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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59화 (159/612)

< 대악마 아스모데우스(2) >

[이 멍청한 서큐버스 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저놈은 인간이다! 인간!]

유세현도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주희가 소환한 당시에도 자신의 말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해준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을 마왕이라 착각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아니, 사실 어찌보면 마심원을 승계 받았으니 마왕이 맞긴 맞았다.

다만 어둠의 마력에도 순도가 존재하는데 100%의 순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권능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해 대악마인 아스모데우스의 수준과 엇비슷했다.

놈이 자신을 계약자라 착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터.

그리고 그런 아스모데우스에 의해서 아퀼라는 확신을 잃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마음을 바꿀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허나.

“아뇨, 틀림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분은 마왕님이십니다.”

아퀼라는 굳건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확신어린 말을 내뱉은 이유는, 몽환의 성에서 해방된 이후로 그간 같이 해온 여행에 있었다.

성에 갇혀 퇴로를 뚫을 때도, 고블린의 별을 떨어트릴 때도, 지부를 공격할 때도,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 때도.

비록 존재감은 크지 않았지만, 그녀는 항상 옆에 위치해 있었다.

본래, 그녀가 살던 마계에서 서큐버스는 멸시받는 존재였다.

그들은 마족으로서 최고 우선시 되는 육체적 능력이 강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마법의 수준이 무척 높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

환영, 악몽이라는 능력 덕에 상급마족의 지위를 얻긴 했으나, 최상급 마족. 혹은 동급의 마족들은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투가 일어나면 그 어떠한 마족들도 서큐버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잘해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세현은 신기한 존재였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서큐버스의 특성을 고려하여 명령을 내렸으며, 여유가 있을 때는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력 때문에 그가 마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여러 번의 대화 이후 그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유세현이라는 남자는 마왕 그 자체에 한 없이 가까운 존재지만, 자신이 아는 그 마왕은 아니라는 것을.

말은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는 부러웠다.

그와 함께하는 이들이.

김주희와 이강호 그 두 사람이!

한순간 자신이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아스모데우스의 말 때문에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에게 있어 마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유세현 뿐이었다.

[동족이 없어 거둬주려 했더니 은혜도 모르는 년 같으니라고! 그렇다면 함께 죽어라!]

아퀼라의 육신을 움켜 쥔 아스모데우스가 창을 잡아끌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사이 틈을 타 접근한 이강호가 창을 휘둘렀지만 무용지물.

[크흐흐. 그 빌어먹을 불길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나보지?]

-촤자작

잔악한 창이 육신을 난자해 나간다.

어느 한 순간 유세현의 흐릿한 눈이 이강호와 교차했다.

‘도망쳐라. 어떻게든 버텨 볼 테니 김주희와 함께 이 던전에서 빠져나가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퀼라가 간신히 서 있는 유세현을 향해 피로 범벅이 된 손을 뻗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왕님. 잠시나마 망설인 저를 용서...”

-툭

아퀼라의 손이 떨어짐과 동시에 이강호의 허벅지에 아스모데우스의 창이 들어가 꽂혔다.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마왕. 자신이 무슨 마왕이란 말인가. 권능을 부여받은 저런 놈조차 이기지 못하는 자신이!

힘이 필요했다. 동료를 조롱하는 놈을 죽일 수 있는 힘이.

그는 갈망했다.

단순히 원하는 것이 아닌, 애절함과 간절함을 담아서.

이렇게까지 무엇인가를 원한 것은 가족이 죽은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두근

마치 감정에 응답하듯 그의 몸 안에서 무엇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허나, 용암 같이 뜨거운 것은 아니었다.

되려 무척이나 고독하면서도 차가운 힘.

-스스스.

유세현의 전신에서 새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것은 스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죽음 그 자체, 만물을 무로 되돌리는 힘.

이강호를 마무리를 하려던 아스모데우스의 고개가 화들짝 돌아갔다.

유세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보름달처럼 커져 있었다.

[이...이건?]

다 죽어가던 몸에서 엄청난 양의 어둠의 마력이 생성되고 있다.

더 나아가 놈의 마력은 이전과 달리 자신보다도 훨씬 짙었다.

[노, 놈이 어떻게?]

유세현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한 개의 알림창이 나타나 있었다.

[특수특성 마(魔), 2차 권능. 심연(深淵)을 개화하셨습니다. 일정시간 동안 통상 100배에 달하는 마력을 재생할 수 있으며, 죽음을 다룰 수 있습니다.]

유세현이 팔을 들자 땅에 널브러져 있던 루베르크가 거칠게 진동하더니 손을 향해 날아왔다.

알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감각.

아이템명: 마검 루베르크

등급: 레전더리 [SSS Rank]

현 등급: 레어 [A Rank]

상세정보: 마왕 루시뷀트가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여 집적 제작한 마신구입니다. 주인이 바뀌면서 그 힘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현 주인의 권능의 개화로 힘을 되찾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용능력: 부패의 어둠, 형태변환(1일1회 사용가능)

붉게 물든, 유세현의 동공이 아스모데우스를 응시했다.

그 색은 악마가 발산하는 그 어떠한 안광보다도 진했으며 밝았다.

마치 피로 빚어 놓은 느낌.

[너 이자식 도대체 무슨 짓을 한...큭!]

아스모데우스는 말을 있지 못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압박이 육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루베르크에게서 흩뿌려져 나온 어둠이 맹렬한 기세로 뻗어나간다.

-솨아아

닿기 무섭게 부패되어 무너져 내리는 사물.

그 어떠한 장애물도 이 어둠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낭패어린 표정이 되어, 가까스로 자리를 이탈한 아스모데우스의 앞에 유세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모데우스의 입장에서는 유세현이 무척 빨라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그가 느려진 것이었다.

-챙! 챙!

막상막하로 이어지는 공방.

-치지직.

아스모데우스는 남은 잔여 마력을 모두 긁어모아, 부패의 권능에 대항했다.

허나, 유세현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먹어치워라 루베르크!”

-스스스

루베르크와 맞닿은 장창의 표면이 쩌저적 갈라지더니 가루가 되어 흡수되기 시작한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했다.

검신 깃드는 흑뢰.

아스모데우스가 경악을 터트렸다.

[어떻게! 어떻게! 마왕님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그 무구를! 그 마법을 지니고 있을 수 있는 거지!]

“......”

유세현의 눈동자가 말없이 주시하자, 아스모데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흠짓 몸을 떨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평소 적과는 이야기를 삼가 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었다.

“마왕이다.”

한순간에 확산된 부패의 어둠이 아스모데우스의 전신을 감쌌다.

* * *

[마검 루베르크가 아스모데우스의 지옥창을 흡수했습니다. 마검 루베르크의 랭크가 레어 A에서 유니크 D로 상승합니다.]

무려 6단계를 건너 뛴 등급의 상승.

보통이라면 펄쩍펄쩍 뛸 정도로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허억...허억...”

이강호와 이벨린은 다행이도 무사했다.

유세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을 움직였다. 이제 거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아직 못 다한 일이 남아 있었기에 입을 악물고 버티며 쓰러지지 않았다.

코인으로 이루어진 강을 헤쳐나간 그가 멈춘 곳은 매끄럽게 굽어진 뿔과, 보랏빛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쓰러져 있는 장소였다.

아퀼라 라즈베리.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서큐버스.

그녀는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었지만 장기손상이 무척 심한데다가 출혈까지 더해져, 치유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없는 한 생존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지만.

이강호에게 들었던 정보로는 마족은 그 특성상 어둠의 마력으로 육체를 어느 정도 치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몸의 구조가 인간인 유세현은 회복할 수 없으나, 그녀는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이미 수복하는데 마력을 사용했는지, 아퀼라의 잔여 마력은 0%였다.

그는 아퀼라의 상처부위에 손을 얹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순도 100%의 어둠의 마력.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퀼라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이 아주 미미하게 눈에 띤다.

잔여 마력을 전부 사용한 그는 바로 옆에 털썩 쓰러졌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본인의 노력과 운 뿐.

-띵~

유세현의 손아귀로 떨어지는 조각이 하나 떨어졌다. 그들이 그렇게 얻고 싶었던, 유적이 마침내 종결되었음을 알려주는 아이템이었다.

* * *

“으...”

기절하듯 잠든 유세현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평소 4시간 정도만 푹 자도 체력이 완전 회복되었던 것과 달리, 몸은 욱신거리기 그지없었는데, 전투의 여파와 마심원을 혹사 시켜 마력을 강제적으로 생성한 대가가 중첩된 것이 분명했다.

이강호를 향해 다가간 그가 무릎을 굽혀 상처를 자세히 살폈다.

“야, 괜찮냐?”

“후우...전혀, 급소를 맞았어. 하루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

“후...그러냐. 그래도 다행이다. 살아서.”

무기부터 시작하여 갑옷, 부츠까지.

망신창이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강호가 볼을 긁적였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서두른 거 같아.”

“후...됐어. 잘 끝났으니까. 앞으로 침착하게 움직이면 돼. 그보다 쉬어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으면 말하고.”

“알았어.”

다음으로 이벨린을 살폈지만, 관통상은 없었기에 이강호보다도 빠르게 회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키만이 있던 장소로 향했다.

아까 전 생사를 확인해보진 않았으나 마법을 사용한 후 아스모데우스가 직접적으로 손을 쓴 적이 없었기에, 그는 키만이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현실은 예상과 전혀 정반대였다.

피가 전부 빠져나와 말라 삐뚤어진 육신.

“라이프 번(Life Burn)이에요. 생명을 불사르는 마법이죠.”

“...그렇군요.”

마력도 다 떨어진 마당에 어쩐지 위력이 강하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유세현은 일행이 회복하는 동안 근처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조악하지만 한글로 글귀도 적어주었다.

[대마법사 키만 올란드. 악마를 죽이고 이곳에서 잠들다.]

어차피 사라질 세계라지만, 그는 충분히 존중해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유세현은 마지막으로 전리품을 살폈다.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최종보스답게 놈은 상당한 수준의 스킬북을 떨어트렸다.

스킬 명: 마족화

등급: 레전더리 [D Rank]

상세정보: 육신을 일정시간 동안 마족화 시켜줍니다. 외형과 특성은 가지고 있는 마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둠의 마력 사용자가 아니라면 상당한 수준의 대가를 치러야 사용이 가능합니다.(수명)

어둠의 마력의 순도가 낮을 시에도 대가가 따릅니다.(수명)

스킬 명: 지옥의 업화

등급: 유니크 [SSS Rank]

상세정보: 설정한 좌표에 업화의 불기둥을 생성시킵니다.

등급으로 보나 효과로 보나 어떤 이들은 평생가도 구하지 못할 그런 것이었다.

물론 하나는 너무도 큰 제약이 있었지만, 유세현이 사용할 것이기에 상관하지 않았다.

또 다른 스킬북인 지옥의 업화는 공적치를 따진 이벨린이 순순히 이강호에게 양도했다.

이제 남은일은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것 뿐.

유세현은 아퀼라를 살폈다.

시간이 지나 상처는 많이 아물었는데 이상하게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흠...왜 못 깨어나는 거지?”

“글쎄, 일단 돌아가자.”

유세현은 아퀼라를 등에 업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서, 선배님!”

근처를 탐색하고 있던 김주희가 두 사람을 확인하기 무섭게 한걸음에 뛰어와 와락 껴안았다.

그녀 또한 아직 완전히 상처가 났지 않았을 터인데,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걱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등에 업혀 있는 아퀼라를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선배님 얘는 대체 왜 선배님의 등에...”

“일이 있었어. 가면서 얘기하자. 애들은?”

“잘 있어요. 지금은 운디네를 두고 왔어요.”

“오, 현명한 처사네.”

빠른 걸음을 걸어 도착하자, 간이형 대형 천막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를.

이벨린이 애들과 친했다는 것을 봐왔던 유세현은 하루의 말미를 주었다.

“하, 할아버지는?”

“...키만 할아버지께서는...”

진실은 아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베린의 말에 많은 수의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고, 달래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허나, 아린 만큼은 울지 않았다.

며칠 흐르지 않았는데 이전과 같은 표정은 싹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다.

아린이 중얼거렸다.

“누나 나 강해 질거야...누구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으면 사람의 성격이 바뀐다고 한다. 아린은 그것을 끝으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벨린은 씁쓸했지만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놔두기로 했다. 그는 이전에도 역경을 이겨냈었으니까. 마침내 대마법사가 되었으니까.

그들은 다음날 아침 일찍 갈라섰다.

살아남은 4명의 마을주민들은 아이들과 함께 중부 쪽에 자리를 잡을 거라고 한다.

이벨린이 헤어지기 전 아린을 불렀다.

“아린. 원하는 만큼 강해지면 내가 사는 곳에 한번 놀려오렴.”

아린은 잠시 망설이는 듯 했으나 이내 입을 뗐다.

“...어딘데?”

“남부 자이프 왕국. 누나 이름은 알지?”

“이벨린 발디안.”

“그래, 꼭 한번 놀러와. 100년 뒤 라도 괜찮으니까.”

“...알았어. 꼭 한번 갈게 누나.”

“그래, 그럼 잘 지내.”

“응.”

-저벅 저벅

둘은 이내 각자 반대쪽을 향해 나아갔다.

< 대악마 아스모데우스(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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