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81화 (181/612)

< 천마대 >

“저놈...”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장사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후끈후끈한 열기와 함성.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분위기는 최고조를 이루고 있었다.

천마의 무공인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선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본디 서열전의 끝은 대개 둘 중 한명이 죽기 마련이다.

서로 엇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도 제압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

허나, 놈은 고수를 제압했다.

그것도 힘들게 제압한 게 아니라 마치 가지고 놀듯이.

어떤 교인이 이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세현을 주시하고 있던 장사월의 눈동자가 한순간 양무원을 향했다.

‘머저리 같은 놈.’

몰래 천마의 무공을 가지려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찢어 발리고 싶을 만큼 괘씸하다. 그래서 양무원이 천마의 제자의 비급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실제로 찢어죽이고 무공을 취하려했다.

그런데 비급을 얻지도 못했을 뿐더러, 저런 폭탄을 끌어 들이다니.

장사월이 연무장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마, 마존님!”

그를 알아 본 모든 교인들이 물살을 가르듯 양옆으로 퍼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때 유세현은 한참 태형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무공...저, 정말 전대 마존님의 제자인가?”

“보고도 못 믿는 거냐?”

“...아니다. 믿는다.”

태형신이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짝짝짝.

난데없이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사월이었다.

“마존님을 뵙습니다.”

태형신이 재빨리 무릎을 꿇는 반면, 유세현은 당당한 자세 그대로를 유지했다.

양무원과 붉은머리의 남자는 위치를 지키듯 장사월의 3보 뒤에 떨어져 있었다.

장사월이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허허, 제법이로구나. 전대 마존님의 제자라고?”

“그렇다.”

반말조로 말하자, 들뜬 분위기가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마존의 면상에 대고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자는 현 마교에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교인들은 그가 마존의 얼굴을 몰라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험하다! 네놈 앞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게냐!”

주위를 호위하고 있던 대원 한 명이 버럭 외쳤다.

“물론 알고 있지. 현 교주 아닌가.”

알고 있단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 이놈이 감히! 알고도 입을 놀리는 게냐!”

-치잉!

보다 못한 대원 한 명이 검을 뽑았다.

막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되었다. 물러나라.”

장사월이 이를 제지했다.

“하지만 마존이시어!”

“되었다고 했다.”

“충!”

대원이 물러나자, 장사월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전대 마존께서 마존에게 그리 대하는 것이라 일러주시더냐.”

고도의 신경전.

장사월이 한 것은 일종의 무림식 패드립과도 같았지만, 과거 게임에서 키보드 워리어의 세례를 받아본 유세현이 이런 도발에 걸려들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난 당신에게 패배한 적이 없다만?”

갑작스러운 돌직구에 미처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장사월의 눈가가 한순간 와락 일그러졌다.

가만히 경청하던 교인도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저 말의 의미는!

“교주 장사월. 네게 서열전을 신청한다.”

“......”

내부 정황을 모를 터인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발톱을 드러내리라 장사월은 생각지 못했다.

교인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노려 곧바로 기회를 잡다니.

힘의 순리를 따르는 마교에게 있어 도전을 마다하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이 자식...’

보고를 들은 바와 같이 예삿놈이 아니다.

하지만 장사월은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크크큭, 크하하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장사월은 한동안 웃어댔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

“군림한 이래로 얼마만의 도전이란 말이냐! 좋다! 받아주마!”

“...그럼 바로...”

“다만.”

장사월이 말을 잘랐다.

“아쉽게도 지금은 할 일이 있구나. 딱 일주일. 일주일 뒤에 상대해 주도록 하마!”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직접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유세현에게는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쳇.’

유세현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그 마존에 그 부마존이라고 장사월을 직접 마주한 유세현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공만 사용한다면 100%.

기묘한 마법이 담겨있는 스크롤의 힘을 빌린다 해도 결국에는 자신이 승리할 것이다.

지금 끝내버릴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물론, 이 정도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수확이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유도되면 유도될수록 일행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테니까.

그때였다.

-지잉.

마력의 파동.

이질적인 마력이 살갗을 파고 드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가 마나스캔이란 마법을 사용했을 때의 느낌이다.

유세현의 고개가 붉은 머리의 남성을 향해 휙 돌아갔다.

‘무공을 배웠어.’

하지만 숙련도가 부족한지 느껴진다. 그리고 똑똑히 보인다.

자신을 훨씬 웃도는 방대한 양의 마력!

‘뭐냐...저놈은...’

그가 여태까지 봐온 모든 이들 중 가장 많은 마력을 지닌 자였다.

‘A랭크? 아니면 그 이상?’

랭크가 정확히 추정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마력량을...’

상당히 강한 마법사가 붙어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건 예상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저놈 정말 사람이 맞단 말인가?

A랭크는 판도라 외부에 없다고 들었었는데.

유세현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런 유세현을 주시하고 있던 셀론 또한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저놈...진짜 인간인가?”

둘은 잠시 서로를 주시했다.

그렇게 잠시 뒤.

“크크, 그럼 일주일 뒤에 보자 꾸나. 맘 바꾸고 도망치지 말거라 애송이.”

밑밥을 깐 장사월을 포함한 수족들은 곧 군중들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 *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새벽.

-파바밧.

유세현은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의 방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마력이 느껴진다.

‘상당한 고수들이군.’

수는 약 12명.

첫날부터 날뛴 자신에게 대응하듯 곧바로 자객을 보내다니.

허나, 그렇다고 처리하지 못할 일은 없다.

유세현은 항상 품에 쥐고 있는 루베르크를 꺼냈다.

달빛에 반사 되어 번뜩이는 흑광.

적이 바로 앞까지 다가 온 것을 느낀 유세현의 검에서 부패의 어둠이 흩뿌려져 나와 넝실 넝실 춤을 추었다.

앞으로 한 보.

그가 검을 내지르려던 찰나.

-똑똑똑.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암살자들이 문을 두드리다니?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계책인가?

“누구지?”

“나일세.”

익숙한 목소리.

서열전 이후로 많은 자와 대화를 나눴지만, 이 목소리는 유세현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태형신?”

“맞네. 나 쌍귀목, 태형신이네.”

못 잡아먹어 달려들던 처음에 비하자면 무척이나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하기야 이젠 유세현이 그보다 서열이 높다.

“웬일이지?”

“할 말이 있어서 왔네. 들어가고 싶네만. 아, 나 말고도 사람이 더 있으니 놀라지는 말고.”

“......”

할 말이 있다라.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일까.

유세현은 검을 쥔 자세 그대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언제든지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도록.

허나, 태형신과 나머지 11명이 갑자기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 야심한 밤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지?”

“......”

유세현이 묻자 태형신을 포함한 나머지 11명이 갑작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마대 태형신. 마존의 제자를 뵙습니다.”

공손하게 바뀐 말투.

단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유세현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강자들은 항상 직속호위대라는 것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독불장군 천마라고 해서 없었을 리는 없었을 터.

하지만.

유세현은 천마에게 천마대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었다. 허나, 이는 그 당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천마대?”

“그렇습니다.”

한 남성이 홀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해왔다.

“부대주 태백무입니다.”

“흠...그래. 태백무. 너희들이 천마대라는 건 잘 알겠어. 네가 부대주라는 것도. 그런데 그래서?”

“......”

“그걸 나에게 밝히는 이유가 뭐지?”

“저희는 이전 중원에서부터도 마존님을 모시...”

“하지만 너희는 스승님을 지키지 못했지. 너희들은 스승님이 계략에 휘말렸을 때 뭐하고 있었지?”

사실 유세현도 단편적으로만 알뿐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

태백무가 침음을 내뱉었다.

“큭...이런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그 당시의 기억은 저희도 잘나지 않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하지만 유세현은 다짜고짜 따지지 않았다. 그래봐야 꼰대밖에 더 되겠는가.

“자세히 말해봐.”

“그 당시...”

부교주 장사월이 인원을 소집했다.

천마대는 다른 이들이 지니고 있는 직속부대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서열을 가진 이들이었다.

즉, 그림자가 아닌 평소에는 일반적인 교인이라는 것.

“도착한 순간 난데없이 빛이 번뜩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세대교체가 끝나있었다.

“대주는 그때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유세현은 턱을 짚었다.

마법.

그래 마법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괴물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는 남자를 본적이 있었다.

놈이 사용하는 마법이라면.

“흠...좋아. 더 이상 그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게 죄송할 게 뭐가 있냐. 스승님에게 죄송해야지.”

“......”

“그보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냐?”

유세현이 거만한 자세로 물었다.

처음에는 어색하여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는데, 하다 보니까 제법 할 만하게 느껴진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모양.

“마존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흠, 부대주는 어떻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천마의 곁에서 생활하여 그의 성격을 아는 자들이라면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는 타인에게 의지하는 타입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태백무가 재차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저희 천마대의 목숨은 세현님의 것입니다.”

“.......”

신뢰하지도 않는데다가 필요 없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어찌 등을 맡긴단 말인가.

허나, 그것은 전투 시의 이야기.

“그래? 좋아. 받아주겠다.”

“충! 목숨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곧바로 너희들에게 묻겠다.”

“충! 무엇이든 답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장사월 옆에 있던 적발의 남자에 대해 아는 대로 다 말해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하.

셀론의 붉은 눈이 장사월을 향했다.

“장사월. 무공의 완성은 언제 되는 거지?”

“곧 이다. 곧.”

양무원과는 다르게 그는 운 좋게 실마리를 잡은 상태였다.

‘크큭 그래...마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인간 뿐만은 아니지.’

마수를 제물로 바쳤는데 의외로 좋게 반응한 것이다.

왜 이것을 진즉 생각하지 못했을까!

‘처녀와 마수. 그리고 그것을 커버해줄 충분한 제물만 있다면...’

완성해 낼 수 있다.

사상최강의 혈마공.

천마신공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을 상승 무공을!

셀론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천마의 제자라는 놈에게서 무공을 빼앗을 수는 없는 건가?”

“왜? 너도 그놈을 보니 세레나처럼 천마의 무공에 관심이 생긴 건가?”

장사월은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다.

이놈들은 항상 그렇다.

그놈의 천마. 천마. 천마.

자신을 항상 2인자의 자리에 머물게 했던 존재.

지겹고 치가 떨린다.

“기다려봐라. 그것보다도 훨씬 좋은 무공이 곧 만들어 질 테니까! 내 손에 의해서!”

< 천마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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