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앙의 징조(1) >
메마른 숲의 지역으로부터 서쪽으로 300km 떨어져 있는 깊은 산. 여행자나 시민으로서 제국에 속하는 것을 거부한 집단이 살고 있는 성체의 깊은 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남녀가 기하학적으로 새겨진 문양 속에서 허우적거리
고 있었다.
“으어어어.”
어찌 된 영문인지 넋이 반쯤 나간 목소리.
“시작해라.”
중년의 남성이 말하자, 남녀를 둘러싸고 있던 5명의 남성들이 주문을 읊듯 중얼거렸다.
“으아아악!”
“꺄아아아”
어리숙했던 음성이 비명으로 뒤바뀌며 전신에서 피란 피는 전부 빨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장소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쳤지만, 말라비틀어진 미라의 모습이 되는 것을 면할 수는 없었다.
중년의 남성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되려, 광기 어린 눈빛으로 한 남성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선택받은 남성은 불안감과 초조함이 담긴 표정 그대로 마법진 내부로 들어갔다.
슈우욱!
“옴하라바...”
영창을 중얼거리자 한데 고여 있던 피가 남성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중년의 남성은 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10% 20%...
이윽고 50%가 넘자 중년의 남성의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돌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으으...으아아아악!”
남성의 피부에 갑작스레 기포가 생기고 터져 나갈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가.
펑!
남성의 육신은 마침내 풍선처럼 터져버리고 말았다.
술법을 행한 5명의 교인들은 중년 남성의 눈치를 살폈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모습.
이윽고 그의 목에서 쩌렁쩌렁 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왜...왜! 자꾸 중간도 못가 실패하는 거냔 말이다!”
쿠우웅!
현 마교의 부교주 양무원.
그가 일으켰던 사자후의 후폭풍이 지나가자 한 남성이 재빨리 다가와 경황을 보고했다.
“여, 역시 깨끗한 처녀의 피가 아니면...”
“처녀? 그게 정녕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이 세계에서!”
“......”
남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 그들이 하려는 것은 실전된 천마의 무공을 뛰어넘는 새로운 무공의 창시였다. 그것을 위해 금단의 술법까지 이용했다.
허나, 결과는 항상 이 꼴이었다.
“음영대주.”
“충!”
양무원이 말하자 뒤에서 복면을 쓴 한 남성이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노예는 언제 들어오지?”
“며칠 전 대원을 보내놨습니다. 곧 있으면...”
그때였다.
스스슥.
음영대주의 뒤에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거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음영대원 장곽. 지금 막 복귀했습니다.”
“그래, 때마침 딱 도착했군. 이번에는 몇 명이나 끌고 왔지? 부마존께서 알고 싶어 하시는...”
장곽을 향해 말하던 음영대주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왼쪽 팔이 없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챈 것은 당연히 음영대주 뿐만이 아니었다.
황급히 양무원의 눈치를 살핀 음영대주가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송구스럽습니다만. 생존자에게 당했습니다.”
“생존자? 현대인이라는 놈들에게 말이냐?”
치잉.
시퍼런 칼날이 검집에서 자연스레 빠져나온다. 부교주의 직속 부대 중 하나인 그들은 당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았다.
그런데 죽으면 죽었지 어찌 패배하여 살아 돌아온 단 말인가.
대원 한명으로 인해 눈 밖에 나게 될 음영대주는 당장 목숨을 거두어 양무원에게 음영대의 규율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허나.
“그 현대인은 실전된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실전된 무공?”
“예, 그리고 제가 본 실전된 무공은 천마의 무공이었습니다.”
“...?!”
뜬금없는 말에 음영대주와 양무원의 두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들은 것이란 말인가.
“방금 뭐라 말했지?”
이번에는 양무원이 물었다. 장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반복했다. 음영대주가 황급히 검을 장곽의 목을 향해 겨눴다.
“어디서 부마존님께 그따위 거짓을 고하느냐! 천마는 제거...”
“멈춰라. 음영대주.”
“충!”
철저한 정보 통제로 인해 천마가 살아서 도망쳤다는 것은 마교내에서도 교주와 그 직속 친위대, 부교주 밖에 알지 못하는 사항이었다.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거짓을 알리는 것이라면 좀 더 그럴싸하게 꾸며내지, 여기서 굳이 천마의 무공에 대해 꺼낼 이유는 없다.
즉.
“이름이 뭐지?”
“장곽입니다!”
“그래, 장곽. 그리고 음영대주.”
“충!”
“잠시 따라와라. 할 말이 있다.”
그렇게 잠시 뒤 음영대의 일원 전부가 은밀히 산을 빠져나갔다.
* * *
한편, 유세현은 최단 루트를 통해 이동을 개시했다.
마냥 안전할 것 같기만 했던 아르카드 제국 내부는 생각보다도 위험한 몬스터들이 무수히 즐비해 있었다.
마수, 식인식물 그리고 엄청 큰 조류까지.
안전한 곳은 그나마 아르카드 제국군이 주둔해 있는 마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낭비될 것을 고려해 일부러 다른 경로에 있는 마을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직선으로 이동하며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한 생존자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안전한 곳은 주위의 모든 몬스터를 몰아낸 수도권뿐이라는 것을.
그렇게 2주.
강행군을 한 그들은 어느새 수도권으로 향하는 길목을 이어주고 있는 도시, 프라비아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마법물품 보고가세요! 훌륭한 매직 등급의 장비도 있습니다!”
“렘파드 열매! 팝니다! 먹으면 삼일 간 공복을 채워주는 렘파드의 열매 10개가 단돈 10쿠퍼~”
이곳은 여태까지 봐왔던 마을과 달리 무수히 많은 인파가 자리 잡은 채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여관은 물론이거니와, 무려 음식점까지 존재한다.
이에 김주희는 놀란 표정이 되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물건을 쥔 채 호객을 하는 상인들과 흥정을 하며 가격을 후려치려는 사람들.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때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성이 김주희의 팔목을 낚아챘다.
“거기 아가씨! 얼굴은 너무 아름다운데 더러워서 빛이 안사는 거 같아~사냥 나갔다 온 거지? 그런 의미에서 이거 어때? 새롭게 발명한 샤워용품! 원래는 20개에 5쿠퍼지만 아가씨 덕분에 눈 호강 했으니까 딱 3쿠퍼에 넘겨
줄게!”
쿠퍼, 실버, 골드.
이것은 본래 아르카드 제국인이 사용하던 화폐였다. 물론, 지금 그들이 말하는 쿠퍼는 진짜 쿠퍼가 아니다.
마석은 지니고 있는 마력의 수준에 따라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뉘었는데, 최하급 마석 몇 개라고 일일이 말하기 불편하니 편의상 쿠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 안사요.”
“에이~그러지 말고. 멋진 남친도 있는 거 같은데 언제나 더럽게 다닐 수는 없잖아? 이거 있으면 사냥 나가서 씻지 못 할 때도 만사 오케이라고! 밤에도 일을 볼 수 있지! 응? 어때? 가지고 싶지?”
“아...이, 이거 놔주세요.”
이렇게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철면피인 김주희는 생각보다 당황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케빈의 나서려고 할 때 유세현이 남성의 손을 낚아챘다.
“저희는 돈이 없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형씨도 재미 좀 보려면...”
스윽.
의문을 표하는 중년 남성을 향해 유세현이 팔을 뻗었다. 손등을 확인한 그의 인상이 단번에 돌변했다.
“쳇, 새내기였어?”
못 볼 것 봤다는 표정. 유세현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은 남성의 눈동자가 김주희의 전신을 훑었다.
고객으로 대했던 것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무척 음흉한 표정이었다.
“그럼 여기 아가씨도 새내기??”
“......”
“호오...혹시 한탕 뛸 생각 있어? 10쿠퍼 어때?”
이 말의 뜻이 무슨 의미인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김주희는 팔을 휙 내저었다.
“안 뛰어요!”
“에이~그러지 말고 지금 안 벌어두면 나중에 후회할 걸? 이런 기회 흔치 않은데?”
“됐거든요! 가시죠 선배님!”
기분이 상한 김주희가 터벅터벅 앞으로 나아갔다. 등 뒤로 상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바뀌면 자존심 세우지 말고 오라고~알았지? 하하하!”
정말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케빈과 생존자들이 혀를 찼다.
“되먹지 못 한 놈들이네요.”
“정말요. 뭔 저런 놈이 상인을 한다고...”
허나, 그 후 그들 또한 여타 상인들에게 붙잡혔고. 여지없이 손을 내밀어 문양을 보여줄 때면 돌아오는 반응은 똑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새내기들은 단순한 해충이었다.
얼마 못가 외부로 방출되는, 그런 주제에 혜택이란 혜택은 전부 받는 쓸모없는 해충.
행여나 쫓기지 않기 위해 하루에 4시간씩만 자면서 이동해온 그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 여관을 잡았다.
여관주인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거절하면 법으로 잡혀가기 때문에 제일 허름한 방을 내주었다.
하나의 큰 침대와 새까만 커튼.
흔히 연인들이나 사용할 법한 커플 룸이 잡힌 유세현은 곧장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는데, 바가지로 퍼서 써야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현대식의 샤워기가 제대로 구비되어있었다.
단, 차이가 있다면 모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마력을 이용한다는 것.
도시의 풍경을 떠올린 유세현은 이전 이강호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진실을 숨긴 채 그저 안주하려고만 했었지.]
12개의 신물조각 쟁탈전.
판도라 외측에서 6개의 신물조각을 모은 종족은 판도라 내측으로 들어갈 권리를 얻는다.
때문에 각 종족에는 신물을 얻기 위한 힌트가 주어졌다.
문제는 그 힌트의 근원지에 아르카드 제국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것.
상당수의 귀족들은 힌트를 숨기고 안주하는 것을 택했다. 물론, 반대파도 있긴 하지만 영향력은 미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해서 그런 정체불명의 요구를 따라줄 필요가 있단 말인가.
허나, 기사들의 힘으로 튜토리얼과 구름섬을 쉽게 이겨내 온 그들은 미처 몰랐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모든 것에는 전부 시간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그 결과 아르카드 제국은 그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재앙의 징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땅이 갑자기 거세게 흔들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을 만한 그런 거친 울림이었다.
허나,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야 놀랐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곧 잦아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위기감이 없다.
그들은 이곳이 5년도 못가 이 땅이 완전 붕괴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수를 잡고 마석을 얻어 지금의 상황을 유지한다.
현실에 대한 안주.
이것이 추후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여타 종족에게 먹히는 이유다.
그리고 이렇게 지진이 있은 후면.
“죄송하지만 현재 이 길목은 무수히 많은 마수가 점령했습니다. 추후 토벌이 되면 이동하시는 것을 권장 드리는 바입니다.”
난데없이 무수히 많은 마수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럴 때 마다 제국에서는 근처 영지의 기사를 보내 일을 무마시켰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이번에도 시간을 들여 퇴치를 해야 할 터지만, 강해져야 되는 유세현이 일부러 기다릴 리가 있겠는가?
“굳이 들어가겠다면 막지는 않겠습니다만. 각서를 써주셔야 됩니다.”
“......”
유세현은 망설임 없이 각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생존자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합리적인 선택과 뛰어난 리더십, 그는 구름섬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무척 잘해왔다.
허나,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달랐다.
병사들은 경고했다. 최소 D랭크 최상의 스텟을 지닌 마수가 등장한다고. 그것도 무척이나 많이.
그간 마수를 학살하며 코인을 쓸어 모은 유세현이야 어떨지 몰라도 아직 D랭크 40% 정도에 불과한 그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과연 여차할 때 그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인가.
“저희는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수도로 갔을 때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케빈 일행은 이별을 고했다. 유세현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
지금까지야 혹시 몰라 데리고 다녔지만, 어차피 이 이후에는 갈라지려 했다. 자신에게는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각서를 내밀자 병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흠...그러지 마시고 하루 이틀 정도만 참아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최소 등급이 D랭크 최상이라는 겁니다. 잘못하면 C랭크 중간급도 등장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자들이 새내기 중에서 아주 간혹 있기 때문이다.
전멸한 동료의 코인을 흡수 하는 등의 연유로 운 좋게 강해진 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힘과 스킬이 마수를 능가할 것이라 생각하는 그러한 부류들.
“하루 이틀 말입니까? 파견을 나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현재 이 도시에는 몬스터 토벌을 나오셨던 필립 투 볼프강 경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본래 금일 돌아가시기로 했었지만 마수에 막혀 재정비를 하고 계시죠. 본래라면 기다리는 게 맞으나 아마도 직접 뚫으실 생각인 모양
이십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해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일단은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기다려 보시는 게...”
“......”
경비병의 말을 들은 유세현의 입이 굳게 닫혔다.
지금 잘못들은 것은 아니겠지.
“필립 투 볼프강 경...말씀입니까?”
“예. 아...여행자 분께서는 이곳에 오신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르시겠군요. 그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르카드 제국의...”
브라칸 투 볼프강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 장남 필립, 차남 발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 루시아.
그 세 명 중 막내를 제외한 두 명이 현재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다.
뇌 내에 전류가 파지직 흘렀다. 유세현은 병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재앙의 징조(1)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