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면전과 유인책(1) >
“끄아악!”
“모, 모두 퇴각해라! 자리를 벗어나라!”
그 여느 때처럼 각 지역으로 매복과 기습에 나선 수많은 생존자들.
평소처럼 손쉽게 적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그들은 앞뒤로 밀려들어오는 고블린들의 군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돌진해온 고블린 세 마리를 단번에 베어버린 팀 아돌프, C-7중대의 중대장 데이브 케이지가 거친 음성을 토해냈다.
“제, 젠장. 왜?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어떻게 우리의 뒤를...”
본래 그들이 상대해야 될 몬스터의 숫자는 한 개의 중대급, 즉 100마리 정도였다. 그들은 적이 길목으로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허나, 이변은 갑작스레 일어났다.
목표물이었던 고블린들의 중대가 매복지점에 도착하기 무섭게 능선에서 다른 고블린 부대가 튀어나와 뒤를 덮친 것이다.
생존자들은 이 순간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신예들이 나타난 이후 이런 식으로 뒤를 잡히는 일을 없었던 것.
빗발치는 광역 스킬.
기습을 위해 한 군데에 몰려 있던 생존자들은 그것만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부랴부랴 퇴각하기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레콰이크가 딸려 보내준 고층계 고블린으로 인해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
이는 여러 차의 시도로 시간차를 알아낸 레콰이크의 계략이었다.
그가 고블린에게 내린 작전을 이러했다.
우선 눈속임용 작전으로 사냥을 나가는 척 하며 적을 요새 밖으로 끌어낸다.
이에 근처에서 잠입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적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신호를 보낸다.
그들에게는 후각이라는 선천적인 탐지능력이 있었기에 적정거리만 잘 유지해 인원을 배치한다면, 지속적인 감시와 보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측보다도 훨씬 탁월한 효과를 낼 수이었다.
그렇게 적이 요새에서 빠져나오면, 진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그제야 움직이는 것이다.
추가 정보를 하달 받을 수 없는 생존자들을 덮치기 위해서.
“키리릭! 죽어라 인간!”
푹.
고블린이 내지른 시퍼런 검날이 데이브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 정예 고블린은 커다란 대검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찔렀다고 하는 것보다는 부쉈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슴이 휑하게 뚫려나간 데이브의 몸이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눈동자는 절망에 가득 차있었다.
“이, 이렇게 죽을 수는...”
결국 데이브의 몸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단번에 목을 친 정예 고블린이 데이브의 머리를 높이 들어올렸다.
“키리릭! 적장을 베었다! 전부 도륙해라! 한 마리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캬캬캬캬!”
서걱!
촤악!
수적 우세 앞에서 쓸려 내려가는 인원들.
그 날 만큼은 고블린의 포효가 각층을 가득 메웠다.
* * *
“고블린들이 저희의 취약 부위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흠...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지금처럼 인원을 맞춰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겠군요.”
회의가 이루어졌다.
내용은 당연히 고블린들의 반격에 대한 것.
우리도 인원을 늘려 뒤를 잡아야 하느니, 아니면 샌드위치를 해야 하느니, 다양한 의견의 나왔다.
허나, 그런 것은 유세현 일행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는 끝이 안 날뿐더러, 레콰이크를 올가미 속으로 유인하기 힘드니까.
때문에 매복 및 기습으로 정예병 수를 줄이고, 적과 전력이 비등해진 지금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전면전을 치르도록 하죠.”
유세현의 말에 청중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전면전.
말 그대로, 일정한 범위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전쟁.
“지금 백병전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예.”
“허...”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고블린들이 종족을 위협하는 적이라고는 하나, 전면전이 벌어지면 엄청난 인원이 죽어나간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블린들도 이제는 우리를 마음대로 건들지 못합니다. 차라리 이대로 냉전 상태를 굳히는 게...”
“그 냉전 상태라는 건 언제까지를 말씀하시는 거죠? 6개월? 1년?”
유세현이 칼 같이 말을 잘랐다. 남성은 어물쩍 거리기만 할뿐 말을 잇지 못했다.
유세현은 쓰윽 주위를 살폈다.
다들 마땅치 않은 표정.
하기야 그들은 할 만큼 충분히 했다. 더군다나 잦은 전투로 인해 이전 기수보다도 훨씬 빨리 강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별 피해 없이 사냥이나 하다가 판도라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리라.
허나.
“저희는 2개월 뒤 판도라로 올라갑니다.”
“...예? 그게 무슨...이제 11개월 차 아니 신가요?”
사실 그들은 이제고작 5개월 차다. 그리고 이중에서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이태광 팀과 학과생, 게릭, 이한철 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올라가는데 개월 차가 필요하진 않죠.”
“아...”
게릭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놈들은 진짜 올라가고도 남을 놈들이기에.
깜짝 놀란 일리야가 다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판도라는 훨씬 위험하다니까...시간을 다 사용하셔서 더 강해지고 가시는 게...”
그들은 강해졌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최고층계 인원이 된 것은 아니다.
즉, 아직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한다는 것인데.
“아뇨, 저희는 2개월 뒤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납니다. 저희가 떠나면 고블린들이 대족장이라 떠받드는 레콰이크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
레콰이크를 한 번씩 접해본 사람들은 답할 수 없었다.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가 사용하는 해일은 굳건한 진형을 너무도 쉽게 흩뜨려 놓으며, 강한 힘은 유세현 일행과 필적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판도라로 가게 되면 놈들의 위치를 알 수가 없게 되는데, 이전과 같이 허무하게 당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백병전은 죽어도 하기 싫은 남성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 그놈도 이번에 판도라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아뇨.”
“어, 어떻게 장담을!”
“이미 한번 대면 해봤으니까요. 예전에. 여기 있는 게릭씨와 같이.”
“무슨 말...”
“여러분도 잘 아시는 사건입니다. 게릭씨 팀의 몰살 사건. 그때 저희 네 명은 레콰이크와 조우했었습니다.”
“아...”
게릭이 팀 헤르메스의 수장이 되냐 마냐를 놓고 실랑이가 있었기에,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그 당시 레콰이크의 힘은 여러분과 비등하거나 살짝 더 높았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 그 당시 그의 힘은 D랭크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강호와 김주희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라 생각 합니다만.”
“...저희와 비슷한 기수...아니면 더 낮다는 겁니까? 하지만 저희는 쟁탈전 때 레콰이크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세현씨 주장으로 보자면 더 낮은 기수라는 건데...저렇게 특이하게 생긴 놈이 눈에 띄지 않았
을 리가 없습니다.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쿄타로가 반문했다.
허나, 유세현은 이미 이것에 대한 답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그 건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가 애초부터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요?”
“예? 그게 무슨...”“또 다른 이 종족.”
유세현이 지긋이 말하자 고년차 생존자들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여러 명의 입가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한 마디.
“코볼트!”
“예. 맞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또 다른 종족, 코볼트. 최근 들어 거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만 살펴본 바로는 인구수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승
을 부렸다는데...”
“아...”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저년 차 생존자들도 흐름상 유세현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무척 많았던 코볼트.
그런 코볼트의 수가 갑작스레 줄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것의 의미하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레콰이크가 코볼트들을 몰살시키면서 빠르게 강해졌을 거라는 겁니까?”
“그것밖에 생각되는 게 더 있습니까?”
“......”
생각해보자면 말이 안 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타당하다.
레콰이크는 자신보다도 강한 고층계 인원까지 움직이는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
그것을 이용해 코볼트들을 죽이고 코인을 흡수했다면 확실히 보다 더 빠른 성장이 가능했으리라.
“......”
유세현이 입을 닫자, 무거운 적막이 길게 이어졌다.
생존자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말을 따라 진짜 전면전을 해야 되는 것인지.
사실 그들이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허나, 그들의 말이 들어맞는다면 유세현 일행이 판도라로 올라간 뒤의 상황은 무척이나 암담하다.
팀 솔져의 쿄타로가 긴 침묵 깨고 말했다.
“후...혹시 마땅한 작전이라도 세워두신 게 있으십니까?”
여태까지 그들이 세워준 작전은 무척 합리적이고 타당하면서도 효율이 좋았다.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도 무엇인가 준비해둔 것이 있지 않을까.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이 말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상 반쯤 강요를 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보다도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누군가가 질문해주는 편이 훨씬 잘 와 닿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 있습니다.”
“어, 어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의 눈동자가 번뜩 빛났다. 그들의 시선은 전부 유세현의 입가에 쏠려있었다.
“여러분들이 적진의 앞에서 대기하시는 동안 저희가 레콰이크와 정예병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할 겁니다.”
“...유인 말입니까?”
“예. 현재 레콰이크의 신경은 온통 저희에게 집중되어있습니다. 저희가 가는 곳을 집요하게 찾아낸 뒤 무수히 많은 최정예들을 보내 사냥이나, 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그 증거죠. 예전에야 정예병들이 너무 많아 나설 수
가 없었지만 이제는...”
분산된 정예병을 많이 처리해 놓은 덕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 유세현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쉽게 단언해도 되겠습니까?”
문제는 그들이 쉽게 따라줄까라는 것. 만약 레콰이크가 그들을 무시하고 본대에서 자신들을 공격한다면?
안 그래도 유세현 일행이 빠진 그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럴 때는 그냥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병력을 뒤로 물리시면 될 테지만. 절대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는 없을 겁니다.”
다분히 내뱉는 말에는 확신이 들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허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허세라 생각하기에는 그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해왔고, 상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논외의 인물이었으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렇게 단언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저희가 더 성장하면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
생각이 바뀌었다. 과연 이 말을 믿어야하는 것일까.
주위를 살펴본 유세현이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하기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그저 적이 괴로워하는 것을 막연하게 지켜봤을 뿐이다.
그래, 그러니 당연히 믿을 수 없겠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사람이니까.
유세현은 깍지를 낀 뒤 테이블 위에 턱을 괴었다.
그 모습에서는 여태까지 한 번 도 보여주지 않던 거만함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튀어나오는 말.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쿵!감히 범접 할 수 없는 힘이 일행과 게릭 그리고 이태광을 제외한 생존자 일동을 일제히 짓눌렀다.
무려 D랭크 10%에 육박하는 마력으로 발동된 암흑투기.
단순히 육신을 옭아매는 수준이 아니라 숨통을 죄어온다.
생존자들은 감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헛구역질이 일어나고,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 속에서 유세현의 말이 고요히 울려 퍼졌다.
“안타깝지만 여러분들은 전혀 강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고블린들이 저와 대치했을 때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이죠. 고블린들은 이것을 어찌어찌 이겨내면서 저와 전투를 치릅니다. 여러분들은 저
와 대치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그저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다.
“여태까지 많은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콰이크는 스스로도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더 성장하면 어떤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후웅 팟!
유세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위를 장악하고 있던 압박감이 언제 그랬냐는듯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그제야 숨통이 트인 생존자들의 입가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경악이 터져 나왔다.
“후욱 후욱...미, 미친...”
“무슨...”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힘.
그들은 한 순간 끝없는 공포를 체감했다. 그들은 벗어나려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이 힘은 일개 생존자가 지니고 있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제 제가 하는 말을 좀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생존자들은 그의 말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했다.
< 전면전과 유인책(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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