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1)
살며시 다가온 김길태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우리 쪽에 붙을 놈이 아니야.”
“하지만 형님...”
“지금처럼만 하면 돼. 태광 형님이 너한테 신경 많이 써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건 그렇죠. 하지만 왼팔...”
“그거,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냐? 실수 벌써 잊은 거 아니지?”
“...예. 매일 생각하고 있어요...그럼 팀 정비하러 가보겠습니다.”
김길태의 말에 장원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김길태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살며시 혀를 찼다.
‘후...저놈은 집착만 덜하다면 참 좋을 텐데...’
직접 전투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태광이 관리를 떠넘긴 만큼, 사실상 팀을 이끌고 있는 주축은 김길태와 장원석이었다.
수가 많은 만큼 A팀은 김길태가 B팀은 장원석이.
튜토리얼 초기당시만 해도 장원석이 겁만 많던 풋내기였던 것을 감안하자면 짧은 시일 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목숨을 담보로 전투를 즐기는 이태광이라는 남자 덕분.
이태광은 정말 규격외의 사람이었다.
그는 모두가 떨고 있을 때 거리낌 없이 팔 하나를 희생해서 고블린을 잡았고, 코인을 흡수하여 강해진 이후로는 더더욱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이 지독한 튜토리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남자.
그에게 있어서 이곳은 차라리 현대보다도 나은 장소였다.
그리고 이 때문일까.
이태광의 무력을 확인한 생존자들은 점점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성격 또한 단순하지만 우직하여 처음 빌붙으려고만 하던 생존자들도 결국 믿고 따르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태광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영웅인 셈.
그리고 이는 이미 양두산맥이 된 장원석이 왼팔이라는 직위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후우...또 멋대로 일을 벌이진 않겠지.’
김길태의 머릿속에 며칠 전 도시에서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왼팔이 되기 위해서 뭐가 부족한지 고민하던 그가 자신의 팀원을 데리고 보스 방으로 멋대로 돌격한 사건.
그 사건으로 절반이 넘는 팀원이 함정에 빠졌다.
만약, 철장에서 그들을 구출해내지 못했더라면 장원석은 그토록 원하는 왼팔은 커녕 팀장의 자리에서도 내려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으니까.
김길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은 왜 괜히 나를 오른팔이라고 불러서...’
오른팔이라는 것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시.
그에게 간단한 심부름을 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후...원석이도 바보는 아니니깐.’
장원석의 광적인 집착이 살짝 못 미덥기는 했지만, 그도 고통을 딛고 올라온 노력파.
그는 장원석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두에선 이태광과 유세현이 어느새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 * *
“하하! 세현 동생 어때? 생각은 해봤어?”
전투가 끝나자 여느 때처럼 이태광이 물어왔다.
처음은 험악하게만 느껴졌지만 이제는 하도 봐서 익숙해진 얼굴.
지금까지 해온 행동으로 판단컨데, 단순한 싸움 바보라고 결론을 내린 유세현이 완전히 선을 그었다.
“제 대답은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보시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에헤이...”
딱 자르자 이태광이 아쉬운 표정이 되어 입을 쭉 내밀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왼팔이 싫으면 동생은 어때?”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으시다만...”
“에이! 자네가 형님이라고 안 부르잖나!”
어리광을 피우는 이태광의 행동은 정말 아이 같기 그지없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인지.
타인을 믿지 않는 유세현의 명석한 두뇌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형, 동생이라...’
이용해 먹을 가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사리사욕에 팀원을 이용해먹었던 김주환과 달리, 그는 역으로 팀을 극진히 아끼는 보기 드문 참된 리더였으니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가.’
왼팔은 명실상부한 상하관계이지만 형, 동생은 관계는 동일한 입장이다.
행여나 그가 이상한 요구를 해온다면 거기서 연을 제대로 끊어버리면 되는 것.
계산을 마친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오...진짜? 진짜로? 내 동생 하는 거야?”
“네, 형님.”
“오오~!!”
이태광이 와락 끌어안으려 팔을 벌렸다.
유세현은 살며시 몸을 뒤로 빼며 피했다.
“접촉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그래? 그러면 뭐 별수 없고. 잘 부탁한다. 세현아! 하하하!”
“예.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둘은 다시 간단한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또 다시 장원석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지켜봤다.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곱씹은 그의 입술에서는 피가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 * *
거짓의 숲은 그 어디로 나아가도 마지막은 항상 같은 곳을 지나게 되어있다.
다 무너져 가는 폐쇄병동.
식인덩쿨이 주렁주렁 외벽을 감싸고 있는 병원의 내부에서는 온몸이 뼈로 된 해골이 수정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껏 등장했던 언데드를 직접 제작한 장본인.
리치 아키몬드.
수정구슬에 비치는 한 생존자무리를 확인 한 아키몬드의 이빨이 즐겁게 부딪혔다.
이곳을 수십 년 지켜온 아키몬드 또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제법 강한 생존자들이었다.
“크흐흐. 이놈들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일반적인 생존자들이 폐쇄병동을 지나가는 시기는 아무리 빨라야 11일에서 12일 사이.
아키몬드는 촉박한 시간 때문에 급하게 이곳을 지나가는 생존자들에게 미리 심어둔 함정과 대량의 몬스터 웨이브를 이용해 절망을 주었다.
그리고 이는 내부 깊숙한 곳에 봉인되어 나가지 못하는 아키몬드에게 있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절망에 찬 비명소리, 끊이지 않는 아비규환.
허나, 이것만으로 갈증이 완전히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리치화하며 생전의 기억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마법으로 적을 직접 죽이던 짜릿함만큼은 아직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다.
아키몬드는 직접 적을 죽이고 수급을 취하는 그런 고양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지만 그의 이런 바람이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앞서 말했듯이 시간이 촉박한 생존자들이 병동내부 탐색을 하지 않고 길이 이어져 있는 출구 뒷편으로 그냥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방을 벗어날 수 없는 아키몬드로써는 탄식할 일.
그런데 이번 생존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키몬드가 재빨리 그들의 도착시간을 계산했다.
앞으로 하루.
고작 7일 만에 병동에 도착하는 것이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해볼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언데드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1층은 쉽게, 2층은 적당히. 3층은 아주 약간 더 어렵게
침입자들이 의지를 잃지 않고 4층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마침내 4층에 올라오게 되면 그때는...
“크흐흐흐!”
딱!
배치를 끝낸 아키몬드가 광소를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뼈로 이루어진 손가락을 튕겼다.
이곳으로 향하는 생존자들이라면 무조건 가지고 있는 함정, 아니 살아있는 폭탄을 발동시키는 키워드였다.
* * *
폐쇄병동의 입구.
이한별의 팀이 만전을 기하기 위해 멈춰 선 잠시 동안, 이태광과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부로 들어갔다.
크허헝!
지금까지 줄곧 나타났던 마수 20마리가 곧장 그들에게 달려들었지만, 전부 처리하는 데에는 채 1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세현의 두 눈이 로비 중앙에 위치해 있는 안내표지판으로 향했다.
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이 병원 어딘가에 몬스터가 숨어 있을만한 장소를 찾는 것.
그의 시선이 4층 맨 끝에 위치해 있는 영안실에서 멈춰 섰다.
‘4층에 영안실이라...’
등장한 몬스터로 보나, 침침한 분위기로 보나 실로 이곳과 딱 맞아 떨어진다.
유세현은 내부로 진입한 생존자들을 바라봤다.
이곳부터는 어떻게든 그들을 떨어트리고 혼자가고 싶었다.
아이템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다.
스킬하고 아이템만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는 없었으니까.
신경 쓰이는 것은 오직 하나.
어둠의 마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분명, 뭔가 있을 텐데...’
이곳은 분위기로 보나 뭉쳐있는 마력 양으로 보나 거짓의 숲의 마지막 부분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터진다면 반드시 이 주위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뒤늦게 들어온 이한별이 물었다.
유세현은 차분히 입구 끝 방향에 위치해 있는 출구부분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출구를 발견했습니다.”
“오! 그럼 일단 가보죠!”
유세현과 나머지 팀은 적을 죽이며 병원 출구로 나아갔다.
병원 출구 끝으로 한줄기의 찬란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도시 때도 보았던 빛.
이한별이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여기가 끝인가 봐요!”
“그렇군요.”
“어서 가도록 하죠!”
그녀의 말에 제일 선두에 서 있던 이태광이 자연스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뒤를 이한별의 팀이 따랐다.
틈을 보고 있던 유세현이 슬그머니 빠지려던 찰나였다.
“한별씨.”
한 남성이 이한별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전 철장에서 구출한 이회성이였다.
“예? 왜 그러세요. 회성씨?”
“아니, 이대로 그냥 빠져 나가실건가 해서요.”
“예? 그게 무슨...”
“이 병원에 아이템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주변이 한없이 고요한데다, 걸음 소리 밖에 나지 않고 있었기에 이회성의 목소리는 생존자 전원에게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선두에 걷던 이태광이 발걸음을 멈췄다.
유세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최상의 시나리오가 단번에 최악의 시나리오로 바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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