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46화 (146/612)

< 토벌의 끝 >

마석 혹은 공적을 위해 토벌에 참가한 많은 인원들.

그들은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걸 것이 이것은 단순 과시용 퍼포먼스였으니까.

병사의 수준도 높고 병력 또한 많았으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결과는 예상과 비슷했다.

오직 단 한 곳만을 제외하면.

-휘이잉.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자 찐득한 땀내와 비릿한 피 냄새가 한데 엉켜 코끝을 찔렀다.

지면에 널브러져있는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의 시체.

그 주위를 찢겨진 사람의 팔과 다리가 산을 이루고 있다.

필립은 그 처참한 광경에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

볼프강 가(家)의 사병, 대형 길드, 개인 용병 연합 모두 버티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아니 끌려가지 않은 사람은 그들을 포함하여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크, 크윽...”

그때 문득 시체더미에서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는 암살자였다.

팔다리가 잘려 있는 것이 알비론에게 당했지만, 갑작스러운 퇴각 덕에 운 좋게 잡혀가지 않은 모양.

아니, 어쩌면 되려 운이 나쁜 것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배후세력을 알아내기 위한 강도 높은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필립이 주위를 쭉 살폈다. 그는 현재 유세현과 리체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발렌을 찾고 있었다.

물론, 이는 먼저 합류한 리체가 꾸며낸 말이라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아무쪼록, 일행도 그 틈을 타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병장기를 살폈다.

매직 S랭크 등급의 장창. 레어 F랭크 등급의 방패.

음영대주를 처리하고 얻은 검을 흡수 한 루베르크의 등급은 현재 레어 C랭크였다.

‘더 높은 랭크의 무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허나, 수준은 거기서 거기.

아이템의 수준은 아무리 좋아봤자 레어 D등급을 넘지 못했다. 유세현은 그제야 자신이 착용한 귀걸이와 김주희의 트라이던트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다.

‘튜토리얼 때가 아니면 정말 얻기 힘들군.’

아무쪼록 레어 아이템은 상당한 돈이 된다. 유세현과 김주희는 최대한 엄선 된 장비들을 포켓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는 얼마안가 필립이 수색을 포기하기 무섭게 옆 지역의 토벌을 맡고 있는 발레르크 가(家)를 향했다.

“저,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어디 부대지?”

일행이 지나가자 용병들의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그 정도로 일행의 모습은 무척 처참해보였다.

소식을 들은 대형 길드의 길드장, 알폰스 론 발레르크, 용병 연합의 총 지휘자가 한걸음에 뛰어왔다.

“필립경! 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알폰스는 암살을 주도한 주제에 가식이 철철 흘렀다. 필립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내용을 듣는 사람들의 눈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그, 그 많은 인원들이 전멸했다는 겁니까? 전부?”

“그렇다네. 물론 우리를 제외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도 있겠지만 행방은 알 수 없네.”

“그렇다면 이곳에 없는 발렌경도...”

“......”

필립은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 발렌에 대한 것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허...그게 무슨...그런 괴물이 있다니...”

대형 길드의 길드장도 혀를 내둘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된다.

“거기다가 나를 음해하려는 인간도 있었네. 이자일세.”

카트린이 암살자를 지면에 툭 내던지자 알폰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필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 저놈이 끼어있다니.

“이자가 자네를? 체룬 경! 당장 이자를 포박..”

“아니, 괜찮네. 몸을 의탁한 마당에 그런 것까지 부탁할 수 없지.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하는 자이니 감시는 우리가 하겠네.”

“그래도 위험할...”

“호의는 고맙다만 정말 괜찮네.”

필립의 단호한 말에 알폰스는 혀를 찼다. 저놈이 입을 뻥끗이라도 하는 날에는 볼프강 가(家)와 발레르크 가(家)는 순식간에 척을 지게 되는 것.

‘젠장, 발렌이 죽다니...’

그는 개혁파인 필립이 싫었지, 볼프강 가(家)와 대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 나아가 알폰스는 무식한 발렌을 이용하여 더더욱 입지를 다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어떻게든 놈을 처리해야 된다.’

그는 암살자가 입을 막기 위해 벌인 것처럼 꾸밀 생각이었다.

“일단 진군은 여기서 멈추고. 상부에 공문을 보내도록 하겠네.”

“흠...”

필립이 불안한 표정으로 턱을 짚었다. 사실 여기서 퇴각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총책임자는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새 밤이 깊었다.

-화르륵.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위경계에 집중했다. 진지 곳곳에 불빛이 일렁이고,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주위를 거닌다.

허나, 정말 우습게도 암살자가 잡혀 있는 장소 근처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카트린도 잠을 자야하니, 필립을 포함해 일행 모두가 교대로 감시를 하고 있는 상황.

감시 당번이 된 유세현과 이강호 중 이강호가 암살자를 향해 툭 말했다.

“내일 모두가 있는 앞에서 배후를 밝혀라.”

“...말하면 날 살려 줄 건가?”

“그러도록 하지.”

“큭! 어디서 되도 않는 소리를...웃기는군!”

입을 꽉 아문 암살자의 눈은 독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거 때려죽여도 말하지 않겠다는 듯.

이에 이강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지금 몰라서 네게 밝히라고 하는 게 아니야.”

“......”

“알폰스 론 발레르크.”

“...?!”

암살자, 듀크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지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르는 척을 했다. 이번에는 유세현이 말을 하려는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낀 유세현의 입꼬리가 다분하게 올라갔다.

“굳이 너에게 들을 필요가 없어진 것 같군.”

말과 동시에 천막 내부로 다수의 인원이 걸어 들어왔다.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툭 말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죽여라.”

그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마치 눈앞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감각.

-슈슈슉!

발 빠르게 움직임 암살자들의 장검이 둘을 향해 쇄도했다. 일반적인 생존자들과 비교하기에는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황하여 스킬도 발동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물론, 둘은 보통과는 무척 거리가 멀다.

-솨아악!

-촤악!

몸을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일격을 피한 이강호의 창이 남성의 허벅지를 갈랐다. 유세현도 여유롭게 검을 쳐냈다.

“...?!”

당황으로 물드는 눈빛.

달려든 6명의 인원들은 손 쓸 틈도 없이 피범벅이 되어 지면을 뒹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대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암살자의 두목은 발을 빼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허나.

“어딜 가려고 하는 거지?”

“컥, 컥!”

두 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단번에 발목이 잘려나간다. 팔 다리를 전부 잘라낸 유세현이 복면을 벗겨내 입안에 쑤셔 넣었다.

“강호야. 필립 좀 불러와줘.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어야.”

이강호가 밖으로 사라지기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립과 카트린이 뛰어 들어왔다. 얼굴을 확인한 필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첼베토 경?”

“......”

기사 첼베토. 알폰스가 데리고 다니는 근위기사 중 한명이었다. 무력 수준은 카트린을 살짝 웃돈다.

“저...정말 알폰스 경이 나를...”

현장검거였기 때문에 발뺌할 수도 없다. 아니, 만약 발뺌을 한다 해도 유세현에게는 본 것을 재생시켜 주는 기록 수정구가 있었다.

유세현이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암살자를 향해 말했다.

“네 목숨을 노렸는데 넌 계속 입을 다물어 주고 있을 심산인가?”

“...큭, 큭큭, 큭큭큭. 그래...알폰스 론 발레르크. 그가 사주한 게 맞다.”

“......직접 만나봐야겠다. 유세현 공, 죄송하지만 함께 동행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언제나 내림 말만 하던 필립의 언사가 바뀌었다. 카트린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지금의 현장으로 인해, 그가 지니고 있는 힘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작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볼프강 가(家)의 가주, 브라칸의 직속 호위병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첼베토를 이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

유세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의 발생을 이미 예상 하고 있었다.

다만, 하루도 안 되서 암살자를 보낼지는 몰랐지만.

‘꽤 행동력이 좋군.’

물론, 그 행동력이 역으로 알폰스의 숨통을 조이게 되었다.

“김주희, 네가 거기 있는 두 명 좀 끌고 와줘.”

“옙, 선배.”

일행이 암살자들을 지면에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자, 멀리서 경계를 하고 있던 인원의 눈에 당황감이 물들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길드장과 연합의 총지휘자를 알폰스의 방으로 불러주게. 지금 당장. 긴급 상황이라고 말하고.”

“예!”

오해로 인해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응책이었다. 천막으로 다가서자 병사가 황급히 그들을 저지했다.

“머...멈춰 주십시오. 알포스님께서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

“비켜라.”

“...하, 하지만.”

“세 번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에 책임지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터져 나오는 필립의 기백에 병사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필립이 천막의 입구를 활짝 열어 재꼈다. 내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벌써 처리하고 온 것인가?”

“......”

“왜, 말이 없...”

고개를 쓱 내민 알폰스의 얼굴 표정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피...필립!”

“내 동생을 이용해 나를 노린 자가 정녕 자네였나...결코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내가 왜 자네를...”

-툭.

뒤에 있던 유세현이 첼베토를 던졌다.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끝낸 알폰스가 되려 역정을 냈다.

“첼베토! 이게 무슨 짓인가. 필립!”

“그 말을 할 수 있다니 어지간히도 뻔뻔하구나. 이미 자객이 모든 것을 불었다.”

“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보다 필립, 자네야말로 내 기사를 이렇게 만들어놨으니 곱게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게!”

그야말로 촌극.

“대체 무슨 일이...헉!”

부리나케 뛰어온 사람들의 눈동자에 경악이 물들었다.

피를 쏟아내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서로를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는 필립과 알폰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알폰스가 또 다시 선수를 쳤다.

“필립이 병사를 다 잃더니 머리가 돌아버렸다! 내 기사를 이리 만들었단 말이다! 저놈들을 포박해라!”

“후...아직도 발뺌을 하는구나. 세현 공.”

앞으로 걸어 나온 유세현이 기록수정구에 마력을 투입하자 3D로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암살자가 등장한 순간부터 제압당하기까지 말과 행동을 모두 담고 있었다.

“알폰스님...”

“크으! 조작된 영상이다! 그보다 빨리 저놈들을 포박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

길드원들과 용병들은 결코 멍청이가 아니다. 아니, 되려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한만큼 눈치가 빠르고 얍삽하다.

“죄송하지만 저희 에르카 길드는 알폰스님의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 용병 연합도 마찬가지 입니다.”

“크...너희와 계약한 자는 바로 나란 말이다! 명령 불복종으로 같은 처지가 되고 싶은 게냐!”

“...알폰스님 정말 죄송하지만 지시는 토벌과 직접적인 반란에 한에서만 가능합니다. 증거영상이 있는 이상 저희는 알폰스님의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크으으...치욕스럽구나! 나에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나 알폰스 론 발레르크! 필립 투 볼프강에게 정식으로 결투를 청한다!”

결투는 귀족간의 명예를 건 싸움이었다. 승자는 상대의 목숨을 앗아 갈수도, 자비를 베풀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것이냐.”

“크크크. 자신이 없나보구나!”

사실 알폰스는 필립보다도 약했다. 허나, 그가 그렇게 자신감을 내비치는 있는 이유.

결투는 정말 우습게도 대타가 가능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필립의 기사 카트린은 첼룬보다 약했다.

첼룬은 본디 발레르크가 가(家)의 가주, 알펜 백작의 직속 호위 기사였기 때문.

알폰스에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알펜이 붙여준 것이다.

“명예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나를 살인자로 몰아가다니 수치스러운 줄 알아라!”

“이놈이!”

분에 찬 카트린이 한발 앞으로 내딛었다. 필립이 황급히 팔을 들어 막았다.

“내가 그것을 받아줄 의무는 없다. 돌아가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을 테니...”

“아니, 그럴필요 없습니다. 제가 하도록 하죠.”

결투에 대해서 이강호에게 들은바가 있던 유세현이 앞으로 나섰다.

이 사건 이후, 그들이 미리 짜놓은 계획을 실행하면 개혁파인 필립은 단번에 제국의 중심인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 필립에게 은혜를 더 입혀놓는다면, 이득이면 이득이었지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세현 공...”

“제 동생이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필립이 살짝 옆으로 빠지자 알폰스가 광소를 내뱉었다.

“크흐흐흐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평민에게 존대라니! 정말 머리가 돌았구나! 첼룬 경!”

첼룬이 나서자 유세현이 말했다.

“룰을 추가하고 싶다.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크크크. 평민주제에! 말해봐라!”

“내가 이기면 첼룬을 포함한 너의 목숨을 받아가겠다. 반대로 지면 나와 필립 경의 목숨을 내주겠다.”

“......”

알폰스 입이 굳게 닫혔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확실히 놈은 무슨 수를 쓴 건지 몰라도 첼베토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등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늘한 감각.

알폰스는 필립을 바라봤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왜? 첼룬이라는 자가 영 미덥지 못하는 모양이지?”

“큭! 평민주제에 잘도 지껄이는군! 좋다!”

이윽고 유세현과 첼룬이 마주섰다.

승부는 단판.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시작!”

외침과 함께, 유세현이 손을 움켜쥐었다.

-콰과광!

지독한 흑빛의 낙뢰가 공간을 휩쓴다. 사람들은 그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토벌의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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