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9화 (49/612)

죽은자들의 도시(2)

그간 봐온 것이 있는 만큼 경계를 하는 것.

“잠깐...뭔가 이상한데? 저 사람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아.”

유심히 살핀 한 남성이 외쳤다.

그러자 그 순간 여성 한명이 무엇인가 깨우친 듯 다급히 외쳤다.

“설마. 적? 한동씨!”

“아뇨. 오자마자 확인해 봤는데 100m 내에 적 같은 건...헉!”

한동이라 불린 남성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여성이 주위 생존자들은 향해 일사분란하게 명령을 내렸다.

“우성씨 조는 좌측 및 후방! 한동씨 조는 우측 및 후방! 전방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한동씨! 적의 숫자는?”

“마, 많아...셀 수 없어요!”

“뭐? 셀 수 없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수가 많은 만큼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겁니다!”

여성의 외침과 동시에 낡은 검을 들고 있는 해골병사가 건물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켈레톤 킹과 외견은 닮았지만 작은 체구나, 위용이나 1%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

지능이 전혀 없는 해골병사들은 유세현에게 조차도 겁 없이 덤벼들었다.

‘마기병 보다도 훨씬 약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유세현은 주위를 경계하며 해골병사를 차례차례 부숴나갔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젤리처럼 힘없이 부서져 떨어지는 뼈마디.

그렇게 한차례 전투가 치러진 후.

긴장으로 인해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수는 어느새 평상시처럼 돌아와 있었다.

이런 저질 같은 기습은 루시뷀트와 치뤘던 전투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 따라간다.

일 천, 아니 수 만 마리가 몰려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감각.

“우성씨, 한성씨 각 조의 피해상황 보고해 주세요!”

“1조 경상 한 명. 생각보다 약해서 다행이에요.”

“2조는 전원 무사합니다.”

그사이 재빨리 팀의 상태를 파악한 여성의 시선이 유세현을 향했다.

100m 이내의 적을 탐색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2조장 유한동 조차도 몰랐던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한 자.

없던 흥미도 자연스레 생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한별이라고 합니다. 당신 덕분에 대비할 수 있었어요.”

이한별은 곧장 유세현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세현의 두 눈이 재빨리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생존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여자군. 그나저나 설마 저 많은 인원이 전부 하나의 그룹이었다니...’

단순한 숫자로만 따지자면 이전 김주환이 이끌던 생존자들보다도 많은 양.

더군다나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다루는 모습은 백화수를 구하러 갔을 때 한껏 얼타던 임시리더와는 자연스레 대비된다.

리더의 자질이 있는 자.

굳이 사서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유세현은 일단 악수를 받아주었다.

“유세현입니다.”

“아. 세현씨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이곳에는 혼자 떨어지신 건가요?”

“예.”

짧은 대답이었지만, 말을 엿들은 생존자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혼자 다니는 인물은 강함의 정도를 떠나 혼자 다닐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

예를 들자면 동료의 뒤를 친 살인자라던가.

“그럼 다른 동료는 없으신가요?”

“뭐, 지금은 그렇죠.”

“흠, 그러시군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혹시 말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한별이 은근 슬쩍 의향을 물었다.

대개 이렇게 물어보면 열 이면 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팀에 귀속되기를 원해 한다.

악인이건 선인이건 혼자보다는 다수가 생존에 훨씬 유리한 탓이다.

그리고 유세현이 예상과 같이 답을 한다면 이한별은 기꺼이 팀에 받아 줄 생각이었다.

뒤통수를 노리는 악인 이라면 가까이 두고 관리하다가 이빨을 드러내려 할 때 잘라버리면 되고, 선인이라면 그야말로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정말 안타깝게도 대답을 하려는 유세현은 이런 이한별의 의중을 이미 읽고 있었다.

“혼자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입니다.”

“예...예? 혼자서요?”

“예. 그럼,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당황어린 이한별의 물음에 정중히 인사를 한 유세현은 더 이상 말을 걸 틈을 주지 않고,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던 새하얀 선을 빠져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가출한 생존자들의 넋이 아직 미처 돌아오지 못한 때였다.

[죽은 자들의 도시에 입성하였습니다. 도시를 정화시키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크낙사스의 초원때와 같은 강한 법칙이 생존자 전원을 옳아 매었다.

유세현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도착한지 1시간도 안되었지만 그간 겪은 게 있기 때문일까.

어떻게 해결하고 나아가야 되는지 대충이나마 파악이 되었다.

* * *

콱득!

서걱!

유세현은 자잘한 해골병사를 처리함과 동시에 혹시 모를 함정에 주의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목적지는 해골병사가 계속해서 출몰하는 콘트리트로 이루어진 성.

고층 빌딩.

20m 정도 살짝 떨어져 뒤를 졸졸 따라가던 이한별의 팀원 중, 1조장을 맞고 있는 김우성이 혀를 내둘렀다.

“한별씨. 왜 혼자가 가겠다고 한 저 녀석의 뒤를 따라가는 거죠? 확실하지도 않는데...”

사뭇 불만이 있는 모습이지만, 정중함이 담긴 말투.

이한별이 곧바로 답했다.

“저 사람이 향하는 방향에서 계속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예? 그게 무슨...”

“알림 창 보셨죠? 뭐라고 적혀있었죠?”

“거기에는 물론 도시를 정화하라고...아!!”

뒤늦게 깨달은 김우성이 입에서 감탄사가 살며시 튀어나왔다.

탑을 탈출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이 마당에 정화시키라는 말이 과연 현대처럼 단순히 자연환경을 되살리라는 의미일까?

이한별을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정화가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일까?

“적을 처리하는 것이겠죠. 아마도 이 끝에는 보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으...그 2차 튜토리얼에서 보았던 마귀 같은 놈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젠장...”

우연히 발견한 던전으로 인해 이미 보스의 위력을 겪은 적 있던 김우성과 몇몇 인원들이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달려드는 해골병사를 부순 이한별의 눈이 재차 유세현을 향했다.

‘분명히 보스가 있다는 걸 알고 가는 거 같은데...’

동요 하나 내보이지 않는다. 또한 오는 적은 너무도 여유롭게 상대한다.

좀처럼 기량을 알 수 없는 요주의 인물.

‘제대로 포섭을 시도해봐야 되나? 아니, 그랬다가는 잘못하면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이한별은 계속해서 망설였다.

그리고 그렇게 고뇌가 되풀이 되는 동안 빌딩의 입구 앞에 다다른 유세현이 조심히 내부를 살폈다.

폐허가 된 로비에서는 칙칙한 어둠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본인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겠지만, 특성으로 인해 마력이 어둠의 마력으로 대체된 지금의 와서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유세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덜컥!

“피해 트랩이다!”

2조장 유한동의 외침과 동시에 옆벽에서 무수한 화살이 쏟아졌다.

단순한 화살이 아닌 어둠의 마력이 가득 담겨있는 화살.

슈슈숙!

“끄아악!”

“꺅!”

제일 바깥쪽에 서있던 생존자 열 명이 고슴도치가 되어 지면에 쓰러졌다.

“침착하세요! 방어 강화 스킬과 방패를 지니신 분이 사이드로!”

“크윽 어째서! 저놈이 지나갈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이한별이 대책을 마련하는 사이, 김우성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 유세현을 보며 부득 이를 갈았다.

이번으로만 벌써 3번째 걸린 트랩이다.

“한별씨 저놈 이상해! 저놈만 계속 함정에 안 걸린다고!”

“...트랩 탐지 스킬이 있는 거겠죠.”

말을 그렇게 받아쳤지만 이한별도 슬슬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긴 이상해. 분명 같은 곳을 밟고 지나가라고 지시했는데 어째서...’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빌딩 내부에 설치되어있는 것은 일반 마력용 함정 트랩.

어둠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이 트랩은 애초에 유세현에게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슉! 콰과광!

이번에는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부상자가 단번에 25명으로 늘어나며 재수 없게 폭발을 정면에서 받은 5명은 사망했다.

흉폭한 몬스터와 싸우며 2차 튜토리얼은 마친 것 치고는 무척이나 허무한 죽음.

그렇게 30층에 도달했을 쯤.

“저기요! 유세현씨 잠시 만요!”

피해를 더 이상 보다 못한 이한별이 유세현을 잡아 세웠다.

“뭐죠?”

“우리 팀의 피해가 너무 심각해요.”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의미하는 바는 무척 간단하다. 도와 달라는 것.

말하는 위치가 고작 몇 시간 만에 바뀌었다.

제안을 하는 갑에서 도움을 청하는 을로.

‘어떻게 할까...’

거둬야 하는 가. 무시해야 하는 가.

유세현의 두 눈이 생존자들을 향했다.

팔이 떨어져 나가 붙이고 있는 중년 남성과 롱소드를 지팡이 삼아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젊은 여성.

체력 스텟이 적은지 회복력이 많이 느리다.

마왕성에서 조우했었던 군인 및 김주환의 팀과는 많이 비교되는 모습.

처음에야 마력량을 제외한 그들의 기량을 파악하기 힘들어 거리를 뒀지만,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만약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하더라도 중간다리 때처럼 몰살 시키는 게 가능하다.

거기까지 파악한 유세현의 두뇌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분명 계속 나아가다보면 다른 생존자 팀과도 조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생존자들이 전부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김주환의 팀처럼 강한 집단이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수적 열세인 자신은 보스를 잡는데 제약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그때는 아이템을 위해 전력으로 대응해야 된다.

‘하지만 그전에 저들이 나를 의지하게 만든다면?’

수적 열세를 조금이라도 극복 할 수 있기에 좀 더 일이 수월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힘을 과신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는 것이 유세현의 모토.

계산을 마친 유세현이 바로 밑밥을 깔았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죠. 대신, 이 빌딩 안에서 만큼은 제 말을 무조건 따라주셔야 됩니다.”

“...무조건 말인가요?”

“예. 어차피 이곳에 한해서지만 굳이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선택은 한별 씨의 몫입니다.”

“......”

이한별은 망설였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을 악용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의심을 할 거면 애초에 도움을 청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한번 의심되기 시작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알겠습니다.”

결국 이한별은 불안감을 끌어안고 어쩔 수 없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부상자를 데리고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다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

어떻게든 이곳을 돌파하여 보스를 잡고 보상을 얻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유세현은 빌딩 내부의 한해서 잠시 동안 팀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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