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파전(2) >
저벅 저벅.
목표지점에 도착해 주위를 살펴본 기사단장 브란과 성기사단장 라벨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찰대들은 빈약한 성 따위는 단숨에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우수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새 전멸을 면치 못하다니.
-치잉.
검 집에서 시퍼런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유세현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검을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교도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큭! 악의 씨앗을 지키는 자들 답군. 그 따위 말로 빈틈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느냐!”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흥! 우리가 후회할 일 따위는 없다! 그리고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도착하기 전에 마무리를 지으면 될 뿐이다! 비켜라! 지금이라도 비킨다면 죄가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그 말에 살아남은 주민들의 표정은 가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그렇게 아이들을 죽이고 싶으십니까?”
“닥쳐라 이놈! 세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유세현은 피식 웃었다.
편의를 위해 남의 목숨까지 빼앗는 주제에 어쩔 수 없다라...
합리화 하는 모습이 역겹다 못해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유세현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한 적은 없었다.
보다 더 나은 방법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고, 살인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었다.
추후, 누가 문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결코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유세현의 손이 차분히 루베르크의 손잡이로 향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 1초도 안 되는 시간 이었지만 기사단과 교단의 인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 흐름에 맞춰 무기를 움켜쥐는 마을주민.
한 순간 유세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고 생각한 브란이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전군! 돌격하라! 악신의 종과 씨앗을 모두 처단해라!”
“우와와!”
그렇게 2차전이 반발했다.
* * *
-치지직!
-콰과광!
벼락이 쏟아지고, 휘양 찬란한 빛이 공간을 밝게 물들인다.
신성력과 마력의 대결.
“오, 오지 못하게 막아!”
“이, 이 개자식들! 끄아악!”
기껏 살아남은 사람들은 차례차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기만 할뿐 살려달라는 말도 미처 꺼내지 못했다.
기사 한명을 잽싸게 벤 유세현이 고개를 황급히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어느새 근처에 도달한 3~4명의 기사들이 검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큭! 제기랄!’
그는 황급히 몸을 날렸다.
허나.
-서걱.
비정한 검격이 보다 더 빠르게 궤적을 가른다.
목을 잃은 작은 몸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고, 그 피는 곧 기사의 하체와 주위 아이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아...아...”
그간 함께 해왔던 친구들의 죽음.
몇몇의 아이들은 게거품을 문채 쓰러졌고, 또 다른 몇몇은 넋이 완전히 나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이후로도 기사는 유세현에게 목이 잘려나가기 전까지 저항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미친 듯이 베어나갔다.
채 10초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죽은 아이들은 20명이 넘었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끝장이다.’
유세현은 아이들 앞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3명의 기사가 또 다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비켜라!”
상당한 강자.
유세현은 암흑투기를 기사들에게 집중시켰다.
중첩된 축복으로 인해 암흑투기의 영향력에서 많이 벗어나 있던 그들의 눈이 한 순간 휘둥그렇게 변했다.
이 무슨 압박이란 말인가!
“이, 이게 무슨!”
-서걱!
기사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목을 매끄럽게 자른 유세현은 이어서 두 명을 재빨리 처리했다.
성기사단장 라벨의 눈이 차분히 유세현을 향했다.
“네놈이 근원이군!”
키만을 향해 달려들던 그의 발걸음이 유세현을 향해 방향을 꺾었다.
키만은 어떻게든 막아 보려 마법을 날렸지만, 성기사단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회피했다.
유세현의 앞에 선 그가 핼버드를 들어올렸다.
이강호의 똑같은 종류의 무기.
암흑투기가 육신을 짓누르자, 그 또한 신성력을 더 끌어올렸다.
“세인트 오로라!”
허나, 그럼에도 암흑투기의 힘을 전부 상쇄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는 교황과 성녀, 차기교황 후보를 제외하고 가장 신성력이 높은 존재였다.
때문에 하급 마족과의 계약으로 어설픈 어둠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눈앞에 있는 남자는 네크로맨서보다는 전사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마기가 신성력을 누르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네놈 정체가 뭐지?”
“......”
“함구인가...뭐, 좋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으니...”
그래, 상관없었다.
굼떠진 육신은 우월한 창술로 커버 하면 되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는 유세현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릴 심산으로 달려들었다.
허나.
‘뭐, 뭐지 이놈?’
전부 받아친다. 아니, 그뿐 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 반격하고 있었다.
정말 미미하게 존재하는 빈틈을 파고드는 검은 무척 날카롭기 그지없다.
‘어떻게?’
지금까지 자신의 창에 막상막하로 대적이 가능했던 자는, 기껏해야 같이 싸우고 있는 기사단장 정도로 눈에 손을 꼽을 정도였다.
헌데, 놈은 기사단장보다도 검의 사용이 능수능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실력이 높은 것보다도 미늘창의 특성에 대해서 너무 잘 꿰고 있었다.
한순간에 10합을 나눈 유세현의 눈매가 살며시 좁혀졌다.
아침, 저녁으로 이강호와 대련을 해 와서 일까?
그의 눈에는 신기하게도 성기사단장의 약점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챙! 챙! 챙!
점점 합을 이어갈수록 밀리기 시작하는 성기사단장.
“이, 이놈! 홀리 해머!”
그가 창을 휘두르자, 빛으로 구현화 된 커다란 망치가 유세현을 향해 날아왔다. 생각보다 속도가 느렸기에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뒤에는 아이들이 있는 상황.
‘어쩔 수 없군.’
유세현은 흑뢰를 머금은 루베르크 일자로 내려쳤다.
단 일격에 반으로 잘려 사라지자, 라벨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이걸 일격에? 저놈 진짜 대체 뭐하는...’
그때였다.
-뿌웅! 뿌우우웅!
너무도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뿔피리 소리가 상공에 울려 퍼졌다.
* * *
블러디 베어, 다이노 울프, 괴조 등.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를 정도의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일대에 몰아쳤다.
“큭! 정말로 이교도들이!”
“진형을 가다듬어라!”
“마신 루시뷀트님께 영광을!”
“영광을!”
물고 물어뜯기고, 이교도들이 끼어들자 상황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비록 타이밍이 잘 맞은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삼파전으로 이끌고 온 것이다.
“스톤 월!”
이벨린이 외치자 돔 형태로 솟아난 암석이 아이들의 주위를 에워쌌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도움은 될 것이리라.
유세현과 시선이 교차한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지금까지 숨겨두고 있던 비장의 수를 사용할 때였다.
-키아아!
신호를 보내자 구울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삼파전에서 중요한 것은 밸런스였기에 구울들의 상당수는 나중에 등장한 이교도들을 공격했다.
뒤로 빠져 이교도들을 처리해가던 라벨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큭! 언데드! 역시 네크로맨서였나? 전원! 신성력을...”
-푹!
라벨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커...컥!”
뚝뚝 흘러내리는 피.
고개를 내린 가슴을 바라본 라벨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창, 검.
그의 심장을 꿰뚫은 것은 둘 중 그 어떠한 것도 아닌, 순수한 인간의 손이었다.
“무, 무슨...”
“크큭! 네놈들만큼은 꼭 내손으로 처치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각을 만들어 주시니 정말 고맙구만!”
“너...넌 대체...”
“이제 뒈질 놈이 그건 알아서 모하게?”
마벨이 손을 빼자, 생명이 다한 라벨의 육신이 땅으로 털썩 쓰러졌다.
“다, 단장님! 이, 이놈이 감히!”
“큭! 뭘 봐? 아~죽여 달라고?”
마벨이 신이나 학살을 시작하자, 마법서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보다 아이를 먼저 챙겨라.]
“큭! 나도 알고 있다고!”
마벨이 손을 치켜세우자, 그의 뒤로 10명의 남성들이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얼굴부터 시작해서 하체까지, 눈이 붉게 충혈된 그들은 전신에 특이한 문신을 새기고 있었는데, 새까만 빛이 마치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수명을 대가로, 육신을 한순간 강화시키는 흑마법.
“혈기병들은 아이를 확보하라!”
“마신 루시뷀트 위하여!”
“마신 루시뷀트 위하여!”
-사사삭!
혈기병들은 막아서는 구울을 찢어버리며 매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들이 암석을 무너트리려기 위해 주먹을 내지르려던 순간이었다.
-콰직!
어디선가 나타난 기괴한 생명체가 혈기병들의 앞을 막아섰다.
두개의 머리와 4개의 팔과 다리.
-키아아아.
키메라와 괴성을 지르며 혈기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힘은 호각!
아니, 살짝 모자랐지만 부족한 스텟은 많은 수족으로 커버했다.
유세현이 손을 치켜세우자 10마리의 구울들이 달려들어 마벨을 파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퍽!
강한 파공음과 함께 구울의 몸은 산산조각이 분쇄되어 흩어졌다. 그래도 제법 강한 스텟을 지니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당하다니.
마벨이 두 눈동자가 유세현을 응시했다.
“그래...이 구울을 다루는 건 네놈이었구나!”
-타다닥!
마벨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세운 손을 유세현을 향해 내질렀다. 유세현은 재빨리 마검으로 받아쳤다.
-치지직!
검심과 피부가 맞닿자 마찰음이 울려 퍼지며 스파크가 튀었다.
튜토리얼때의 뱀파이어를 떠오르게 만드는 실로 대단한 내구력이었다.
‘강도를 강화 시킨 건가? 그렇다면!’
단단함에는 속성공격이 제격!
흑뢰검을 사용하자, 재빨리 떨어진 마벨이 허리춤에 꼽아둔 지팡이를 잡아들었다.
유세현을 향해 날아오는 새까만 화염구.
몸을 돌려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뒤 접근해오자 마벨이 광소를 내뱉었다.
“애먹게 만드는 실력이긴 하구나! 하지만!”
유세현의 발아래로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드리웠다. 마치 키만을 보는 것 같은, 실로 대단한 시전속도였다.
‘마법서와 지팡이...저 둘에 뭔가 있군.’
황급히 회피한 유세현은 심호흡을 했다.
구울까지 투입했음에도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마수를 상대해주고 있는 기사단의 수가 얼마나 남지 않았을 뿐더러, 키만도 슬슬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이게 다 먼저 전투를 시작한 탓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덜거릴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이건 정말 아껴보려 했지만.’
여기까지가 한계.
유세현의 몸에서 흩뿌려져 나오는 새까만 연기가 빠르게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마벨이 들고 있던 마법서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저...저건 설마? 마벨! 당장 병력들을 뒤로 물려라! 너도 자리에서 벗어나라!]
“저, 저게 뭔데 그...”
[빨리! 내 말을 따라라!]
“아, 알았다!”
마벨은 황급히 지시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상당수가 어둠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유세현은 그 속에서 오감을 잃어버린 적을 베어나갔다.
기사들에게는 일부러 적용시키지 않았기에 그들 또한 아이러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수를 섬멸해 나갔다.
허나, 아무리 봐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다, 단장님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습니다!”
“큭...이렇게 되면...”
기사단장 브란의 눈이 암석으로 향했다.
“남은 기사들은 전부 나의 뒤를 따르라! 왕국을 위해 악의 씨앗을 제거한다!”
“예!”
적을 죽이던 10여명의 기사들이 암석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유세현은 암석이 무너지고 나서야 이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저 미친놈들이!’
유세현은 황급히 오감을 빼앗았지만, 기사들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을 보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
황급히 뛰어간 김주희와 유세현이 기사들을 죽였을 때는 40명의 아이들이 추가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끝난 흑암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내부 모습이 드러나자 마벨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너도 위험할 뻔 했다.]
“...대체 무슨 마법이기에...”
[마법 같은 게 아니다. 저것은 권능...생명체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지.]
< 삼파전(2) > 끝
ⓒ
< 죄송합니다. 오늘은 연재분을 못올릴 것 같습니다. >
잘못 덮어씌워 파일을 날려먹었습니다.
다시써서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 죄송합니다. 오늘은 연재분을 못올릴 것 같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