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15화 (115/612)

< 올가미 >

일행은 레콰이크에게 직접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주둔지를 기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고블린들은 이대로 계속 당하게 될 것이라고.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공성전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요새는 주둔지와 달리 병력의 수도 많거니와, 거친 반격으로 인해 고블린들의 병력이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준 탓이다.

레콰이크가 바보가 아닌 바에야 공격할 이유가 없는 것. 그리고 결론적으로 레콰이크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강요는 무척이나 강해진 레콰이크의 전속부대 인원들을 강제로 나누게 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이전에는 고블린들이 강대해서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전속부대 인원들을 투입한 것과 안한 것의 승률의 차이는 무척 크다.

한차례 작전을 끝마친 각 팀의 리더들이 중앙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유세현은 그런 그들에게 고블린들의 동향을 알려주며 추후 어떤 작전에 참가할지 스스로 정하도록 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 팀 아돌프가 습격을 맡도록 할게요.”

“그럼, 우리, 팀 헤르메스는 후방병력을 차단해주지.”

“그렇다면 4층 매복은 우리가 하겠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처음과 달리, 무척 능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또한 대형 팀이 소형 팀을 깔보고 압박하던, 피라미드의 형태가 없어졌다.

팀 명성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던 것도 사라졌다.

고블린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하나가 된 인간세력.

유세현은 그것이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만약 레콰이크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 그들이 이렇게 힘을 합쳐 행동을 했었더라면 형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은 인간 측을 절대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인간측이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판도라에서도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서는 것이 가능할 텐데.

허나, 유세현은 이것이 계속 이어지는 게 불가능이란 것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구름섬의 인원들은 계속 바뀌어 나갈 테고, 인간측에는 모두를 위하는 사람보다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가 훨씬 많다.

레콰이크가 죽고, 당장 한 세대가 지나면 원래대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무척 큰 것.

그렇기에 이강호는 시간을 들여 무의미한 통합을 이루는 것보다도 스스로가 빠르게 강해지는 쪽을 택했다.

이곳은 힘이 지배하는 세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대한 힘은 모두에게 동경을 주고 따르게 할 수 있다.

“그럼 이것으로 이번 회의는 마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각자의 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중에서는 클락의 보좌로 참가한 김다혜도 있었다.

그녀는 현재 이강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세현을 보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자신보다 약했을 남자.

자신의 호의를 계속해서 거부하던 독불장군은 어느새 엄청난 성장을 이뤄 사람 모두를 움직이는 지휘자가 되었다.

‘정말 대단해.’

미련.

그 호된 말을 듣고도 그녀는 아직까지 미련이 남아있었다. 허나, 그녀는 그것을 더 이상 표출하지 않았다.

같이 나아가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으니까.

대신에 그녀는 다짐했다. 더 열심히 살아남고 노력하여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을.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당당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다혜씨 가죠.”

“예.”

김다혜는 클락을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 * *

“레콰이크님 트륄이 이끄는 제 2-13부대가 괴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6-8부대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레콰이크님 께서 고려하셨던 대로 저희 동향이 전부 읽히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트륄까지? 또 놈들이 나타났겠군.”

“예. 살아남은 생존자 말로는 분명 검붉은 섬광과 화염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고를 들은 레콰이크는 이 모든 상황이 발생한 것이 줄곧 주시하고 있던 놈들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화염과 검붉은 빛을 발산하는 두 마리의 수컷 인간.

그들의 능력은 처음 봤을 때부터 기이하게 비상했다. 남들은 좀처럼 가질 수 없는 광역 공격 스킬.

위력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허나, 레콰이크는 놈들이 신기한 탐지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줄 까지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그저 단지 눈치가 빠르고 흐름을 잘 읽어 대응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갑작스러운 인간의 반격 이후.

레콰이크는 자신이 놓쳤던 것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쟁탈전이 끝난 뒤의 급습. 주둔지를 공격한 것.

생각해보자면 놈들은 자신의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대응을 해왔다.

그렇다. 마치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또한 주둔지에서 돌파를 당했을 때, 놈들은 정말 기이할 정도로 인원이 덜 배치된 곳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미 우세했던 형세는 비등비등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아니, 조금씩이지만 밀리고 있었다.

레콰이크는 틈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틈은 이전 벌어진 주둔지 전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정도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도망을 쳤을 것이다.

이는 사기적인 그들의 탐지능력에도 허점이 있다는 뜻.

또한 놈들이 직접 탐지를 하여,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정보를 얻고 일러주는 과정에서 시간차가 발생할 것이다.

‘우선은 이 시간차를 알아낸다. 그리고 역으로 뒤를 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떻게든 두 마리의 수컷인간을 찾아내어 죽여야 한다. 하지만 놈들은 약삭빠르다.

정예부대가 근처에 있거나 함께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 증거.

레콰이크는 때가 오면 위험을 무릎 쓰고 자신 스스로가 덫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놈들을 노리고 있듯, 놈들도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폴란. 현 시간부로 작전을 새로 짠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족장들을 전부 불러 들여라.”

“예.”

두 진형은 서서히 최후의 접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일행은 6층의 중심, 첩첩 산중에 둘러싸여 있는 망자의 계곡에 들어서 있었다.

-꺄아아아

주위에 가득 메아리치는 망자들의 싸늘한 울음소리. 물 위를 둥둥 유영하고 있는 망자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먹잇감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흐릿한 형체로 육신의 반만 구현 되어있는 그들은 공격을 취할 시에만 몸을 완벽히 구현한다.

이윽고 주위를 탐색하던 유세현이 홀로 망자들의 앞으로 나섰다.

망자들의 광기어린 붉은 안광이 유세현을 맹렬히 노려봤다.

-키아아아!

당장이라도 사지를 분쇄할 것 같은 포효는 그야말로 덤.

허나, 망자들의 그런 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키이...키이...

유세현이 딱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음에도, 두 눈을 마주친 망자들이 갑자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유세현은 이에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움직임을 멈췄다.

부들부들 떨리는 반투명한 몸과 촛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안광.

그 행동에서는 공포심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마력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줄 알고, 어둠에 물든 몬스터답게 유세현 안에 내제되어있는 힘을 파악한 것이다.

‘움직이면 죽는다.’

망자들은 지금 유세현의 행동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에 바위 뒤에 숨어있던 이강호가 저층계에서 미리 붙잡아 놨던 고블린 네 마리를 유세현의 바로 앞으로 던졌다.

치지직.

바닥에 몸이 긁히자 기절에서 깬 고블린들이 으득 이를 갈며 무기를 들었다.

“키릭! 인간 놈들!”

고블린들은 당장에 달려들려 했지만, 암흑투기가 온몸을 짓누르자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유세현은 그런 망자와 고블린들을 번갈아봤다.

마치, 망자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듯.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이 장소를 최후의 격전지로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일종에 실험이었다.

레콰이크가 그러하듯 그들 또한 자신을 덫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생존자뿐만 아니라 몬스터 또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키아아!

마침내 제일 선두에 서 있던 망자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돌진했다.

과연 어떻게 될 지.

유세현도 살짝 흥미로운 눈으로 이를 관찰했다.

콰드득! 콰드득!

“캬아아악!”

뼈와 살이 으적으적 통째로 씹히자 비명을 토해내는 고블린.

그것이 신호탄이 되었는지, 갑작스레 무수히 많은 망자가 달려들어 고블린들의 육신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곧 뼈도 남기지 않고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키이이.

움직임을 멈춘 망자들의 눈이 유세현을 향했다.

대화를 직접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이젠 되었냐는 그런 눈빛이었다.

지켜보던 김주희가 놀란 눈초리가 되어 탄성을 내뱉었다.

“선배님 이건 진짜 써먹을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 놈들이 피아를 구별할 수만 있다면.”

“아...맞아...그럼 다녀올게요.”

이번에는 김주희가 유세현의 앞으로 나섰다.

이에 망자들은 무척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과연 공격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이윽고 눈치를 보던 망자들이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달려들자 유세현은 재빨리 암흑투기로 제압 했다.

그리고 다시 풀어 줬을 때, 망자들은 더 이상 김주희를 공격하지 않았다.

반 정도의 성공.

그들은 비록 몬스터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학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블로프의 개.

유세현은 망자에게 주입식 교육만큼으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한국의 우수한 교육법을 선사했다.

그렇게 4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망자들은 더 이상 김주희나 이강호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고블린 사이사이에 끼어놔도 알아서 잘 구별하여 고블린만 처리한다.

이에 일행은 곧 최후의 실험에 돌입했다.

망자들이 인간을 아군으로 인식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김주희와 이강호만을 아군으로 인식하는 것인지.

이것에서 모든 것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존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망자들에게 인식시킬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그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호기롭게 지원한 게릭이 잔뜩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저기...설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진심이다.”

“으아아...”

망자들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특성이나, 스킬 때문에 6층에서도 거의 최상급 몬스터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이 장소에는 고블린들도 잘 오지 않는다.

만약, 저 수백 마리의 망자들이 일제히 달려든다면 단신으로 1초를 버틸 수 있을까.

게릭은 후회했다.

물빛의 사원에서 이미 경험을 한번 해본바가 있는데 어쩌자고 이 미친놈들을 따라온 것인지.

그놈의 인맥이 도대체 뭐라고.

얼떨결에 딸려온 수하들이 안색이 반쯤 새파랗게 질려 중얼거렸다.

“에, 에이. 팀장님 농담이겠죠. 상대는 몬스터잖아요 몬스터 저희를 공격하지 않을 리가...”

“......”

수하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아무리 봐도 진심이다.

유세현이 툭 말했다.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알았다. 가자 얘들아.”

게릭은 눈 딱 감고 전진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는가. 또한 지금까지 행동으로 보자면 그들은 결코 허언을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지만... 그들만큼 신뢰도가 높은 사람도 또 없을 것이다.

“아, 아니, 팀장님. 정말로 가시면...”

“좋은 말 할 때 빨리 와라. 목숨 걸고 따르겠다며?”

“아...”

이윽고 후폭풍을 두려워한 수하들 또한 마지못해 나아갔다.

유세현이 동행한다면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그는 먼 곳에 위치해 언제든지 암흑투기를 전개할 준비를 했다.

게릭과 수하들이 이내 망자의 앞에 다다르자, 흉흉한 붉은 안광이 게릭의 팀을 흘겼다.

꿀꺽.

고요한 계곡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그들은 망자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유세현의 말마 따라 무기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저놈들이 달려들면 저희는 3초안에...”

“닥쳐라. 이미 늦었어.”

“예...”

그들은 석빙고처럼 꽁꽁 얼어 망자를 주시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묘한 기분이 콧등은 간지럽힌다.

정말 공격을 해오지 않지 않는가.

그리고 잠시 뒤 정말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스르륵.

수백 마리나 되는 망자가 아무 일 없는 것 마냥 다시 유유히 유영하기 시작한 것.

“어?”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다.

정말 이들을 순종시켰단 말인가!

어느새 그들의 근처까지 다가온 유세현이 기절시켜 놨던 고블린들을 던졌다. 그러자 언제 얌전했냐는 듯 망자들이 고블린을 향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슈우욱!

콰드득. 콰드득.

“키아아아!”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분쇄되어 사라지는 육신.

게릭과 수하들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져 유세현을 바라봤다.

“너희들 설마...”

적의 숨통을 죌 올가미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 올가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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