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2)
어둠의 마력을 지닌 한 남자에 말에 의해서.
“그러고 보니 그러네. 길태야 너는 어떻게 생각 하냐?”
“있을 거 같긴 하네요.”
“그렇지? 세현 동생은 어떻게 생각...어? 어디 갔어?”
스윽.
살짝 뒤에 위치해있던 유세현이 인파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확인한 이태광이 말을 이었다.
“동생은 어떻게 생각해?”
“있겠죠.”
유세현은 솔직히 답했다.
이렇게 된 이상 혼자 빠지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무리를 한다면 혼자 갈수도 있겠지만, 정황상 따라올 것이 분명하거니와 행여나 따로 행동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멋모르는 그들이 재수 없게 트랩을 작동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같이 다니며 변수를 차단하는 게 나으리라.
유세현은 지금까지 이런 기분으로 그들과 함께했다.
“오! 동생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한번 둘러보고 갈까?”
“그러도록 하죠.”
“하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이태광이 뒤돌아섰다.
그를 따르던 생존자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터주었다.
그들은 병동을 오르기 전 잠시 동안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사이 유세현이 이태광과 이한별을 불러 세웠다.
믿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말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일단 귀띔을 해주는 편이 사건이 터졌을 때 보다 더 빨리 상황정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세현씨 왜 따로 보자고...”
지금까지 개인적인 용무로 찾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만큼 이한별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언제나 밝기만 한 이태광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래 맞아 동생! 뭣 때문에 부른 건데?”
“...일단 목소리를 낮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유라도 있는 거야?”
반문하는 이태광의 말투는 여전히 호쾌했다.
눈치란 것이 아예 없는 것인지.
유세현은 지금 이 순간, 이용이고 자시고 다 때려치울까 생각하다가 애써 인내 한 뒤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이니, 지금만큼은 제 말에 귀 기울려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그래? 뭐 동생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짙고 낮은 음색에 심각함을 느꼈는지 이태광이 그제야 목소리를 낮췄다.
유세현은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 내용은 당연히 철장에서 구출한 인원의 특이점 대한 것.
마력을 볼 수 있는 것을 밝히기 싫었던 그는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것 처럼 속여 설명했다.
내용을 전부 들은 이한별이 짧게 결론을 내놓았다.
“그러니깐. 세현씨 말은 그들이 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예.”
“음...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는 한동씨는 전혀 모르는 눈치셨는데...혹시 세현씨가 사용한 스킬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한별이 물었다. 유세현은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
딱히 서운한 눈치는 아니었다.
행동으로 보거나, 실력으로 보거나 그가 생존자들을 믿지 않는다는 건 팀원 대부분이 눈치 챈 사실이니까.
다만, 그렇게 될 경우.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저도 우성씨나 한동씨에게 전달하기가 좀 그렇네요...스킬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
“...판단하시는 건 자유입니다.”
말을 마친 유세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이태광이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런데 동생은 왜 굳이 이걸 알려준 거야? 어차피 안 믿을 걸 아는 눈치였는데.”
“......”
예상외의 질문이었다.
뇌까지 근육으로만 되어있어 생각이란 건 아예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좋을 대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형님.”
적당히 말을 얼버무린 유세현은 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윽고 이한별도 팀으로 돌아갔다.
이태광 만이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턱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곧 고개를 든 이태광이 김길태를 찾았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어.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길태야 너 혹시 예전 감옥에서 구한 인원들 전부 기억하고 있냐?”
“감옥...말 입니까?”
“그래.”
“예, 인원수가 바뀌지 않았으니 전부 기억은 합니다만 그건 왜...”
“팀을 다시 나눠야겠다.”
“팀을요?”
김길태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자신과 장원석의 성장 이후 손을 놓은 그가 다시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릴 줄은 몰랐던 것.
김길태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나누면 되겠습니까.”
“감옥에 갇혔던 사람하고 아닌 사람. 비율은 상관없어.”
“...이유가 있으십니까?”
김길태가 조심스럽게 묻자 이태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감.”
김기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 * *
거짓의 숲에 위치해있는 병동의 구조는 현대사회에 있는 병동의 구조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비상계단이 없다.
또한 각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항상 건물 끝 맞은편에 위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행은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끝에서 끝까지 등장하는 마수들을 해치우며 나아가야 했다.
정말 운이 좋은 건 나오는 아이템의 질에 비해, 적의 수준이 그저 그렇다는 것.
3층에 위치한 영상의학과에서 마수를 죽이고 전리품을 얻은 김우성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하하하! 이거 마귀의 소굴 보다 훨씬 쉬운데요?”
“그러게요! 빌딩까지만 해도 정말 만만치 않았었는데...앞으로도 계속 이대로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유한동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살짝 도끼눈이 된 이한별이 다가와 충고했다.
“그런 행동 자제 부탁드린다고 분명 말씀 드렸을 텐데요.”
“아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아이템을 먹어서 저도 모르게 살짝 들떴었네요.”
“...앞으로는 더 주의 부탁드립니다. 이곳은 아직 적진이에요.”
“예예. 알겠습니다.”
말은 네네하고 있지만 김우성의 표정은 여전히 거만한 그대로였다.
이태광과 유세현이 마수를 휩쓸고 있고, 자신들도 강해진 이상 별일이 없을 거라 맹신하는 것이다.
이한별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변했다고 이렇게 풀어질 수가 있다니.
“한동씨 아직도 반응이 없나요?”
“반응이요? 무슨 말...아! 혹시 저번에 일러줬던 거 말하는 겁니까?”
“예.”
이한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한동이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마세요. 반응 없어요. 그리고 직접 보세요. 우리 팀원들이 배신하게 생겼습니까? 오히려 전보다도 더 열심히 싸우는데?”
그의 말처럼 실로 철장에서 구출 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여유까지 살짝 생긴 지금은 때때로 자신의 목숨만 챙기는 것이 아닌 팀원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한별은 불안했다.
스킬의 능력을 알려주지 못하겠다는 말 때문에 반박을 하긴 했지만 유세현이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할 사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계속 주시해주세요.”
“아. 예예. 알겠습니다.”
“걱정마세요~”
김우성과 유한동은 건성건성 답했다.
어느새 나머지 팀이 3층의 점령을 완료한 상태였다.
* * *
‘이제 4층인가.’
마지막 층을 앞둔 유세현이 상태창을 살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5]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20.1% [E Rank]
민첩: 19.8% [E Rank]
체력: 18.7% [E Rank]
내구력: 18.4% [E Rank]
어둠의 마력: 15.9% [E Rank]
<저항력>
물리저항: 19.1% [E Rank]
마력저항: 17.3% [E Rank]
<속성저항>
화: 1.9% [E Rank]
수: 0.3% [E Rank]
풍: 0.1% [E Rank]
어둠: 100% [SSS Rank]
<스킬>
프로즌 디퓨전 [매직 F Rank][숙련도: 100%]
암흑투기 [유니크 S Rank][숙련도: 98%]
<특수특성>
마(魔)
F랭크의 적을 죽여 얻은 코인을 흡수한 것 치고는 스텟이 이전에 비해 무지하게 증가했다.
항상 개떼처럼 덤벼드는 마수 덕분이었다.
그들은 그 흔한 스킬하나 주지 않았지만, 다양하고 순도 높은 코인을 무척이나 많이 남겼다.
그리고 그래서 일까?
3층까지 적을 싹쓸이한 지금, 이 장소에 있는 생존자들의 스텟은 평균적으로 F랭크 상급이나 E랭크 하위에 속했다.
유세현의 두 눈이 스킬로 향했다.
98%로 올라간 암흑투기의 숙련도가 눈에 띄었다.
스킬을 드러내기 싫었던 만큼, 자기전이나 쉴 때마다 틈틈이 사용한 덕분이었다.
만약 적에게 사용한다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능력을 보여주리라.
‘괜찮네.’
스테이터스 창을 끈 유세현은 허리에 차고 있는 포켓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주머니에서 장난감 창 같은 조그만 한 물건이 손가락에 잡혀 나왔다.
그는 장난감 창을 바닥에 휙 던졌다.
그러자 장난감 창은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세현의 키를 넘어서게 되었다.
병동에서 얻게 된 마법 포켓의 효과였다.
아이템 명: 소형 마법 포켓.
등급: 레어 [A Rank]
상세정보: 마법처리가 되어있는 포켓입니다. 부피를 최대 1/100수준까지 줄일 수 있고 10T의 중량까지 적재가 가능합니다.
아이템 명: 아이언핸드의 화염 미늘창.
등급: 레어 [E Rank]
상세정보: 술에 취한 아이언핸드가 발로 제작한 창입니다. 화로의 불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사용능력: 발화.
소비마력: 150
이 아이템 외에도 건진 것은 팔목보호대, 각반, 낡은 어깨보호대 등으로 여러 개 있었지만 전부 노멀 등급으로 랭크도 낮았다.
실상 이곳에서 제대로 건진 물건은 이 2개 뿐인 것.
유세현은 조심스레 화염 미늘창을 들어올렸다.
날카로이 벼려진 날에 유세현의 얼굴이 비쳤다.
혹시나 무기를 얻지 못했을 이강호를 위한 자그만 한 선물.
이상한 상세정보가 내심 신경 쓰이긴 했지만 물건만 좋으면 그만인 만큼, 유세현은 애써 무시하며 창을 다시 포켓에 집어넣었다.
마지막 층의 공략을 시작할 시간이다.
* * *
휘이잉
4층 내부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선두에서 있던 유세현과 이태광은 그간 하던 것처럼 각각 양쪽에 위치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덜컥. 덜컥.
갑자기 문짝이 열리며 습격 해오던 1,2,3층의 패턴과는 다르게, 4층의 문은 죄다 굳건히 잠겨져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아무런 전투 없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드르륵! 쾅!
갑자기 내려온 방화셔터가 출구로 이어진 길을 차단했다.
“뭐야?”
깜짝 놀란 김우성은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챙!
부딪친 검신이 단번에 튕겨져 나왔다.
셔터를 확인한 김우성과 일부 생존자들의 두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움푹 파이기는 커녕 흠집하나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도.
“무. 무슨...”
여유롭던 생존자들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것.
꿀꺽.
긴장한 생존자들이 마른침을 삼킨 순간이었다.
쾅! 쾅! 쾅!
모든 방문이 일제히 개방되며 여태까지 상대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숫자의 마수가 튀어나왔다.
팀을 이끄는 조장들은 살짝 당황했지만 해왔던 것이 있는 만큼 착실히 명령을 내렸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강해졌어요. 차분히 상대하면 됩니다! A포메이션!”
“예!”
생존자들은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벽을 만들었다.
그들은 이곳까지 오면서 먹은 아이템과 코인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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