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의 흔적 >
상당한 수준의 내상.
‘좋지 않군...’
무사는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생사를 건 대결에서 안일하게 승리를 확신하다니.
팔로 입가를 쓰윽 훔친 무사가 재빨리 등을 돌렸다.
음영대(陰影大)의 대원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체면 따위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 놈을 죽이는데 실패한 지금 이 사실을 한시라도 빨리 음영대주(陰影大主)알려야 하는 것.
반면, 유세현은 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자가 살아 돌아가게 되면 엄청난 수의 인원이 꼬리를 물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천마신공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본거지를 타격해야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놈은 이곳에서 처리한다...’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무사의 힘 스텟이 마력에 비해 상당히 낮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았던 중원이란 세계에서는 단순히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외공보다도 내면이 힘, 즉 내공을 더 중시하는 사상이 있었다.
아무리 육체가 단단하거나 힘이 세도 기가담긴 검기나, 성명 절기를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 그렇기에 외공은 내공에 소질이 없는 삼류무사나 익히는 것이라 자부했다.
쿠웅!
유세현의 암흑투기가 주위를 짓누르자, 내상 때문에 호신강기로 대응하지 못한 무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무사의 마력 스텟이 C랭크 최상이라고 한다면 힘 스텟은 C랭크 하위.
재빨리 달라붙은 유세현이 폭풍처럼 몰아치자 외팔이 된 무사는 틈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허나.
‘이놈...빈틈이 없다!’
공격법이 무척 합리적이다.
자신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을 고려하여 큰 공격은 피하고 자잘한 공격만 해온다.
재능인가 노력인가.
아무쪼록 이대로라면 놈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
‘어쩔 수 없군...’
무인에게 있어 내상은 심각한 부상이다.
원래의 세계에서는 내상을 입고 무리하기 기를 운용하면 두 번 다시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허나, 이곳은 판도라.
모든 것이 수치화되며, 대리자들은 초인적인 회복능력을 얻게 된다.
즉 이 세계에서는.
“수라혼파장(修羅昏波掌)!”
적어도 무공을 잃는 경우는 없었다.
슈우우.
무사의 손에 공기가 압축되자 정적이 주위를 잠식했다. 이상 징후를 느낀 유세현이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다.
그렇게 잠시 뒤.
쾅!
터져 나온 바람의 참격이 주위를 휩쓸었다.
쿠구구궁!
패도적인 힘을 지닌 천마혈사장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니나, 나무가 뿌리 채 뽑혀나가고 나뭇잎들이 휘몰아친다.
그때 허공을 밟고 있던 유세현의 몸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것.
그리고 바람의 참격이 사그라들었을 때 무사는 더 이상 눈앞에 없었다.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는 마력이 느껴진다.
천마군림보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뒤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젠장...’
유세현은 황급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암흑투기가 사라진 이후 상당히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는지 생존자들이 1/2이나 당했다.
물론, 실버어레스트는 전멸했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적이라고는 김주희에게 패해 붙잡힌 레칼스 뿐이었다.
“선배님!”
김주희가 반갑게 외치자 레칼스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한줄기의 희망은 무사뿐이었는데 그 마저도 당했다는 것인가.
도대체 저 새내기는 뭐하는 놈이길래...
그사이 유세현이 김주희를 향해 속삭였다.
“놈을 놓쳤어.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돼. 바로 움직인다.”
“예! 알겠어요.”
그들은 곧장 지부로 향했다.
동료를 구출 한 생존자 일동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세현을 도와 장부를 찾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책을 빼보고 벽을 부숴가며 비밀 문을 찾는다.
허나, 그 어느 곳에서도 장부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세현이 이런 일이 있을까 살려둔 레칼스를 향해 물었다.
“장부의 위치를 말해라.”
“...그냥 죽여라.”
퍽.
“장부의 위치. 빨리 말하는 게 편할 것이다.”
“...그냥 죽여.”
퍼버벅.
아무리 맞아도 레칼스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나 이곳에서 죽나, 어차피 그녀의 인생은 끝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말해봤자, 본부 인원에게 쫓기며 평생 도망자신세로 처량하게 지내다가 마수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어차피 죽을 거 모든 계획을 망쳐놓은 남자에게 빅엿을 선사하고 죽는 편이 낫지 않는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유세현의 눈동자가 생존자들을 순간적으로 흘겼다. 이에 눈치 빠른 케빈이 황급히 말했다.
“세, 세현 씨 저희는 지하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 나갑시다!”
끼익. 탁.
생존자들이 바깥으로 사라졌다. 레칼스의 내려다 보던 유세현이 김주희를 향해 대놓고 말했다.
“김주희 너도 나가 있어라.”
“...예?”
“나가 있어. 아퀼라와 운디네를 소환해서 다른 곳을 살피고 있어줘.”
“고, 고문을 하실 생각이라면 저도 같이...”
“아니, 이건 내가 해야 될 일이야. 나가 있어 줘. 부탁이다.”
“...알겠어요. 선배.”
씁쓸함이 잔뜩 배어있는 어조와는 반대인 단호한 말, 김주희는 안타까운 눈빛이 되어 방문을 나섰다.
딸칵.
방문을 잠그자 레칼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네가 아무리 고문해도 나는 말하지 않...”
푹.
말을 채 끝마칠 새도 없이 루베르크가 레칼스의 손등을 관통한다. 레칼스는 인상을 구겼지만 억지로 조소를 띠웠다.
“그냥 죽여...나는 어차피 말하지 않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유세현의 검이 그녀의 전신을 난자했다. 그나마 몸을 가려주고 있던 레더아머와 이너아머가 완전히 넝마쪽이 되며 새하얀 나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강도 차이가 나는 고문이었다.
허나, 그녀는 판매지부의 지부장!
“큭. 왜? 강간이라도 하려고? 내가 그런 것에...”
“너 같은 쓰레기를 안고 싶은 마음은 없어.”
유세현의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아있었다. 레칼스는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버틸 생각이었다.
이윽고 유세현의 고문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단번에 베어버리지 않았다. 손가락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차근차근 다진 고기로 만든다.
더 나아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치명상 부위를 피해 검을 찔렀다.
“아아악!”
레칼스의 입에서 갸냘픈 비명이 계속 이어졌다. 유세현은 그녀가 무엇인가를 하려할 때면 여지없이 암흑투기로 제압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주, 죽여...”
축 늘어진 레칼스가 중얼거렸지만 유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널 죽이지 않아. 절대로.”
회복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각이 돌아왔다 싶으면 다시 검을 휘두른다.
그가 현재 행하고 있는 고문은, 이전 일본순경이 독립투사들을 고문하던 방식의 확대 버전이었다.
“아, 악마 같은 놈!”
유세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악마도 될 수 있었다.
다만.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그는 1시간의 고문 후 5분간의 휴식을 주었다.
결코 안타깝게 여겨서가 아니다.
레칼스에게 있어서 이 5분은 추후에 이어질 고문을 상상하는 무엇보다도 끔찍한 시간이 되기 때문.
푹.
서걱.
4시간이 지난 지금은 굳이 말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레칼스는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유세현은 자신의 스킬도 망설임 없이 이용했다.
치지직.
“꺄아아아아!”
루베르크가 전기를 내뿜자 레칼스의 육신이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몸.
“죽...여...”
“다시 말하지만 난 죽이지 않아.”
남자의 말에 레칼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지 않을 만한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 그의 말대로라면 영겁의 시간동안 영원히.
물론, 유세현은 2~3일 안에 이장소를 벗어나야 된다. 허나, 계속해서 고문을 받은 레칼스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 말할 게...말할 테니까 제발 죽여줘...”
결국 레칼스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굴복했다.
털컥.
방문을 열고 나오자 김주희를 포함한 생존자들이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비명이 어찌나 큰지 못 듣는 게 이상한 것이리라.
“여자가 장부의 위치를 불었어. 가져올 테니까 대신 좀 지키고 있어줘.”
“예...선배.”
장부가 들어있는 상자는 근처 고목나무 밑에 매장되어 있었다. 유세현은 그 자리에서 빠르게 장부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여동생, 유혜인을 사간 귀족의 이름을.
[브라칸 투 볼프강]
“이자가 사는 위치가 어디지?”
위치를 물었음에도 레칼스는 미미한 조소를 내뱉으며 이제 죽여줘 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정신이 나간 것인가.
유세현은 그 모진 고문을 받고도 버텨낸 독립투사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과 초인의 갭.
그들의 정신력은 분명 육체만 강해진 초인보다도 훨씬 단단했으리라.
서걱.
유세현은 레칼스를 편하게 해주었다. 정보는 다른 이들에게 얻어도 된다.
그는 일부러 여러 귀족들의 이름을 외웠다.
하나만 물어본다면, 그것은 자신의 행선지를 밟히게 되는 꼴만 될 것이기에.
스륵. 스르륵.
숲을 헤치고 산을 내려가자 마을 사람들은 처음 왔던 때와 달리 경계어린 시선을 보냈다.
“더러운 놈들.”
생존자들은 그런 그들을 대놓고 경멸했다.
유세현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곧바로 부촌장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헉!”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튀어나오는 탄성.
정보를 묻자 부촌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는 것을 술술 토해냈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들은 다시 한 번 유세현의 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도에 정착하기 위한 마석의 개수. 가면서 주의해야 될 점 등을 전부 새겨들은 생존자 일동이 은근 슬쩍 자리를 떠주었다.
그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꽤나 눈치가 있었다.
이에, 유세현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란포르 빌 레카스라는 자에 대해 아나?”
허나, 아쉽게도 이 마을사람들은 패배자였다. 귀족의 이름과 영지 따위는 외우고 있을 여유가 없던 패배자.
그렇기에 부촌장은 유세현의 말에 상당수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는 여념치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딱 한가지였음으로.
“그럼, 브라칸 투 볼프강에 대해서는? 이것도 모르나?”
“아...브라칸 백작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그분에 대해서는 조금 압니다.”
유세현의 눈이 번뜻 빛났다.
“한 번 말해봐라.”
“아, 예! 알겠습니다. 그분은...”
브라칸 투 볼프강 백작.
아르카드 제국 직속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상당수의 귀족이 죽은 현재, 수도 칼벨로움에서 가까운 장소를 영지로 두고 있었다.
어찌나 유명한지 근처에 다다르게 되면 병사에 의해 그 이름을 한번 씩 꼭 듣게 된다고 한다.
“그래. 잘 들었다.”
“저...저 더 물으실 말씀이라도...”
“그럼 마지막으로 알폰스 론 발레르크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라.”
“아, 그 분도 대충은 압니다...그분은...”
부촌장이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물의 백작에게 팔려간 여동생.
이상한 짓을 당한 것은 아닌지. 고단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구할 수 있을까?
눈동자가 착 가라않는다.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은 것으로 착각한 부촌장이 난데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는 게 이 정도 밖에 없어서...”
“......”
유세현은 그런 부촌장을 잠시 응시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기 전 툭 말했다.
“이전에 했던 짓을 반복 하다가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 것입니다. 다른 지부에서 조사를 나와도 입 꽉 다물고 있겠습니다!”
“......”
끼익. 쾅.
말없이 집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공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갖은 상념으로 인해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유세현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손바닥으로 양쪽 볼을 탁 쳤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자. 일단은 생사만이라도...’
그렇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생사였다. 살아만 있다면,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의 숨이 붙어있기만 한다면 지금은 그걸로 만족하는 게 맞다.
그는 곧바로 수도로 향할 루트를 짜기 시작했다.
< 동생의 흔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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