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72화 (72/612)

< 죽음의 협곡(1) >

이강호는 모르고 있지만 표상욱은 사실 그와 같은 [불타는 대지] 시련을 거쳐 온 일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팀의 일개 일원에 불과했기에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허나, 표상욱은 이강호를 알고 있었다.

여자 한명을 데리고 혈혈단신으로 그 강한 몬스터를 격파해 나가는 그를 보았을 때 얼마나 몸에 전율이 솟았던가.

때문에, 생존자들은 본래 그를 끝까지 따라가려했다.

코인을 많이 흡수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안전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헌데, 갈림길에서 야영 직후 둘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에는 무슨 변을 당한 것이 아닌가했다. 허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곧 알 수 있었다.

며칠 뒤, 시련이 완전히 붕괴해버린 것.

이강호의 뒤를 한번이라도 따른 적 있는 생존자들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일반 생존자들과는 무엇인가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뭘 할 가능성이 높다.’

잘만 따라가면 콩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었고, 어쩌면 미로를 보다 빨리 통과할 수도 있다.

외부미로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만큼, 팀원들은 이미 납득을 시켜놓은 상황.

큰 문제가 하나있다면 이전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언제 어디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표상욱은 이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다.

-사냥꾼의 증표.

효과: 2일간 표적의 위치를 나타냅니다.

가격: 남색티켓 300개.

외부미로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상당한양의 증표를 잡아먹는 아이템.

증표의 크기는 대략 손바닥보다 살짝 작았다.

그는 내부미로에 들어와 열심히 사냥해 새로이 증표를 모은 만큼 우선 자신의 팀원에게 사용해봤다.

신체에 직접 닿아야 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으나, 불꽃이 튄다던가 빛이 터져 나오는 등의 특이한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사용했는지 안 사용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좋아, 할 수 있겠는데?’

표상욱은 해가 지기 무섭게 증표를 손바닥에 숨기고, 냄비에 음식을 담아 세 명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가 아닌, 여자 한 명이 튀어나와 표상욱을 제지했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새삼 군기가 바짝 든 앙칼진 목소리였다.

표상욱은 조심스레 준비된 음식을 내밀었다.

“세 분이 많이 힘을 써주진 덕분에 보다 더 쉽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큰 건 아니지만 한 번 준비해봤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일부러 경계를 풀기위해 스토커라고 대놓고 어필했지만 김주희는 생각보다 단호했다.

“괜찮아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괜찮다니까요?”

“일단 내용이라도 보세요.”

표상욱은 틈을 만들기 위해 계속 들이 밀었다.

내용물이라도 보라는 계속되는 권유에 김주희가 일단 어쩔 수 없이 냄비를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증표발동.’

서로의 손가락이 살짝 포개지기 무섭게 표상욱은 증표를 발동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앉아있는 두 남자를 살폈다.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모르는 눈치.

본래라면 귀신같이 알아챘을 둘이지만 법칙에 의해 마력을 느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둘은 실상 탐지스킬이 없는 것과도 같았다.

한손으로 밑을 바친 김주희가 조심스레 냄비뚜껑을 열었다.

거대 흙두꺼비 뒷다리를 잘라 넣고 불에 가열한 찜 요리였다.

막 만들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지만, 증가된 불 속성 저항력 덕에 김주희는 별로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살짝 올라간 눈 꼬리로 표상욱의 얼굴과 냄비를 반복해 살핀 김주희가 냄비를 다시 내밀었다.

“다시 말하지만 필요 없어요.”

“하하...혹시 의심스러워서 그러신 거라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표상욱은 순식간에 냄비에 담겨있는 고기 하나를 맛있게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너스레 웃으며 말했다.

“하나 더 먹어볼까요? 아니면 직접 골라주셔도 되는데...아니면 요리가 별로인가...”

“......”

김주희의 눈이 이강호와 유세현을 바라봤다. 결정을 내려달라는 의미.

자리에서 일어서 냄비를 받아든 유세현이 표상욱 손에 직접 냄비를 얹어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받을 수 없습니다.”

“...후우. 제가 괜히 불편하게만 한 모양이네요. 정 마음이 그러시다면...”

표상욱은 최대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며 한마디를 더 넌지시 던졌다.

“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남우주연상 급의 완벽한 연기.

목적을 이룬 표상욱은 이내 자리를 이탈했다.

심장이 120비트 이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행동력이 좋은 만큼 대담하게 일을 벌였지만 만약 걸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었나요?”

야영지로 돌아오자 그 와같이 이강호를 알고 있는 동료 한명이 물었다.

표상욱은 조심스레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위험 했을 텐데. 걸렸으면 그냥은 안 끝났을 거예요.”

“...그렇겠죠.”

“앞으로는 하지마세요. 일단 어디까지나 목적은 미로탈출이지, 저들을 추적하는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제 기간을 얼마 안 남았다.

그들은 곧 취침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표상욱이 잠에서 깼을 때는 주시하던 세 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표상욱이 어제 이야기한 동료를 슬쩍 쳐다봤다.

어제와 달리 이번에는 동료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훗’

은은한 미소를 지은 표상욱이 곧장 팀원들을 정렬시켰다.

이번에야말로 비로소 콩고물을 주워 먹을 타이밍이었다.

* * *

우우우웅!

주위를 스산하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협곡 내부에서 기분 나쁜 바람소리가 메아리쳤다.

지도를 들고 있는 그들은 현재 죽음의 협곡 초입부분에 서있었다.

고개를 숙여 내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속을 알 수 없는 블랙홀을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살짝 얼굴색이 질린 김주희가 이강호를 향해 질문했다.

“저...선배님 혹시 내려가는 길은 없는 건가요? 깃털 사용해야 되요?”

“몰라. 기다려봐.”

정보도 없고, 처음 오는 곳인 만큼 이강호도 내려가는 방법 따위는 모른다. 다만, 그와 나머지 두 사람의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험.

되도록이면 정식적인 길을 가고 싶던 이강호는 우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깎아 내려진 절벽의 돌을 손으로 더듬었다.

대개 이런 장소는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장치가 숨겨져 있다.

유세현은 그렇게 이강호가 장치를 찾는 동안 자신의 스테이터스 창을 살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5]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50.1% [E Rank]

민첩: 49.8% [E Rank]

체력: 46.6% [E Rank]

내구력: 46.2% [E Rank]

어둠의 마력: 42.5% [E Rank]

<저항력>

물리저항: 60.1% [E Rank]

마력저항: 59.3% [E Rank]

<속성저항>

화: 45.3% [E Rank]

수: 47.1% [E Rank]

풍: 44.3% [E Rank]

어둠: 100% [SSS Rank]

<스킬>

프로즌 디퓨전 [매직 F Rank][숙련도: 100%]

암흑투기 [유니크 SS Rank][숙련도: 41%]

언데드 레이즈 [유니크 F Rank][숙련도: 30%]

<특수특성>

마(魔)

모든 스텟이 이제 E랭크 절반에 가까워졌다.

3차 튜토리얼을 끝낸 일반 생존자들의 스텟이 평균 E랭크 5~15% 사이 인 것을 감안하자면 무척이나 높은 수.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물리저항력과 마법저항력이었는데 고기방패라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던 아누비스 덕분이었다.

‘후...언데드 레이즈의 숙련도를 많이 못 올린 게 아쉽기는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지금, 효율적인 면에서는 암흑투기가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일.

유세현을 상태창을 끈 뒤 이번에는 마검의 정보를 살폈다.

앞으로 1시간 뒤면 드디어 한 달이 경과 되어 무기를 흡수 할 수 있게 된다.

마침내 노멀 C등급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정보를 확인한 유세현이 자리에서 딱 일어난 순간이었다.

털컥!

움푹 튀어나와있던 돌이 이강호의 손에 의해 지면으로 쑤욱 들어가며 무엇인가가 맞물리는 음색이 울렸다.

트드드득.

칼로 자르듯 순식간에 깎여 나가는 절벽.

떨어진 바위와 흙은 아래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려져 이내 간이식 계단을 만들었다.

김주희는 그것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마왕성에서 탈출할 때도 느꼈던, 몸이 철렁 내려앉는 그 느낌을 굳이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가볼까.”

이강호가 먼저 엉성한 간이식 계단바위를 향해 발을 뻗었다.

그때, 갑작스레 공중에서 빛이 새어나오며 남자 한명이 지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등장 법.

그 어떤 섬뜩한 말도 무표정으로 서슴지 않게 설명 하는 도우미였다.

“안녕하십니까. 대리자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할 말이요? 무슨...”

유세현이 답하자 협곡 내부를 가리킨 도우미가 곧장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대리자 분께서 들어가시려는 협곡 내부는 공간의 균열, 특이간섭에 의해 사실상 튜토리얼의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범주에서 벗어났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다만, 권장하지 않는 바입니다.”

내용을 들은 유세현과 김주희의 표정이 굳었다.

도우미가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협곡 내부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

“그럼, 저는 이만 다시 가보겠습니다.”

도우미는 할 말을 끝내자 그 여느 때와 같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강호야 어떻게 할...”

이강호에게 의중을 물어보려던 유세현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의 두 눈은 이미 협곡 내부를 향해 있었다.

* * *

도우미의 설명을 듣고 난 이후, 세 명은 협곡 내부로 내려왔다.

김주희는 꺼림직 했지만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유세현은 친구 이강호의 판단을 믿고서.

갈라진 메마른 땅을 밟은 유세현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감았다.

범주에서 벗어나 법칙이 깨져서일까, 마력의 흐름이 톡톡히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이네.’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오감에 모든 것을 맡겨야만했다.

눈으로 직접 봐야했으며, 풀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 작은 인기척조차 보다 더 세심히 신경 써야 한다.

마력을 느끼지 못했을 시절에는 전혀 몰랐었던 불편함.

그는 곧 거짓의 숲 때처럼 적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전방 100m앞으로 E급 랭크 초기 마력을 지닌 다수의 적이 느껴진다.

그는 더더욱 멀리까지 감각을 끌어올렸다.

허나, 어느 곳을 기점으로 잘만 느껴지던 흐름이 갑작스레 뚝 끊겼다.

법칙에 적용될 때와 비슷한 감각이지만 살짝 이질적인 것이 뭔가 조금 다른 느낌.

유세현은 그곳부터가 도우미가 설명한 특이간섭 지역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래도 뭐 이 정도라면...’

아무쪼록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었다.

마력 양으로만 보자면 앞에 있는 몬스터들은 내부미로에서 나오던 몬스터의 수준과 얼핏 비슷할 게 분명하다.

유세현은 일단 둘에게 정보를 넘겼다.

그러자 말을 들은 이강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게 느껴져? 더 멀리 느낄 수도 있고?”

“응.”

“어느 정도까지?”

“...글쎄? 일단 특이간섭지역 전으로 추정되는 곳까지는 일단 전부 읽히기는 해.”

“...허.”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이강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상승내공심법을 익힌 자신조차도 감지할 수 있는 범위는 고작 해 봐야 50~80m정도인데, 유세현의 탐지 범위는 더 늘어나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다.

한낮 범인(凡人)으로서 피나게 구르고 구르며 스킬과 감각을 익힌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재.

이강호는 아직까지도 그가 왜 죽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진짜, 무슨 연유지?’

아무리 Ex아이템의 부작용이라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스레 돌아올 줄 알았다.

단서를 찾기 위해 김주희도 동행시켰다.

헌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단서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어렴풋 생각나는 것은 이전 홉고블린과 전투 당시 순간적으로 무엇인가가 떠올랐었다는 것.

그 당시에는 뭔가가 확실히 기억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무엇인가를 봤다는 기억의 파편만 남아있을 뿐이다.

‘후우...어쩔 수 없지.’

그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안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굳이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 기억의 수복이 아닌, 조심, 또 조심하면 되는 것.

뭐가, 되었건 이번에야 말로 유세현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 죽음의 협곡(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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