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태된 자들의 무덤(2) -여기부터 유료연재 >
“허억, 허억.”
미리 외워놓은 루트를 통해 본 부대로 돌아온 김두식은 허겁지겁 조진영을 찾았다.
“진영씨!”
“...!!”
때마침 측근들과 함께 내부 미로로 향할 생존자들을 선발하고 있던 조진영의 인상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는 하던 대화를 차분히 멈추고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김두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죠. 두식씨? 이 시간이라면 감시를 하고 있을 시간일 텐데...무슨 일로 여기...”
그는 하던 말을 채 끝마치지 못했다.
김두식의 꼴이 말이 아니었던 탓이다.
벗겨진 레더부츠와 꽉 쥐고 있는 롱소드 그리고 무엇인가의 의해 잔뜩 그을린 육신.
갖은 역경으로 인해 안 그래도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해보이던 그는 그야말로 난민이 되어있었다.
조진영이 오른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는 김두식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생존자들에게 역습당한 거군.’
분명히 보고부터 하라고 했을 터인데.
‘증표를 빼돌릴 생각이었겠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딱히 아니었다.
그들 또한 방금 전까지 어떤 생존자들을 차출할지 의견을 나누고 있지 않았던가.
눈매가 날카롭게 변한 조진영이 차분히 말했다.
“김두식씨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그게...갑자기 3명이 우리 팀을 다 죽이는데...그게...”
하지만 공포 때문에 미처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한 김두식이 횡설수설한 모습을 보였다.
듣고 있던 측근 중 한명이 나직이 혀를 찼다.
“두식씨, 제대로 생각해서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일단은 호흡부터 하시죠.”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자, 김두식은 그제야 크게 숨을 골랐다.
호흡을 가다듬은 김두식이 비로소 차근차근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그게, 저희 팀이 빌딩에서 3명의 생존자들을 발견 했습...”
“저, 적이다! 적습이다!!”
문밖에서 갑작스레 경악 섞인 음성이가 들려왔다.
조진영과 측근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적습이라니?
김두식을 이 꼴로 만든 생존자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단 말인가.
어떻게?
미로이니 만큼 빨라도 너무 빠를 뿐더러, 미치지 않고서야 고작 3명이서 급습할리가 없다.
“김두식씨 방금 전에 분명히 세 명이라고 들었던 거 같습니다만...”
“마, 맞아요! 세 명 맞다고요! 그, 그들은 괴, 괴물이에요 괴물!”
눈이 보름달처럼 커진 김두식은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인지 로비와 연결된 문과 조진영을 반복해 바라봤다.
그러자, 보다 못한 조진영과 측근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직접 마주하는 것이 빠르다.
또한 밖이 갑자기 잠잠해진 것이 이미 팀원들이 제압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측근 중 한명이 문을 열며 김두식을 향해 툭 말했다.
“김두식씨...룰을 어긴 책임은 면치 못할 것입니다.”
“......”
김두식은 답하지 못했다. 내심 가슴이 철렁했지만 꼭 책임의 대한 압박 때문은 아니었다.
동료가 순식간에 도륙 당하던 때의 공포심.
보다 더 많고 강한 팀원들이 있는 이상 질리는 없겠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 * *
바깥으로 빠져나간 조진영과 측근들이 로비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사방팔방 튀어있는 핏자국.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팀원이 적을 사살한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사람은 익히 자신도 알던 얼굴의 소유자였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계병들과 감시원.
바닥에는 총 15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깡그리 시체가 되어있었다.
“히이익!”
한 남성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유세현의 검을 본 김두식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창끝을 세우고 있던 이강호가 달려들려 무릎을 굽힌 찰나였다.
깜짝 놀란 조진영이 자신도 모르게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멈추시기 바랍니다.”
“......”
자체를 낮췄던 이강호의 몸이 스르륵 펴졌다.
순간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조진영이 말을 이었다.
“왜,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스스로가 보기에도 어이없는 질문.
물론, 이는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 것일 뿐 진심으로 몰라서 한말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굳게 닫혀있던 이강호의 입이 열렸다.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건가?”
물론 잔뜩 살기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기분은 좋지 못하다.
허나, 이는 앞으로 맞춰나가면 될 일.
조진영은 빠르게 침입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20명을 상대했음에도 생채기 하나 없는 몸, 더군다나 호흡도 무척이나 고르다.
자세한 스텟은 모르지만 상당한 강자라는 증거.
만약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승리하게 될 지라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 했다.
지금까지야 골치를 아프게 하던 인원 수 얼추 맞춰 준 셈이 되지만, 더 피를 보게 된다면 정말 위기가 되는 것이다.
조진영은 상황이 나쁘지 않은 만큼, 꼬리를 잘라내어 쉽게쉽게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지금 막 보고를 받은 참입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독단행동이었습니다. 설마 기습을 하리라곤...”
“독단?”
이에 반문한 이강호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판도라에서 생활한지 20년.
그간 많은 권모술수를 봐왔던 만큼, 조진영이 얄팍한 수작을 단번에 읽은 것이다.
그의 주장이 옳은 말이 되려면, 기습을 떠나 매복했던 인원자체가 아예 없어야만 한다.
지독한 모순.
이강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매복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뜻인가?”
“......”
무심코 덮어씌우려던 조진영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속아 넘어가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되려 화만 돋우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조진영이 빠르고 유연하게 생각을 바꾸었다.
“후우...매복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습격은 그들의 독단이 맞습니다. 바라시는 게 무엇입니까? 마땅히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건너 뛴 협상 시도.
조진영은 도태된 생존자 치고는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니 얍삽한 존재였다.
물론, 상대가 이강호라는 점이 무척이나 안 좋았지만.
둘러싼 지원군의 수를 확인한 이강호가 다분히 본론을 꺼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증표모두.”
“......”
조진영과 그 측근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었다.
고작 해 봐야 증표 90개 정도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전부를 달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어찌 할 수 있다 말인가.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
“장난인 것 같나?”
이강호로서는 결단코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몬스터를 찾는 것 대신 생존자들을 노렸고, 목숨을 노렸던 만큼, 그 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을 내놔야 된다.
그리고 목숨에 비등할 만 한 가치를 지닌 것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증표 전부다.
표정에서 장난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 조진영이 입술을 곱씹었다.
‘좋게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상대는 말이 안 통하는 벽창호.
무슨 자신감을 저리 있는지는 모르나, 이렇게 되면 피해를 보더라고 죽이는 게 맞다.
조진영이 들고 있던 검을 앞으로 겨누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요. 웬만하면 좋게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스륵.
말과 동시에 셋을 포위하고 있던 지원군 일동이 병장기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적이 강해보이는 만큼 협공으로 단번에 끝을 보려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너희들이 선택한 거다.”
쿠구궁!
한 남자의 몸에서 새어나온 맹렬한 투기가 일대 인원들을 가득 짓눌렀다.
조진영을 포함한 그의 팀원들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중압감에 몸을 비틀거렸다.
‘이, 이게 무슨!’
화르륵.
미처 생각할 틈 없이 이강호의 창에서 새어나온 붉은 섬광이 팀원들을 휩쓴다.
“끄아아악.”
“커, 커헉”
터져 나오는 아비규환.
조진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다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스킬이란 말인가. 이게 가당키나 하는가.
조진영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김두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괴물.’
순식간에 팀원들을 도륙하는 그들은 정말 그야말로 괴물이였다.
그리고 그 괴물은 현재 자신에게 매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으아아아 살려...”
뎅겅.
수십 초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치던 얼굴이 잔뜩 사색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회색의 미로에 대기하여 생존자들에게서 증표를 모으던 집단의 마지막이었다.
* * *
피 냄새가 진동하는 로비.
그곳에는 수 십 명이나 되는 생존자들의 사체가 쓰러져있었다.
행여나 쓸만한 아이템이 있는지 살피던 김주희가 이강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호 선배님. 질문하나만 해도 될까요?”
“뭔데?”
“그...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뜸을 들이던 김주희가 말을 이었다.
“그...굳이 다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증표 200개만 받고 끝냈어도...”
조진영이 대화할 마음이 있었던 만큼, 전부 몰살 한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에 유세현이 지긋이 혀를 찼다.
“네 목에 칼을 겨눴었는데 잘도 그런 말이 나오네. 우리가 만약 약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거냐? 중간다리 때의 일을 벌써 새까맣게 까먹었나 보지?”
“...아.”
2차 튜토리얼 때의 중간다리와 이곳 회색의 미로의 일은 동일한 사건이었다.
법칙에 사로 잡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죽여야 되는 상황.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그들은 할일을 한 것뿐이다. 만약 약했으면 죽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유세현이 다분히 충고했다.
“너, 근래 조금 강해졌다고 오만하지마라.”
“...아, 예 선배님. 죄송해요.”
김주희는 자신이 질문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이래서 오해하지 말고 들어달라고 했던 것인데.
그녀는 꽉 쥔 주먹으로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으으으! 요새 좀 괜찮나 싶었는데 이게 뭐야! 이게!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긴장이 다시 바짝 들어간 김주희의 머릿속에 이전 크낙사스의 초원에서 유세현과 이강호가 나눴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튜토리얼 이후 자신을 보지 않겠다고 했던 그 말.
지금의 자신은 이전에 비해 많이 쓸만해 졌을까. 이제는 데리고 다녀줄까.
직접적으로 한번 물어보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거짓말은 웬만해선 하지 않는 그들이 직설적으로 거절할까봐.
‘으이그 바보야 왜 그런 말을 꺼내서 점수 따도 모자랄 지경에!’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김주희의 손이 속도를 더했다.
상당한 타격음이 로비에 울려 퍼지고 있는데, 물리방어력이 높아진 만큼 본인 스스로는 고통이 잘 안 느껴지는 모양.
그녀 나름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본 유세현이 무심한 표정 그대로 툭 말했다.
“김주희 자해는 그만하고. 아이템이나 찾아라.”
“...예, 옙!”
당황한 그녀는 황급히 손을 멈추고 아이템을 더욱 열심히 찾기 시작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결국 좋은 아이템은 발견되지 않았다.
* * *
내부미로는 텅텅 비어버린 외부미로와 달리 생존자 여러 팀들이 즐비해있었다
죽음의 협곡으로 나아가던 일행은 2일간 다양한 팀을 만나고 헤어졌다.
경쟁구도로 되어있는 외부미로와 달리 순수하게 삐져나가는 것이 목적인만큼, 협력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생존자들은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서 대부분 굉장히 쿨했다.
단, 한 팀.
표상욱의 팀을 제외하고는.
그는 세 명이서 몰려다니는 일행을 유독 특이하게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일정거리를 두고 쫓아오고 있었다.
선두에서서 들키지 않도록 지도를 흘끔 살핀 유세현이 이강호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쟤네들 슬슬 떼어내는 게 났지 않겠냐.”
“그렇지.”
앞으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죽음의 협곡에 도착한다. 이강호는 그전에 그들을 떼어낼 생각이었다.
“오늘 밤 떼어내자.”
“그래.”
“알겠습니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 도태된 자들의 무덤(2) -여기부터 유료연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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