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23화 (123/612)

< 패배자들의 마을(1) >

장갑이나 요대를 새로이 얻은 두 사람.

정말 아쉽게도 그중에서 레어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하나도 없었다. 유세현은 그것을 보며 판도라라는 세계에서 전리품의 획득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들은 발걸음을 빨리해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루벤 산맥을 벗어나 칼닌 마을이 있을 새로운 지역에 이르렀다.

메마른 숲, 루벤 산맥과는 한차례 다른 풍경.

이곳은 먹구름이 항상 하늘을 가리고 있어 무척 어둠침침했으며, 서늘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스륵 스르륵.

-크아앙!

그때 풀숲에서 마수 여러 마리가 튀어나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댔다.

물론, 이미 접근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유세현이 검을 휘두르자 마수들은 채 1분도 못가 나가떨어졌다.

유세현은 시체가 된 마수를 향해 묵혀두고 있었던 스킬, 언데드 레이즈를 사용했다.

이젠 제법 마력의 통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권능의 1차 개화로 인해 효율까지 좋아져 부담이 덜해졌기 때문.

비록 아직까지 많은 도움을 준 스킬은 아니나 숙련도를 올려둔다면 분명 언젠가 확약할 날이 올 것이다.

“어! 선배님! 마을에 도착한 것 같아요!”

어느새 그들의 눈앞으로는 마을의 입구가 비치고 있었다.

가까이 접근한 유세현이 주위를 재빨리 살폈다.

요새나 주둔지와 대비되는 차원이 다른 허술함.

마을의 주위는 나무로 된 말뚝으로 대충 방벽만 세워 놓은 상태였다.

더 나아가 주위를 지키는 보초병이라고는 고작 3명밖에 없다.

외각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강호에게 미리 듣긴 했으나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이 마을은 세금을 내지 못한 이들이 배치 받는 곳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병사의 지원도 적다. 훗날 레콰이크에 의해 점령당하는 장소.

병사들이 눈동자가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피를 뒤집어 쓴 두 사람의 전신을 훑었다.

“신분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생존자입니다.”

“아...그러십니까. 두 분이서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을로 들어가시기 위해서는 거쳐야 될 절차가 있습니다.”

말을 마친 병사는 재빨리 초소로 들어가더니 두 장의 종이를 꺼내왔다.

3개월 간 아르카드 제국의 모든 것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계약서였다.

경계병은 두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을 했고, 어차피 내용을 알고 있던 그들은 지체 없이 지장을 찍었다.

스르륵.

계약서 안에 명시되어 있던 기하학적인 문양이 오른쪽 손등으로 스며든다.

이는 그들이 3개월 동안 자유 신분임을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추후 계약이 종료 되었을 때 또다시 모른 척 재계약을 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병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르카드 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금 마을로 들어가시면 얼마 전에 온 여행자분들도 있을테니 아마 함께 수도권 내부로 향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유세현은 내부에 들어섰다. 나무로 대충 지어진 집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감시 탑.

예상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허름한 마을이었다.

그나마 마을에서 제일 멀쩡한 것은 파견 나온 아르카드 제국의 군부대 정도.

허나, 마을의 분위기는 신기하게도 침침해 보이던 겉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호오~새내기 여행자인가?”

지나가던 한 중년의 남성이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의 정보를 퍼트리는 것은 그닥 좋지 않기에 유세현은 그냥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그 이외에도 유세현은 병사가 말해준 여관으로 향하는 와중 3~4명의 인원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왜 이렇게 활기차지?’

유세현은 의문을 가지고 여관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먼저 도착해 있던 생존자들이 그들을 황급히 맞았다.

“세현씨! 드디어 오셨군요!”

“아, 예.”

수가 줄어든 것이 이곳까지 오면서 제법 인원이 당한 모양.

이 근처에 그들이 못 당해낼 만 한 마수는 딱히 없었을 터인데.

체크인을 하자 그동안 생존자 진형을 이끌었던 전 헤르메스의 간부, 케빈 아드리앙이 차분히 귓속말을 건넸다.

“긴히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행여나 누가 들을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낀 유세현이 툭 말했다.

“일단 제 방으로 올라가도록 하죠.”

“아뇨, 방은 좀...차라리 바깥으로...”

“그럼, 그러도록 하죠.”

케빈은 두 사람을 근처 골목으로 데려갔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오자마자 갑자기 말씀 들여 죄송한 말이지만. 이 마을 무척 이상합니다.”

“예?”

“우선, 이 이야기를 하자면 4일 전으로...”

그들은 유세현이 말해준 길을 따라 생각보다도 빨리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계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사망자도 없었다.

문제는 그 후.

계약서에 지장을 찍은 그들은 마을에 들어오기 무섭게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마수의 체내에는 맹독이 들어있을 지도 몰라 지금까지 잡초만 뜯었기 때문이다. 또한 3개월 동안은 모든 것이 무료이기 때문에 부담될 것도 없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 허름한 마을에 음식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은 결국 자력으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에게 먹을 수 있는 열매의 위치 등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다지만 이 세계에서 식량은 곧 생명.

그들은 퇴짜 맞을 것을 감수했지만, 예상외로 돌아온 것은 따듯한 답변이었다.

생존자들은 감사를 표한 뒤 한데 뭉쳐 바로 열매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허나, 도착하면 곧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주민의 말과는 달리 열매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주위를 샅샅히 찾아보기 위해 200가량의 인원을 4팀으로 분할했고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광역 스킬을 날려 알리자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헤매자 마침내 좀 떨어진 곳에서 열매가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광역기를 날리는 등 다른 팀에게 위치를 알린 뒤 신나게 열매를 땄다.

허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전혀 몰랐다

한 팀이 완전히 실종될 것이라고는.

“50명 가량의 인원들이 쥐도 새도 모르 게 사라졌다는 겁니까?”

“예, 처음에는 그냥 엇갈렸다고만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길도 복잡하지 않아 금방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날 바로 수색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30명의 인원이 더 실종되었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만 했습니다. 촌장이라는 사람에게 말하자 탐사를 도와주겠다고 까지 했죠.”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뭐...더 사라지는 사람도 없었지만...저희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이 사실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방에 들어가시면 침대 뒤에 있는 벽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거까지 말한 케빈은 발걸음을 옮겨 생존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는 직접 확인해보고 판단하라는 뜻.

방 내부로 들어간 유세현은 곧바로 주위를 살피며 마력을 탐지 했다. 행여나 마력으로 구동하는 트랩이나 물건 등은 이 탐지에 포착된다.

‘기록수정구 같은 건 없군...’

문을 잠근 그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침대를 번쩍 들어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케빈의 말마 따라 벽을 자세히 살폈다.

바닥과 맞닿아 있는 아래쪽에 미세하게나마 홈이 나있는 것이 보인다. 유세현은 그 홈을 손으로 살짝 밀었다.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김주희, 창 좀 줘봐라.”

“아, 예!”

유세현은 아주 약간의 힘을 주어 창을 사선방향으로 찔렀다. 유니크 C랭크 아이템의 예리한 날은 두툼한 나무토막을 젤리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삼지창을 옆으로 당겼다.

스르륵.

홈에서 빠져나오는 나무토막.

그 폭은 사람 한명이 포복을 이용해 내부로 진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마을...설마?’

유세현의 뇌리 속에 무엇인가가 번쩍 스쳐지나간다.

마을과 주위에 위치한 판매 지부.

그가 현재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나무토막을 다시 자리에 끼워 넣고 방을 빠져나온 그가 옆방을 조심히 살폈다.

[창고]

너무 진부해 웃기지도 않는다.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은 덤.

‘하루 정도는 있다가 움직이려 했더니 안 되겠군.’

유세현과 김주희는 곧바로 마을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스륵 스륵.

일행은 현재 식량을 구하겠다는 명목하게 숲을 헤쳐 나갔다. 물론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이었지만.

오늘의 목적은 적의 위치와 지형지물의 탐색.

어느새 판매지부로 예상되는 곳에 다다른 유세현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부 내부에서 지금까지의 생존자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양의 마력이 느껴진다.

‘C랭크...3명인가?’

C랭크의 막 초기. 혹은 D랭크의 최상.

이 같은 마력을 지닌 사람은 칼닌 마을에도 고작 한 명 있었다. 이 마을의 자치를 맡고 있는 아르카드 제국군의 지휘자, 쥐레프 빌 안데르센.

군의 지휘자만 가지고 있는 우월한 스텟을 이 지부에만 3명 가지고 있다니.

물론, 지금 그가 전 마력을 소비해 천마혈사장을 사용한다면 적이 지니고 있는 마력의 양과 상관없이 쥐도 새도 모르 게 건물과 함께 저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허나, 유세현의 목적은 이곳에 있는 장부.

때문에 그는 하나하나 죽여 나가여 나아갈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C랭크 인원들을 직접 상대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주위를 전부 탐색한 유세현이 고개를 까딱였다. 이만 돌아가자는 의미였다.

본래라면 서큐버스의 스킬을 이용해 내부를 살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 누구냐!”

풀숲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경계병 한명이 외쳤다. 정말 미미한 미동이었다.

“왜, 그래?”

“아니 뭔가 있는 거 같아서...한번 가보자!”

“쳇! 또 마수만 아니면 좋겠는데.”

스르륵!

경계병 두 명이 유세현을 향해 빠르게 이동해왔다. 움직임을 멈춘 유세현이 자그만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퀼라, 환영!”

“분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파앗!

결국 경계병들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아퀼라에 의해 달리는 자세 그대로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보여주라 하였으니 깨어나도 단순히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할 터다.

“생각보다 경계가 훨씬 삼엄하네.”

“그러게요...적중에 C랭크가 있다고 하셨죠?”

“응. 3명.”

“나머지는요?”

“100명 정도만 20~30%정도고 나머지 200명 전부 40~50%정도다.”

“...꽤 강하네요.”

“그렇지.”

강하다. 하지만 결코 상대하지 못할 정도 또한 아니다. 다만 리스크가 어느 정도 있는 만큼 최선책을 찾아 그것을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모름지기 최선책이란 것은 의외로 무척 가까이 존재하는 법.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 인가요 선배님? 마을 주민은 아무리 봐도 실버어레스트랑 한패인거 같은데...”

“그렇지, 그건 확정이다.”

왜냐하면 적진에서 한데 뭉쳐있는 마력을 확인했으니까. 그들은 분명 사로잡힌 생존자들일 것이다.

“흠...그럼 차라리 마을로 돌아가지 않는 편이...”

“아니, 돌아가자. 생각해둔 게 있어.”

“예? 어떤...”

김주희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세현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그건 말이지...”

유세현은 한동안 말을 이어갔다.

* * *

“어떻습니까. 하시겠습니까? 하던 하지 않던 선택은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유세현의 말에 케빈과 생존자 일동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현재 유세현은 생존자들에게 판매지부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작전에 대해 털어 놓은 상태였다.

과연 이 계획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김주희는 살짝 긴장한 눈초리로 보는 반면, 유세현은 무척 여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생각이 있는 한 이 작전에 대해 수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

잠시 한데 모여 여타 생존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케빈이 대표로 말했다.

“저희들은 두 분을 믿습니다. 계획에도 찬동 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시도했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어떤 거 말이죠?”

“지금 저희는 여러분들이 나간 사이 아르카드 제국군에게 주위 수색을 의뢰해놨습니다. 그것을 판매지부의 수색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원이 발견되면...”

“이 일이 무사히 종결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유세현이 말을 잘랐다. 케빈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놈들이 강하다고는 하나 감히 정규군을...”

“제 생각에는 그러지 않을 것 같군요.”

케빈의 말에 유세현이 실소를 내뱉었다.

< 패배자들의 마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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