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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57화 (157/612)

< 삼파전(3) >

“...권능? 그렇다면 너도 저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냐? 왜 진즉 빌려주지 않았...”

[크크크크크.]

마법서에서 광소가 터져 나오자 마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웃긴 거냐? 어서 나에게도 저런 권능을 빌려...”

[크크크, 가능했다면 벌써 주었겠지. 안타깝게도 나는 저 권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뭐? 너 대악마라고...”

[그렇지, 대악마지. 그건 사실이야.]

마벨의 표정이 굳었다.

대악마보다 강한 권능을 지닌 존재.

그러한 존재는 그가 알고 있는 한 세상에 단 한명밖에 없었다.

“...설마?”

[크크크, 그래 맞아.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다. 저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자는 마족 중에서도 오직 한 명뿐. 힘의 근원이자, 우리들의 진정한 왕.]

“마신 루시뷀트...”

마벨이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왜 하필 걸려도 저런 놈이 걸린단 말인가.

[크크크, 너무 걱정하지 마라. 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고작 해봐야 인간. 놈은 권능을 제대로 다루 지 못하고 있다. 몰아쳐라! 그리고 부숴라!]

“후...알겠다.”

마벨이 손짓하자, 뒤로 빠져 있던 수 백 마리의 마수가 진형을 가다듬었다.

이에 유세현도 손을 들어 올렸다.

흉폭한 마수와 구울의 대치.

집행자, 용맹하게 싸우던 성기사들도 무척이나 흉흉하기 그지없는 그 광경에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반발된 2차전!

유세현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심장이 비명을 질러도 쉬지 않고 적을 베고, 또 베었다.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온 힘을 다한다면 그래도 어찌어찌 이겨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큭, 이 자식들이!”

구울을 부숴나가던 마벨이 인상을 구겼다.

처음에는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여유도 있었다.

허나, 놈의 권능에 당한 이후, 그 이점이 상당 수 사라졌다.

놈의 키메라는 강했고, 그의 동료들 또한 바퀴벌레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집행자들을 계속해서 도륙해나가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살아남은 교단과 힘을 합치는 건 덤.

마벨은 유세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먹과 검의 향연!

챙! 챙! 챙!

힘의 구도는 거의 막상막하였다. 아니, 미약하게나마 자신이 밀리고 있다.

당황이라는 감정이 마벨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처음 상대할 때 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사실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떨어트린 코인을 자연스레 흡수한 것이었지만, 마벨의 입장에서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크크크! 그 힘을 사용해라!! 최강이 되어 적을 박살내라!]

“큭, 그건...”

마벨이 우물쭈물 망설였다.

대악마가 사용하라는  그 힘은 수명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

[크크크, 네 복수심이 이렇게 얄팍한 것이었나? 고작 수명에 꺾일 정도로?]

“...큭!”

확실히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보다 더 확실하게, 적을 골로 보낼 수 있는 강대한 힘이 필요했다.

“네놈들...나를 이렇게 몰아붙이게 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깨문 마벨이 흐르는 피를 이마에 쓱 문댔다. 그러자 그의 몸이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길고 날카롭게 자라나는 손톱.

피부는 새빨간 비늘에 둘러싸여 더 단단해 졌으며, 등에서는 새까만 날개가 돋아났다.

마벨이 지그시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눈동자가 피처럼 새빨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집행자에게 걸어준 저급한 흑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계약한 마족의 본신의 힘을 빌려오는 육체 강화술.

[마족화]

“네놈들! 결코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마벨의 광기어린 목소리가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유세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 스킬은 또 뭐란 말인가.

-슈우욱!

날아오른 마벨의 육신이 곧장 유세현을 향했다. 틈을 타 재빨리 뒤를 잡은 이벨린이 레이피어를 힘껏 내질렀다.

온 힘을 다한 일격!

타이밍도 제법 좋았기에 그녀는 심장을 꿰뚫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허나.

-팅!

레이피어의 끝이 튕겨져 나간다. 이벨린의 눈에 당혹감이 감돌았다.

‘이, 이게 무슨 내구력...’

“꺼져라!”

-퍽!

“꺄악!”

파공음과 함께, 주먹에 제대로 가격당한 이벨린의 육신이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실로 엄청난 충격파였다. 이내, 기절하여 축 늘어지는 이벨린의 육신.

‘뭐 저런...’

혼자 상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유세현은 재빨리 키메라를 불러들였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목을 취하려는 심산이었지만, 키메라의 육신은 채 10초도 안되어 뜯겨져 나갔다.

이제는 흠집조차도 나지 않는 피부.

유세현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놈을 잡기 위해서는 흑뢰검이나 천마혈사장이 필요했다.

문제는 마력이 거의 다 고갈되어 암흑투기 조차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젠장...’

몸이 무거웠다. 당장에라도 쓰러져 쉬고 싶은 기분이 든다.

허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든 버텨야 된다.’

이벨린은 기절, 키만은 마력이 거의 고갈 되었는지 위력이 현저히 낮아졌다.

제일 잘 싸우는 이강호는 남은 잔당을 빠르게 베어가고 있었는데 적에게 둘러싸여 있어 당분간 도움을 얻기란 힘들어보였다.

“후우 후우...”

치고, 또 쳐내고.

‘그래...버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벨의 손이 난데없이 유세현의 얼굴을 향했다.

유세현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흘려 내기 위해 차분히 검을 들어올렸다.

허나, 그때였다.

팔이 스르륵 내려가며 마벨의 발이 엄청난 빠르기로 유세현의 종아리로 향했다.

페이크를 가미한 공격!

‘젠장!’

황급히 흘려보내려했지만,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퍽!

유세현의 몸이 한순간 허공에 붕 떠올랐다.

“큭!

“크하하하! 죽어라! 마신의 계약자!”

날아오는 손톱이 망막에 또렷하게 맺힌다.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재빨리 천마군림보를 사용하려 했지만 마력이 부족해 발동되지 않았다.

이는 곧 회피 불가능이라는 뜻.

‘주, 죽는다!’

손톱이 미간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선배니이이이임!”

-후웅!

거센 바람과 함께 예리하게 선 날이 눈앞에 비쳤다. 김주희의 창이었다.

-찌이익.

이마부터 시작하여 턱 끝까지 유세현의 얼굴피부가 일자로 쭉 찢겨나갔다.

김주희의 도움이 1초, 아니 0.5초만 늦었더라면 뇌를 관통 당했을 것이다.

머리가 삐죽삐죽 서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빌어먹을 계집이!”

마벨의 반대쪽 손이 김주희를 향했다.

유세현은 김주희가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김주희는 죽을 것 같은 유세현의 모습을 보고 급하게 움직인 것이었고, 그 결과 자세가 무척이나 많이 무너져 있었다.

-푹!

“컥!”

복부를 뚫고 튀어나는 손.

유세현의 눈동자가 한순간 지진을 일으켰다.

“크하하하! 멋대로 끼어들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마무리를 하기위한 마벨의 손이 이번에는 김주희의 얼굴로 향했다.

유세현은 그 순간 빈틈이고 자시고, 정말 온힘 힘을 다해 양손으로 검을 내려 그었다.

-후웅!

“어이쿠!”

이번 건 꽤나 위험했기에, 결국 마벨은 재빨리 손을 빼낸 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유세현은 힘없이 뒤로 넘어가는 김주희의 몸을 황급히 지탱했다.

휑하게 뚫린 복부에서 갈곳을 잃은 핏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전보다도 훨씬 심한 치명상이었다.

“김주희! 너 왜 그랬어!”

유세현이 자신도 모르게 묻자, 김주희가 실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그러게요...왜...그랬을 까요.”

유세현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마음속에서 뭔가가 울컥 용솟음 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무척이나 뜨거운 것이 흡사 마그마와도 같기도 했고, 피 같기도 했다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

그래서 움직였다.

유세현이 죽으면 그것이 왈칵 몸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크흐흐! 동료애가 아주 눈물겹구나!”

마벨의 말에, 바닥에 김주희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은 유세현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착 가라 않는 두 눈동자 속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어둠.

마벨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다가 자신의 뺨을 툭 쳤다.

‘내, 내가 쫄았다고? 수명을 바쳐 마족화까지 쓴 내가?’

인정할 수 없다.

당장의 힘의 차이를 보여주리라.

그가 발을 떼려던 찰나였다.

“뒤가 비었군.”

우악스러운 손이 마벨의 뒷덜미를 덥석 붙잡았다. 이강호였다.

‘아, 아니, 대체 언제?’

-화르륵.

생각을 채 끝낼 새도 없이 불기둥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전장에서 발생한 그 어떤 화염보다도 높은 고열!

-치지직.

“끄아아악!”

살이 타들어가는 강한 열기에 마벨은 발버둥쳤다.

마침내 양손으로 이강호의 손목을 붙잡는데 성공한 그가 몸을 굽힘과 동시에 있는 힘껏 팔을 내질렀다.

공중제비를 돌아 지면에 착지한 이강호가 다분히 혀를 찼다.

아무리 마력이 부족했다지만, 이 화력을 버티다니.

[쳇! 힘을 줘도 이렇게 밖에 싸우지 못하다니! 마벨! 아이를 챙겨라! 내가 부활해서 끝을 내주마.]

“크으윽. 닥쳐! 저 새끼들은 내가 반드시...”

[크크크. 아둔한 인간 같으니라고 주위를 둘러봐라.]

“뭐? 뭐가 어떻기에...”

말꼬리를 흘리며 주위를 확인한 마벨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마수, 집행자들이 전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남아 있는 병력은 고작 해봐야 몬스터 몇 마리 뿐.

“아니 어떻게...”

[저 창잡이 놈과 마법사가 한 짓이지. 놈들은 확실히 강하다. 네 아둔한 실력으로는 승산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지! 자! 내말을 들을 것이냐. 아니면 여기서 죽고 그 알량했던 복수를 끝낼 것이냐!]

마벨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인간은 타협의 존재라는 말이 있듯, 그는 몸을 획 돌려 아이들을 향해 질주해나갔다.

전투를 준비하던 유세현과 이강호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저 많은 아이들을 이동시킬 수단은 없을 터인데!

‘왜 갑자기?’

둘은 재빨리 뒤를 쫓았지만 어찌나 빠른지 미처 따라갈 수 없었다.

“아이스 에로우!”

키만이 황급히 마법을 사용해 제지해보려 했지만, 1서클 마법일 뿐더러 마력도 충분치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붉은 눈동자가 아이들을 훑는다.

악마의 힘을 받은 그는, 지금 필요한 제물이 누군지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그의 손이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소녀, 캐서린을 향했다.

“꺄아아악! 아린! 아린!”

캐서린은 발버둥을 치며 필사적으로 아린을 찾았다.

다른 사람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아린을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어린아이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린은 덜덜 떨었고,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전부 필요한 게 아니고 한 명이 필요 했었던 것이었다니!

“크크큭. 기대하고 있어라! 악마가 강림하는 순간 내가, 아니 우리가 네놈들을 전부! 저어언부! 죽여 버릴 것이다!”

-타다다닥!

다분히 선포한 마벨은 다시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이강호와 유세현은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뒤쫓았으나, 놈과의 차이는 계속 벌어질 뿐이었다.

마벨의 신형은 곧 그들의 시야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 * *

“젠장...이제 어떻게 하지?”

그들의 본래 목적은 악마 강림을 막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남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의 일로 인해 모든 것이 박살났다.

이렇게 되면, 진짜 역사처럼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허억. 허억...선배님, 그...던전을 빠져나갔다 오면 되지 않을까요?”

김주희가 아픔까지 참아가며 애써 말을 꺼냈지만 이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던전은 특별해. 오픈된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시간이 흘러가지.”

“...그렇다는 건...”

“그래, 나갔다오면 되려 악마가 강림해 있겠지.”

그렇게 되면 한동안 공략은 불가능.

답을 내놓은 것은 비틀거리며 다가온 이벨린이었다.

“...악마의 강림에는 무수히 많은 수식을 새겨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따라가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키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확실히, 악마소환식에는 엄청난 수의 마법진이 필요하지. 본거지가 아니고서야 즉시 소환은 불가능할 것이네.”

놈들의 본거지까지는 적어도 수 일이 소요된다.

더군다나, 마족화가 풀린 마벨의 기본 육체능력은 코인을 흡수한 일행보다 낮았다.

체력을 회복해 나가며 추격을 한다면 중간에 따라잡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

“그럼 바로 추격 하도록 하죠. 김주희, 넌 여기 남아있어. 그 상처로는 못 뛰니까. 그리고 아퀼라는 빌려간다.”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찌를 챙기던 유세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엔 정말 고마웠다.”

“......”

마땅히 답은 하진 않았지만 김주희의 입꼬리는 아주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들은 곧장 다 부서진 장비를 갈아입었다.

각반을 차고 있던 이벨린의 눈이 잠시 아린을 향했다.

반쯤 넋이 나가있는 얼굴.

자신들이 없던 역사에서 아린은 이보다 심한 일을 겪었을 터였다.

과거 얘기만 꺼내면 서글픈 눈빛을 하던 스승이 문득 떠올랐다.

“걱정 마. 누나가 구해올 테니까.”

그들은 3분이 지나지 않아 눈 덮인 벌판을 질주해 나갔다.

< 삼파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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