한 계약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다음번 무공을 만드는데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고서클 마법을 손에 넣는 순간.
‘전부 죽여주마.’
한 하늘아래에 군림자가 여럿 있을 수는 없는 법.
혈사진에 시선을 돌린 장사월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 * *
다음날 잠에서 깬 유세현은 천마신공의 흔적을 찾아 본격적으로 산채를 돌아다녔다.
이제 막 입교한 새내기.
하지만 서열은 108위.
텃세를 부리고 괴롭히고 싶은 시기겠지만 실력이 인증된 만큼, 교인들은 그 누두고 유세현을 건들지 못했다.
아니, 행여나 목숨이 달아날라 고수가 아니고서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허나 하급무공이 저술되어 있는 서재나 그 외의 예상되는 곳곳을 뒤져봐도 천마신공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흠...대체 어디다가 숨겨 둔 거지?’
유세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단서는 생각보다 가까운 데에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전 천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급을 남겨두고 왔다. 완전하지 않은, 본좌가 알려준 구결을 익히지 않은 자가 본다면 단순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비급을.]
여기서의 키포인트는 단순한 종이쪼가리라는 것.
그런 물품이 하급무공이 저술되어 있는 서재에 비치되어 리가 없다.
또한 천마는 장담했다.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천마신공의 비급은 모종의 이유로 비급이라고 의심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럴 경우 정말 재수 없이 누가 찢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유세현은 부대주 마교 서열 5위의 태백무를 찾아갔다. 주위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태백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어, 그래. 근데 앞으로는 바깥에서 그렇게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마라.”
“충!”
태백무가 자세를 바로하고 나서야 유세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
“너에게 물을 것이 있어서 왔다.”
“말씀하십시오.”
“스승님께서 자주 찾던 장소가 있었나?”
“예? 자주 가시던 곳 말씀입니까?”
“그래, 바람을 쐬기 위함이라 던지, 아무거나 상관없어. 생각나는 것만 말해봐라.”
“음...”
태백무가 턱을 짚고는 고민에 빠졌다.
잠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도 마땅히 찾던 장소는 없으셨습니다. 주군께서도 아시듯 무공 증진에만 치중하시던 분이신지라...”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런 걸 왜...”
“스승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왜 이상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한 태백무가 고개를 숙였다. 유세현은 재빨리 손을 까딱였다.
“고개 들어. 그런 자세 취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보다 내가 말한 것은 잘 이행하고 있나?”
“충! 물론입니다.”
유세현이 내린 지시는 양무원과 장사월, 셀론의 동향 및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신뢰가 갔다면, 남궁시영이 어디에 잡혀있는지도 한번 찾아보라고 했을 테지만, 현재로서는 이정도의 명령을 내려두는 게 최선.
행여나 이들이 장사월의 첩자일 경우에는 본래의 의중을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 될 테니까.
‘남궁시영의 일은 역시 강호가 처리하도록 나둬야겠군.’
그사이 자신은 천마신공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루면 스승인 천마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마교를 뜰 생각이었다.
본래는 교주가 될 생각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긴 하다만.
놈이 계속 신경 쓰인다.
최소 A랭크 이상의 마력을 지닌.
스스로를 아르카드제국에서 왔다고 소개한 것 빼고는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는 남자.
셀론.
“그래, 지금 장사월과 양무원은 어디에 있지?”
“현 마존은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 했습니다.”
“그래, 잘했어. 의심받지 않는 게 최우선이다. 양무원은?”
“부마존은 아직 거처입니다.”
“호오...그래?”
“예!”
유세현의 눈이 번뜻 빛났다.
장사월 혹은 양무원.
그는 이 두 명 중 한 명의 방에 천마신공의 비급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 이제는 그곳밖에 없다.
권좌의 옆에 새롭게 거처를 마련한 장사월의 방이냐.
아니면 천마의 방을 그대로 먹어치운 양무원이냐.
“좋아. 알았다. 무슨 일 생기면 보고해라.”
유세현은 몸을 획 돌려 양무원의 거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장사월과 달리, 실험에 진척이 없는 양무원.
부하의 태반을 잃고 남궁시영까지 빼앗긴 그는 현재 천마의 일기장을 넘겨보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생각으로, 행여나 무슨 단서가 있을까 오랜만에 펼쳐본 것이지만.
역시나 담겨져 있는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다.
“예에엠병할!”
결국 양무원의 손등에 밀린 일기장은 바닥을 기며 구석에 처박혔다.
그때였다.
-똑똑똑.
“뭬냐!”
“그, 그게...”
문 너머로 부하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진다.
‘이제는 이런 놈들밖에 안 남았다니.’
답답함에 호통을 치려던 때 말이 재차 들려왔다.
“전대 마존의 제자가 찾아왔습니다.”
“뭐?”
자신을 이 지경에 다다르게 만든 근본.
양무원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왜 이곳에 온 거지?’
자신을 비꼬기 위해서?
아니면 암살?
‘아니 암살이라면...’’
이렇게 오진 않았을 터.
더 나아가 서열전을 신청하지 않고 자신보다 높은 상관을 죽이게 되면 죄인이 되어 신교의 타겟이 된다.
“들여보내라!”
“충!”
문이 열리며 유세현이 내부로 들어왔다.
벌써 3번째의 만남.
양무원은 애써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래, 천마의 제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유세현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그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존이 부마존을 찾아오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되나?”
“...네놈! 오만방자하구나! 말장난을 하러 온 것이라면!”
“난 진심이야.”
양무원의 앞에 자리 잡고 앉은 유세현이 책상에 턱을 괬다.
움찔거리는 양무원의 눈썹.
“진심이라고?”
“그래. 난 교주가 될 것이다. 그에 따른 계획도 다 세워놨지. 그리고 너희들이 하려는 짓도 잘 알고 있다.”
“...무슨.”
“너희들.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나를 제거할 생각이지? 스승님 때처럼 은밀하게.”
“......”
일주일 안에 제거할 것이라는 것은, 정보가 없어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
양무원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그걸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물론.”
대답하는 유세현의 목소리는 너무도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한쪽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린 유세현의 몸에서 흉폭한 투기가 뻗어 나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힘을 직접 경험한 너는 충분히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
양무원의 입이 꾹 닫혔다.
호신강기로 몸을 감쌌음에도 엄청나게 느껴지는 압박.
확실히 이놈은 천마의 무공을 제외하고도 괴물이다.
“...그래서? 이런 걸 나에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너는 이 일에서 빠져라.”
“......”
“물론, 네가 무서워서는 아니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서 말이야. 만약 빠진다면, 네가 나를 습격했던 일도 묵과해주겠다.”
“하! 그런 걸 변명이라고 하는 게다. 내가 왜 네깟 놈의 말을...”
양무원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유세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제의라고 생각하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주위를 거닐다가 옆에 놓여 있는 책꽂이를 향해 나아갔다.
책 하나를 집어 펼치자, 양무원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네놈! 당장 놓지 못할까! 지금 누구마음대로 나의 서적을!”
허나.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네놈의 한 팔이 날아가면 어차피 이 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는 거 아닌가?”
“...너...하루도 안 된 놈이 그런 정보를 어디서.”
“천마대.”
“......”
“왜? 생각도 못하고 있었나?”
“......”
고민이 생겼는지 양무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유세현은 그사이 최대한 빠르게 책을 훑었다. 천마신공이 담겨져 있다면 시스템적으로 분명 무슨 반응이 있을 터인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10권 남짓한 책밖에 없었기에 이제 남은 것은 2권뿐이었다.
‘쳇, 역시 여기에는 없는 건가? 아니면 서랍에?’
서랍은 지금 뒤질 수 없다.
그때 양무원의 말이 이어졌다.
“그새 천마대까지 얻은 건가...확실히 네가 건 조건은 괜찮은 조건이다. 허나 내가 너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흠...확실히...”
양무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맞는 생각이었다.
나머지 2권까지 전부 확인한 유세현이 몸을 획 돌렸다.
사실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준비해 온 말이었지만, 이왕 꺼낸 거 확실하게 끝맺음을 본다.
“그렇다면 네가 나를 도와라.”
“뭐?”
“네가 나를 도와 자객을 물리친다면, 나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너를 처단할 수는 없게 되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걸 말이라고.”
“아니면, 그 당일 날 모든 걸 버리고 도주하던가. 쫓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는 내가 몸이 2개가 아닌 이상 쫓고 싶어도 못 할 테고. 외팔이 되어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만. 어떠냐?”
“......”
둘 다 양무원에게 있어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
허나, 적어도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외팔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났다.
“...내일까지 생각하고 답을 주겠다. 약속은...꼭 지켜라...”
“물론이다.”
밖으로 나가려는 유세현의 시선에 문득 구석에 처박혀 있는 책이 한 권이 눈에 띄었다.
그는 그 책을 집어 든 뒤 책장을 넘겼다.
양무원이 미처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쉬이익.
글자가 황금빛으로 번뜩번뜩 빛난다.
노멀 등급은 회색빛. 매직은 푸른빛.
‘이, 이건?’
색깔 구별법에 근거할 때 황금빛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지금까지 그 누가 책을 넘겨도 나타나지 않던 알림창이 유세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아이템 명: 천마신공(天魔神功) 비급서.(천마의 일기장)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무림계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천마가 직접 저술해놓은 비급서입니다.
암호문으로 되어있어 천마신공의 구결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자 이외에는 알아 볼 수 없습니다.
-두근 두근.
그 어떠한 보상을 받을 때보다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피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느낌.
드디어 손에 넣었다.
튜토리얼 때부터 줄곧 가지고 싶었던 천마가 남겨 놓은 유산!
모른 무림인, 이강호도 인정하는.
나약한 인간이 창조한 최강에 달하는 스킬.
[천마신공(天魔神功)]
‘일기장으로 둔갑해 놓은 거구나.’
지금까지 안 찢어발겨진 것이 용하다.
유세현이 표정 관리를 하며 툭 말했다.
“이건...스승님의 일기장이군.”
“그렇다.”
“내가 회수하도록 하지.”
이런 건 모름지기 별 대수롭지 않은 듯 마냥 모습을 보여야 된다. 그래야만 상대가 의심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천마군림보 때문에 자신이 천마신공을 완벽하게 익힌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도 이것은 알아채지 못한다.
양무원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 그래 가져가거라! 그딴 도움도 안 되는 일기장.”
유세현은 품에 비급서를 쓰윽 집어넣었다.
< 천마신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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