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30화 (130/612)

< 재앙의 징조(3) >

-키에에엑!

-턱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몬스터와는 생김새가 약간 다른, 붉은색의 반점이 돋보이는 마수가 힘을 잃고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그 마수의 주위로는 수십 구의 마수들이 난자되어 쓰러져있었다.

여태까지 진군해오며 언데드 레이즈로 되살린 몬스터들이 전멸한 것.

[키메라, 퓰론을 처리하셨습니다. 중앙지점에 도착하여 장소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

퓰론이란 괴물은 무척이나 강했다. 마력이 높은 것은 딱히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탁월한 기본 스텟과 높은 암흑저항력 그리고 가지고 있던 스킬.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던 퓰론은 궁지에 몰리자 스킬 하나를 사용했었는데, 육체를 완전 폭주시키는 스킬이었다. 그 결과 퓰론은 지능을 완전히 잃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암흑투기를 사용해 제압 하던 유세현조차도 감히 범접하지 못한 정도.

‘흠...역시 이곳은...’

몬스터의 체내에 존재하는 어둠의 마력.

여태까지 봐온 바, 어둠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딱 두 종류 밖에 없었다.

고위 몬스터로 분류 되는 지능 높은 마족이나, 혹은 모종의 스킬로 되살려진 지능 없는 몬스터.

허나, 키메라는 이 둘 중 무엇에도 속하지 않았다.

지능은 제법 높지만, 피가 식어 있는 것이 육체는 죽어 있다.

때문에 되살렸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괴물을 만든 술자는 자신보다 좋은 스킬을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이 끝에는 술자가 있는 건가?’

강한 마법과 몬스터를 다루던 아키몬드가 문득 떠올랐다.

‘자...그럼 어떻게 할까.’

마을에서 출발한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 볼프강 가(家)의 자제들이 몬스터 토벌을 나섰을 시간.

본래라면, 지금 바깥으로 나가 계획을 행하는 것이 맞겠지만, 유세현은 현재 최대한 많은 스텟을 올려놔야만 했다.

천마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 탄로난 이상, 도망친 놈이 일행을 이끌고 뒤쫓을 것이기 때문.

이전 이강호의 말에 따르자면, 무림인들은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데 무척이나 능하다고 한다.

또한 실버어레스트와 거래를 할 정도니, 자유 신분을 얻는 것도 무척 쉬우리라.

‘그래, 딱 일주 일...일주 일 내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그때 나가자.’

유세현의 시선이 내부로 향했다.

* * *

본래, 몬스터 토벌이나 던전 공략은 400~500이라는 무수히 많은 인원들이 동원된다.

안전 등의 명목 때문이다.

그렇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토벌에서 코인을 몇 개 얻지 못한다.

400마리의 몬스터들이 코인을 각각 2개씩 떨어트린다고 가정해도, 정말 2개 씩 밖에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생존자들이 제자리에서 머무는 이유 중 하나.

강해지려면 소수로 다니거나, 몬스터가 많은 곳으로 가야되는데 적의 수준도 파악할 수 없고, 적당히 지낼 수 있는 지금, 누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허나, 그 미친 짓을 현재 유세현과 김주희는 하고 있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남들이 1마리를 죽이고 있을 때 그들은 수 마리를 때려잡는다.

가히 놀라울 만한 무력.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한 남성이 있었다.

던전의 주인이자, 지진의 근원인 흑마법사 레이커드만.

한번 죽었다 부활한 그는 계약의 이행에 따라 3년 전부터 키메라를 제조하여 일정 기간마다 바깥에 흩뿌리고 있었다.

7년, 딱 7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계약을 이행하면 비로소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게 될 권리를 얻게 되기 때문.

그렇기에 그는 키메라를 재빨리 퍼지게 해 자신의 장소가 노출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이 장소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그는 막연하게 이 생활이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난데없이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깜짝 놀란 레이커드만은 차분히 인원을 살폈다. 그리고는 안심했다.

고작 2명밖에 안 되는 적은 수의 인원으로는 배치시켜놓은 키메라들을 뚫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탓이다.

허나, 그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놈들은 키메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부활시키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젠장! 놈도 흑마법사였나? 아니, 그렇다고 치기에는 육체능력이 너무 탁월한데...뭐가, 어떻게 된 거지?’

레이커드만은 흑마법과 키메라 제조술로 과거 알테리아에서 악명을 떨친, 정말 실존했던 인물이었다.

현재는 그 기억도 전부가지고 있는 상태.

모르는 것은 오직 판도라로 이동 된 정보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이곳이 알테리아 대륙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래서는 결국 이곳까지 들이닥치겠군. 놈을 사용해야 되나?’

레이커드만은 무수히 많은 재료의 뒤에 위치해있는 커다란 포트말린 병을 바라봤다.

앞쪽은 사자, 뒤쪽은 큰 뱀, 그리고 몸통 중간에는 염소의 얼굴이 박혀있는 사족보행 몬스터.

통칭 키마이라.

놈은 레이커드만이 그간 만든 작품 중에서도 생전을 통틀어 역대 급으로 강한 힘을 지닌 키메라였다. 통제가 잘 되지 않아 풀어놓지 않고 있었는데.

‘그래, 와라. 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걸 후회하게 해주지.’

* * *

-끼이익.

우두커니 서 있던 커다란 문이 열리자 온갖 쾌쾌한 악취가 코를 자극했다.

썩은 시체와 피 그리고 화학약품이 뒤섞인 냄새.

어떤 마족이 있을지 경계하며 돌입한 유세현의 앞으로는 무수히 많은 키메라가 즐비해 있었다.

이에 유세현 또한 팔을 쓰윽 올렸다.

뒤에 위치해 있던 퓰론을 포함한 되살아난 키메라들이 앞으로 나선다.

언데드 키메라와 키메라간의 대결.

막 선공을 취하게 하려던 찰나 키메라 속에서 하나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 레이커드만의 연구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살아 돌아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사람?”

예상치 못했던 사람의 등장에 김주희가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레이커드만이 눈 꼬리가 씰룩인다.

이름까지 밝혔는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네년, 나를 모르나? 이 위대한 흑마법사 레이커드만을?”

“......”

김주희의 인상이 착 가라앉았다.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하하! 내가 암살당한 뒤 꽤나 시간이 흐른 모양이군! 나를 기억하지 못하다니!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새겨주도록 하마! 전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나 레이커드만의 힘을!”

딱!

레이커드만이 손가락을 튕기자 엄청난 수의 키메라들이 그 흉흉한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이에, 유세현도 팔을 앞으로 뻗었다.

뚜둑.

콰직!

키메라들이 얽히고설키며 피의 향연을 이룬다.

찢어발겨지는 살갗과 뜯겨져나가는 육체.

다시 살아난 언데드 키메라는 지능이 무척 낮아, 일반 키메라들에게 서서히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은 이전 방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상황.

언데드 키메라들은 어디까지나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지, 끝을 내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유세현이 암흑투기를 사용하자, 레이커드만의 입에서 억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 그렇군. 뭐 때문인가 했더니 이 힘 때문에 내 키메라들이...어둠의 장막!”

압박이 그나마 누그러들자, 레이커드만이 간신히 숨을 골랐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몸을 수월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권능에 의해, 암흑속성 저항력이 관통되었기 때문.

레이커드만은 현재, 죽었던 당시와 똑같이 마족과 계약한 높은 마력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본래라면 마족이 판도라로 넘어오게 되면서 끊겨야 되었지만 던전 마스터의 역할로 부활했기 때문.

“전부 파묻혀버려라! 어스웨이브!”

트드득!

지면이 흔들리며 땅이 높이 솟아올랐다.

레이커드만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묻어버릴 셈이었다.

밀도가 상당하기에, 소드익스퍼드 조차도 빠져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레이커드만은 곧바로 연계로 석화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허나, 그 생각은 유세현의 손바닥에서 발사 된 검붉은 빛과 함께 생각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큭! 역시 그걸 사용한 건가!”

미리 예측하고 있던 레이커드만은 미리 준비해놨던 이동에 특화된 키메라에 올라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동시에 준비해두었던 회심의 키메라, 키마이라를 풀었다.

-크어어엉!

키마이라는 포효와 함께 무자비한 난자를 시작했다.

레이커드만은 마법을 사용하며 그것을 보좌했다.

간신히 앞발을 피하던 유세현이 김주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밑천을 드러낸 것 같으니 공격을 시작하자는 신호였다.

그렇게 반격이 시작되었다.

* * *

“이, 이게 무슨...”

그 자랑스럽던 키마이라가 당했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적들을 처리했다고 생각한 찰나에 물이 살아 움직여 키마이라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 와 동시에 떨어진 흑빛의 낙뢰.

레이커드만의 주위에는 어느새 시체로 변한 키메라와 통구이가 된 키마이라가 늘어져있었다.

목 끝으로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

“사, 살려줘! 시, 시키는 대로 뭐든 하겠다.”

레이커드만이 황급히 몸을 굽혔다. 그 행동은 그의 겉모습처럼 너무도 인간과 똑같았다.

죽이려고 검을 들어 올리자, 레이커드만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너, 너! 흑마법사지? 보, 보아하니 단순히 되살리기만 하는 하급 흑마법을 익힌 것 같은데 나, 나를 살려준다면 키메라의 제조법을 일러 주겠다!”

“키메라?”

“그렇다. 네, 네가 지금까지 죽여 온 게 내가 만든 키메라다! 써, 썩지 않고 지능도 제법 있으며, 일반 구울보다도 훨씬 강하지. 너, 너도 흑마법사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들어온 딜.

유세현은 일단 수락했다.

“좋다, 전수해봐라.”

“그, 그렇다면 목숨은 살려주는 것이겠지?”

“물론이다.”

거짓말. 그러나 유세현은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이, 이쪽으로 따라와라.”

레이커드만은 풍비박살이 난 내부를 걸어 연구실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유세현은 혹시모를 함정에 조심하며 뒤따랐다.

-척.

마침내 이동을 멈춘 레이커드만의 앞에는 한 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레이커드만이 손은 얹자, 자동적으로 상자의 문이 열린다. 내부에는 낡아빠진 고서가 있었다.

‘스킬 코인이 아닌데?’

유세현은 아이템을 살폈다.

아이템 명: 레이커드만의 키메라 제조법.

등급: 유니크 [E Rank]

상세정보: 레이커드만이 일생을 바쳐 연구한 키메라 제조의 모든 것이 저술되어있는 책 입니다. 각종 비율 및 배합 등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뭐지? 설마 직접 만들어야 되는 건가?’

유세현은 입맛을 쩝 다셨다. 스킬이 아니라면 현장에서 바로바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

더 나아가 그에게는 시체를 이리저리 휘젓는 취미는 없다.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하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놈 자기를 흑마법사라고 했었지. 스스로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유세현은 의도적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이야기를 얼추 들은 그의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진다.

레이커드만은 되살려준 신이라는 작자에게 정말 완벽하게 이용당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레이커드만이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예정 되어 있는 시기는, 지반이 붕괴되는 시기가 일치하기 때문.

‘대게 이런 식인건가...’

-서걱.

유세현은 방심하고 있던 그의 목을 일격에 베었다.

이것은 아이템을 받은 유세현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바닥에 떨어진 마력 코인을 흡수하자 마력이 체내로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유세현이 혀를 살짝 찼다.

아키몬드도 사용했었던 방어마법스킬, 어둠의 장막을 떨어트렸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혹시 몰라 내부를 샅샅이 뒤진 그들의 두 눈에 구석에 쳐 박혀 있는 아이템 하나가 눈에 띠었다.

아직 유세현 만이 지니고 있는 휴대용 압축 포켓.

그곳에는 지팡이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자신과 맞서다가 부러져버린 레이커드만의 지팡이였다.

여분으로 한 개 더 꿍쳐 둔 모양.

아이템 명: 클락에룬 스태프

등급: 레어 [C Rank]

상세정보: 마력을 끌어들이는 클락에룬 수정구가 박혀있는 스태프 입니다. 일정한 마력을 축적 해두는 게 가능합니다.

항상 전투하다 보면 마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그들에게는 가뭄속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선배님 이제 더는 없는 거 같은데요?”

“그런 것 같네.”

유세현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 최대한 많은 언데드를 일으켰다.

그 수는 약 50마리.

유세현은 곧바로 던전을 나가지 않고, 마력을 계속 회복했다.

시간이 제법 경과된 만큼 밖에 위치시켜뒀던 언데드들이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혹시 몰라 공격태세를 취하라고 명령을 해놨으니 그래도 시간은 제법 끌고 있을 터.

출구에 손을 얹자, 환한 빛과 함께 여태까지는 없었던 글귀가 나타났다.

유세현과 김주희는 난데없는 글귀의 등장에 잠시 멍하니 문을 살폈다.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1천개에 달하니. 뿌리가 사라지자 줄기는...]

그 아리송하기만 한 말은 얼마못가 끊겨있었다.

“선배님 이건 뭘까요?”

“나도 몰라. 일단은 외워 놔봐. 나도 외울 테니까. 이강호에게 말해주면 뭔가 알겠지.”

“예.”

쉬운 문구였고, 무척 짧았기에 머릿속에 넣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윽고 문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이번 몬스터들은 수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요. 필립 공자님.”

“예, 그건 다행이긴 합니다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의 코인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볼프강 가(家)의 병력들이 토벌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수도로 이동을 하며 길목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소탕했다.

그 수는 약 300마리.

제법 강하기는 하나, 수적으로 전혀 꿀릴 것이 없었고, 강한 기사들이 있었기에 밀리는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죽인 몬스터들이 코인을 내뱉지 않았다는 것.

옆에 있던 발렌이 툭 말했다.

“에이, 형님 그렇게 따지면 이 세계가 더 이상하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쇼.”

“음...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의 일이었다. 필립은 온몸의 신경이 삐죽삐죽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을 느낀 것은 필립뿐만이 아니었다.

카트린을 포함한 각 기사들이 외쳤다.

“전군 전투준비!”

-키아아악!

다음 순간 풀숲에서 등장한 엄청난 수의 키메라들이 병력을 향해 몰아쳤다.

< 재앙의 징조(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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