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들의 도시(3)
유세현은 책임자가 되었다고 해서 막 부려먹는 행동 따윈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도움은 주되 일정 선은 지켰다.
“여기 왼쪽 발밑 조심하기시기 바랍니다.”
“예? 왼쪽이요?”
“예.”
“아, 알겠습니다.”
그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경계를 보이던 생존자들은 유세현의 지시에 조금씩이나마 능동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그가 내리는 명령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처음에는 뒤에서 연신 욕을 내뱉던 김우성까지 이제는 별말 없이 납득하는 모습.
“한동씨 조는 좌측! 우성씨 조는 우측! 한별씨 조는 후방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방은 제가 맡겠습니다.”
“예!”
사람들은 점점 더 수월하게 빌딩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층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등장하는 해골병사의 수가 많아졌지만, 생존자들 또한 코인을 먹고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유세현이 묘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최상층을 앞에 둔 유세현의 두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아무리 봐도 뭔가 수상해.’
아무리 대량이라지만 해골 병사의 능력은 고작 고블린 2마리를 합쳐 놓은 정도.
이것은 법칙의 섬의 내부에 위치해 있던 몬스터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더 강해지지는 못할망정 약해지다니?
‘혹시, 다른 게 있는 건가?’
의심은 가지만 확신이 될 만한 꺼리가 없다.
유세현은 최상층까지 도달한 만큼 보스를 처리 한 뒤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 앞에 선 유세현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각 조의 조장을 향해 짧게 말했다.
“지금부터 돌입하겠습니다.”
“예!”
끼이익!
커다란 문이 단번에 젖혀지고 넓게 펼쳐진 복도 끝으로 지팡이를 들고 있는 특이한 해골병사 5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 타락한 마법사의 동굴에서도 익히 본적 있는 무기.
새빨간 피로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 앞에서는 스켈레톤 메이지가 해골병사를 연신 소환하고 있었다.
적의 특성을 파악한 유세현이 곧장 몸을 날리며 외쳤다.
전투계열이건 소환계열이건 마법사라는 종류의 몬스터는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각 조별로 한 마리씩! 2마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예!”
“알았어요!”
각 조의 조장과 생존자들이 유세현을 따랐다.
키아악!
스켈레톤 메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괴음을 내며 매섭게 달려드는 해골병사.
서로 한데 얽혀 싸우는 모습은 난전 그 자체였지만, 그간 잦은 전투로 공격 패턴을 파악한 생존자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애초에 이 빌딩은 몬스터보다도 트랩이 훨씬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곳이었으니까.
서걱!
투두둑!
유세현과 각 조장에 의해 차례차례 격파 되어가는 스켈레톤 메이지.
결국, 전투는 1조장 김우성의 검이 마지막 남은 스켈레톤 메이지의 목을 치는 것으로 완전히 끝을 맺었다.
“후우 후우.”
“허억 허억.”
해골병사의 기세가 이전보다 더 독했던 만큼 생존자들은 잠시 주저앉아 지친 심신을 달랬다.
그 사이 각 조의 조장들은 전리품을 살피기 위해 스켈레톤 메이지의 시체로 다가갔다.
뼈다귀 틈을 살핀 김우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한별 씨 거기 코인 나왔어요?”
“아뇨, 여기도 없어요.”
“거기도 없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이변에 각 조장들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세현 또한 애써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태까지 몬스터를 쓰린 후 전리품이 나오지 않은 적이 있던가.
그들이 재차 뼈다귀 사이를 파헤치려는 찰나였다.
파앗!
해골병사들을 소환하던 마법진에서 강한 빛이 터져 나왔다.
[오망성의 일부분을 무너트리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망자들이 분노합니다.]
슈우욱!
주위 사물이 갑자기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을 포함한 유세현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빨려 들어가듯 매섭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이건!’
유세현은 이것을 이미 한번 경험 한 바가 있었다.
백화수를 구출하던 당시 이강호의 실수로 트랩이 발동되었을 때!
“지금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은 말과 동시에 들어온 문을 향해 질주했다.
우월한 스텟에서 나오는 빠른 반응속도와 탁월한 균형감각 덕에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수 초.
이어서 이한별과 김우성, 유한동을 포함한 생존자들이 일부 뛰쳐나왔다.
“사, 살려줘!”
“버리지 마!”
하지만 아직도 많은 생존자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
점점 닫혀가는 문을 확인한 이한별이 내부로 손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빠, 빨리 오세요! 이건 못 막아요!”
“으아아!”
생존자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이한별의 손을 밧줄 삼아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한별이 모든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 한별씨! 도, 도와주세요!”
문에 가까이 접근하는데 성공한 남성이 다급히 외쳤다. 손을 뻗어 구해주기를 바라는 것.
허나, 문은 이미 너무 많이 닫힌 상태였기 때문에 빠져나올 틈도 없을 뿐더러, 자칫 잘못하다가는 애꿎은 이한별의 손목만 잘려나갈 수도 있었다.
“죄, 죄송해요!”
결국 이한별은 고개를 돌리며 남성을 외면했다.
“한별씨이이!!”
완전히 닫히는 문 사이로 남성의 처절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조원을 허무하게 잃은 김우성이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씨바아아알!”
쾅!
갈 곳 없는 그의 분노가 굳게 닫혀버린 문에 직격했다.
지지직!
쨍그랑!
그 순간 문이 유리조각처럼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이제 문이 위치해 있던 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막혀버린 단단한 콘크리트 벽뿐.
잠시 동안 긴 정적이 이어졌다.
2조장 유한동이 슬쩍 눈을 흘겨 집단의 상태를 살폈다.
이한별은 죄책감 때문인지 사색이 된 반면 김우성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지 한 몸 가누기에 급급하다.
한없이 침체 된 분위기.
그 속에서 유한동의 시선이 어느 장소에서 멈췄다.
바로 유세현이 우두커니 서 있는 곳.
그 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조사를 하는 듯한 느낌.
그 순간 유세현이 짧게 혀를 찼다.
‘젠장. 전과 달라...’
문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 만해도 고르게 분포되어있던 어둠의 마나가 한곳에 밀집되어 있다.
필히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는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패닉이 온 조장들이 정신을 채 가다듬지 못한 때였다.
“지금부터 곧바로 이 건물을 빠져나가겠습니다.”
“...세현씨. 다른 사람도 모두 힘들어 하는데 조금 있다가 나가는 게...”
유한동은 모두를 대신해 반문하려했다.
허나, 그 순간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강한 지진과 함께 창문 틈을 통해 들어오던 햇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지이잉.
딸깍. 딸깍.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주위를 은은하게 밝혀주던 형광등마저도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불길한 조짐.
“...일단은 빠져나가도록 하죠.”
유한동은 곧바로 생각을 바꿔 유세현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 * *
“이, 이게 무슨...”
건물 밖으로 나온 유한동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이한별과 김우성도 놀란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무엇인가에 완전히 가려졌다.
완벽한 개기일식.
세상은 온통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어있었다.
“세현씨 이게 무슨...”
쾅!
이한별이 말을 끝낼 새도 없이 머리 위쪽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빌딩 내부가 폭발한 것!
투두둑!
불길이 치솟고 충격파로 깨진 유리조각이 그들의 머리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이한별의 안색이 곧바로 다시 창백해졌다.
유세현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무슨 일을 당했을 지.
콰과광!
폭발이 연달아 이어졌다.
유세현과 이한별의 팀은 떨어지는 잔재를 피해 도로 한복판으로 달려 나갔다.
안전한곳에 다다르자 김우성이 힘찬 주먹이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씨발! 도대체 이게 뭐야!”
무척 짧은 말이었지만, 내포 되어있는 의미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게 보스를 잡았는데 스킬은 커녕 코인도 주지 않았다. 거기다가 난데없이 발동한 함정에 의해 팀원까지 잃었다.
적을 죽이기만 하면 마땅한 보상을 쟁취할 수 있었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는 시스템.
“진정하세요. 김우성씨. 일단은 피해 인원 파악부터 하는 게 우선인거 같아요.”
“후...알겠습니다.”
이한별의 말에 나머지 두 조장들은 곧바로 팀을 정비해 나갔다.
그 사이 유세현은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빌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던 도시가 어둠의 마력으로 전부 치환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아직 마력의 흐름을 완벽히 읽을 수 없는 자신은 해골병사의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이젠, 직접 몸으로 뛰어서 알아내야 되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힘들 줄은 익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보가 없는 게 이 정도일 줄은 차마 몰랐다.
친구 이강호 덕에 미리 강해지지 못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자신 또한 길가에 쭈그려 앉아 불안에 떨고 있는 생존자들 꼴이 났을 것이다.
유세현은 이강호에게 한 번 더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사이 팀의 정비를 마친 이한별이 유세현에게 다가왔다.
“총 30명이 실종 됐어요. 어떡하죠?”
새삼 암울한 말투.
유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걸 제게 보고하시는 겁니까?”
“...예?”
“저희 관계는 빌딩으로 끝났습니다. 현재 팀의 지휘자는 이한별 씨에요.”
“...아.”
이한별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급박한 상황 때문에 계약 조건을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렇다면 세현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망성이라고 했으니 나머지 4곳을 찾을 생각입니다.”
“...그런 빌딩에 또 들어가시려고요?”
“예.”
사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일이었다.
또한 유세현은 시간이 촉박했다.
무조건 14일 이내에 중간지점까지 도착해야 했으니까.
“아무튼 지금까지 제 지시에 따라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유세현은 그들을 이용하려던 계획을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섰다.
그들은 이미 마음이 반쯤 꺾였다.
또한 보상도 없는 그런 장소를 굳이 따라올 이유도 의리도 없다.
그런데...
그어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자동차 사이로 신음 섞인 괴음이 메아리쳤다.
움직이던 유세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들과의 인연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닌 것 같았다.
“이, 이거 대체 무슨 소리야?”
남성의 외침과 함께 유세현은 천천히 마검을 꺼내들었다.
눈이 휘둥그래진 이한별이 황급히 팀원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이윽고 저편에서 괴음을 내뱉은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함몰된 머리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창자, 그리고 잔뜩 변색 된 색깔까지.
구울을 본 유세현은 왜 알림창에서 이곳을 죽은 자들의 도시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 좀비?”
키아악!
말과 동시에 구울이 달려들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