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악마 아스모데우스(1) >
쫓고 쫓기는 추격전.
일행은 장장 반나절이라는 시간 동안 마벨을 집요하게 노렸다.
동굴에 몸을 숨어도, 경로를 바꿔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유세현은 마력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그 결과 마벨은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마족화를 사용하여 일행을 따돌려야만 했다.
땀에 전 육신과 군데군데 흘러나오는 피.
“허억 허억, 대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그걸 말이라고!”
[킥! 그게 내 탓인가?]
“너어!”
[그보다 이거하나는 분명하군.]
“뭐!”
[넌 진지로 복귀하지 못해. 너도 느끼고 있겠지?]
분을 토해내던 마벨의 입이 꾹 닫혔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라면 중간에 붙잡혀 죽게 될 것이다.
[마을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나를 소환해라!]
“급조하라는 건가? 힘이 많이 떨어질 텐데? 놈들을 바로 죽일 수 있는 거냐?”
[물론이다. 그런 다 죽어가는 놈들 따위 새끼손가락만으로도 충분하지.]
“좋아, 그렇다면!”
거리를 두기 위해, 그는 수명을 한 번 더 바쳤다. 미친 듯이 달리는 그의 눈앞에 울타리가 비쳐 보였다.
* * *
반으로 잘려나가 있는 병사의 육신과 뇌수를 흩뿌리며 죽어있는 마을 주민.
마을의 상태는 무척이나 처참했다.
모종의 불안감을 느낀 일행은 흔적을 찾아 황급히 마벨이 위치해 있는 장소를 향했다.
-쿵!
문을 부숴버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커다란 마법진과 그 중간에 쓰러져있는 캐서린이었다. 주위로는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져 있었으며, 마법진 밖에서는 마벨이 눈을 감은 채 무엇인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너무 작은 목소리라 잘 들리지는 않았으나, 딱히 듣지 않아도 다들 예상이 가능했다.
“큭!”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마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마벨이 눈을 번쩍 떴다.
한순간 붉은 빛을 발하는 마법진.
-치지직
-쾅!
벼락이 떨어진 주위로 연기가 피어올라 주위를 가득 메웠다. 최선두에서 나아가던 유세현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왜냐하면.
“크하하하! 너희는 끝났다! 강림! 악마가 마침내 이 세계에 강림했다!”
유세현은 캐서린이라기에는 너무 비대해진, 실루엣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정신이 없을 때 단숨에 끝을 보려는 심산이었지만, 우습게도 공격을 허용한 쪽은 유세현이었다.
-빠악!
“크윽!”
무시할 수 없는 실로 어마어마한 충격!
폐에 상당한 손상이 갔는지 각혈이 뿜어져 나왔다.
기습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강호와 이벨린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연기가 걷히며 실루엣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커다란 날개와 붉은색 피부.
놈의 이마에는 흉흉한 뿔이 하나 돋아 있었으며, 양 볼에는 커다란 집게발 달려 있었다.
마계서열 32위 대악마, 아스모데우스.
아스모데우스는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는데 뭔가 맘에 안 드는지 인상이 꽤나 구겨져 있었다.
마벨이 성큼성큼 아스모데우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은 아스모데우스와는 반대로 환의에 차 있었다.
“크크크, 대악마 아스모데우스! 저들을 죽여라! 이전 맹세했던 계약을 지켜라!”
[젠장, 이렇게 불완전하다니...]
“아스모데우스! 계약을...”
[쫑알 쫑알 시끄럽군. 알고 있어, 잘 알고 있다고. 계약을 이행하면 되는 거지?]
아스모데우스가 마벨을 응시했다. 마벨은 잠시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큭큭 그래! 계약을 이행하면 된다!”
[좋다. 나 대악마 아스모데우스 지금부터 계약을 이행하겠다.]
“그래! 어서 저들은 죽이고 왕국을...”
-푹.
빛처럼 빠르게 움직인 아스모데우스의 손이 마벨의 가슴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마벨이 위아래를 반복해 살폈다.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눈빛.
“왜, 왜...나를...”
[왕국의 완전한 멸망을 바란 것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한 명도 살아있어서는 안 되지. 그런데 네놈도 왕국인 이잖아?]
“뭐...뭐? 그게 무슨 개소...”
[큭큭큭. 너의 비원은 들어줄 것이다. 단, 보지는 못하겠지.]
“너, 너 이 자식! 아스모데우스으으으으!”
[계약은 신중이 하는 거다. 어리석은 인간아.]
아스모데우스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단번에 박살나며, 마벨의 육신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갖은 고생을 하며 악마를 되살린 자 치고는 허망한 최후.
피를 핥는 아스모데우스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크크크...]
“.......”
[크하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지! 이 피 맛! 인간의 피는 너무 달콤하단 말이야!]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이 일행, 아니 이벨린을 향했다.
[거기 인간여자, 혹시 처녀냐?]
“......”
[꼭, 그랬으면 좋겠군. 지금 내가 많이 배가 고파서 말이야.]
아스모데우스가 한 발 앞으로 내딛자, 강풍이 일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를 웃도는 실로 엄청난 속도.
-후웅!
얼굴로 장창이 날아드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이 전력으로 암흑투기를 발동시키며 지면을 굴렀다.
아스모데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쩐지 마수들이 맥을 못 추더라니, 네놈 암흑투기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
[고작 해 봐야 계약자 주제에 마왕님의 권능을 이토록 잘 다룰 줄이야. 마벨이 이길 수 없을 만도 하군. 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날개가 활짝 펴졌다. 날개 짓을 일으키자 외벽에 금이 가고 주위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다분히 창을 치켜세운 아스모데우스의 붉은 안광이 유세현을 향했다. 창끝에는 새까만 연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래봤자 인간이지.]
-후웅!
순간적으로 흑빛의 섬광이 일렁였다. 이강호의 눈이 순간적으로 보름달처럼 커졌다.
“모두 몸을 숙여!”
-서걱!
칼날보다 예리한 연기.
연기는 닿는 모든 것들을 두 동강 냈다.
그리고 그것은 건물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쿠구궁!
지탱하고 있던 기둥이 떨어져나가자 붕괴가 시작되었다.
“가자!”
일행은 낙석들을 피해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돌진 했다.
잡으려면 힘이 불안정하고, 스스로 과신하고 있는 지금 뿐이었기에.
유세현은 재빨리 아퀼라를 소환했다.
스텟은 이제 약한 편에 속하지만, 그녀의 환각 스킬을 제법 도움이 될 터였다.
허나.
“...아, 아스모데우스님?”
[크크크, 이게 누구야! 뭐냐! 서큐버스 아니냐!]
“아퀼라! 놈을 환각에 빠트려!”
[크크! 서큐버스 저런 인간의 말을 듣는 건 아니겠지? 나는 지금 마왕 루시뷀트님의 명 아래 인간계를 정복하기위해 강림했다!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어라!]
“...하지만 이분이 마왕...”
[크하하하. 인간 나부랭이를 마왕님으로 본단 말이냐! 마왕님께서 마계에 버젓이 계시는데!]
“하지만 마력이 분명...”
[놈은 계약자에 불과하다. 나 32군단장 아스모데우스가 명한다! 서큐버스여 놈들을 전부 환각에 빠트려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예전에 우려했던 일이 기어코 발생하려는 것!
유세현은 그녀의 소환을 황급히 해제했다.
[아퀼라 라즈베리의 소환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 분명 아이템 정보에는 인정받지 못하면 공격받는다는 설명이 써져 있었다. 그런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니 의심을 하는 상황이라도 해제가 불가능해진단 말인가.
일행이 너무 강해, 한 번에 인정을 받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
[크크크! 왜 네가 그런 느낌을 받는지 알 것 같군. 잡혀 있는 건가. 내가 해방시켜 주겠다!]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던 아스모데우스가 유세현의 왼쪽 팔목을 순간적으로 낚아챘다.
[이건가 보군!]
바드득! 바드득!
아스모데우스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팔찌가 붕괴되며 손목뼈도 같이 으스러져 나갔다.
“크으으!”
유세현은 발등을 향해 루베르크를 내리 찍었다.
-치지직.
온 힘을 다했건만 힘 스텟이 부족해서인지 검은 긁히기만 할뿐 튕겨져 나왔다.
유세현은 검격을 포기하고, 아스모데우스의 팔을 붙잡았다.
“이강호!”
[크크크, 그건 좀 위험하지.]
아스모데우스는 유세현을 발로 뻥 차버렸다.
-콰과광!
어찌나 강한지 유세현의 몸은 바위 3개를 부수고도 멈추지 않았다.
유세현은 머리에 떨어진 바위조각을 털어내며 팔찌를 살폈다.
아이템명: 부서진 봉인 팔찌.
등급: 노말 [F Rank]
상세정보: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가 손수 제작한 봉인 팔찌입니다. 모든 마법 술식이 부서져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아퀼라가 해방되었다. 키만의 마법견제를 피한 아스모데우스가 아직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퀼라를 향해 명령했다.
[자! 너를 구속하고 있던 속박은 풀렸다! 자꾸 귀찮게 하는 노친네를 처리해라!]
“......”
아퀼라의 눈이 유세현을 지긋이 응시했다. 그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퀼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는 매서운 눈초리로 아퀼라를 노려봤다.
[서큐버스! 내말을 못 들은거냐! 노친네를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분은 마왕님의 동료...”
[내가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되었다! 넌 그냥 빠져있어라! 추후 주인이 누군지 내 육체로 친히 각인시켜주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예, 죄송합니다.”
아퀼라가 뒤로 물러났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키만의 마법으로 인해 전장의 밸런스가 가까스로 유지되고 상황인데, 아퀼라가 가세했더라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졌을 것이다.
‘젠장, 저게 악마인가. 뭐 저런 놈이...’
무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마벨의 육신이 그냥 강철이었다면, 이 악마는 그보다 더 단단한 합금이었다.
죽이기 위해서는 스텟을 뛰어넘는 이강호의 강한 화력이 무조건 필요했다.
문제는 마력이 없어 사용해봐야 한 두 번이라는 것.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줘야 된다. 그로인해 내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희생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동생을 이제야 만났으니까.
허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전부 죽는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선 유세현의 눈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오랫동안 살아온 키만은 유세현의 각오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살며시 다가온 그가 유세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틈을 만들 터이니 애써 무리 하지 말게나.”
“...예?”
“지금 막 마법이 완성된 참이라서 말일세...2초, 2초 정도면 놈을 죽일 수 있겠나?”
2초.
누군가에게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이강호와 자신에게는 적을 주기기에 너무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럼...부탁드리겠습니다. 영감님.”
“그래, 걱정 하지 말게나.”
“예.”
-타다닥!
유세현이 뛰어가자 키만이 지팡이를 높게 들어올렸다.
[그래비티]
쿠웅!
6서클의 고위 마법, 세밀하게 컨트롤 한 강대한 중력이 악마의 머리를 짓누른다.
허나, 그 정도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크크큭 제법이긴 하지만 마력이 다 떨어졌나 보구나!]
아스모데우스의 날개가 재차 활짝 펼쳐졌다. 유세현은 입술을 곱씹었다.
‘큭! 이게 끝인가? 이정도로는 빈틈이...’
생각이 미처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치지직!
-콰아아아아앙!
형용할 수 없는 강대한 붉은 빛이 키만에 몸 안에서 터져 나왔다.
아스모데우스, 이벨린의 눈동자가 동시에 화들짝 커졌다.
이 마법은!
[키아아아아악!]
어찌나 위력이 센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아스모데우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이 순간.
이벨린, 이강호, 유세현은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 스킬을 시전 했다.
[파이어 스피어]
[불꽃의 각인]
[천마혈사장]
-콰아앙!
파공성이 이르며 광활한 빛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돌덩이조차도 녹여버리는 뜨거운 열기.
무엇이든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패도적인 힘.
허나, 그 순간 불속에서 튀어나온 팔 하나가 이강호의 복부를 강타했다.
-우드득.
“컥!”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터라 이것만큼은 제 아무리 이강호라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연이어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꺅!”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는 이벨린.
불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크아아아! 이 빌어먹을 쓰레기들이 감히!]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진물.
아스모데우스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심각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살아있었다. 마력이 부족해 스킬의 위력이 저항력을 따라가지 못한 것!
-퍽퍽퍽!
아스모데우스는 유세현을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마치 해머로 뒤통수를 후드려 맞는 듯한 느낌.
[끝이다. 쓰레기!]
열이 잔뜩 오른 아스모데우스의 창이 비틀거리는 유세현을 향해 내질렀다.
-푹.
관통당한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허나, 그것은 유세현이 흘리는 피가 아니었다.
흐릿해진 그의 눈앞에 보랏빛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너...”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마왕님은 당신입니다.”
창대를 붙잡고 있던 아퀼라가 고개를 돌리며 읊조렸다.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 대악마 아스모데우스(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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