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의 징조(2) >
“하하. 생각 잘 하셨습니다.”
유세현이 몸을 돌리자, 김주희가 곧바로 입을 열어 물었다.
“선배님, 이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일단은...”
그들의 대한 정보를 모은다. 결코 튀지 않는 방법으로.
‘필립과 발렌이라...’
여동생이 노예로 팔려간 곳에 남자 귀족이 있다는 것은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행여나 무슨 일이 발생했을지 모르니까.
왜, 흔히 만화에서나 소설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노예로 팔려간 여자들을 건드리는 귀족들.
그리고 만약 늙은 백작이나, 그들이 동생을 건드렸다면...
‘곱게 죽지는 못 할 거다. 절대로...’
그는 곧바로 상가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은근슬쩍 캐묻기에 이곳보다 적합한 곳은 없다.
유세현은 포켓을 뒤져 마석을 꺼냈다.
여태까지는 딱히 쓸 이유가 없어 꺼내지 않은 것이지, 없던 것은 아니다.
아니 되려 지부를 털고, 여태까지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하며 사냥을 해온 덕분에 새내기로서는 결코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마석을 지니고 있다.
“식량, 아니면 네가 필요하다 싶은걸 사면서 은근슬쩍 떠봐.”
“아하! 그런 거하면 제가 또 특기죠. 저만 믿으세요!”
김주희는 묘한 자신감을 보였다. 남자친구라는 존재들의 돈은 물 푸듯이 썼지만, 가정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자기 돈은 절약해서 사용했기 때문.
그녀는 가격을 후려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딴 길로 샜다.
당연히 상가주인으로서는 물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것보다도 대화에 맞춰주는 게 났기 때문에 적극 대답해 주었고, 결국 김주희는 몇 군데를 돌지 않아 필립과 발렌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얻을 수 있었다.
필립과 발렌.
필립은 판도라가 아닌 원래의 대륙, 알테리아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유망주, 차기 소드마스터 후보.
그는 원래부터 마력을 몸에 축적할 수 있는 소질이 있었고, 검술도 상당히 뛰어났다고 한다.
더 나아가 성품도 좋아 영지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발렌.
그의 검술은 제법 뛰어났지만, 아쉽게도 마력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형을 따라 열심히 수련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에 좌절하여, 한동안은 개차반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시녀에게 손을 대고, 남자 시종들에게는 폭력을 휘두른다.
때문에 형이 좋은 쪽으로 세간에서 유명했다면 동생은 안 좋은 쪽으로 유명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력을 얻을 수 없었던 이전 세계에서의 행보.
판도라로 넘어와 마력을 손에 넣게 된 그는 지금은 착실히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 김주희에게 성매매를 권유했던 중년의 남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하다 보니 이거 말이 길어졌구만. 그보다 사갈거지? 어제 일이라면 내가 미안해~서비스 얹어 줄테니까 기분 풀고~”
“음, 그럼 서비스 얹은 채로 2쿠퍼에 해주세요.”
“에이!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3쿠퍼도 충분히 싼...”
“어제 저한테 한 말이 더 너무한 것 같은데요?”
“끙...대신 사용해보고 좋으면 또 들려줘야 된다?”
“에이~그런 건 당연하죠. 대신 그때도 서비스는 주셔야 되요. 제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안 아물었거든요.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닮을 수 없다는 거 아시죠?”
“크...알았어.”
중년의 남성은 ‘생활력 있네’ 라고 연신 궁시렁대며 물품을 싸주었다. 싸게 싸게 좋은 정보를 얻은 김주희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어 유세현과 합류했다.
“선배님 제가 알아낸 바로는요. 필립이란 사람은...”
이에 유세현은 적잖이 놀랬다. 갈라진지 1시간도 안되어 이 정도로 정보를 많이 수집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유세현은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취하는 것에서는 무척 능했으나, 능글맞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특기가 아니었다.
처음 아무 쓸모도 없었던 것을 고려하자면, 전투 및 다방면으로 정말 엄청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녀.
“용케 그런 것까지 알아냈네. 정말 잘했다.”
“엣헴! 제 손에 걸리면 이 정도는 껌이죠!”
김주희가 가슴을 내밀며 고개를 살짝 치켜세웠다. 그 모습이 마치 칭찬해 달라는 아이들처럼 보였기에, 유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대략적인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탐색.
볼프강 가(家)의 병사들은 수가 무척 많은데다가, 눈에 띄는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을 찾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여러 여관 중 최고로 삼엄한 경비를 확인한 김주희가 서큐버스를 소환하여, 창가를 통해 내부를 살피도록 했다.
방에는 두 명의 남자와 가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때마침 모여 있었다.
열심히 움직이는 입가를 보니 회의를 하고 있는 모양.
유세현의 눈이 금발의 남성을 향한다.
8:2 가르마로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칼과 온화 해 보이는 황금색 눈동자.
‘저놈이 필립이겠군.’
필립은 들었던 대로 상당한 미청년이었다.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였는데, 서양인의 특색을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사뭇 남다르다.
또 바로 옆에는 발렌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생김새는 비슷하나 눈 꼬리가 올라가 있어 전체적으로 인상이 날카롭고 머리카락도 대충정돈 했다라는 것이 겉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필립은 C랭크 중반급의 발렌은 C랭크 초반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덧붙여 병사들의 수준은 D랭크 80% 정도.
때문에 스텟이 D랭크 95%로 오른 지금, 유세현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 수준이었다.
문제가 되는 건 C랭크 최상으로 보이는 3명의 중년의 기사.
이 자들은 확실히 강하다.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백작이 단순히 직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 증명된다.
그렇다면 현재 살아있을지 모르는 동생을 구출하기위해 행해야 하는 최선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유세현은 수단을 정하기 위해 정보를 모았다.
만약 그들이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면, 길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떻게든 두 놈만이라도 급습해서 죽일 생각이었다.
허나, 반대로 이렇게 좋은 소문이 돈다면.
‘한번 진위를 확인해 봐야겠군.’
유세현은 그들이 나올 때까지 대기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호위 기사와 함께 식당으로 이동할 때를 노려, 골목에서 허겁지겁 튀어나와 몸을 부딪치는 연기를 펼쳤다.
텁!
쿵!
물론, 필립의 근처에 다다르기도 전에 중년의 기사에게 제압을 당했지만.
치잉!
칼을 빼든 중년의 기사의 눈동자에서 강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네놈 뭐하는 놈이지?”
“아, 저는...”
말을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필립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카트린 경 일단 검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어딜 급히 가다가 실수한 것 같군요.”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카트린이 검을 거두자, 이번에는 발렌이 발로 유세현의 가슴을 짓밟으며 제압했다.
꾸구국.
자연스레 힘이 실리며 가슴으로 부터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진다. 스텟이 낮은 사람들은 분명 고통에 몸부림 쳤을 것이다.
“참, 형은 너무 낙관적이라서 문제라니까? 암살자였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일단은 데리고 가서...”
“됐다. 그냥 놔줘라. 암살자가 이렇게 허술하게 올 리가 없지. 그리고 우린 아직 저자의 이야기도 들어주지도 않았잖냐.”
“허~알겠소 형님. 형님이 뭐 그리 말한다면야...”
발렌이 비로소 발을 치우자, 유세현은 고개를 숙이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일행이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급히 뛰어 가다가...”
“봐봐라.”
“우리 말하는 거 듣고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너무 사람을 의심하면 안 좋은 법이다.”
“에휴, 마음대로 하쇼.”
발렌이 유세현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벌침을 쏘듯 마지막으로 말을 쏘아냈다.
“야 평민 앞으로 오래 살고 싶으면 눈 똑바로 뜨고 다녀라? 어?”
“발렌!”
“에휴, 알았어, 알았다고! 걱정도 못해먹겠네. 젠장!”
발렌이 투덜거리며 먼저 앞으로 나섰다.
필립이 난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이거 괜히 미안하게 됐군.”
“아닙니다. 앞을 못 본 제 불찰이 큽니다.”
“그래, 앞으로는 조심해서 뛰고. 이만 가보게.”
“예.”
필립이 유세현의 어깨를 툭툭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일은 무마되었다. 유세현의 대우를 본 김주희가 발렌을 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발렌이라는 저 남자 못쓰겠네요.”
사실 유세현은 필립의 인성이 안 좋았다고 해도 별 꿀릴 것이 없었다.
현재의 그들은 자유신분.
귀족에게 부딪혔다고 해서 잡혀 들어가지 않는다.
유세현이 입꼬리가 다분히 올라갔다.
“그래, 발렌은 못 써먹을 것 같네.”
하지만.
“필립은 제법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 *
“저, 정말 들어가시겠다는 겁니까? 분명 볼프강 가(家)에서 일주일 뒤에 토벌을 시작하겠다고 정식 공표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예, 그건 봤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바빠서요. 하루이틀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루 이틀 아니라서라니...후, 알겠습니다.”
어차피 얼마 못 지내는 것을 왜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수도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인지.
병사는 두 남녀의 완고한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길을 비켜주었다.
감시탑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착 가라앉은 공기가 폐 내부로 유입되며 육신을 자극했다.
마력의 흐름이 말하고 있었다.
제법 강한 마수들이 이 숲에 즐비해 있다고.
랭크로 따지자면 대략 C랭크 10%정도.
“김주희 긴장을 놓지 마라. 이전의 놈과 같이 마력의 양을 숨길 수 있는 몬스터가 혹시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옙! 알겠습니다.”
그들은 다 피해가려고만 하는 숲길을 스스로 헤쳐가며 마수들을 향해 나아갔다.
-캬아아!
이윽고 벌어진 전투.
등장한 마수들은 메마른 숲에서 만났던 마수보다도 기괴한 육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몸통은 거미요. 다리는 말처럼 역으로 휘었으며, 팔은 독침과도 같이 날카로웠다.
이리저리 실로 꿰맨 모습을 보아하면 누군가가 강제로 이어붙인 느낌.
아무쪼록.
서걱.
그들은 상당히 많은 스킬을 가지고있었지만, 유세현 앞에서는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마수가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합친 모습인 만큼, 스텟도 제법 균일한지 각양각생의 코인을 떨어트렸다.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싶은 유세현에게는 그야말로 노다지 같은 장소.
‘언데드 레이즈.’
유세현은 죽이는 족족 스킬을 이용하여 되살렸다.
그렇게 되살리기를 어느덧 100마리 째.
왼쪽 눈가 위로 나타난 알림창이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언데드 레이즈의 숙련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권능에 의해 암흑투기의 랭크가 F에서 D로 승격됩니다.]
마력 소비량은 더욱 줄어들고 효율은 올라간다.
그렇게 3일 지난 지금 유세현은 400마리가 넘는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로 하여금 사냥을 하게하면 편하겠지만, 추후 사용해야 될 곳이 있음으로 활동을 자제하게 한 상황.
사냥은 체술도 늘릴 겸 오직 단 두 명이서 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 지금, 그들은 맨 처음 지진이 일어났을 때 마수가 밀집되어 있던 장소에 도달해 있었다.
눈앞으로 보이는 커다란 동굴의 입구.
“선배님 이건...”
“음...”
아무리 봐도 근원지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잠깐 둘러볼 겸 동굴에 발을 들여놓았다.
[레이커드만의 연구실에 진입하셨습니다. 중간 지점까지 이 장소를 이탈할 수 없습니다.]
튜토리얼 및 구름섬 때나 볼 수 있었던 법칙이 갑작스레 그들을 옭아맸다.
훙! 훙! 훙!
동시에 반갑게 맞기라도 하듯 벽에 나열되어 있던 나무막대에 자동적으로 점화가 된다.
유세현은 차분히 기억을 되짚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이강호는 이러한 룰을 지닌 곳이 아르카드 제국 내에서는 단 한 군대 밖에 없다고 했었다.
12신물의 파편 중 한 개가 위치 해 있는, 지금은 황제의 성에 파묻혀버린 유적의 내부.
그런데 그와 같은 법칙이 이곳에서 발현이 되다니.
‘그 유적과 무슨 연관이 되어있는 건가?’
사실 신물의 파편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힌트를 모아 특정 장소를 발견해내야 된다.
물론, 미래를 알고 이강호는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이강호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 던전은 이번 몬스터 토벌을 선언한 볼프강 가(家)에 의해 제거되는 곳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딱 들어맞긴 하다.
아무쪼록, 이제는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내부의 마력을 훑어본 유세현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던전 내부 몬스터들의 마력은 외부에 비해 대략 15%정도 더 높았다. 또한 놈들은 이전처럼 흩어져서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군데에 몰려 있었는데 사람냄새를 어찌나 잘 맡는지 어둠에 동화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유세현은 그들을 상대하며 깨달았다.
3명의 중년 기사들의 스텟이 마력 수준으로 균일하지 않는 한 현재의 볼프강 가(家)의 전력으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만약 상대를 약화시키는 암흑투기가 없었더라면, 두 사람 또한 광역기를 날리며 하루에 한번 씩 진군해야 했을 것이다.
< 재앙의 징조(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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