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65화 (165/612)

< 남궁세가(2) >

“후우...후우...”

마교의 일원들이 다 쓰러졌음에도 그녀는 치켜세운 검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유세현은 굳이 닦달하지 않았다. 되려 루베르크를 검집에 집어넣어 전투의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혔다.

대치를 이어가던 남궁시영은 그제야 검을 거두며 고개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단번에 적대 행위를 푸는 나머지 사람들.

앞으로 나온 그녀가 포권을 취했다.

“도움,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차녀 남궁시영이라고 합니다.”

“아르카드 제국에서 온 유세현입니다.”

“아...”

한 순간 갑옷을 살핀 남궁시영이 말을 이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아르카드 제국은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져있습니다만 귀공들께서는 어쩌다가 이런 곳까지 다다르게 되신 겁니까?”

은근히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어떤 말이 정답인지 모르는 유세현이 이강호를 바라봤다.

“무림에 이름을 알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예?”

너무도 직설적인 말.

까놓고 말하자 남궁시영은 당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사표...를 던지러 왔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무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 말을 대체 어디서...”

“무인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무인.

이 말에 남궁시영이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르카드 제국에도 무인들은 있다.

비록, 무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삼류지만.

“그런데 일단 무작정 온 것이라 무림에 발을 내딛으려면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별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녀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야 무척 크고 거창했지만, 일반인들이 사라진 지금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비무는 그냥 각 세가나, 문파에 가서 신청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이강호가 이렇게 말한 이유.

남궁시영의 표정이 난처하게 변했다.

정체가 확실하지 않다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상대는 은공.

원하는 것을 들어 주려면 일단 세가로 데려가야 했는데, 지금 같은 시기에는 이게 여간 꺼림직 한 게 아니었다.

[소가주님! 설마 동행하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마교에서 내부로 침투시키기 위해 보낸 첩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여자의 뿔을 보십시오! 여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많은 전음이 오간다.

남궁시영의 눈이 아퀼라를 향했다. 확실히 인간이 아닌 모습.

그녀는 고민했다.

그리고 망설이는 남궁시영을 보며 이강호의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었나?’

과거 그녀의 성격은 그와 비슷한 현실주의자였다. 사람들을 쉽게 신뢰하지 않았으며, 조금이라도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 의심이 되면 칼 같이 잘랐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된 이유를 이강호는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었다고 했지.’

그녀는 신의 회중시계를 얻으러 가기 전날 이강호를 불러낸 바가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 마냥.

허나 그녀는 그 끝내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저, 다시 만난도 잘 부탁한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흠...만일 그 일을 벌써 겪었다면 의심병이 도졌을 텐데.’

이 뜻은 그녀의 성격이 뒤틀릴 일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잠시 고민하던 남궁시영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

[소가주님!]

다른 사람들이 놀란 표정이 되어 남궁시영을 바라봤지만, 남궁시영은 한마디로 그들을 묵살했다.

[제가 마교의 첩자라면 저런 마물 같은 여자는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저들은 방도를 알려달라고 했지 데려가 달라고 직접적으로 거론 하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의의는 듣지 않겠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갚는 것이 무인. 그녀는 단호했다.

* * *

‘젠장, 저 놈들은 진짜 대체 뭐야?’

남궁시영의 뒤에 바짝 붙어 매서운 속도로 이동하던 남성, 남궁회가 일행을 슬쩍 흘겼다.

유세현 일행이 한 짓은 그의 입장에선 다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이었다.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죽여 버리다니.

‘이런...이래서는 계획이...’

본래 그가 하려던 것은 무척 간단했다.

마교의 힘을 빌어 소가주를 이곳에서 제거한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 소공자 남궁표가 확실하게 가주가 될 수 있도록.

가주에게만 하사 되는 비전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장소로 유도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매복까지 실로 완벽한 계략이었다.

그런데, 고작 4명에게 산산이 박살났다.

이를 어떻게 보고해야 될지 남궁회는 생각했다.

그때 눈앞으로 보이는 높은 울타리.

남궁세가의 저택의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볼프강 가(家)와 비등비등할 만큼 꽤나 높았다.

“소가주님께서 돌아오셨다!”

문지기가 외치자 문이 서서히 열렸다.

남궁시영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 목재로 건축해놓은 커다란 저택이 눈에 띄었다. 곧 내부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궁시영을 본 남성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으나, 이내, 재빨리 미소를 지어보였다.

“돌아오셨군요. 소가주님.”

“에이~오라버니도 참.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그냥 이전처럼 편하게 부르세요.”

“하하, 그럴 순 없죠. 그보다 어떠셨습니까?”

“안타깝게도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오라버니가 살펴보신 곳은요?”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보다 동행하신 분이 계신 것 같은데 저분들은?”

“아...이 분들은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에요.”

“...도왔단 말인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마교의 일당들에게 갑자기 급습 당했어요.”

“...이야기가 길어지겠군요. 우선 방으로...”

남궁표가 사랑채를 향해 팔을 뻗자, 남궁시영이 일행을 안내했다.

방에 막 들어가려는 순간, 한 무사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무기를 착용하고 들어가실 수는 없습니다.”

무인에게나, 일반 생존자에게나 무기는 제 2의 생명.

유세현과 이강호가 의문어린 표정을 짓자, 남궁표가 얼른 제지했다.

“소가주님의 손님이시네. 괜찮아.”

“하지만...알겠습니다.”

남궁표가 눈을 번쩍 빛내자 무사는 뒤로 물러섰다.

“앉으시지요. 차를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남궁표는 사람 한명을 불렀다.

곧 향이 좋은 차 6개가 그들의 앞으로 대령했다.

남궁표가 곧바로 일행을 향해 권했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얼마나 자신들을 믿고 있는지 떠보는 행위였다. 이강호의 입이 살짝 올라갔다.

그들의 평균 스텟은 B랭크 80%.

그에 비해 독 저항력은 C랭크 10%정도로 낮은 수준이었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를 홀짝 들이켰다.

남궁시영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대놓고 수작을 부리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가 다시 펴진 남궁표가 말을 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세히...”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더러운 마교 놈들...”

내용을 들은 남궁표가 치를 떨었다. 누이를 잃을 뻔한 분노가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허나, 그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놈들을 다 죽였다는 건가?’

남궁시영을 포획하기 위해서 그들은 제법 엄선된 자들을 보냈을 터였다. 그런데 달랑 4명이서 다 죽이다니?

추후 남궁회에게 정황을 듣기로 마음먹은 남궁표는 일단 생각을 접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다시 계획을 짜는 것.

“우선 소가주님을 구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우연일 뿐입니다.”

“하하. 그런 것을 기연이라고 하죠. 하늘이 도왔군요.”

남궁시영이 머쓱한 표정이 되어 볼을 긁적였다.

그녀는 사실 그 자리에서 어찌어찌 도망칠 수 있었다. 허나, 그러지 않은 이유는 자신을 따르던 이들을 버리게 되는 꼴이라서.

그녀는 이제 와서 구차한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보답을 위해 그들을 데려온 것이고.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남궁표가 패 하나를 내밀었다.

“이 패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이걸 보여주면서 각 문파로 가서 비무를 신청하면 순탄하게 받아줄 것입니다.”

“오, 정말 감사합니다.”

“곧 해가 질 테니 하루 머물고 내일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배려에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남궁표와 남궁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꽤 순탄한 출발.

허나, 이강호의 표정은 그렇게 탐탁치만은 않아보였다.

“일도 잘 풀렸는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어?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말해봐.”

결국 재촉에 이강호는 과거를 털어놨다. 내용을 들은 유세현과 김주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강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뭔데?”

“아니...”

그가 이런 관심을 보이는 자가 있었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김주희의 돌직구.

“둘이 사귀는 사이셨어요?”

평소 그 무엇이든 단번에 답을 내놓던 이강호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아니...그런 건 아니야.”

잠시 마음이 동한 적이 있긴 있었다. 허나, 그 당시는 상황이 급박해 정을 나눌 틈 따위는 없었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은 굳어져 만가 나중에는 믿음직한 동료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좋아했긴 했다는 거네요?”

“뭐, 그런 때가 있었지.”

“그럴 때가 아니고, 지금도 괜찮게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요?”

확실히 그럴지도 몰랐다.

이전과 달리 지금은 유세현덕에 감정이 꽤나 돌아왔으니까. 좋아하는 감정이 돌아와도 이상하진 않으리라.

허나.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

최대한 적이 강해지기 전에 먼저 강해져서 없앤다.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소비하며 적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은 만화에서 나오는 악당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그 악당의 100에 99는 마지막에 땅을 치고 후회한다. 미리 죽여 놨어야했다고.

유세현이 툭 말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

이강호는 묵념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유세현이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강호야, 네가 이전에 나한테 해준 말 기억하냐? 소중한 걸 포기하고 승리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고.”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회귀를 안 한 자이기에 가능한 일.

자신은 그것을 누릴 권한이 없다.

자신은 무조건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자신을 과거로 보내기 위해 대신 죽었던 모든 이들의 짐을 짊어지고, 이번에는 승리하기 위해서.

“흠...그게 네 선택이라면...”

유세현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재빨리 무사 한 명이 뒤로 따라 붙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바람 좀 쐬려고요. 괜찮죠?”

“예, 대신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명을 내려놨는지, 행동에 제약은 없었다.

그는 붉은 노을이 져가는 저택을 거닐었다.

남궁세가의 저택은 산골에 있는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그에 비해 사람이 없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무식하게 크게 지은 것인가. 아니면, 죽어 없어진 것인가.

-훙! 훙!

저편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이라도 하는 건가?’

그가 연무장에 무심코 발을 들이려는 순간이었다.

“잠시 멈춰주십시오.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장소 입니다.”

유세현은 발을 딱 멈췄다.

그러고 보니 무림인들은 타인에게 수련장면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고 들은바가 있다.

얼마나 잘났기에 그리 유출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는 검을 사용한다고 했었지.’

천하제일검, 검왕 등 검에 대해서만큼은 무림 최고를 달리는 남궁세가지만, 유세현이 거기까지 알리가 없었다.

이왕 지나가는 시간, 마구잡이식으로 익혀온 자신의 검술이 어느 정도 통하는지 알고 싶었던 유세현이 별 생각 없이 툭 말했다.

“저기, 혹시 안에 계신 분과 비무 한번 겨뤄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얼굴도 안보고 겨뤄 보고 싶다는 말에, 무사는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이 안에 계신 분은 이 남궁세가의 가...”

그가 채 말을 끝내지 못했을 때였다.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연무장 내부에서 중년으로 보이는 남성이 걸어 나왔다. 유세현의 시선이 복부로 향했다.

엄청나게 압축되어있는 마력. 실로 어마어마한 마력량이었다.

‘B랭크 70% 아니, 나와 호각인가?’

유세현이 포권을 취했지만, 중년은 왼쪽 주먹만 들어 올릴 뿐이었다. 유세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남자에게 오른팔이 없다는 것을.

“허허, 자네가 시영이를 구해줬다는 은공인가 보군. 정말 고맙네.”

“우연히 지나가던 차였을 뿐입니다.”

“그런 걸 기연이라고 하지. 아르카드제국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비무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가?”

“예. 그걸 위해서 이곳에 왔으니까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자, 중년의 남성의 눈이 번뜩 빛났다.

“허허, 요새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기위해 돌아다니는 자는 드물지. 나라도 괜찮으면 상대해 주겠네만...어떤가?”

< 남궁세가(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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