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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17화 (117/612)

< 전면전과 유인책(2) >

1개월 차 저층계 인원부터, 22개월 차 고층계 인원까지.

현재 요새 앞으로는 아르카드 제국군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대규모 집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검과 방패.

창과 도끼.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는 생존자들의 표정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나온다.

각 종족의 존폐를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결전.

이번 전투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죽어나갈 것인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약 2년이라는 시간동안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왔지만, 이런 식으로 수만 명이 동원되는 대규모 전면전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전투.

사람들은 무척 불안했다. 허나, 그렇다고 울며 도망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나마 유리하다고 해석된 이번전투에서 패배한다면 뒤는 더 이상 없을 것이기에.

움직임을 파악하고 돌아온 레콰이크의 최측근, 폴란이 보고를 올렸다.

“레콰이크님 적의 모든 군세가 이곳으로 향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미리 일러준 대로 대치하라.”

“예.”

이에 레콰이크도 모든 부족을 움직여 재빨리 맞대응 했다.

허나, 그의 정신은 대규모 인원이 아닌 다른 곳에 가있었다. 레콰이크에 있어서 그들은 손쉽게 쪄먹을 수 있는 요리였으니까.

“폴란. 놈들의 동향은 읽었나?”

“예. 그들은 저들과 떨어져 구름섬을 오르는 포탈로 향했습니다.”

레콰이크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지만 막을 수 없기 때문.

이것은 장기로 치자면 완벽한 외통수였다.

따라오지 않으면 몬스터를 사냥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안 따라오고 배길 수 있겠는가.

심란한 표정을 본 폴란이 입을 열었다.

“계략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봤을 때는 무시하고 인간진형을 공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놈들이 제 아무리 날고 긴다지만 주 병력만 전멸시켜놓으면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에 레콰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폐쇄되어 있는 요새와 달리 평야에서는 그만큼 물러나기가 수월하다.

만약, 저들이 이대로 버티면서, 혹은 후퇴하면서 시간을 끈다면 그 사이 3명은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놈들은 이전과 달리 인간 진형을 완전 장악 했다.

어떻게든 그때 죽여 놨어야 했는데.

이건 계략이라도 어쩔 수 없이 가야 된다.

“폴란. 각 부족에 퍼트려놨었던 인원들을 불러 모아라.”

“그 말은...”

“놈들을 사냥한다. 부족장들에게는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며 시간을 끌고 있으라 일러둬라.”

“예, 알겠습니다.”

레콰이크를 포함한 도합 5천의 군세는 후방의 위치해 있는 포탈을 사용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구름섬을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레콰이크는 혹시 모를 뒤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여타 부족의 병력을 일부 빼돌려 포탈 근처에 배치시켜 놓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다.

적의 병력이 완전히 물러날 시 고층계로 지원을 오라고 일러두는 것은 기본.

1층, 2층, 3층, 4층...

레콰이크는 그들이 7층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허나, 그런 그의 예측은 6층에 도달한 순간 폴란의 말과 함께 깨져버렸다.

“이 층에서 그들의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이 곳에서? 어디서 말이냐.”

“저 곳입니다.”

가리킨 곳은 깊고 깊은 첩첩산중. 레콰이크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저 쪽이라면 이제 망자들밖에 없을 텐데...세 명이 확실한가?”

“예. 정확히 딱 세 명 입니다.”

“흠...”

폴란은 여타 고블린들과 달리 냄새로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유니크 스킬을 지니고 있다.

안 그래도 좋은 후각이 더욱 발달한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흙이나 피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탐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냄새를 완벽히 숨길 수 있는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다면 모르지만 아이템으로는 많은 수의 인원을 숨길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스킬뿐인데 이 또한 사용되는 마력의 양 때문에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숨겨놓은 인원이 있었다면 1층부터 6층을 올라오는 사이 한 번쯤은 폴란에게 발각 당했을 것이라는 것.

‘도대체 무슨 목적이냐...보스사냥? 아니면 습격?’

아무쪼록 놈들은 지금까지 뭔가가 남달랐다.

“매복에 조심해라! 놈들의 기술을 맞아서는 안 된다! 폴란 너는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적의 위치 파악에만 힘써라.”

“예.”

레콰이크의 주위를 경계하며 망자의 계곡 입구에 다다랐다.

코를 찌르는 쾌쾌한 공기와 스산한 한기.

이곳은 언제와도 기분이 좋지 않다.

“폴란 적의 위치는?”

“아직 좀 더 나아가야 됩니다.”

인간이 망자를 처리했는지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보스사냥이 목적 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빠질 가능성이 크다.’

레콰이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이 있는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파앗!

콰과광!

언덕위에서 발산 된 검붉은 빛이 일대를 광활히 감쌌다.

마력의 낭비 없이 딱 길목에 맞게 발산된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

“산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기에 고블린들의 반응은 무척 재빨랐다.

허나, 안타깝게도 천마혈사장이 도달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단번에 휩쓸린 500마리의 인원!

“적을 쳐라! 폴란의 뒤를 따라라!”

알고도 당한 고블린들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폴란은 적의 위치를 동료에게 재빨리 통보했다.

세 명의 인간은 한 군데에 몰려있었다.

아직 4500명의 인원들이 남아있기에 포위한 뒤 물량 전으로 나가면 승리가 다분하다.

“인간!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다!”

폴란이 외쳤다.

이강호, 김주희와 등을 마주하고 있던 유세현이 재빨리 일대를 살폈다. 적은 이제 손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곳까지 이르렀다.

차분히 가라앉는 눈동자.

“과연 그럴까?”

-키아아아!

말과 동시에 여태까지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수 백 마리의 망자가 봇물 터지듯 사방에서 밀려들어왔다. 망자들은 정말 겁 없이, 아니 마치 원수를 만난 것 마냥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폴란이 눈동자가 파르르 지진을 일으켰다.

“이게 무슨!”

당황이라는 감정이 신경세포를 잔뜩 곤두세운다.

망자에게는 냄새가 없기 때문에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일.

아니, 애초에 어떻게 몬스터들을 길들였단 말인가!

쿵!

일대를 짓누르기 시작한 암흑투기가 함께,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쇄도하는 창과 검.

그들은 망자들 틈 사이에 거침없이 끼어들어 난전을 펼쳤다. 불과 10초도 지나지 않아 그 강한 정예병들이 10명이나 쓰러졌다.

“신성을 사용해라!”

폴란은 당황어린 감정을 뒤로하고 외쳤다. 그렇다, 망자들의 수는 아무리 많아봤자 수백.

예상만 적중한다면 아직까지 유리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파앗!

빛이 터져 나오자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한차례 누그러졌다.

폴란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키하하! 그 스킬! 어둠계열이 맞았구나!”

페르도라에게 이미 한번 간파 당했기에 유세현은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 스킬까지 계산에 두고 움직인 것이었으니까.

이강호가 재빨리 화염을 일으켜 주위를 불태웠다.

소수라는 특성상 공간이 좁으면 좁을수록 유리하기 때문.

“망자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해라!”

한편, 레콰이크는 명령만 내릴 뿐 직접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저 죽어나가는 부하들의 코인을 근처에서 흡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만약, 성을 공략하는데 해일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한 번의 스킬을 더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그때 그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 터인데.

레콰이크는 그들의 마력이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직접 나설 예정이었다.

“이강호! 김주희! 지금 사용한다. 시간은 약 3분! 그사이 최대한 죽여!”

“예!”

“알았다.”

솨아아-

유세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새까만 어둠이 주위를 순식간에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빠져라!”

신성의 힘으로 찰나의 순간을 버텨낸 폴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것만큼은 그들도 공략을 알아내지 못했다.

“풍아!”

“바람 가르기!”

그들은 잠식을 최대한 늦추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바람스킬을 사용했지만, 그보다도 확산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끼아아아!

어둠 속에 숨은 망자들은 환호성 섞인 비명을 질러대며 적들을 유린했다.

세 명은 3분이라는 시간 동안 무려 300이 넘는 인원을 사냥했다. 망자가 죽인 수까지 포함하면 족히 700은 넘을 것이다.

레콰이크가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자신이 애써 키운 병력들이 고작 스킬하나 때문에 죽어나가는 것은 정말 볼 것이 못 된다.

허나,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참고 참고 또 참아서 틈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노린다. 그리고 그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암흑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

레콰이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해일을 일으켰다.

김주희의 강력한 스킬을 미리 소비하게 하려는 의도!

그리고 그런 의도를 일행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주희의 능력은 최악의 경우가 일어나 내빼야 될 때 사용하기로 정했다.

촤아악!

실체화 하여 고블린들을 물어뜯고 있던 망자들이 물살에 휩쓸려 내려간다.

지능이 낮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

고블린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망자들을 하나 둘 처리해 나갔다.

높은 언덕으로 몸을 잠시 피신시킨 유세현의 두 눈동자가 아주 잠깐 봉우리 저편을 주시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도착하는 것을. 그래야만 이곳에서 완전히 끝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가 패널티를 감수하고 약속을 지킬지 무리수다.

“캬아아!”

때마침 도약한 고블린 한 마리가 커다란 폴암을 유세현을 향해 내리쳤다. 유세현은 황급히 검을 들어 방어했다.

“키리릭! 죽어라 인간!”

“......”

때문에 유세현은 마력의 흐름을 읽어 상황을 알아보고 싶었다. 미리 일러 준대로 최단 루트를 통해 움직였다면 지금쯤 근처에 다다랐어야 한다.

허나, 안타깝게도 적은 틈을 주지 않았다.

상당한 양의 마력사용과 엄청난 수의 신성에 의해 암흑투기가 약화된 지금 한눈 판 순간 목이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

5000대 3의 싸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하압!”

그들은 전력으로 적을 베어나갔다. 스텟이 최고층계 급에 다다른 지금은 충분히 그럴만한 여력이 있었다.

점점 줄어드는 수.

결국 5000마리의 고블린 들은 2500정도까지 그 수가 줄어들었다.

허나, 여기까지였다.

망자들은 거의 전멸했고 이강호 유세현의 마력 또한 거의 동났다. 남은 것은 비축시켜 놓은 김주희의 마력 뿐.

“서, 선배! 이제는 물러나죠! 아무리 봐도 오지 않을 것 같아요!”

“흠...”

이강호는 아쉬웠다.

레콰이크가 병력을 덜 이끌고 왔더라면 혹은 그가 약속 시간을 지켰더라면 이 자리에서 레콰이크의 목을 딸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물러나자.”

“놓치지 마라!”

레콰이크가 창을 들어 올리자 높게 솟구친 해일과 함께 고블린들이 줄기차게 달려들었다.

재빨리 정령화를 한 김주희가 물에 대한 제어권을 빼앗음과 동시에 해일을 수많은 화살로 바꾸어 고블린들을 향해 마구 마구 퍼부었다.

3개월 전과는 한차례 차원이 달라진 숙련도.

투두둑!

고블린들은 빗발치는 물줄기에 의해 꼬챙이가 되어 이리저리 쓰러져 나갔지만 레콰이크는 반대로 웃고 있었다.

자신이 발동 시킬 수 있는 해일의 남은 횟수는 한 번.

반면 여자는 어떨까?

과연 두 번 변신 할 수 있을 것인가.

운디네와 합을 맞추던 그녀를 응시하고 있던 레콰이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쫓아라! 저 능력은 얼마 유지하지 못한다! 쫓기만 하면 잡을 수 있다!”

당해도 당해도 바퀴벌레처럼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김주희 그만하면 됐다. 마무리해!”

“예! 선배!”

김주희는 고블린들에게 마지막으로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이것에 휩쓸리게 되면 추격은 한동안 불가능.

“큭!”

레콰이크가 어쩔 수 없이 맞대응하여 해일을 일으켰다.

허나, 그 해일조차도 김주희가 손을 한번 휘젓는 것으로 손쉽게 제어권을 내주게 되었다.

“크으으으!”

레콰이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에 이기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다.

결코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법이거늘!

쿠구구궁!

그렇게 해일이 막 고블린 진형을 휩쓸려는 찰나.

김주희의 정령화가 완전히 해제됐다.

레콰이크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번뜩 빛났다.

막 일으킨 해일의 제어권이 돌아온 것이 느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콰이크는 재빨리 해일을 컨트롤해 상쇄시킨 뒤, 물줄기를 타고 그들을 뒤쫓았다.

뒤를 흘겨본 이강호가 살짝 혀를 찼다.

“칫.”

그렇게 타이밍이 딱 떨어질 줄이야. 허나, 괜찮다.

살짝 위태 위태 하지만 이 정도는 오차 범위 내.

이장소를 벗어나기만 하면 고블린들은 이곳의 지리를 빠삭하게 익혀놓은 자신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치지직!

콰과광!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전격이 뒤 따르고 있던 고블린들의 육신을 강타했다.

“캬아악!”

비명과 함께 단번에 새까맣게 그을리는 육신. 물에 잔뜩 젖어있기에 그런지 전격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아낸다.

추격하던 고블린들, 도망치던 일행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두 진형이 현재 주시하고 있는 장소는 오직 한곳 뿐.

봉우리 위에는 흑인 남성과 엄청난 수의 병력이 새까맣게 즐비해있었다.

검을 치켜세운 게릭이 크게 외쳤다.

“약속은 지켰다 이강호! 전군 돌격! 고블린들을 쓸어 버려라!”

< 전면전과 유인책(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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