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19화 (119/612)

< 판도라로 >

콰콰쾅!

번개폭풍이 한차례 더 주위를 휩쓴다.

그 틈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루시뷀트의 대검. 유세현은 재빨리 루베르크를 들어 방어했다.

치지직.

검이 맞물리며 금속성의 마찰음이 울려 퍼지고 스파크가 튄다.

그 속에서 루시뷀트의 붉은 안광은 유세현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약하군. 너무 약해. 정말 보잘 것 없는 힘이다. 이런 힘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챙! 챙!

무수히 많은 공방전이 이루어진다. 유세현은 루시뷀트의 도발을 한쪽귀로 흘리며 천마혈사장을 사용할 틈을 찾았다.

이 한 번, 이 한 번의 공격을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콰과광!

이윽고 그의 손에서 광활한 빛이 터져 나왔다. 빈틈을 공략한, 그야말로 완벽한 공격이었다.

허나.

슈웅-

루시뷀트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유세현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 스킬은?

아키몬드를 떠올릴 틈도 없이 대검이 거칠게 몰아쳤다.

[그래, 네놈은 잔수작에 꽤 눈이 밝았지.]

또 다시 도발이 이어졌다.

유세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수단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저항력 때문에 암흑투기도 프로즌 디퓨전도 통하지 않는데.

허나, 그 다음 순간 루시뷀트의 말이 이어졌다.

[네놈은 내 모든 것을 승계 받았다. 한낱 인간이 지니기에는 너무도 과분한 힘이지.]

“......”

그것을 듣는 순간 유세현은 루시뷀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특수특성 마(魔).

그것을 활용해서 자신을 이겨라.

그는 간접적이나마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허나, 유세현은 아직도 특수특성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다.

덕분에 암흑투기의 숙련도 99%에서 줄곧 머물러 있는 상태.

사실 제일 답답한 것은 유세현 본인이었다.

그런 속내를 읽기라도 한듯 루시뷀트의 붉은 안광이 번뜻 빛났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감히 네놈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들어 올려 루시뷀트의 대검을 받았다.

매섭기는 하나, 살의가 없는 공격.

시련은 귀걸이에 있던 루시뷀트의 영혼을 강제로 끄집어내어 구현화 시켰지만 그의 의지까지 강제로 속박하지는 못했다.

높은 영혼의 격.

루시뷀트는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보기 위해 이렇게 계속 궁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라...’

그렇다면 감각으로 느끼라는 것인가.

유세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특수특성을 얻은지 몇 개월이나 지났다고 감각으로 느끼라는 것인지.

이는 어쩌면 그가 인간이 아닌 마왕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다.

‘마왕이라...’

이강호의 말에 따르자면 본디 마왕은 오만하다.

지니고 있는 권능,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을 업신여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거기까지 떠올린 순간, 유세현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거세게 진동을 일으켰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반박하는 느낌.

마심원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왕은 결코 오만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죽음이라는 법칙 위에 군림한 자가 마왕일지어니.

그러니 마왕은 결코 오만하지 않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자 순리.

“아...”

유세현은 그 순간 깨달았다.

마심원을 승계한 루시뷀트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라는 것을.

현 마왕은 바로 자신이었다.

[특수특성 마(魔)의 1차 권능. 암흑(暗黑)을 개화하셨습니다. 어둠의 마력의 효율이 올라갑니다. 어둠 속성 저항력을 일부 무시할 수 있습니다.]

[암흑투기의 숙련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권능에 의해 암흑투기의 랭크가 SS에서 SSS로 승격됩니다.]

쿠우웅.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압박이 공간을 짓눌렀다.

루시뷀트의 정신력이, 혹은 영혼의 격이 높지 않았더라면 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호오...]

투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루시뷀트는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 정도는 되어야 힘을 승계한 의미가 있다는 듯.

유세현은 차분히 검을 겨눴다. 그리고 말했다.

“이 힘 정말 고맙다.”

-서걱

투드득.

검에 베인 마왕, 아니 루시뷀트의 육신이 무너져 내린다. 시련에서 분리된 루시뷀트의 영혼은 이내 귀걸이 속으로 되돌아왔다.

고개를 내려 살핀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코인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스킬북도 있었다.

스킬 명: 흑뢰검(黑雷劍)

등급: 유니크 [S Rank]

상세정보: 마왕 루시뷀트가 흑뢰(黑雷)와 인챈트(Enchant)를 결합하여 창시한 마법입니다. 사용 시 무기에 흑뢰가 깃들며 이를 내뿜거나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사용자의 마력이 어둠의 마력이 아니라면 특성상 위력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사용능력: 흑뢰(黑雷)

“오...”

마땅한 지속 공격 스킬이 없던 유세현의 두 눈동자가 정말 오랜만에 반짝반짝 빛났다.

상당한 수준의 아이템을 줄 거라고 해서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정도의 물건을 떨어트릴 것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던 것.

루시뷀트가 사용하던 스킬.

어둠의 마력을 사용해야만 본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이 스킬은 그의 전용스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권능을 개화하고 스킬도 얻고.

구름섬에 올라온 뒤부터는 마땅한 소득이 없어 내심 고민이 많았는데, 그것을 이 스킬북이 싹 가시게 해주었다.

유세현은 지친 몸과는 반대로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탈출구를 향했다.

던전 밖에는 이미 김주희와 이강호가 위치해 있었다. 유세현을 발견한 김주희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선배님! 너무 안 나오셔서 걱정 했어요!”

언제나 사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김주희.

처음에는 그 가식적인 말이 무척 거슬렸지만, 동료로 받아들인 지금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일행은 요새로 돌아가며 각 시련에서 얻은 전리품의 정보를 교환했다.

이강호는 3서클의 마법을. 김주희는 정령술에 관련된 마력의 소비를 줄여주는 스킬을 얻었다고 한다.

차례차례 순차를 밟지 않으면 상위 서클을 익힐 수 없는 마법의 특성과, 마력을 물먹듯 빨아들이는 정령화의 효율을 고려하자면, 이강호는 앞으로 나아갈 발판을 탄탄히 마련한 것이고, 김주희는 보다 더 운디네와 정령화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던전은 무척 맞춤형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강호는 향후 2년간은 던전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제, 판도라로 나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요새에 막 도착해, 산산조각이 난 방어구를 새로이 갈아입고 있는 일행의 천막 앞으로 무수히 많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들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팀 헤르메스의 게릭, 팀 리멤버의 클락, 쿄타로와 일리야. 그리고 이태광과 이용석.

순수하게 얼굴을 보러 온 이태광이 먼저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동생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는데? 가서 기다려. 금방 따라갈 테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그는 역시나 호쾌했다. 유세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판도라에서 저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팀 리버티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팀 리버티? 팀을 만든 건가?”

“예. 뭐, 판도라에 이런 요새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유세현은 모른 척 툭 말했다. 이에 게릭이 재빨리 끼어들어 칭찬했다.

“자유? 꽤 좋은 작명 센스군.”

훗날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 주위에서는 칭찬일색이 쏟아졌다.

일행은 간단히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이내 용무를 마친 사람들은 할일을 하기 위해 되돌아갔다. 그들도 약 6개월 뒤면 판도라로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사실 무척 바빴다.

그럼에도 굳이 시간을 쪼개서 온 것은 그만큼 일행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

다음날 일행과 2년차 인원들은 요새를 나섰다.

6층에 도착한 인원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2년간 해온 구름섬의 끝.

이 앞에는 얼마나 더 치열하고 힘든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할 틈 없이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개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과과!

주위를 까마득하게 울리는 발굽소리.

인원들은 이 군세를 뚫으며 나아갔다. 고블린과의 전투로 스텟이 상당히 많이 올랐던 그들은 선배들보다도 훨씬 쉽게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꿀꺽.

마른침이 자연스레 넘어간다. 한명이 크게 외치며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빌어먹을 판도라! 반드시 이겨내고야 만다! 가자아!”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하나 둘 너나할 것 없이 게이트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뛰어들기 전 이강호가 둘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몸조심해라. 그럼!”

슈우욱.

이강호는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유세현이 김주희를 흘끔 살폈다.

그녀의 표정은 많이 굳어 있었다.

“선배님 꼭 다시 만나요.”

“그래.”

“그럼 조심하세요!”

스르륵.

그녀도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유세현 뿐.

고개를 돌려 하얗게 물든 세상을 슬쩍 훑어본 유세현은 내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파앗!

주위를 환하게 밝히던 빛이 사그라든 직후, 유세현의 두 눈에 제일 먼저 비친 것은 구름섬과는 대비되는 어둠침침한 하늘과 메말라 갈라진 땅이었다.

썩은 고목과 말라 삐틀어져 바스라진 풀잎.

“어? 어? 다 어디 갔어? 윈체스! 차오밍!!”

당혹어린 목소리가 주위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손을 잡고 이동한 동료가 없어졌다는 것을 본 것이리라.

안타까운 말이지만 구름섬에서 판도라로 넘어올 때는 튜토리얼과 달리 외각 지역 전역에 뿔뿔이 흩어진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이곳은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척 괴기한 곳이니까.

잠시 작별인사를 한 것도 이 때문.

유세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란히 나열 되어있는 세 개의 달.

이강호에게 정보를 들었던 그는 이지역이 어딘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젠장...엄청 먼데로 떨어졌군.’

통칭 메마른 숲.

아르카드 제국의 수도에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은 무수히 많은 마수들이 들끓는다고 한다.

사실상 새내기들의 생존률이 가장 낮은 장소.

그는 먼저 주위 마력을 탐지했다.

이곳 근처에 떨어진 생존자들의 수는 대략 200명. 그중에서는 보통의 인원들과 달리 무척 많은 양의 마력을 지닌 자가 한 명 존재했다.

화기를 머금지 않는 순수한 마력.

‘이건?’

“세현 선배님!”

서큐버스를 통해 유세현을 발견한 김주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얼굴은 이전과 달리 무척 밝았다.

“어? 유세현씨?”

외침을 들은 생존자들 또한 이곳저곳에서 유세현을 향해 몰려들었다.

구름섬에서 그들은 이미 유명인사 였으니까.

“오! 유세현씨! 이쪽으로 떨어지셨군요!”

“예...뭐.”

유세현의 첫 목적은 아르카드 제국의 수도. 칼벨로움에서의 합류.

같이 나아가면 어느 정도 수월할 것이기에 유세현은 다가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데 뭉친 생존자들은 일단 이 숲을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

영문 모를 괴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구름섬의 고년차 생존자로 지내며 사라졌었던 긴장감이 심신을 장악한다.

나약했던 튜토리얼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

그리고 그런 감정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크아앙!

수 마리의 마수가 냄새를 맡고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의 몬스터.

사자처럼 생긴 놈의 몸은 코뿔소만큼 컸으며, 몸 곳곳에는 기묘한 뿔이 튀어나와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만약 이것에 박히기라도 한다면 치명상을 면치 못하리라.

그들은 약한 새내기들을 습격해 먹고 사는 판도라의 하이에나였다.

메마른 숲에서 서식하지는 않지만, 생존자들이 나타날 시기가 되면 이곳으로 사냥을 나서는 것.

-키아앙!

평소 생존자들을 몰살시켜온 그들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D랭크의 낮은 %로는 질긴 피부를 뚫을 수 없기에 잘 알기에 망설임이란 감정은 눈곱만큼도 없다.

허나.

서걱.

유세현의 검이 일격에 목을 가르자 놈들의 태도는 단번에 돌변했다. 살해된 동료의 죽음 앞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매섭게 지진을 일으키는 동공.

그들은 비록 유세현처럼 마력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캐갱!

지금까지 줄곧 새내기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놈들은 빠르게 뒤돌아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습성을 미리 파악해 놓은 유세현은 일부러 도망치도록 내버려 뒀다.

몬스터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 웬만한 자질구리 한 몬스터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물려 죽을 뻔했던 생존자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유세현이 숲의 끝에 거의 다다랐다고 느낄 무렵 무수히 많은 마력이 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윽고 100명가량 넘는 인원들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로 걸어 나온 한 남성이 툭 말했다.

“어서 와라 새내기. 정말 고생 많았다.”

“어...어? 부팀장님!”

아는 인원이 있었는지 새내기 몇 명이 반가운 얼굴로 잽싸게 튀어나갔다.

“티, 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나야 뭐 잘 적응했지. 너희는...”

팀장이라 불리운 남성이 생존자 일동을 슬쩍 흘겼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남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주희가 유세현을 향해 귓속말로 소근 거렸다.

“선배님 이건...”

“그래...도적이다.”

< 판도라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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