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8화 (48/612)

죽은자들의 도시(1)

또 다른 던전을 클리어하며 지금까지 봐온 바.

이강호는 유세현의 몸에 있는 마력이 어둠의 마력으로 완전히 변환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가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수한 마력뿐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이강호 또한 화기를 지닌 마력을 얻기 위해서는 남태영에게 전수받은 호흡법, 태양심법을 이용해서 마력을 일부 치환 시켜야했다.

그리고 그 화기를 담은 마력을 전부 소진하면 또 다시 시간을 들여 치환을 해야만 한다.

즉 화기를 담은 마력을 만들고 사용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법칙은 어둠의 마력의 축복을 받은 악마,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천사에게도 적용된다.

그런데 유세현한테는 그런 게 필요 없다.

갈무리되지 않은 어둠의 마력에서 항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기운.

외눈박이 몬스터가 도망을 치기 시작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던 외눈박이는 유세현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

그런데 만약 이런 유세현이 상승내공심법을 익혀 힘을 제대로 갈무리 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 힘을 스킬에 완벽히 응용 할 수 있게 된다면?

권능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이강호는 몸이 으스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자, 그럼 계속 가자.”

“그래. 근데 강호야. 정상까지 앞으로 대충 얼마나 남은 것 갔냐? 이제 하루 밖에 안 남았는데.”

“거의 다 왔어. 걱정 마.”

그들은 계속 걸어 구름이 자욱하게 낀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 섰다.

그러자 여태까지 구름에 가려져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관통하듯 우두커니 솟아 위용을 뽐내고 있는 탑.

구름 섬으로 통하게 되는 길목이자 마지막 튜토리얼이 이루어질 장소.

마침내 법칙의 섬의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 * *

탑 내부는 도우미가 이전 말 했었던 것과 같이, 편안한 휴식을 위해 온갖 맛스러워 보이는 음식과 간단한 샤워 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곳에 자리를 잡은 유세현의 두 눈이 생존자들에게로 향했다.

한 남성은 무기를 정비하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말린 식량을 가방에 챙겨 넣고 있었다.

2차 튜토리얼이 막 시작되었던 한 달 전과는 많이 달라진 행동과 눈빛.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 또한 분명 온갖 죽음을 고비를 겪은 것이리라.

“후우...일단 뭐 좀 먹자. 강호야 내가 먹을 것 좀 챙겨 올 테니까 자리나 맡고 있어.”

“그래.”

“아! 선배님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주희가 재빨리 따라나섰다.

그들은 음식도 먹고, 샤워도 하며 그간 지친 심신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그렇게 달콤한 시간이 흘러 창문 바깥으로 저녁노을이 들어올 무렵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이강호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야, 세현아.”

“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곳에서는 일단 찢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예?!”

갑작스러운 선언에 김주희가 기겁을 하며 놀라는 반면 유세현은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

“응? 왜? 자세히 얘기해 봐.”

“그게 말이야...”

곧바로 이강호의 설명이 이어졌다.

3차 튜토리얼은 한 개의 방안에 3000명이라는 대량의 인원이 동시에 투입 된다. 그리고 한번 인원이 정해지게 되면 중간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 방을 벗어나 날 수 없다.

즉, 그 인원으로 계속해서 탑을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법칙의 섬처럼 직접 아이템을 찾아 나서게 불가능 하다는 뜻.

여기까지 들은 유세현은 이강호의 의도를 단번에 깨우쳤다.

“각자 딴 방으로 가서 그곳에 위치하는 좋은 아이템을 각자 먹자는 거지?”

“그래, 맞아.”

물론 이강호가 원래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3차 튜토리얼은 그만큼 많이 위험하니까.

그런데, 유세현의 힘이 예상보다도 훨씬 강해졌다.

정말 방심만 안하면 당하지 않을 정도로.

“흠...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유세현은 심히 고심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강호와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발전도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

사실, 여태까지 그가 모든 것에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강호가 사전에 정보를 준 덕이다.

이게 계속 반복되다가는 의존경향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

말 그대로 나중에는 이강호의 정보를 듣지 못하면 스스로 불안해 결정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여기서는 강호와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일단 갈라지는 게 맞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은 갈라지자. 합류는 아까 말한 중간지점에서 할 거지?”

“응. 거기서 부터는 어차피 길이 하나로 합쳐지니까.”

“오케이. 그럼 며칠 뒤에 만날 생각이야?”

“딱 이주 이후. 기다리는 기간은 3일. 시간은 2차 튜토리얼 때처럼 하늘에 떠 있을 거니 항시 확인 할 수 있을 거야. 만약 그 안에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튜토리얼이 끝난 뒤 구름섬의 초입 부분에서나 만날 수 있으니 주의 해.”

“흠...그럼 시간을 지키냐 못 지키냐가 관건이네.”

“그렇지. 그럼 지금 부터 주의사항을 알려 줄 테니까...”

이강호가 평소처럼 정보를 주려는 찰나였다.

유세현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주의사항은 됐어. 이번에는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볼게. 혹시 숨겨진 던전 같은 게 있다면 그런 거나 알려줘.”

유세현은 이번만큼은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그래야만 갈라지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과욕은 금물. 아이템 만큼은 확실히 챙겨야 한다.

생각을 파악한 이강호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 자식...의지하지 않겠다는 건가.’

판도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판단력과 결단력 뿐.

“좋아. 알았어. 그렇게 말한다면...”

이강호는 최대한 기억을 되짚어 유세현의 특성을 고려하여 방을 추천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여느 때와 같이 상공에서 도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2차 튜토리얼을 통과하신 14678명의 대리자 여러분 정말 축하드립니다.”

생존자들을 한 번씩 훑어보던 도우미의 시선이 유세현을 확인하기 무섭게 잠시 멈춰 섰다.

얼굴색, 표정 한번 변한 적 없던 도우미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미세하게나마 꿈틀거렸지만 이내 곧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마지막 튜토리얼의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중얼거림 사이에서 도우미가 오른 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바깥과 연결되어 있던 탑의 문이 사라지고 5개의 커다란 문이 일렬로 나타났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5개의 문을 통해 나뉘어져 탑을 나아가게 될 것입...”

그 이후 도우미는 이강호가 해주었던 설명과 동일한 설명을 했다.

유세현은 간단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조심해라 세현아.”

“알아 짜샤. 너나 방심하지 마.”

“선배 님! 꼭 무사히 오셔야 돼요!”

“...흠. 너는 내가 없어지는 편이 더 좋은 거 아니냐?”

“아니에요! 아니라구욧!”

“알고 있어. 농담이야.”

“...헉?”

유세현의 말에 김주희의 두 눈이 보름달 처럼 커졌다.

그는 이강호를 제외한 타인에게 농담 따먹기 같은 것을 절대 할 위인이 아니었으니까.

다르게 보자면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다는 뜻.

이 세계에 도착해 생전 처음으로 하는 단독행동. 트랩에 어쩔 수 없이 걸렸던 마왕성과는 압박감이 사뭇 다르다.

유세현은 쿵쿵 울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아무튼 중간지점에서 보자. 강호야”

“그래.”

“선배님 진짜 몸 조심하세요!”

둘과 갈라선 유세현은 조언에 따라 3번째 문 앞에가 섰다.

끼이익!

눈앞으로 보이는 문 내부는 정말 신기하게도 중력이 반쯤 역전되어 있었다.

자신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무수한 빌딩들.

탑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간다고 설명한 도우미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몇몇 생존자들이 도우미를 향해 외쳤다.

“어...이거 들어가면 바로 떨어져서 죽는 거 아니야? 도우미!!”

“천천히 낙하되니 괜찮습니다. 손을 잡고 계신 분들은 같은 위치로 낙하됩니다.”

“그, 그런 거라면!”

제일 먼저 뚱뚱한 남성이 일행 함께 발을 내딛었다.

하나 둘 씩 도시 저편으로 떨어져 사라져가는 생존자들.

사람들은 저마다 한명씩 반드시 일행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은 오직 유세현 뿐.

‘당분간 혼자인가...’

심호흡을 한 유세현은 차분히 한발 앞으로 내딛었다.

중력이 곧바로 바뀌며 낙하되는 육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 * *

사르륵. 척!

지면에 착지한 유세현은 곧바로 주위상황부터 살폈다.

“으...이 망할 도우미 새끼! 천천히 낙하 된다며!!!”

“도현아 차, 참아. 마지막에는 느려졌잖아.”

약 100명의 생존자들이 주위에 위치해 있었다. 2차 튜토리얼 때와 같이 스타트 지점이 겹친 것.

‘어떻게 해야 할까.’

이강호에 익히 들은 바 3차 튜토리얼에는 숨겨진 던전이 없다 한다.

그 의미를 잘 해석 해보자면 자유의 의지로 던전을 찾아다녀야 되는 1차, 2차 튜토리얼과 달리, 3차 튜토리얼은 보스 몬스터가 자연스레 등장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무작정 혼자 다니는 건 좋지 않겠지만...’

믿을 수 없는 집단과 같이 있는 것은 이보다 더 좋게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마도철, 김주환 형제의 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래,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가 났다.’

유세현이 스스로의 힘을 믿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사르륵.

저 앞에 위치하고 있던 무엇인가가 이곳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마력을 타고 느껴졌다. 딱히 감지 스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느낄 뿐이다.

스윽.

유세현은 스스로의 감각을 믿고 조심히 마검 루베르크 빼들었다.

타락한 마법사의 던전에서 얻은 검을 먹고 노말 C랭크로 등급이 올라간 루베르크의 새까만 검신이 빛을 흡수했다.

본래라면 B랭크인 루카스의 검을 먹이고 싶었지만 루베르크는 부서진 것을 흡수하지 않는게 흠이라면 큰 흠이였다.

“저 사람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러게요. 그런데 뭐하는 거지? 설마 우리랑 싸우려고?”

“설마요. 이런 상황에...아이템도 없는데...”

한편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몇몇 생존자들이 유세현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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