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3화 (53/612)

거짓의 숲(2)

마수의 뼈로 만들어진 산의 너머.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는 냇가에서는 유세현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주위를 경계하며 접근한 이한별이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

유세현 또한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정신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조금씩 거리를 좁히더니 이제는 바로 뒤까지 따라잡은 후방 부대.

“출발하지 않으실 건가요?”

“이 숲에 들어온 인원이 전부 이곳에 모이면 출발 할 생각입니다.”

“예?”

아리송한 말에 이한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지척을 울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태광이 이끄는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하하! 형씨가 제일 먼저 이 숲에 들어 온 사람 맞지?”

호쾌하면서도 우렁찬 목소리.

유세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가 지금 한 행동은 몬스터들을 자극할 수도 있는 조심성 없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적진 한복판.

생각이란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니 적어도 뇌를 지닌 생물이라면 이런 식의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뭐하는 놈이지?’

10초간의 짧은 대면으로 판별한 첫 인상은 그야말로 최악.

유세현은 상종하기 싫었지만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써 기다린 만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크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태광이 다시 한 번 호쾌하게 웃었다. 옆에 서 있던 김길태가 미세하게나마 고개를 휘휘 저었다.

“조금 전 좁은 숲길을 지나오면서 죽은 마수도 봤는데 그것도 형씨가 한 거 맞지?”

“예.”

“캬하~설마 혼자?”

“......”

“크~ 대단해! 대단해!”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멋대로 판단한 이태광이 박수를 쳤다.

어딘 나사 하나가 풀린 듯한 덜떨어진 행동.

지금 하는 것이 경계를 풀기위한 연기라면 그야말로 남우주연상 감이다.

무심하게 이태광의 얼굴을 바라보는 유세현의 경계심이 더욱 높아져만 갔다.

무슨 이유로 이곳에 따라 들어온 것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대놓고 접근한 것인지 여러 생각이 뇌리 속에서 교차하고 있을 때였다.

이태광이 손을 내밀었다.

“하하. 난 이태광이라고 하네!”

“...유세현입니다.”

“오! 세현이라고? 정말 마음에 드는 이름이야! 그래서 말인데 어때? 내 왼팔이 되는 게?”

“......”

전후사정 및 앞뒤맥락을 다 자른,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스카웃 제의였다.

이한별과 김우성, 유한동을 포함한 유세현의 힘을 본적 있던 모든 생존자들의 표정이 꿋꿋이 굳었다.

유세현은 일단 정중히 거절했다.

이태광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허허! 내 왼팔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는데 말이지.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

“...죄송합니다.”

“에헤이! 뭐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세현 동생! 마음 바뀌면 언제든 말하라고! 난 담력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거든!”

말을마친 이태광이 몸을 거침없이 돌렸다.

커다란 바스타드소드를 허리춤에서 꺼낸 그는 냇물을 지나 이어져있는 숲 내부를 거침없이 향해 걸어 나갔다.

그것도 제일 선두에 서서.

덕분에 의중을 떠보려고 했던 유세현은 한동안 벙찐 얼굴이 되어야만 했다.

뒤를 따라오면서 뒤통수를 노린 생존자들은 그간 본적 있었어도 저렇게 직접 앞으로 나서서 행동을 취하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좀처럼 의도 파악이 안 되는 남자.

이한별의 짧은 평가가 이어졌다.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사람이네요.”

“이상하긴요. 제 눈엔 그냥 멍청해 보이기만 하는데...왜 저렇게 따르는 건지 원. 함정에 걸리거나 하면 죽을 텐데.”

이태광을 뒤 따라가는 인원들을 본 김우성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무척 동감 되는 말일 뿐더러, 실상 그들은 이미 많은 사람이 함정에 걸린 듯 했다.

180명이 넘는 인원들 중 100명 정도의 인원이 어둠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은 다한 셈.

정말 신기한건 이태광과 김길태가 일반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세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대로 된 의도 파악은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어차피 같이 갈수 밖에 없는 길.

뒤를 쫓다가 스킬이나 아이템을 얻게 될 찬스를 놓치게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 * *

숲을 걷기 시작한지 벌써 4일이 지났다.

그사이 유세현은 어둠의 마력을 지니게 된 사람들의 동태를 관찰했다.

특이한 행동은 하지 않는지, 구울처럼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허나, 아쉽게도 별다른 점은 아직까지 발견된 것이 없었다.

몇몇은 애매하게나마 흉폭함이 과해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것으로 판별하기에는 일반 마력을 가지고 있던 이태광이라는 남자가 더 많이 미쳐있었다.

“히야하!”

투두둑!

이태광의 입에서 튀어나온 광소와 함께 달려들던 마수 3마리의 척추가 단번에 끊어져나갔다.

희번덕 뜬 그의 눈이 전방에 위치한 3m가량의 큰 몸집을 지닌 곰 형태의 괴수를 향했다.

그 괴수는 집단을 향해 정말 미친 듯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누군가 앞으로 나서 막지 않는다면 충돌하는 것만으로 팀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흐흐흐! 어디서!”

앞으로 나선 이태광은 곧장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괴수 또한 발톱을 휘두르며 항전했다.

치이익!

경도가 비슷한 두 무기가 정면에서 부딪히며 마찰음이 울리고 스파크가 튀었다.

무식한 힘과 힘의 대결!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은 이태광쪽이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반대로 슬그머니 올라가 있었다.

자신보다 스텟이 높은 적과 조우했을 때 일단 겁부터 먹고 보는 일반 생존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살며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한 이태광의 바스타드소드가 괴수의 목을 노렸다.

괴수가 앞발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한 순간이었다.

이태광의 몸이 갑자기 빠르게 회전했다.

휘이익!

촤악!

어느새 하단으로 내려온 바스타드소드의 검신은 괴수의 허리를 그대로 갈랐다.

괴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태광은 조금의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머리를 깨부쉈다.

반토막이 난 괴수의 몸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괴수의 몸 위에 올라선 이태광이 커다란 광소를 다시 한 번 터트렸다.

“크하하하! 역시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힘겨운 놈은 나와 세현 동생이 전부 처치했다! 그러니깐 전부 죽여라!”

“예!”

그 이후로는 이태광 팀의 일반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유세현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간 지켜 본 바.

이태광은 정말 미친놈에 가까웠다.

적의 능력은 확인하지도 않고 돌격하는 무식함.

그리고 몸을 아끼지 않는 공격까지.

때문에 본래라면 목숨이 100개 있어도 부족했겠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이 모든 걸 커버해 주는 것을 이태광은 지니고 있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탁월 한 전투 센스.

즐기듯 전투를 하는 그는 우월한 감각으로 부족한 스텟을 메꾸고 있었다.

최대한 합리적이게 움직인다지만, 그래도 스텟이 기본적으로 받쳐줘야 되는 유세현의 전투 방법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전투 방법.

그리고 이것은 이 많은 생존자들이 이태광을 따르는 이유기도 했다.

상대하기 힘든 적을 직접 나서 처치해주는 사람은 이곳에 몇 없을 테니까.

잔존 몬스터를 전부 처리한 이한별이 혀를 내둘렀다.

“저 이태광이라는 남자...정말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요...처음 봤을 때는 그냥 단순 무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김우성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사회에서는 뭐하던 사람이었을까요?”

“글쎄요...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굳이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미지가 떠오른다.

흉악범, 조폭, 살인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태광에게 나쁜 생각이 들진 않았다.

죽음이 항상 드리우는 여정을 조금이라도 쉽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그의 팀이었으니까.

이한별이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내던 찰나였다.

어깨 틈으로 악마같은 이태광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 이한별은 너무 놀라 생각이고 자시고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세현 동생은 어디에 있지?”

“저, 저 쪽에서 쉬고 계세요.”

“고마워 아가씨~”

당장이라도 살인 할 것 같은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정중히 인사 한 이태광이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향해 나아갔다.

유세현은 괴수의 뱃속에서 새로 얻은 검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이템명: 부식된 정령의 레이피어.

등급: 노말 [A Rank]

상세정보: 오랜 시간 부식되어 그 녹슨 정령검입니다. 샐러맨더의 화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사용효과: 화속성 부여

소비마력: 50

‘흠...나쁘지는 않네.’

등급과 스킬만 보자면 부식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마검보다 쓸만하다.

문제는 검신이 얇고 녹이 잔뜩 쓸어 잘못 사용 했다가는 부러질 수도 있다는 점.

부러지게 되면 추후 마검에게 무기를 먹일 수 없게 된다.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마검에게 먹이는 게 났겠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이 레이피어를 허리춤에 차고 앞을 바라봤다.

이태광은 그가 할일을 끝마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참을성 없는 모습을 보이던 그간의 성격을 고려하자면 신경을 나름 많이 쓴 셈.

이태광이 히죽 웃었다.

“세현 동생! 어때? 내가 한 말 생각 좀 해봤어?”

“...어제도 답변 드렸지 않습니까.”

“어허~어제랑 오늘은 다른 법이지.”

쥐뿔도 없는 논리.

첫날 이후 이태광은 하루에 한번 씩은 꼭 자신의 왼팔이 되라고 권유했다.

그것이 유세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무슨 모략을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반복될수록 의심이 깊어지게 된다.

즉. 권유하면 권유할수록 손해만 보는 것은 이태광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은 그가 아무리 멍청이라도 사람인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멈추지를 않다니.

유세현은 그 언제나처럼 정중히 고개를 저었다.

“제 대답은 똑같습니다.”

“아쉽구만...”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결국 이태광은 또다시 입맛만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유세현은 그런 이태광의 뒷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관심을 껐다.

행여나 그가 진심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것이든, 아니든 유세현에게 이태광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 * *

“씨발...나도 한 번 듣지 못한 소리를 저딴놈이...”

저 먼 치에서 유세현과 이태광을 바라보던 한 남자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이태광 팀의 넘버3이자 자칭 이태광의 왼팔.

장원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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