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적(1) >
당사자로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갑자기 안내역을 맡으라니?
“예? 제가 말인가요?”
“그래, 시영아. 너도 소가주가 된 마당에 견식을 더 높여야 하지 않겠느냐. 함께하면서 같이 배우도록 하거라.”
같이 배워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남궁시영은 남궁제가 의도한 바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남궁제는 어떤 식으로든 이들을 세가에 속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 아니면, 그 정도까지는 안 되더라도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거나.
“아버님...아니, 가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허허, 그래.”
남궁제가 너털웃음을 짓는 반면 남궁표의 인상은 착 가라앉았다.
그는 속으로 연신 욕을 내뱉고 있었다.
‘젠장...저놈들은 하필 왜 지금 나타나가지고...’
저런 강자들이 곁에 있다면, 암살을 행하기 어려워진다.
완만한 일처리를 위해서는 남궁시영이 따라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만 하는 것!
“그럼 밤도 깊었는데 이만 방에 돌아가서 쉬게나.”
“예, 알겠습니다. 저녁,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허허...차린 것도 별로 없었는데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이윽고 일행은 문밖으로 자취를 감췄다. 남궁제의 입가에는 그때까지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엄청 마음에 든 모양이군.’
남궁표가 그제야 입을 뗐다.
“가주님, 송구한 말이지만 저는 소가주가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흠...왜 그렇게 생각하지?”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허허, 고작 마교 놈에게 한번 당했다고 움츠려 들어서야...”
“혈독사(血毒蛇)와 도광(刀狂) 등 사파의 잔당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만약 길목에서 조우하기라도 한다면...”
혈독사와 도광은 남궁제와 비등비등한 실력을 지닌 실력자이다.
또한 2:1의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도광은 남궁제의 오른팔을 잃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도광의 말이 나오자 남궁제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표야, 그렇게 하나하나 겁먹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예,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소가주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가주님의 직계 자손입니다. 만약 잘못되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남궁제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이는 남궁시영에게 호위를 붙이겠다는 뜻이리라.
‘쳇, 청풍대나 적풍대 둘 중 하나를 붙일 생각인가? 젠장...한 번에 끝냈어야 됐는데’
기회를 놓치니 일이 점점 꼬여간다.
“표야, 시영이랑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너도 이만 나가 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남궁표는 일을 전면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남궁제가 남궁시영을 향해 말했다.
“시영아. 혹시 나머지 세 명의 실력도 보았느냐?”
“예.”
“어떻더냐.”
“전부 드러내진 않아 확실히는 알 수 없었으나 그...유세현이라는 남자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남궁제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말.
“그런데 말이다 시영아.”
도광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보다 심각함을 머금은 그 모습에 남궁시영은 살짝 당황하여 안색을 굳혔다.
둘만 있을 때 그가 이런 표정을 한 것을 그녀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예. 가주님.”
“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만...”
“예.”
대체 무엇을 물으려 이런단 말인가.
-꿀꺽
찌리는 것이 딱히 없었지만,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남궁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유세현 말이다...”
“예.”
“네가 보기에 인상이 어떻더냐? 괜찮더냐?”
“...예?”
“허허,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 보는 게다. 허허허.”
“......”
남궁제의 멋쩍은 웃음에 남궁시영의 입이 굳게 닫혔다.
“......”
내부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
둘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 * *
일행보다도 앞서 걷는 남궁시영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그렇게 마음에 드신 건가? 단 한 번의 비무로?’
어젯밤, 아버지 남궁제가 한 말의 뜻을 그녀는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질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세현을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 하냐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간 자신에게 청혼해온 남자들의 팔모가지를 부러트리려 했던 것을 고려하자면 정말 신기한 발언이었다.
‘확실히 강하긴 하지.’
마땅한 무공도 없이, 검술도 독학인 주제에 남궁세가의 가주인 아버지와 맞먹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남궁세가의 무공과 검술을 익힌다면?
‘음...’
그렇게 생각하니 남궁시영은 왠지 모르게 아버지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필히 상상할 수도 없는 괴물이 탄생하리라.
어느 정도 질주한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얼마쯤 가야 됩니까?”
“아직 제법 거리가 남았어요. 족히 하루는 가야 되요.”
대답을 하기위해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에 유세현을 얼굴이 들어왔다.
‘음...나쁘지는 않네.’
마음에 안 드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것도 아니었지만.
1초 쯤 시선이 머물렀을 때였다.
날카로우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무형의 기운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관통할 듯 꾹꾹 찔렀다.
‘살기!’
남궁시영이 재빨리 근원지를 살폈지만, 그곳에는 휘파람을 불고 있는 김주희만이 있을 뿐이었다.
‘뭐지? 착각한 건가?’
오감이란 것은 확실하지 않은데다가, 그녀가 자신을 죽일 이유는 없기에 그녀는 이내 신경을 껐다.
허나, 그 이후로도 그녀는 간혹 비슷한 느낌을 느껴야만 했다.
* * *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저녁.
남궁표가 등을 양옆으로 세 번 흔들자 나무위에서 하나의 인형(人形)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성, 이도명의 얼굴을 확인한 남궁표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너희들의 안일함 덕에 일만 더 꼬였다. 왜 최고수준의 무사를 보내지 않은 거지?”
“흥! 그 당시 투입된 인원도 한 가닥 하는 놈들이었다. 그냥 운이 없었을 뿐이야. 그리고 이걸 따지려고 다시 보자고 한 건가?”
남궁표의 격언에도 이도명은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남궁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마교의 손을 빌리는 이상 지나간 과거를 따져봤자 감정만 더 안 좋아질 뿐이다. 또한 죽은 것도 어차피 그들의 무사였다.
“후...알았다. 다시 본제로 돌아가지.”
“진즉 그래야지. 분명 한 놈은 남궁제와 비슷한 실력을 지녔다고 했었나?”
“그렇다. 대등한 동료처럼 보였으니 나머지 세 명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 예상한다. 이제 애매한 놈들로는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남궁표의 말에 이도명은 콧방귀를 뀌었다.
오른팔이 있던 남궁제라면 인정했을 것이다.
허나, 오른팔이 잘린 지금은 그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그놈들 무인이 아니라며?”
“그렇지. 하지만 코인을 무지막지하게 흡수한 것 같았다.”
“크큭. 기본 스텟이 높다는 건가...걱정마라 일격에 보내버릴 거니까. 그보다 처리하면 미리 약조한 것이나 확실히 지켜라.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걱정마라. 나는 너희와는 다르니까.
남궁표가 자르자 이도명은 기분 나쁜 조소를 터트렸다.
“크큭, 우리와 다르다라...”
이복동생을 죽이려는 주제에 말은 참 그럴싸하다.
남궁표가 애써 이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적풍대원 몇 명이 주위를 맴돌며 호위하고 있다.”
“큭큭큭. 몇 명 정도라면야 뭐...처리해도 상관은 없는 거겠지?”
“...그렇다.”
“크크, 그래 좋아 좋아 다 죽여주지.”
그 말을 끝으로 이도명은 어둠에 동화되어 자취를 감췄다.
“쓰레기 같은 마교 놈들.”
남궁표가 몸을 돌렸다. 2류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 저렇게 있는지 그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 * *
유세현은 이강호를 슬쩍 쳐다봤다. 꽤나 괜찮은 표정.
적어도 함께하는 동안에는 남궁시영이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그나마 다행이네.”
“그러게 일이 이렇게도 되네.”
“흠...그런데 남궁표가 움직일까?”
“글쎄...”
믿고 있었던 이에게 배신당했다.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이것 하나뿐이었지만, 일행은 범인을 남궁표라고 어느 정도 확정지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직계 자식인 남궁시영이 죽었을 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가주의 지위를 얻게 될 남궁표였기 때문.
그리고 그가 정말로 소가주의 자리를 얻을 생각이라면, 남궁시영이 자격을 갖추기 전에 어떻게든 제거하려할 것이다.
“그깟 자리가 대체 뭐라고...”
“아니, 무인들에게 있어서 그 자리는 그깟 것이 아니야.”
“응? 왜?”
“오직 뒤를 이을 소가주 만이 일인전승 되는 무공을 하사받기 때문이지.”
“......”
일인전승무공. 말 그대로 한명에게만 전해지는 무공.
유세현은 어이가 없었다. 무공은 확실히 뛰어난 스킬이긴 하지만 가족 같은 이를 배신해가면서까지 얻어야 될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어이가 없네.”
유세현은 실소를 내뱉으며 남궁시영의 뒤를 따라 황보세가의 저택내부로 들어섰다.
“허허허, 이게 누군가! 남궁세가의 소가주님이시군!”
황보세가에는 유난히 호한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권법을 사용했는데, 성정이 호쾌하고 불같은 것이 이태광과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그들은 곧장 비무를 벌였다.
“흠...무공이 없다라...알겠네.”
남궁제와 같이 얕보는 느낌.
허나, 이강호가 실력을 발휘하자 상대는 깜짝 놀라서 전력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남궁시영을 포함한 관전자들은 압도하는 이강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탓.
무기술 면에서만 따지자면 이강호는 유세현과는 차원이 달랐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고 빈틈이 없다.
완벽한 창술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져, 졌다...”
결국 황보세가의 일원이 항복하는 것으로 이강호의 비무는 끝을 고했다.
그 후 곧바로 김주희의 비무가 이어졌다.
매우 비슷한 창술. 허나, 이강호에 비해서 완벽하지는 않았다.
남궁시영이 자신도 모르게 이강호를 향해 물었다.
“혹시, 공께서 직접 창술을 가르쳐 주신 건가요?”
“예.”
“오호...”
남궁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가 진짜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냥 알려 주었는가, 아니면 특별한 관계이기에 알려 준 것인가.
무림인들은 혼인을 치르지 않는 한 각별한 사이일지언정 검법이나 권법 등을 공유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것이 아닌, 문파나 가문의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
그렇기에 그냥 알려준 것이라면 저 여자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창술은 남궁세가의 검법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 수준이 높았으니까.
‘물어볼까 말까.’
평생 무림인들의 사이에서만 살아온 남궁시영의 내면에 짙은 갈등이 일었다.
‘그래 어차피 아르카드 제국인이니까...’
그녀는 눈 딱 감고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 제자 인건가요?”
“아뇨, 동료입니다.”
“그럼 창술은...”
“믿음직한 동료가 강해지면 좋은 법이죠.”
다른 무림인 들었다면 뒤로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그때 때마침 비무가 끝났다. 승자는 높은 스텟을 지니고 있는 김주희.
“후우...강하군...”
만족스러운 비무였는지 중얼거리는 무사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일행은 하룻밤을 머물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남궁제에게 대충 둘러대서 그렇지 본래 그들이 가려던 장소는 황보세가가 아니었다.
그들이 현재 향하는 장소는 정사대전으로 인해 멸문한 자들이 몰려들게 된 곳.
개방!
날이 어두워져 이동을 멈춘 일행의 주위로 풀숲이 세차게 흔들렸다.
마력양의 흐름이 읽고 있던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주희, 이강호, 아퀼라가 동시에 일어났다. 이에, 뭔지 예상하지 못한 남궁시영도 황급히 자세를 다잡았다.
“무슨 일이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휘익!
이에 유세현의 검이 풀숲을 베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보이지 않는 적(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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