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45화 (145/612)

< 퇴각 >

대형 길드, 자유 용병, 그리고 볼프강 가(家)의 사병.

생존을 위해 힘겨운 전투를 치르던 그들의 머리위로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괴조.

달빛에 반사 되어 비치는 놈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100마리를 가뿐이 웃도는 것 같았다.

“미, 미친...”

-캬아아!

-콰과광!

괴조의 몸에서 발사 된 갈고리가 지면을 향해 빗발쳤다.

안 그래도 버겁던 생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재난.

-슈우웅 쾅!

그 다음 순간, 스카이레블에서 하나의 인형(人形)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새빨갛게 충혈 되어 번뜩이는 눈빛.

[크크큭! 찾았다!]

헤드리아가 퇴로를 뚫고 있는 이강호와 펠무드, 카트린을 향해 쇄도했다.

“이 자식은 또 뭐야?”

제일먼저 반응한 것은 펠무드. 강한 스텟을 지니고 있던 그는 헤드리아가 그저 좀 더 특이한 개체일 것이라고만 판단했다.

허나.

-치지지직!

단순한 격돌이었는데 펠무드의 육신이 10m가량 밀려났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호적수를 이루고 있던 카트린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다니.

“크윽! 뭐 이런 놈이!”

[호오? 너도 제법이군.]

헤드리아가 손에 묻은 피를 핥으며 씨익 웃었다. 익숙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그 모습은 며칠 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컸다.

‘어지간히도 빨리 배우는군.’

이강호의 눈이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스카이레블의 포화 속에서 인간측은 거의 제압되어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원들이라고는 이제 고작 해봐야 암살자와 기사들.

인간을 공격하던 구울들이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인간 측을 돕지 않았더라면 그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치 못했을 것이다.

“이 자식들아 좀 도와라!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큭!”

펠무드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이강호는 듣지 않았다.

전장 한복판에서 이탈하려면 지금 밖에 없었으므로.

“카트린 경. 제 뒤에 바짝 붙으시기 바랍니다.”

“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적이 너무 많...”

말을 채 끝낼 새도 없이 이강호가 한쪽 손을 치켜세웠다.

[파이어 월]

피어오른 2개의 화염이 손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갔다.

범위 내에 있던 알비론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화력을 본 카트린은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건 마법?’

그가 지금까지 봐온 바.

광역스킬을 익혔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기술은 정말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위력도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런 힘도 안 들이고 그런 스킬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아무쪼록 만족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반면, 그가 사용하는 불길은 그야말로 엄청난 화력이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마법사가 사용하는 순수 마법 같지 않는 가.

‘분명 그자의 동료라고 소개 했었지...’

그렇다면 이 자도 판도라로 온지 얼마 안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나 강하다니.

[어딜 가려고!]

헤드리아가 손을 뻗었다.

병사를 난자하고 있던 무수히 많은 알비론들이 몸을 돌리더니 이강호를 향해 일제히 질주했다.

-키아아!

이윽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하는 괴물들.

알비론들은 육신이 타들어가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생각을 지니고는 있지만,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군체 종족의 또 다른 무서움.

-푹.

“크헉!”

버티지 못한 펠무드가 기어코 심장을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초인적인 체력 덕택에 죽지는 않지만,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헤드리아는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고, 이강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허억...허억...산...건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펠무드가 한발자국 움직인 찰나였다.

-크르르.

주위를 순식간에 에워싸는 알비론.

“미, 미친!”

-캬아악!

곧 이어 무수히 많은 알비론들이 펠무드를 덮쳤다.

* * *

[크큭, 너희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헤드리아의 목소리에 이강호가 몸을 돌리며 창을 휘둘렀다. 알비론과 포이즌레블. 스카이레블을 학살하면서 C랭크 80%수준으로 오른 힘 스텟이었지만, 그럼에도 당해낼 수 없었다.

‘B랭크 40%정도인가? 장난 아니군.’

마력은 분명 더 높다고 들었다.

‘지금쯤이면 세현이가 도착 할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캬아악!

풀숲에서 튀어나온 알비론들이 동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강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늦었다.”

“후우...미안.”

유세현이 클락에룬 스태프에 저장해둔 마력을 빨아들였다. 곧 암흑투기가 공간을 장악하자 헤드리아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 힘!]

-슈우욱!

헤드리아의 공격이 쇄도했다.

옆구리에서 튀어나온 2개의 칼날촉수와 등 뒤로 거미다리 같이 솟아난 6개의 송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칼날 그자체인 팔.

놈은 자신감이 넘치는지 몰려 있는 세 명을 한 번에 다 상대했다. 이강호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냥 빠지려고 했는데, 놈이 이렇게 나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번에 여러 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물론 조무래기라면 몇 십 명이 몰려와도 소용이 없겠지만, 세 명은 결코 조무래기가 아니었다.

잘만 공략하면 틈이 만들어질 테고, 자신의 한방을 놈에게 먹일 수만 있다면 잡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속전속결로 끝낸다!’

현재 구울과 알비론의 힘은 대등한 상황.

후속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끝내기로 마음먹은 이강호의 움직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보다 더 유연하고, 보다 더 날카로워진다.

시야의 맹점으로 돌아간 그가 창을 내질렀다.

-치지직!

미늘창과 강대한 내구력을 지니고 있는 헤드리아의 겉피부가 맞닿으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큭! 그런 힘으로 내 피부를 뚫을 수는...]

그때, 이강호의 손이 헤드리아의 육신으로 향했다. 헤드리아는 그 순간 영문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캬아!]

전신에서 칼날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주위를 휩쓸었다.

하나하나 치명상을 입힐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세 명은 황급히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쳇.”

이강호가 아쉬움의 혀를 찼다. 유세현이 툭 물었다.

“저놈...지금 잡을 생각이지?”

“가능하다면...3분 내에 결판 내지 못하면 그때 빼자.”

“오케이.”

전후좌우. 그들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쳤다.

흑빛의 뇌전이 주위를 휩쓸고, 피어오르는 불길이 발 닿을 길을 막는다. 그들은 강력한 스킬을 적극 이용했다.

물리저항력이나 마법저항력 등 일반적으로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도, 생명체의 특성상 속성 저항력만큼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크!]

허나, 헤드리아는 또다시 빈틈을 보이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되려 머리를 써 힘이 많이 빠져있던 카트린을 적극 공략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그가 무너지는 순간 모래성처럼 와르르 부서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

그렇게 약 3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퇴각하려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

마력의 흐름을 읽은 유세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여태까지 전투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강대한 마력이 하나가 더 늘어나 있었다.

‘무슨! 방금 전까지 분명 없었는...’

-피잇!

상공에서 3개의 구체가 회전하며 그들이 위치한 장소를 향해 날아왔다.

스카이레블이 쏘던 갈고리가 우습게 느껴지는,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

회피할 수 있는 각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젠장!’

유세현은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고 있던 천마혈사장으로 황급히 맞대응 했다.

[호오, 확실히...대단하긴 하군. 이걸 막다니.]

가래가 잔뜩 낀 듯한 컬컬한 목소리가 상공에서 울러 펴졌다. 하늘을 올려다 본 이강호의 눈매가 한순간 파르르 떨렸다.

달빛에 비쳐 보이는 거대한 육신.

부메랑처럼 꺾여 있는 놈의 크기는 스카이레블의 족히 3배는 되었으며, 8개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헤드리아와 마찬가지인 군체 직속 호위병으로 하늘의 총괄자.

[베아렉클]

‘젠장...베아렉클까지 보내다니.’

이는 군체가 그만큼 둘을 탐내고 있다는 뜻.

‘실수다...설마 이제 와서 저놈까지 보낼 줄은...’

헤드리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은 정말로 위험했다. 까딱 잘못하면, 아니 잘해도 높은 확률로 붙잡힐 가능성이 크다.

헤드리아가 낄낄 웃었다.

[크크크! 여기까지 구나.]

-파앗.

그때, 유세현이 무작정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강호와 카트린을 잽싸게 낚아 챈 그는 모든 마력을 퍼부어 천마군림보를 사용했다.

미미한 잔상까지 남는 것이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헤드리아!]

[알고 있다!]

두 마리의 괴물들이 곧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헤드리아는 거치적거리는 주위 사물들을 파괴하며 셋을 뒤따랐다.

허나, 신기하게도 아무리 빨리 뛰어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어째서?’

그 다음 순간, 유세현의 육체가 우측으로 확 꺾였다.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 속도. 헤드리아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베아렉클!]

[알고있다.]

-퓨뷰뷰븅!

아까보다는 작게 만들어진 구체 수백 개가 일대를 강타했다. 나무가 부러지며 장애물이 되어 길목을 막아섰다.

지형지물에 영향을 많이 받는 보행 생물체라면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지사.

허나, 유세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이것에는 베아렉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어떻게든 생포하라는 군체의 명령이 머릿속으로 계속 들어와 박혔다.

죽이라는 명령이었다면 쉬웠을 터인데.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명령이 갑자기 바뀌었다. 생포에서 척살하는 것으로.

이유는 간단했다.

본래의 장소와 이곳을 연결시켜주고 있던 균열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

[캬아아!]

거친 포효와 함께 베아렉클의 꼬리 부분에서 빛을 구체가 모이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크기.

헤드리아도 오른팔을 치켜세웠다.

꿈틀거리며 튀어나온 칼날의 촉수가 팔을 감싼다. 헤드리아의 팔은 순식간에 3m정도로 크고 기다랗게 늘어나 있었다.

[죽어라!]

두 괴물이 각기 준비했던 기술을 발산했다.

-피잇! 슈우우우!

-솨아아악!

파공성이 이르며 검풍과 강한 열을 동반한 빛의 구체가 세 명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컥!”

카트린이 경악을 토해냈다. 이것은 결코 피할 수도, 반격할 수도 없어 보였다.

허나.

눈을 번뜩 빛낸 이강호가 오른팔을 내질렀다.

그간 아껴두었던 모든 마력을 쏟아 부운 일격.

청염이 빛의 구체와 검기를 순식간에 감쌌다.

위력은 막상막하.

-쿠구구!

강력한 열기가 맞부딪치자 대기가 소용돌이 쳤다.

베아렉클의 8개의 날개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정말로 놀랐을 때만 나오는 반응이었다.

상당한 마력을 쏟아 부어 날린 열화탄을 방어해낼 수 있는 자가 있었다니.

[크아아악! 이 자식들 거기 서라!]

헤드리아의 입에서 분에 찬 괴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유세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는 순간이 네놈들의 끝일 줄 알아라!]

이윽고 추격을 포기한 헤드리아가 베아렉클의 등에 올라탔다.

전선을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하는 두 마리의 괴물.

“허억, 허억...”

스킬이 풀리자 헛발질을 하며 유세현의 몸이 지면을 뒹굴었다.

심장이 터질듯 요동치고 있었다. 폐에 바람이 찬 것처럼 속도 메스꺼웠다.

핑핑 도는 눈앞.

모든 것을 이겨내고 유세현이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하자 동향을 살피던 이강호가 입을 열었다.

“그놈들 돌아간 거 같다. 그대로 좀 쉬어.”

확실히 마력이 멀어지고 있다. 유세현은 대자로 뻗었다.

‘균열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맞아...분명 언제 닫힐지 모른다고 했었지.’

정말 천운이 따랐다. 만약, 균열이 닫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이곳에서 죽었거나 사로잡혔을 것이다.

유세현은 팔을 들어 자신의 손등을 바라봤다.

아직도 스스로가 약하게만 느껴졌다.

이래서는, 동생도 지킬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다.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권능과 고유능력 그리고 천마신공.

앞의 두개는 아직 깨우칠 방도를 찾지 못했다. 허나 천마신공만큼은 소재가 확실했다.

북서쪽. 메마른 숲을 지나서 있는 깊은 산골.

그곳에 절대 강자가 될 수 있는 비급이 존재한다.

‘후...’

꼭 얻을 것을 다짐한 유세현은 생각을 접고 두 눈을 감았다.

땅의 차가운 냉기가 뜨겁게 달궈진 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 퇴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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