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66화 (166/612)

< 남궁세가(3) >

유세현으로서는 너무도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단번에 수락하자 무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지금 청년 앞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은 단순한 세가의 일원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남궁제.

그는 정사대전으로 인해 안타깝게 오른팔을 잃었다고는 하나, 검에 대해서만큼은 아직도 따라올 자가 없는 실력을 지닌 초절정의 고수였다.

그런데 단순히 스킬로 생을 연명해 왔을 일개 생존자가 한 세가의 가주인 남궁제와 비무를 펼치겠다니?

“허허, 호쾌하니 좋군. 안으로 들어가지.”

푸른색 청룡 자수가 박혀 있는 남궁제의 무복이 펄럭였다. 그 뒤를 따른 유세현이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연무장 위에 가 섰다.

살짝 거리를 둔 채 마주보는 두 사람.

유세현이 곧바로 검을 꺼내자, 남궁제가 은은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비무의 규칙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는가?”

“아뇨, 모릅니다.”

“흠...그럼 내 간단히 설명해주도록 하겠네.”

비무는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한 수 배움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대련자는 상대가 보다 더 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수 한 수 합을 나눌 때마다 초식명을 외쳐야만 한다.

짧은 설명을 들은 유세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흠...제 검술에는 그런 거창한 것이 없습니다만...”

“제국의 검술에는 명칭이 안 붙어 있단 말인가?”

“아뇨, 아마 붙어있을 겁니다.”

이제는 거의 실전된, 이강호가 사용하는 아르카드 제국의 창술에도 명칭이 붙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분명 검술에도 명칭은 있을 것이다.

허나.

“저는 검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얕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만, 상대는 검법을 구사하는 명문세가.

어차피 숨겨봐야 다 까발려질 것이기에 유세현은 그냥 있는 데로 답했다.

“흠...독학이란 말이군...”

그러자 남궁제의 표정에 미미한 변화가 일었다. 살짝 실망한 듯한 느낌.

유세현은 곧장 말을 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냥 검술명을 외치지 않고 비무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결형식인가...알겠네.”

먼저 권유해서 그런 것일까? 남궁제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에 유세현이 포권을 취한 뒤 양손으로 검을 쥐었다. 남궁제도 좌수로 검을 뽑았다.

-휘이잉

세찬 바람이 둘의 옷자락을 스친다.

유세현은 선수필승이라는 이념 하에 곧장 남궁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상대가 검법의 달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우선 긴 리치를 이용해 압박해 들어갔다.

챙! 챙!

서로 한데 어울려 맞부딪치는 검신.

배운 검술이 없다는 말에 적당히 상대해주려 했던 남궁제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져간다.

‘호오, 이놈보소?’

처음 그는 유세현이 높은 스텟만을 이용해 검을 휘두를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연격.

제 나름대로 상당히 고심했는지 검술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었다.

생각보다 높은 효율.

허나, 유세현이 남궁제의 이목을 끈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쉬이익!

한 순간에 파고든 남궁제의 검이 유세현의 가슴팍을 향했다.

좌에서 우로 가르는 횡 베기였기에 방어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검을 올려쳐 경로를 바꿀 필요성이 있었지만 유세현은 그러지 않았다.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경우, 그렇게 대응해서는 반격하기가 힘들기 때문.

“흡!”

유세현은 오른발을 치켜들어 남궁제의 검 옆면을 정확히 가격하는 반면, 그 반동을 이용해 백 덤블링을 했다.

잠시 들썩 뜬 남궁제의 팔!

눈을 번뜩 빛낸 유세현이 떨어지는 그 불안전한 자세 속에서 남궁제의 하반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슈슉.

순수한 검법 사용자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모든 육체를 이용한, 실로 복합적인 공격이었다.

결국 남궁제는 경신술을 사용해 몸을 뒤로 빼야만 했고, 그사이 유세현은 낙법을 펼쳐 자세를 다잡았다.

“헉!”

본의 아니게 동행하게 되어 비무를 관전하고 있던 무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매서운 남궁제의 공격을 전부 받아쳤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하다니?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무사뿐만이 아니었다.

대련 당사자인 남궁제.

그 또한 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게 정녕 홀로 익힌 검술이라는 건가?’

이름이 없어서 그렇지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3류, 2류 보다도 훨씬 괜찮은 솜씨였다.

‘이놈...재능이 있군.’

그는 문득 유세현이 어디까지 반응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별안간 번쩍 뜬 남중제의 두 눈에서 예기가 터져 나온다.

동시에 해방되는 마력!

정말 찰나의 순간 만에 거리를 좁힌 남궁제의 검이 유세현을 향해 쇄도했다.

상하좌우, 매섭게 몰아치는 검신을 따라 공기가 공명하여 파공성이 이르고, 바람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남궁세가의 비전검술 중 하나인 천풍검법(天風劍法).

이 검법에는 극에 달하는 쾌(快)가 담겨져 있는 덕에, 빠르기 하나만큼으로는 무림제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큭!”

1초식, 2초식, 3초식.

초식이 이어질 때마다 아슬아슬한 광경이 펼쳐진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빨라질 수 있는 거지? 스킬인가? 아니...마력의 소비는 없는데...’

유세현은 비무고 자시고 암흑투기를 사용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허나, 이것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대련.

“흐아압!”

-챙!

유세현은 온 힘을 다해 남궁제의 검을 쳐냈다.

-치지직.

뒤로 3보 물러난 남궁제가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이걸 전부 막아내다니...”

“후우...후우...”

이에 유세현이 숨을 달래며 고개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지금껏 힘겹게 검을 쳐내느라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하나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 뭐지 저건?’

선처럼 이어진 마력이 일정한 경로로 남궁제의 전신을 활발하게 돌고 있다.

그는 저것 때문에 남궁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몸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의 마력이 단전을 거쳐 내부를 돌고 있긴 하다.

허나, 저렇게 일정한 경로를 통과하지 않았으며, 활발하지도 않았다.

“다시 가도록 하겠네.”

생각할 틈도 없이 남궁제의 검이 다시 몰아쳤다.

이전의 검술이 쾌를 담고 있었다면, 한차례 변화한 지금은 무거움을 담고 있었다.

‘제왕검형(帝王劍形) 1초식 중(重)!’

-콰앙!

두개의 검이 정면에서 부딪치자 이전보다도 더 큰 파공성이 일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

소리를 들은 이강호를 포함한 여러 무사들이 차례차례 대로 연무장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는 남궁시영과 남궁표도 있었다.

비무를 벌이고 있는 남궁제를 확인한 남궁표가 깜짝 놀라 안내역을 맡았던 무사를 향해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왜 가주님께서 저자와 비무를...”

“그, 그게 어르신께서 직접 제안하셨습니다.”

“뭐? 직접?”

남궁표와 남궁시영의 고개가 대련을 벌이고 있는 쪽으로 다시 획 돌아갔다.

유세현은 그때 한창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하고.

유세현이 밑발차기를 날리자 남궁표가 지그시 혀를 찼다.

비무란 본디 초식을 밝히며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인데, 유세현이 하고 있는 것은 그저 천박한 개싸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남궁표는 모든 무사들이 자신처럼 생각할 것이라 믿었다.

허나.

“저 무사...가주님의 검술을 받아내고 있는데?”

“그러게 정말 대단하군...그런데 무공은 사용하지 않기로 한 건가?”

반응이 달랐다.

개처럼 싸우지만, 그래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버티고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기 때문.

“흠...관객들이 많아졌군.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

“마지막은 제대로 가보겠네.”

말을 마친 남궁제의 검에서 강한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세가의 사람들과 이강호는 그가 사용한 무공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검법과 더불어 남궁세가를 최고의 위치까지 올려준 최강의 뇌공.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

그 중에서도 지금 남궁제가 사용한 무공은 검에 뇌전을 부여하는 비전절기인 천뢰경(天雷炅)이었다.

남궁제가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유세현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

그는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다. 행여나 그에게 이 뇌공과 비견될만한 무엇인가가 있는지 없는지를.

이에 자세를 다잡은 유세현이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흑뢰검.’

-치치직!

똑같은 뇌전. 상반된 색.

‘무공인가?’

남궁제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공이든 아니든 그 무엇이 중요하랴.

관중들도 어느새 하던 대화도 끊고 숨 죽여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표는 어이가 없었다.

세가의 인원이라는 자들이 천뢰경(天雷炅)의 위력을 감히 의심하다니.

그는 상대가 완전히 박살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궁제가 마지막에 분명 검을 거둬 줄 테지만, 천뢰경이 부여된 제왕군림검(帝王君臨劍)에 닿은 대적자의 무기는 더 이상 성치 못하리라.

“하압!”

기합과 함께 이윽고 두 검이 격돌했다. 그 순간 남궁표와 남궁시영, 주위 모든 무사들은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콰앙!

-치지지직!

꿈틀거리는 흑빛의 뇌전이 천뢰경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이게 무슨! 천뢰경이!”

남궁표가 당황하여 외치고, 남궁시영도 경악을 터트렸다.

또한 이 순간만큼은 남궁제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큭! 무슨 무공이냐 이건!’

뇌기를 상쇄시키는 게 아니라 흡수하다니!

‘흡기공?’

아니, 아니었다. 그런 저급한 무공으로 천뢰경을 잡아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더 나아가 이자는 무림인도 아니지 않는가!

오기가 생긴 그가 더 높은 경지의 무공을 사용하려는 찰나였다.

-스스스.

사그라드는 흑빛의 뇌전. 유세현이 검을 거뒀다.

“이쯤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그냥 끝내겠다는 건가?”

“예, 격돌하기 전에 마지막이라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런 말을 했긴 했다. 사실 1합에 끝낼 생각이기도 했고.

물론 자신의 승리로.

유세현이 포권을 취했다.

“대련 감사합니다. 덕분에 식견이 많이 늘은 것 같습니다.”

유세현이 조심히 물러서자, 남궁제의 얼굴에 이채가 어렸다.

계속 검술로 당했던 터라 많이 분했을 터인데 자그만 한 생채기도 입히지 않고 끝내다니.

앞으로 나아기 위한 호기로움과 자만하지 않는 실력. 더 나아가 사사로운 기분에 휩쓸리지 않는 차분함.

남궁제가 연무장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자네들, 무림에 진출한다고 했지? 그럼 담소도 나눌 겸 저녁이나 같이 들겠나? 물론, 자네의 동료들도 껴서 말일세.”

“예, 알겠습니다.”

정보를 알려준다는 의미와 다름이 없었기에 유세현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 조금 후에 보세나.”

남궁제가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자, 유세현은 사랑채로 들어갔다.

온통 땀에 찌들어 찝찝해진 육신.

김주희에게 운디네를 불러 달라 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남궁시영이었다. 물이 준비되어있으니 샤워를 하라고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것.

“옷은 바로 앞에다가 놔두겠습니다.”

더 나아가 남궁세가는 그들에게 편안한 옷까지 제공했다.

갑옷을 착용 있는 게 안정감이 훨씬 뛰어났지만, 지금 이곳은 남궁세가의 저택.

그들은 간편한 복장에 무기만 소지한 채 내부로 들어섰다.

“허허, 어서들 오게.”

남궁제의 옆에는 각 남궁표와 남궁시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자리에 착석하자 의미 있는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 * *

“호오...그럼 당장 내일 떠나는 게로군.”

“예.”

많은 잡담이 오갔다. 유세현은 이곳에 떨어진 후의 얘기를 대충 지어서 했고, 남궁제는 무림의 대한 것과 과거 중원에서 펼쳤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남궁표는 어차피 의무로 참석한 것이기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는 어디로 가볼 생각인가?”

“그...황보세가 쪽으로 가볼 생각 입니다.”

“흠, 괜찮군. 무위를 겨루기에는 그들만큼 좋은 상대도 없지. 그런데 자네들...”

잠시 말꼬리를 늘렸던 남궁제가 곧바로 다시 이었다.

“혹시 가는 길은 아는가?”

“......”

안다고 해도 모르는 척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유세현이 대표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남궁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유세현은 그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안내인이 필요하겠군.”

“...예?”

“안내인을 한명 붙여주도록 하겠네. 따라서 가면 쉬울게야.”

“아니, 꼭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아닐세. 거절하지 말게나.”

극구 거부해도 계속 권유하는 것이 남궁제는 어떻게든 반드시 안내인을 일행에 끼어 넣을 생각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기에.

‘나중에 돌려보내면 되겠지.’

혹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순간 처리해버리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안내역할을...”

“하하. 그건 걱정 말게나. 지금 자네 앞에 있으니.”

“......”

그의 말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일행을 제외한 4명을 빼고, 방안에 있는 사람은 남궁제를 포함한 남궁표, 남궁시영 뿐이었기 때문.

“우리 시영이가 안내해 줄 걸세. 허허허.”

재차 이어진 말에 남궁시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남궁세가(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