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6화 (56/612)

폐쇄병동(3)

촤악!

서걱!

유세현과 이태광, 그리고 생존자들의 검격에 의해 착실히 정리 되가는 마수.

마수와 생존자 사이에 생긴 피의 향연은 조금씩이지만 생존자들의 우세로 점점 굳혀져가고 있었다.

드르륵!

하지만 어느 순간, 굳게 닫쳐있던 방화셔터가 올라갔다.

셔터너머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변종 몬스터가 침을 질질 흘리며 서 있었다.

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거대마수.

목이 2개인 이 마수는 발이 거미처럼 구부러져 8개나 되었고, 몸을 실로 이리저리 꿰맨 흔적이 남아있었다.

본래라면 출구를 굳건히 치키고 있어야하는 괴수.

여러 개의 신체를 조합해 만들어진 산물.

[키메라]

크허엉!

도합 20마리나 되는 키메라가 생존자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재빨리 접근하여 털을 붙잡아 몸통에 올라탄  목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찌이익!

팔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썩은 몸뚱아리가 잘려나가고, 이윽고 반 이상을 넘자 키메라의 목이 위 아래로 덜렁덜렁 흔들렸다.

깊숙이 박힌 마검을 빼낸 유세현이 혀를 찼다.

롱소드로 변화시킨 마검 루베르크로는 어떻게 해도 단번에 목을 자르는 것이 불가능한 탓.

‘길이를 늘여야 하나?’

순간적으로 고민이 들었지만, 그는 이내 검신을 늘리지 않았다.

루베르크가 형태변환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한번 뿐.

지금 무기의 형태를 바꿔버리면, 보스몬스터를 상대해야 되는 그로서는 언 발에 오줌 싼 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세현은 어쩔 수 없이 검을 여러 번 내리치는 것으로 결정타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잠깐 동안 붙잡혀 있는 잠깐사이, 버티다 못한 일부 생존자들의 입에서 아비규환이 터져 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3000명이나 되는 인원을 괴롭히기 위해 준비한 키메라를 의도적으로 전부 이곳에다가 쏟아 부운 것이었으니까.

“끄아악!”

앞 발톱을 피하지 못한 생존자의 몸이 반으로 나뉘고

우적 우적.

두개의 머리를 감당하지 못한 다른 생존자의 몸은 키메라의 뱃속으로 사라진다.

로비에는 뼈와 생살이 씹히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다.

크허헝!

포효한 키메라는 다음 먹잇감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생존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건 이길 수 없어. 도, 도망쳐야 돼!”

패닉으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던 순식간에 진형이 붕괴되고 의미 없는 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도주하는 이회성을 본 이한별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회, 회성씨 자리를 지키세요!”

“으아아아!”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병동 내부로 사라졌다.

우르르 뛰어가는 생존자들을 확인 한 장원석이 입술을 곱씹었다.

적의 수는 고작 해 봐야 20.

죽기 살기로 모두가 달려든다면 많은 피해를 입더라도 어찌어찌 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광 형님! 저는 끝까지 남겠습니다.”

“같이 후퇴해라!”

“하지만!”

“방해 된다! 길태야!”

“예! 알겠습니다!”

단번에 말뜻을 알아챈 김길태가 재빨리 뛰어가 장원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장원석은 단번에 그의 손을 뿌리쳤다.

“길태형님! 태광형님이 지금까지 저희를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데 이대로 두고 갈 생각을...정말 실망...”

퍽!

말이 끝날 새도 없이 김길태의 주먹이 안면을 가격했다.

장원석은 여기 다 괜찮지만, 이태광에 대한 집착이 큰 흠이다.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김길태가 외쳤다.

“정신 차려! 너가 있어봤자 도움 안 되는 거 모르냐! 지금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한시라도 빨리 팀을 재정비해서 돌아오는 거다! 따라와!”

타다닥!

말을 마친 김길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부를 향해 달렸다.

장원석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윽!”

비음을 내뱉은 장원석도 김길태의 뒤를 쫓았다.

이제 이 장소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이태광과 유세현 뿐이었다.

그새 세 마리를 처리하는데 성공한 유세현 쓰러지는 키메라의 몸에서 재빨리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한 마리를 간신히 처리한 이태광이 호흡을 고르며 애써 감탄사를 터트렸다.

“동생! 많이 대단한데?”

“......”

유세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말이 귀까지 닿지 않았다.

그는 현재 적의 의중이 뭔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날카로운 그의 눈동자가 생존자들이 달려간 방향에 위치해있는 안내판을 흘끔 살폈다.

[영안실]

그 어느 때보다 사고가 빠르게 굴러간다.

유세현은 생존자의 입장이 아닌 적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봤다.

도주를 시작한 사람들.

뒤쫓지 않는 키메라.

‘설마?’

거기까지 생각한 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먼저 도주한 생존자가 어둠의 마력 소지자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모두를 종합하여 나올 수 있는 가설은 오직 한 가지.

‘방으로 유인하고 있는 건가?’

유세현은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경계 자세 그대로 영안실 방향을 향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여태까지 같이 맹공을 퍼부어오던 키메라가 으르렁 짖기만 할뿐 좀처럼 달려들지 않는다.

가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 상황...나쁘지 않아.’

확인 컨데 근처에 트랩은 없다.

경계 해야 할 어둠의 마력을 지닌 사람들도 생존자들과 함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경계하던 모든 변수가 사라진 것.

유세현은 천천히 무릅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적의 능력치는 F랭크 최상 아니면 E랭크 최하.

이정도의 스펙이라면, 굳이 마력을 소비하여 암흑투기를 사용할 필요 없이 검으로 베어죽이면 된다.

유세현이 반동을 이용해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영안실 방향에서 새까만 어둠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허억 허억.”

영안실 바로 근처까지 도망친 생존자들의 입에서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온몸은 그야말로 식은땀 범벅.

앞에 위치한 거대한 문을 확인 한 김우성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씨...씨발. 이건 너무 말도 안 되잖아.”

비통함과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

그도 그럴 것이다.

1,2,3,층의 난이도가 순서대로 1,2,3 이었다면 4층의 난이도는 단번에 7정도,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아, 앞으로 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그 누구도 쉽사리 뒷말을 꺼내지 못한다.

앞은 보스의 방, 뒤는 키메라.

방법이 존재하긴 한단 말인가.

1년 같이 긴 정적이 잠시 동안 이어졌다.

침묵을 깬 것은 이한별이었다.

그녀는 간신히 유지되던 균형을 깨트린 장본인을 향해 말했다.

“회성씨...”

“하, 한별씨!”

“아깐...왜...”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너무 무서워서...빌딩 때 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마지막에 저 안도와주시고 손 빼셨잖아요.”

뭐라 말을 제대로 꺼낼 틈도 없이, 이회성이 입에서 변명이 랩처럼 쏟아졌다.

이런 식으로 예전 아픈 기억을 물고 늘어지면, 민감해진 지금, 뭐라 다른 말을 꺼내기도 뭐했다.

“후우...”

결국 이한별은 한숨을 쉬는 것을 짧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타닥 타닥!

그 순간 후방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까지 있던 김길태와 장원석이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하기 무섭게 흩어져있는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태광형님이 아직 싸우고 계십니다. A조는 전부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어차피 태광형님이 지면 모두 죽습니다!”

“......”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정확한 일침이었다.

이한별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급박한 상황인 만큼, 겨를이 없어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이곳 어디에서도 유세현은 보이지 않는다.

“저기요! 그곳에 세현씨도 있나요?”

“유세현?”

“예!”

“...있습니다.”

장원석은 그의 이름에 열이 받았지만 솔직히 답해주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그간 유세현을 곁에서 봐온 김우성과 이한별, 유한동의 눈이 이채가 어렸다.

그는 지는 싸움 따위는 할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우성씨! 한동씨!”

“예! 1조 이쪽으로 정렬하시기 바랍니다!”

“2조도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당장이라도 죽을 듯 축 늘어졌던 몸에 생기가 돌아오고 힘이 솟는다.

유세현과 이태광이라는 작은 빛이 보이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조 사망5명, 중상3명. 이상 입니다.”

“2조 사망3명, 중상2명. 이상 입니다.”

“알겠어요! 중상인 사람들은 후방으로! 길태 씨 그쪽은 어떤 가요!”

“이쪽도 딱 끝났습니다.”

“좋아요.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저벅 저벅.

방향을 바꾼 김길태와 장원석 팀을 선두로, 생존자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행여나 빠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후미에 선 이한별의 두 눈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이회성이었다.

‘이 사람이!’

아무리 숨고 싶어도 그렇지, 문을 열게 되면 어쩌려고 저기에 있단 말인가.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쓴 소리를 할 생각으로 다가갔다.

“회성씨! 아무리 겁이 나도 그렇지 어떻게 모두가 가는데 어떻게 혼자 이곳에 있을 생각을 하시나요?”

“으크크 죄송합니다. 발이 아파서...”

고통이 상당한지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이회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한별은 당연히 엄살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만큼 무릎을 굽힌 뒤 손을 내밀었다.

“어디 봐요.”

“예...”

이회성의 발목은 시커멓게 변색 되어 썩어있었다.

이한별의 눈이 단번에 보름달처럼 커졌다.

“회성씨 이거 언제부...”

툭.

하지만 이한별은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이회성의 우악한 손이 그녀를 옆으로 밀친 것.

이한별은 황급히 균형을 잡기위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툭.

제일 먼저 느껴진 감각은 서리만큼 차가운 냉기.

무엇을 만진 것인지 깨달은 이한별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는 반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이회성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예전부터. 아니, 네가 나를 버린 순간부터.”

“......”

띵.

이한별은 머리를 해머로 한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동시에 유세현이 이전 해줬었던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왜, 좀 더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스스로 관리하려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문틈으로 빠져나온 어둠이 이미 그녀의 육체를 완전히 옭아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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