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1화 (51/612)

죽은자들의 도시(4)

푹!

촤악!

검은 피가 상공에 흩뿌려지고 다 썩어가는 손과 발이 조각조각 잘려 지면에 떨어진다.

생존자들은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웠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체력분배를 적절히 해가며 전투를 치루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가 아예 없다.

이 세계에 막 도착해 고블린과 싸울 때 처럼 뒤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전력으로 상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모두! 제 옆에서 벗어나세요!”

고군분투 하던 이한별이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녀의 볼이 당장이라도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다들 옆으로 퍼져!”

“한별씨가 그걸 쓴다!”

그녀의 행동을 확인한 생존자들은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기라도 하는 듯 재빨리 그녀의 곁에서 떨어졌다.

이내 그녀의 입이 쫙 벌어졌다.

“끼아아!!”

콰과광!

비명어린 외침과 함께 퍼져나가는 파공성.

이한별의 입에서 발사 된 음파는 그녀의 앞에 위치하던 모든 구울을 휩쓸었다.

마귀를 죽이고 얻은 레어 S랭크 스킬.

[파멸의 울음소리]

단발성인데다가 소지한 마력을 전부 소진하는 만큼 최대한 아껴두고 있던 스킬이었지만, 전황의 불리함을 깨달은 이한별이 모두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강철피부!”

“예리한 손톱!”

여태껏 능력을 숨기고 있던 몇몇 생존자들도 자신의 비기에 속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한데 끝까지 능력을 숨기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즌 디퓨젼.’

유세현도 곧장 스킬을 사용하며 항전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도약한 구울 3마리를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마검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조각조각 썰려 지면으로 떨어지는 살점들.구울들은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해골병사보다 훨씬 강했다.

수치로 환산하자면 대략 2배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스텟이 E급까지 성장한 유세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구울을 계속 처리해가며 주위 상황을 살폈다.

조금씩이나마 구울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연쇄작용을 보자면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빌딩 저편으로 보다 짙은 어둠의 마력을 지닌 존재가 느껴졌다.

쿵 쿵 쿵.

이윽고 지축이 거칠게 흔들리며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턱까지 길게 내려온 큰 송곳니와 굽어진 등.

언데드화가 이루어져 육체가 일부 썩어 뭉그러진 자이언트 트롤이었다.

“미, 미친!”

모습을 확인한 생존자들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저 커다란 배틀엑스에 의해 진형이 붕괴되는 순간 끝이 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김우성이 외쳤다.

“젠장! 한별씨! 이곳을 당장 이탈해야 돼! 저놈까지 가세하면 끝이야!”

“안돼요! 지금 움직이면 진형이 무너져요!”

“젠장! 그럼 뭘 어쩌라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적어도 그들의 한에서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홀로 떨어져 구울을 상대하던 유세현의 신형이 자이언트 트롤을 향했다.

자이언트 트롤의 행동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이한별과 김우성, 유한동 세 사람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래졌다.

* * *

크어어.

쿵!

괴음과 함께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나뉜 자이언트 트롤이 지면에 떨어졌다.

이미 한번 죽었다 살아난 만큼 자이언트 트롤은 이리저리 손을 휘두르며 유세현에게 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촤자작!

이윽고 유세현이 머리를 완전히 조각을 내자 자이언트 트롤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곧바로 전리품을 살폈다.

힘 코인 3개에 민첩 코인 4개로 스텟이 잘 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전부 F랭크 등급이었다.

스킬은 자이언트 트롤이 선보이지 않은 만큼 떨어지지도 않았다.

수준은 마기병 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였는데.

‘이 정도인가...’

유세현 스스로도 첫 장소에서 좋은 물품이 떨어진다는 것은 난이도상 말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보스인 만큼 스킬하나 정도는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아쉽게 꽝이었다.

서걱!

유세현은 다시 구울 틈으로 파고들어 학살을 시작했다.

그의 검이 거침없이 적을 가르면 가를수록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전장은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어만 갔다.

* * *

“허억 허억.”

“후욱 후우우...”

목숨을 건 생존자들의 치열한 싸움이 마침내 끝이 났다.

하지만 승리를 거머쥔 생존자들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옷은 넝마 쪼가리가 된지 오래이며 전신은 구울에게 물린 이빨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재수 없게 급소를 물려 사망한 사람까지.

“끄, 끝난 건가?”

주위를 살펴보던 남성 한명이 안도 섞인 한숨 소리와 함께 지면에 털쩍 주저앉았다.

새까만 피가 고여 웅덩이지고 썩은 창자가 나뒹굴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으니까.

전신의 상처를 확인한 남성 한명이 불안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좀비로 변하는 건 아니겠지?”

“...괜찮지 않을까? 애초에 안 물리고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그렇겠지?”

확신이 없는 말이었지만 여지가 없는 그들은 믿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이한별이 재빨리 팀의 피해를 파악해 나갔다.

패닉에 걸리는 바람에 피해를 늦게 파악하여 팀의 밸런스를 늦게 맞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

“우성씨, 한동씨 피해보고를...”

“후우...1조 사망자 3명. 중상 6명 나머지 21명은 경상입니다.”

“2조 사망자 5명 중상 4명 나머지 20명 경상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 쪽에 속해 있는 팀원 2명을 2조로 옮겨드리겠습니다.”

이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세현을 흘끔 흘겨 본 김우성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건넸다.

“그...코인 분배 건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한별씨?”

의중을 묻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생존자 모두를 대표해 유세현에게 한번 말해보라는 뜻.

그의 말에 이한별의 눈도 슬그머니 유세현을 향했다.

“......”

본래라면 유세현이 코인 전부를 독차지 한다고 선언해도 할 말이 없다.

그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생존자 전원은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 구울의 썩은 시체 사이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공로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생존자들 또한 분명히 착실히 구울을 죽여 나갔으니까.

이한별은 유세현이 그간 합리적인 선택을 해온 사람인 만큼 일단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저, 세현씨...코인의 분배는 어떻게...”

“제가 2/3. 나머지 1/3은 그쪽에서 알아서 분배하시기 바랍니다.”

“......”

군더더기가 없는 합리적인 말이었다.

실제로 처단한 구울 숫자는 생존자 전원을 합친 것보다도 유세현이 훨씬 많았다.

“아, 알겠어요.”

생존자들은 코인을 각자의 공로에 따라 코인을 분배해나갔다.

그사이 유세현은 집단에서 조용히 등을 돌렸다.

이번 싸움으로 얻은 전리품은 없지만, 그래도 새로 깨우친 것이 있었다.

마력의 양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단순히 감지할 수만 있던 이전에는 해골병사의 동력원이 되는 마력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오망성의 지주대가 되는 빌딩의 위치를 알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을 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적은 어둠의 마력을 지닌 몬스터는 탐지하기 힘들지만, 방금 등장한 자이언트 트롤 같이 대기보다 더 큰 어둠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장소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유세현은 눈을 감고 감각을 끌어올렸다.

이곳에서 수십 키로 떨어져 있는 4곳에서 강력한 어둠의 마력이 느껴졌다.

‘좋아. 가까운 곳부터 가볼까.’

그가 곧장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황급히 뛰어온 이한별이 외쳤다.

“저, 저희도 같이 가요!”

“...안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건...잘못 된 판단이었어요.”

이곳은 힘이 곧 법인 세계.

마음이 꺾인 순간 죽는다는 것을 생존자들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애초에 목숨을 걸고 빌딩에 올라간 이유도 강해지며 이곳을 통과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르며 그들은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되살아난 이한별의 눈을 본 유세현이 툭 말했다.

“따라오는 건 자유입니다.”

* * *

유세현과 이한별의 팀은 삼일에 걸쳐 오망성의 지주대가 되는 빌딩을 한개 더 부쉈다.

몰려온 구울을 전부 정리한 그들의 앞으로 한 개의 알림창이 나타났다.

[오망성이 완전히 붕괴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가능합니다.]

도시에 떨어졌던 3000명의 인원들 중 다른 팀들이 나머지 세 곳을 완전히 박살낸 것이다.

쩌적 쩌적.

태양을 줄곧 가리고 있던 물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며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생존자들이 나아갈 곳을 알려주는 길.

빛을 향해 이동하던 일행이 출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도, 도와주세요!”

“살려줘!”

출구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에서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익숙한 목소리.

이한별과 여타 생존자들은 놀란 눈이 되어 서로를 반복해 바라봤다.

“서, 설마?”

“가 보죠!”

일행은 만전을 기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 한별씨!”

“회성씨! 살아계셨군요!”

그곳에는 이전 방을 빠져나오지 못했던 생존자들이 철장에 갇혀있었다.

이한별이 곧장 검을 치켜세워 철장을 내리쳤다.

챙!

코인을 흡수해 이전보다 힘이 훨씬 강해졌음에도 철장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갇혀 있던 이회성이 손을 쭉 뻗어 낡은 단상을 가리켰다.

“저, 저기에 열쇠가 있어요!”

“아, 아! 기다리세요!”

이한별이 재빨리 뛰어갔다. 허나, 열쇠를 집으려는 순간 유세현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왜, 왜 그러세요. 세현씨?”

“...아닙니다.”

잠시 망설이던 유세현이 이내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이한별은 영문 모를 그의 행동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지만 이내 열쇠를 사용하여 굳게 닫혀있던 철창을 열어 재꼈다.

“사, 살았다!”

감금되어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와 생존자들을 끌어안았다.

이한별과 여타 생존자들은 그런 그들을 달래며 건물 밖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유세현은 차분히 그것을 지켜봤다.

일반 마력이 있어야할 신체 내부.

풀려난 생존자들의 몸속에는 기이하게도 어둠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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